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81
182. Prisoner of Love (1) >
하은성에게 세상은 항상 냉혹하고도 예측 불가능한,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가득한 장소였다.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휘몰아치는 사건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민준의 채무자로 만든 ‘그 사건’도 매한가지였다.
“아저씨,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전 제가 그렇게 많은 달란트를 먹어 치운 건지 꿈에도 몰랐어요.”
말 그대로, 꿈속에서도 몰랐다며.
하은성은 지금 신세 한탄을 하고 있다.
“애초에 18만 달란트라는 게 아저씨 말처럼 어마어마한 금액인지도 몰랐구요!”
그 넋두리를 듣는 사람은 세눈박이 사제밖에 없었다. 윰투스는 예와 다름없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큰 착각을 하셨군요. 18만 달란트는 어떤 차원 기준으로 봐도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지구로 치면 큰 기업 하나를 죽였다가 살릴 수 있는 거금이지요.”
냉혹한 말을 너무도 다정한 어투로, 사근사근하게 전달한다. 그걸 들은 하은성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민준이 자리를 뜬 사이, 하은성은 사제에게 말을 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저절로 한 맺힌 토로가 이어졌다.
종교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윰투스는 매우 훌륭한 청자(聽者)였다. 하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빗장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결국 고해성사처럼 모두 고백하던 하은성은 지금 이 꼴이 된 원인까지 읊게 되었다. 이 용의 몸에 빙의한 사이 18만 달란트를 (민준의 표현을 빌리면) ‘처먹어 버렸’다고.
그 액수를 들은 윰투스는 이렇게 되물은 것이다.
‘18만 달란트라구요? 정말입니까?’
그게 한국 돈으로 몇억 정도 되리라고 어렴풋이 짐작하던 하은성은, 이어진 사제의 설명에 영혼이 폭행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건 평생 동안 갚아도 변제가 불가능할 것 같은 액수인데요. 아, 이미 죽으셨지요? 큰일이군요. 이를 어쩐다.’
하은성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큰돈이었다니.”
허탈하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낯선 이종족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슈탄 왕국의 수도.
대부분의 건축물은 최대한 태양광을 많이 끌어모아 내부에 응집시키는 걸 목표로 지어진 것 같았다. 그건 지금 하은성이 있는 집도 마찬가지라서, 진짜 인간 몸이었다면 이미 일사병으로 쓰러졌을 정도였다.
또한 강렬한 빛과 온도만큼 인상적인 것은 습도였다. 가 본 적은 없지만 동남아 날씨가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물안개 속에 갇힌 듯한 지독한 습기.
하지만 슈탄인들은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없는 족속 같았다. 멀미가 날 정도로 복잡한 도심의 도로 곁에는 꼭 물을 채운 해자가 평행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인공 폭포와 분수 역시 교차로마다 하나씩 보였다. 윰투스의 설명 덕에 하은성은 그것들이 지구의 가로수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시의 습도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기도 하지만, 주된 목적은 그걸 보는 슈탄인들의 정서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조경용.
하은성은 이 도시의 구조를 어느 정도 머릿속에 담아 놓은 뒤였다. 민준의 명령에 따라 구석구석을 쥐잡듯 뒤졌으니까. 유체이탈 상태로 말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타깃은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전 정령이 아니라구요.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생각하는 속도는 보통 사람과 똑같아요. 컴퓨터처럼 도시 전체를 스캔하듯이 움직일 수는 없다구요. 그리고 여기가 좀 넓고, 좀 복잡한가?”
임무에 실패한 하은성을 민준은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하은성은 그를 보고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렸고.
유령은 중얼거렸다.
“저는 그냥 빚이 좀 있을 뿐인데 자꾸 그렇게 죄인 취급을 하니까···.”
“죄인이긴 하지요.”
“네?”
하은성은 ‘당신마저 내게 이럴 거냐’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윰투스는 덤덤했다.
“저희 기준으로 죄는 곧 부채이고 부채는 곧 죄입니다.”
‘저희 기준’이라는 게 종족 기준인지 종교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은성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빚낸 게 죄라구요?”
“죄의 근본을 짚어 보면 그것은 부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죄는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면 안 될 길을 선택하여 피해를 입힌 것이지요. 죄를 범한 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손해를 메우고 변제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죗값이라고 표현합니다.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죄의식은 곧 부채 의식이지요. 죄인은 채무자입니다.”
이해가 갈 듯 안 가는 애매모호한 설명이었다.
“죄와 형벌의 윤리관을 토대로 가장 명확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한 집단은, 애꿎게도 위원회입니다. 그들은 죄의 무게를 측량하여 화폐 가치로 벌을 구형하지요. 달란트 말입니다. 그들에게 형벌은 채무 변제 절차입니다.”
하은성은 억울했다. 설명이 얼핏 맞게 들렸지만 동시에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논리를 쥐어짜는 대신 그는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을 읊었다.
“고의가 아니면요?!”
하은성이 달란트를 흡수한 건 잠자는 중 벌어진 사건이었다.
빚을 내긴 했는데, 일부러 낸 게 아니잖은가?
윰투스는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대꾸했다.
“지구에도 과실 범죄 개념이 있지 않습니까? 네, 과실 치사 같은 거 말입니다. 실수로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혔다면 변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이 몸에 당분간 머물라고 한 건 요원님인데!”
“애초에 그 몸에 멋대로 빙의를 시작한 건 하은성 님이라고 했잖습니까? 그리고 달란트를 흡수해도 좋다는 허락은 한 적이 없었구요.”
윰투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부언했다.
“다만, 하은성 님의 부채가 터무니없이 크다는 부분은 인정합니다. 변제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될 정도로요.”
“그럼 어떡하죠?”
“방법은 하나입니다. 채권자가 탕감해 주는 거죠.”
그는 민준의 얼음장 같은, 살기 등등한 표정을 떠올렸다.
우울하게 묻는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비슷한 개념이 저희 경전에 적혀 있습니다. 필멸자들이 삶과 죽음을 통틀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부채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지는 빚이지요.”
“그 대단한, 초월적인 빚쟁이가 누군데요?”
“당연히 신격(神格)이지요. 지구의 종교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지요?”
하은성은 두통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빚을 변제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초월자, 다시 말해 채권자가 자기 자신을 대가로 지불하여 스스로 변제하는 겁니다. 빚을 진 자가 아니라, 빚을 지운 자가 대신 갚아 주는 거예요. 대속(代贖)하는 것이지요.”
“그걸 왜 갚아 주는데요?”
하은성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돈 빌려준 사람이, 아무 대가 없이 빚을 없었던 걸로 치부한다고?
그 질문에, 윰투스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악몽 속 시련과 고통으로 존재하는 우리를, 그분은 사랑하시니까요.”
“······.”
하은성은 그 문장에 사랑과 정이 넘치고 훈훈하기 짝이 없다는 부분은 인정했으나, 자신의 처지에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 빚은 그런 식으로 처리가 안 될 것 같은데요. 저한테도 그런 취향은 없고··· 그 요원님도 촉수 왕자가 아니라 촉수 공주를 고른 걸 보면 퍽 정상적인 취향··· 아니, 절대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니,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정상이라고 해야 하나?”
혼란에 빠진 하은성은 더 이상 주절대는 것을 포기했다. 입을 다물고 자문해 본다. 과연, 가슴 속에 사랑이 넘치는 예민준 요원이 자신의 죄를, 혹은 부채를 사해 줄 가능성이 존재하는가?
‘그게 무슨 용 풀 뜯어 먹는 소리···.’
하은성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
슈탄 왕의 장녀, 유리아 공주가 생각하기에 어머니의 사랑은 단 한 번도 공정하게 분배된 적이 없다.
왕은 딱 세 개의 유정란만 낳았다. 평균치에 훨씬 못 미치는 적은 수였다. 같은 배에 산란된 아이들 중 유리아는 가장 먼저 껍데기를 깨서 장녀가 되었다. 일찍 세상 빛을 본 것만큼이나, 그녀는 다른 영역에서도 자매들을 앞지르며 우수함을 입증했다. 왕의 가르침대로 끊임없이 노력했고 뛰어난 능력을 뽐낸 것이다.
하지만 왕의 사랑은 항상 아래로, 더 아래를 향해 흘렀다.
‘유리아, 넌 네 앞가림을 제대로 할 수 있잖니. 너보다 모자란 두 동생을 위해 좀 더 배려하는 거야. 네가 이해하렴.’
유년기에 귀 아프게 들은 말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대놓고 자매들을 편애하는 왕의 태도에도, 그녀는 순응하고, 또 순응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 상황이 더 나빠졌다. 몇십 년 전부터 왕은 개인 재산 일부의 증여를 준비했는데, 다른 종족 기준으로는 별것 아닌 수준이었지만 슈탄들에게는 큰 금액이었다.
유리아는 자신이 가장 많은 상속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아니면 적어도, 공평하게 나눠질 것이라고.
하지만 왕의 안배는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이건 너무합니다, 전하! 둘째는 그렇다고 쳐도··· 막내에게 이렇게 많은 재산을 미리 넘겨줄 이유가 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가장 능력이 뛰어난 딸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왕은 지금까지 자녀들에게 노력의 가치를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그래 놓고 나이가 차자, 노력의 가치를 폄훼하다니? 노력해서 성과를 얻었다는 죄로 보상을 박탈당하다니?!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더군다나 왕의 배려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막내인 베르미가 연금술 기업 사냥 임무를 맡아 지구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리아는 질투와 분노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쉬운 임무를! 내게 맡겼으면 더 완벽하게 했을 텐데.’
베르미의 공로는 슈탄 왕실을 넘어 연합 왕국 차원에서 평가될 것이다. 그러면 세 자매 중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질 거라는 예상이 분분한 결혼권은 베르미에게 넘어갈 터.
세 자매 중 유일하게 유정란을 낳을 권리를 확보하는 동시에 새로운 왕이 되는 것이다.
그 임무를 준비하며 왕과 베르미 공주는 비밀리에 회동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구 파견에 단순한 기업 사냥 말고 다른 계획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하지만 둘이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지 유리아는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철저하게 정보에서 배격당했다.
‘어머니는 나보다 베르미를 더 사랑해. 더 사랑하는 자식에게 왕위를 넘겨주려는 거야. 그래서 노골적으로 등을 밀어주는 거라고!’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지만 모든 손가락이 똑같이 아플 수는 없다는 걸 유리아도 이해했다. 하지만 그걸 아는 것과 어머니의 동등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왕을 향해 품은 자식의 사랑은, 그녀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베르미가··· 죽었다고?’
막내가 지구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위원회로 호송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리아는 진심으로 환호했다. 둘째는 건강을 이유로 오래전 외계로 요양을 간 상태였고 제대로 된 후계자는 이제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
슈탄 왕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베르미 공주의 범죄에 왕실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연합 왕국의 추궁이 쏟아졌다. 왕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든 시련이었다. 유리아는 얼마든지 어머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든든한 자식으로서, 힘이 되어 줄 장녀로서.
하지만 오산이었다. 베르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날 이후, 왕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공식 석상에 자리를 드러내지 않을뿐더러 유리아의 애탄 요청에도 얼굴 한 번 비추지를 않았다. 원거리 통신으로 국정 지시를 할 뿐이었다.
나라는 뒤숭숭해졌고 유리아는 더욱 큰 분노를 느꼈다.
‘어머니, 베르미의 죽음이 그렇게 슬픈 일이었나요? 다른 자식들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못할 만큼, 목이 졸리고 내장이 끊기는 괴로움이었나요? 하지만, 나는요?’
유리아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왕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가 무엇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유리아 공주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내일 자정입니다.”
어둠을 틈타 공주를 찾아온 인간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저희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슈탄 왕족 직계만 알고 있는··· 그런 비밀 장소가 존재했다는 걸. 공주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왕의 행방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유리아는 최대한 담담해 보이는 어투로 말했다.
“어디까지나 내 나라를 위한 선택입니다. 이대로면 슈탄 왕국은 더 큰 혼란에 빠질 거예요. 어머니는 자리에서 내려오셔야 해요.”
“그리고 왕위를 ‘평화로운 방법’으로 공주님께 이양하겠지요.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돕겠습니다. 앞으로 연합 왕국 내 슈탄의 위치도 더욱 상승하게 될 겁니다. 다른 종족들에게 불필요하게 적대적이었던 지금까지의 왕들과··· 공주님은 다르실 테니까요.”
대표적인 친인파 인사로 분류되는 공주에게 인사를 마친 뒤 인간은 물러났다.
유리아는 창밖으로 슈탄의 수도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지독하게 낙후된 모국. 어머니를 포함한 선대 왕들이 몇몇 안건에 대해 ‘순순히 굴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앞으로는 달라질 거야.’
8백 년도 더 된 과거에 연연해서는 발전이 없다. 옛날에는 슈탄이 이 세계의 주인이었다지만 이제 아니다. 현실에 순응하고 외국의 도움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녀는 오만 감정이 섞인 눈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찬란한 영광이 목전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미 목표를 향한 급류를 탄 그녀를 누구도 막을 수 없으리라. 그녀는 그렇게 장담했다.
그 누구도.
***
“유리아 공주를 납치한다.”
검은 관을 들고 사라졌다가 다시 일행 앞에 나타난 민준이 그렇게 선언했을 때, 발언권이 없는 하은성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경악했다.
‘또?!’
윰투스가 설명해 준 덕분에 이제는 하은성도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알고 있었다. 민준의 전여친(으로 추정되는) 촉수 나라 공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납치당한 상태였다. 위원회에 먹힐 급의 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공주를 납치한다고?
갑자기 저 사내에게 외계인 공주를 납치해서 수집하는 취미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또 어딘가를 가기 위한 ‘탈것’이 필요해진 건가?
“······.”
놀랍게도, 하은성의 두 번째 추측은 진실에 어느 정도 닿아 있었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를 밟듯 말이다.
물론 민준이 그 악어를 타고 어딘가를 가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는 그 악어의 정보가 필요했다.
윰투스가 짐작하듯이 말했다.
“슈탄의 직계 왕족만 안다는 성소(聖所)로 가는 열쇠로군요. 그 공주가요.”
“그래, 다크바라라는 놈도 거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더군.”
그가 수도에서 포획한 다크바라는 표면적으로는 인력소개소장으로 위장했지만, 진짜 정체는 왕실을 위해 봉사하는 비밀 결사의 고위직이었다. 당연히 귤레쉬보다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슈탄 왕실의 직계만 접근할 수 있는 비밀 창고가 존재하며 성소(聖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다른 종족 몰래 뭔가를 숨겨 놓을 수 있는 장소는 그곳이 유일해 보였다.
또한 민준이 원하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을 왕이 몇 달째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거기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성소는 어디에 있는가?
어렴풋한 정보를 토대로 하은성이 수도를 뒤져 봤지만 찾지 못했다.
“비밀을 알 직계 중 왕은 이미 그 안에 틀어박힌 것 같고, 둘째 딸은 외계에서 요양 중이고, 셋째는···.”
왕의 막내딸은 민준도 대면한 적 있는 슈탄이며, 이미 몇 달 전에 사망 사실이 공표되었다.
“현재 소재가 파악되는 건 유리아라는 그 공주밖에 없지. 그러니 납치한다.”
민준의 선언은 단호했고, 윰투스는 준비하겠다며 물었다.
“그럼 시기는 언제···?”
“여유 부릴 틈이 어디 있어?”
민준은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대꾸했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