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64
165. Hate to Hate (3) >
***
젠킨슨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네 또 그 말도 안 되는 가설 들이밀려는 겐가? 로드가 수명 연장을 위해 자식 몸을 빼앗으려고 했고, 기존의 늙은 몸은 버린 거라고?”
“아니,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어.”
용은 그제서야 민준이 방금 한 말을 되새겼다.
‘로드가 누구 손에 죽었는지.’
자살로 간주한다면 택하지 않을 문장이었다.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찾아낸 겐가?”
민준은 딴소리를 한다.
“로드의 직계 상속인들은 여전히 살해범 찾느라 바쁘지?”
사실이었다. 켄티우스와 몇몇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나머지 형제들은 여전히 증거를 쫓느라 바빴다.
“젠킨슨, 내 생각에 로드는 처음부터 드래곤 하트를 자식들에게 줄 마음이 없었어.”
“말 좀 돌리지 말게. 그래서 범인을 찾았나? 누군가?!”
“그 유언은 심장을 차기 로드에게 넘기는 근거, 수단에 불과해. 자식들에게 쪼개서 물려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지. 엘더도 아닌 어린 용 한 명에게 몰아주고 싶지도 않았고.”
“···왜지?”
“로드는 누군가 자기를 노린다는 걸 죽기 전부터 알았을 거야. 그런 시도를 성공시킬 ‘집단’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도. 자식들이 그런 대단한 조직에게 복수할 능력은커녕 범행을 입증할 능력도 없다고 확신해서 유언을 남긴 거야. 자격을 못 갖춘 직계들은 심장을 차기 로드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는 판이 벌어지는 거지. 기회를 줬으나 실패했으니 명분도 생기는 거고.”
드래곤을 통솔하여 ‘적’과 싸울 능력을 지닌 후계에게 힘을 넘긴다.
“이렇게 대비해야 할 만큼 강하고, 교묘하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적이라는 거야.”
젠킨슨은 로드의 죽음을 확인했을 때, 민준이 가장 처음 입에 담았던 용의자를 떠올렸다.
“위원회!”
결국은 돌고 돌아 제일 처음의 추측으로 돌아왔다.
“역시 위원회 놈들이었군! 그런데, 증거는?!”
“잠깐, 정정부터. 네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뭐라고?”
“진범은 위원회 소속으로 지구에 침투하긴 했지만 위원회를 위해 그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야.”
젠킨슨은 그 의미를 빠르게 파악했다.
“카바이트 놈들인가?! 위원회에는 알리지 않고 종족 차원에서 몰래 저질렀단 말이야?”
“아니, 로드를 죽인 건 그 오리좆 새끼들이 아니야.”
“그럼, 엔델리온?”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용은 이를 악문다. 그렇다면 후보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긴 공백을 넘어 돌아와서 전쟁을 벌여 놓고는 다시 모습을 감춘 한 종족을 빼면 그럴 짓을 할 이들은···.
“토드로군!”
“조세징수사령부에서 보낸 놈들 타깃은 분명해 보였지. 내 탈세 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공범 혐의로 이나이스까지 엮는 거였어. 하지만 정말 그게 다였을까?”
오로지 그것 때문에 지구에 왔을까?
민준은 자신이 죽인 토드족 영혼을 속박하여 그 기억을 읽어 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비밀을 발견한 것이다.
“놈들이 언제 지구에 왔을 것 같아? 로드의 사망이 확인된 그날 바로 하루 전이었어.”
“뭣?!”
“그 새끼들은 단순히 나 하나 때문에 병력을 보낸 게 아니야. 명목상으로는 그게 맞지만 비밀리에 임무 하나를 추가했어. 위원회 본부에는 비밀로 한 채 그들만의 목적을 위해서.”
카바이트는 이 사실을 모르거나 물증 없이 의혹만 품고 있을 것이다.
“그 짐ㅅ··· 아니, 고대 종족 사이에서도 조용한 균열이 시작된 거지. 우주를 손안에 넣었으니 이젠 자기 살 파먹기밖에 안 남았잖아?”
토드는 카바이트들이 드래곤을 상대로 묘한 짓을 꾸미는 중임을 알아차렸다. 애초에 변방 차원 드래곤들도 인지한 사실을 위원회 실세 종족이 모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최근 카바이트가 지구에서 눈에 띄는 공작을 벌인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굵직한 증거를 잡아 냈는데···.
“카바이트는 로드를 오랜 시간 감시하고 있었어. 반(反)위원회 성향 인사 견제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깊숙히 들어갔지. 로드 자신이 눈치챌 정도로. 토드 놈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했어.”
모두가 인지하다시피 드래곤 로드는 특별했다. 그는 용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인물이었다.
“전 차원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봐도 로드 같은 드래곤은 또 없었다는군.”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유를 젠킨슨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오로지 토드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투로 설명을 잇는다.
“현재 드래곤 혈통이 모두 섞여 구분이 무의미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달랐지. 드래곤들조차 그리 느꼈잖아? 수십 년 사이 열일곱이나 되는 연인을 만들고 아이까지 낳은 비결이 뭐였겠어? 본능적으로 그에게 강렬한 매력을 느낀 거지. 심지어 카바이트가 노리기까지 한다니, 토드는 그의 비밀을 알고 싶었던 거야.”
이어진 말을 들은 젠킨슨의 눈동자에 감출 수 없는 분노가 타올랐다.
“그래서 놈들은 로드를 납치하기로 결심했어.”
***
동면기에 들지 않은 드래곤도 잠을 잔다.
다만 그것은 의식을 반쯤 유지한 얕은 잠이었고, 따라서 꿈을 꾸기도 했다. 드래곤 로드가 악몽에 시달리다가 깬 것은 그런 이유였다.
‘꿈이었군.’
며칠째 묵는 침실 천장이 보였다. 홍콩 리츠 칼튼 호텔 펜트하우스의 마스터 베드룸. 그는 몸을 일으켰다. 폴리모프가 지나치게 정교했는지 등은 땀에 젖어 있었다. 시계를 본다.
‘한 시간이나 잤나?’
의도치 않은 잠이었다. 내일 회의를 위해 준비할 것이 많기에 그는 철야하며 자료를 검토할 생각이었다. 수형자 친구와 술잔을 기울인 것 정도는 몸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이 든 것이다. 드래곤 로드는 이유를 알았다.
‘다음 동면기가 코앞까지 다가왔군.’
곧 맞이할 그것은 아마 생애 마지막 동면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깨면 다음 동면기 없이 계속 지내다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는 초조함을 느꼈다. 동족들에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이번 용족 회의에는 깜짝 안건이 하나 추가될 것이다.
차기 드래곤 로드 선출.
질색하며 거부할 동족들 얼굴이 선했지만 그에게는 나름의 전략이 있었다.
“······.”
어지러운 상념을 털며 일에 집중하려는데 방금 꾼 꿈 내용이 진득하게 따라왔다.
그는 몽중에 작고한 양친을 보았다.
그들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절규했다. 어둠과 피에 잠긴 채 연신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노력했지만 로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깼다.
사실 그는 양친의 최후를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 전방에서 함께 싸운 목격자들은 그 부부가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장담했다. 더 참담한 사실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대 종족이 숨진 그들을 ‘강탈’했다. 따라서 본래 로드 소유가 되었어야 할 드래곤 하트도 그들에게 넘어갔다
그 기억을 마주했을 때 로드가 느끼는 분노는 깊디깊었다. 지금의 자신보다도 훨씬 강력했던 드래곤 둘의 시신을 차지한 고대 종족이, 그걸로 무슨 추악한 짓을 벌였을지 상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크윽.”
자리에서 일어나던 로드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이상했다.
“왜 이러지?”
몸 안에서 차오르는 무력감.
아무리 폴리모프한 상태라도 이건 심했다.
이런 상태가 얼마 만이더라···. 아, 그렇지.
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당시 궁지에 몰린 드래곤들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혈로 무기를 만들었다. 그때 드래곤 로드도 지원해서 상당한 양의 피를 뽑아 제공했다. 그가 핵심 병력이긴 했지만 모든 전선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그리고 그의 피는 유달리 독성이 강했다.
기억하기로 당시 한 번 채혈하면 하루 종일 시름시름 앓으며 누워 있곤 했다. 지금 감각은 그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혈액량은 멀쩡한데?’
그럼 대체 왜···.
그때였다.
—–!
무언가를 알아차린 로드는 위기감을 느꼈다.
‘내가 지금까지 이걸 왜 몰랐지?!’
둔탁하게 멀어졌던 감각이 뒤늦게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전신의 신경이 곤두섰다. 두꺼운 유리창을 뚫고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자연 현상은 아니었다. 호텔이 위치한 ICC 빌딩을 중심으로 몰아 닥치는 광풍은 강력한 마법을 품고 있었다.
그 중심에 있던 로드는 가까스로 분석해냈다.
‘증거 인멸과 공간 응결!’
이미 주변 모든 유령과 망령, 정령 따위는 폭풍에 휩쓸려 바다까지 튕겨 나갔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나중에 여길 조사해 보면 마법적 흔적이 깨끗하게 지워진 상태일 터. 영계를 들여다봐도 마찬가지다.
또한 그는 텔레포트가 원천 봉쇄되었음을 깨달았다. 마력 흐름을 기묘하게 꼬아 놓아서 외부에서는 명확하게 구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는 왜 잠이나 자고 있었지?’
몸이 무거웠다.
너무도, 무거웠다.
‘설마!’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끼고 있던 반지가 사라져 있었다. 녹듯이 마력 파동으로 화(化)하여 몸에 파고든 것이다. 이제 와서 벗어 던지려고 해도 불가능한 상태.
바로 어제 레이먼드와의 내기에서 딴 것이다. 친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고룡 얼굴이 머릿속에 스쳤다.
‘레이먼드, 이건 뭔가? 저번까지만 해도 없었잖아.’
‘음? 어디서 난 건지 나도 영 기억이 안 나는데. 최근에 노예들에게 정리를 한 번 시켰더니 깊숙이 있던 것이 입구 쪽으로 재배치된 모양이야. 설마 그걸로 고를 텐가?’
‘그래. 탐이 나는데?’
그가 반지를 고르자, 내 금고 안에 이런 게 있었냐며 놀라워하던 레이먼드의 표정.
그게 다 연기였나?
언젠가 그 앞에서 중얼거렸던 말을 기억했다.
‘나는 지금 죽음을 피할 방법을 찾고 있다네.’
그럼 설마 그 말이 그대로··. 그들에게?
자신을 노리던 자들에게 전해졌을까?
“꽤 질기군. 어지간한 드래곤이면 깨지도 못했을 텐데.”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래곤 로드는 땀에 젖은 얼굴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반갑지 않은 방문객을 목격했다.
“너···!”
그는 상대를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재회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한 얼굴이었다.
로드는 침착한 척 비아냥댔다.
“아직도 살아 있었나? 거북이가 장수하는 짐승이라지만, 그런 것 치고도 명이 꽤 길군.”
그림자 속에서 얼굴을 내밀며, 토드가 피식 웃는다.
드래곤 로드는 그를 똑똑히 기억했다.
전쟁이 한창일 때 최전선에서 몇 번 격돌한 적이 있다. 번갈아 가며 서로를 반쯤 죽여 놓는 데에 성공했지만 결국 누구도 완전히 숨통을 끊지 못했다. 그때마다 그 사실에 원통해하며 다음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결국 둘 다 소원을 성취하지 못한 채 전쟁이 끝났다.
드래곤은 오래 묵은 원한과 분노, 증오와 혐오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는지 토드는 마치 거울처럼 그것을 돌려주었다. 단지, 반환될 때는 한층 여유롭고도 차가운 조롱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축하하네. 쌍둥이라며?”
로드의 얼굴이 굳었다.
그것은 아직 동족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그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설마 레이먼드가 너희들과 손을 잡은 건가?”
“흥. 구더기들과 손잡을 만큼 멍청한 그 고룡은 상상도 못 하고 있을걸? 애초에 자기 레어에 그런 물건이 있는지도 몰랐으니.”
로드는 레이먼드가 반지를 건네며 한 말을 떠올렸다.
수천 년 동안 보물을 모아왔을 뿐만 아니라 몇 번이나 주거 차원을 바꿔 온 그는 그게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보물이 흘러 넘치는 고룡들이 종종 겪는 일이었다.
관리인을 불러 기록을 살피면 추적할 수 있겠지만 두 드래곤은 굳이 그렇게까지 수고를 들이지 않기로 했다. 129연패에 수치심을 느낀 레이먼드가 다른 누군가를 부르길 원치 않기도 했다.
“엔델리온의 마도구에 깊은 관심과 호기심을 품은 지구 유일의 드래곤. 새로 태어날 ‘새끼’ 때문에 방어구가 필요한 드래곤. 홍콩에 들를 때마다 항상 같은 친구와 이길 게 뻔한 내기 바둑을 하는 드래곤. 그런 용이 고를 법한 물건을 만드는 건 아주 쉬웠지.”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 자신을 관찰해 온 걸까?
이를 가는 드래곤을 보며 토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예상대로 그걸 골라 주고 연구한답시고 장착까지 해 주신 덕분에··· 나머지 계획은 접어도 될 것 같아. 고맙군.”
아마 저 반지 말고도 여러가지 덫을 준비한 것 같았다.
쌍둥이까지 언급하는 걸 보니 아마 개중에는 이나이스와 알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계획도 있으리라. 이미 그녀 곁에도 토드가 붙어서 대기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일이 생각대로 안 풀릴 경우를 대비해서.
“······!”
드넓은 펜트하우스 내에서, 침입자들이 그의 사방을 둘러싸며 포위했다.
전원 토드였다.
“오랜 원한을 끝맺을 시간이 왔군. 생각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지만··· 나도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넌 우리와 함께 가 줘야겠어.”
드래곤 로드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 상태로는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텔레포트가 불가능한 걸 알기에 이대로 폴리모프를 풀고 본체로 돌아가려고 했다.
펜트하우스는 사실상 ICC 최상층이나 마찬가지고 이 위에 위치한 수영장과 루프탑 클럽에는 지금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래층은 부수지 않고, 최대한 정교하게 컨트롤 해서 지붕 위만 날려 버리면 희생자 없이···.
“······!”
드래곤은 순간 굳어 버렸다.
폴리모프를 풀려고 한 순간 반지에서 기묘한 마력이 들끓었다. 그리고 매우 예리하고도 흉포한 형태로 그의 뇌를 겨냥한 것이다.
외계인은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낄낄거렸다.
“어때, 그립지?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지 않아?”
드래곤은 이 패턴을 기억했다. 그리고 한탄한다.
아,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며칠만 더 연구할 시간이 있었으면 반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저놈들은··· 그가 이걸 손에 넣은 지 몇 시간 만에 쳐들어왔다.
이것은 옛날에 고대 종족이 드래곤을 포획하기 위해 만든 마도구였다. 묶인 용이 주문을 외우면 체내 마력을 통제 불가능한 열에너지로 변환하여 몸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구속구. 하지만 그때는 드래곤의 사이즈에 맞춘 거대한 사슬 그물 형태였다.
엔델리온, 그 기괴한 천재들이 그사이 기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본래 촉수를 위해 설계되어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종 가능한 ‘촉수 걸이’ 보호구 형태로 위장했을 터. 향후 다시 터질지 모를 전쟁의 대비책일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발전했어. 지금 상태로 주문을 외우면 마력을 통제하는 장기만 골라서 깔끔하게 익혀 버린다. 너희들로 치면··· 그래, 마뇌(魔腦)가 되겠군.”
토드들이 포위하며 점차 거리를 좁혔다.
드래곤 로드는 남은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정도 준비면 날 죽일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굳이 납치를 하려고 하고 있어.’
인질극?
그랬다간 바로 전면전 발발이다. 전쟁을 시작하고 싶다면 더 좋은 방법이 많다.
‘아니, 내 실종은 불가사의로 남을 터다.’
로드는 이 납치극의 면모가 영원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지금 빌딩 꼭대기에 풀어 놓은 폭풍이 한몫 거들 테지. 저것은 어떤 거대한 주문을 준비할 때 벌어지는 현상과 유사했다. 의도된 설계가 분명하다. 이대로면 드래곤 로드가 새로 만든 행성급 주문을 실험하다가 어비스 문을 열고 실종되었다는 가설이 거론되기에 충분했으므로.
‘나를 납치하려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고대 종족이 부모의 시신을 강탈해 간 이유와 동일할 것이다.
‘내 몸을 원하고 있다!’
로드는 위기감 속에서 머리를 굴렸다.
폴리모프를 풀지 않은 채 도망갈 방법이 있는가? 외부로 도움을 요청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이대로 이 몸을 고대 종족에게 넘겨도 되는가?
절대 불가.
어차피 잡혀간 순간 죽은 목숨이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계획했던 것을 모두 실행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그리고···.
‘안 돼. 내 드래곤 하트는··· 이것만큼은!’
여기에는 종족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
드래곤 로드는 창밖의 폭풍을 바라보았다. 이미 동족들은 이변을 눈치채고 이 빌딩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감히 접근하지 못한 채로.
그는 결심했다.
‘미안하군.’
그는 전달되지 않을 사과의 말을 중얼거렸다. 이 빌딩에 함께 머물고 있을 수행원들을 향한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호텔 안에 함께 갇혀 있을 그들.
‘부디··· 희생자가 많지 않기를.’
그 순간.
파앗!
드래곤의 몸에서 눈부신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토드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니··· 미친 도마뱀 새끼가!”
그리고 토드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저 용은 방금 주문을 외운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면 폴리모프가 완전히 해제되기도 전에 뇌가 익어서 죽어야 한다. 그리고 술사가 죽더라도, 마력이 증발되는 짧은 시간 동안은 폴리모프가 유지될 것이다. 산 채로 잡아가는 것이 최고이지만, 여차하면 시신을 들고 가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미친 새끼! 뇌가 익어가는데 버티고 있어!’
토드가 발악했다.
“그냥 죽여! 죽여서 아공간에 봉인···.”
그 순간, 홍콩에 모인 모든 드래곤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ICC 빌딩의 상층부가 터져 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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