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83
184. Prisoner of Love (3)
***
위원회의 중간 간부, 게드윅은 죄인의 마음으로 기다렸다.
동족의 어른이 임무를 내렸으나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바이트를 향한 그의 사랑은 또래의 누구보다 깊었다. 대위원이 비밀 임무를 위해 그를 고른 것도 그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게드윅은 카바이트가 지금보다도 더 위대해지기를 바랐다.
이미 고대 종족이 우주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충분치 않았다. 차원계를 공동으로 지배한다는 건 카바이트의 동위급이 둘이나 더 존재한다는 뜻이다.
불합리한 일이었다.
옛 전쟁으로 드래곤을 무릎 꿇렸으니 남은 건 다른 두 고대 종족 차례다. 대위원의 계획을 들은 뒤 소망은 더 강렬해졌다. 드래곤을 재가축화함으로써 카바이트는 진정한 절대자가 될 것이다.
게드윅의 가슴 속에는 더 강대해질 동족을 향한 사랑이 넘쳐흘렀다.
그렇기에 동시에 죄의식을 느꼈다.
-들어오게.
대위원이 허락한 즉시 게드윅은 단거리 공간 전이를 했다.
“대위원을 뵙습니다.”
“보고하게.”
카바이트는 제일 먼저 아시프-666의 안건을 입에 올렸다.
“뉴욕 대표소의 도주 현장을 정밀 수색하였습니다만, 그와 인질이 어떤 차원으로 도약하였는지 흔적을 찾는 데에 실패하였습니다.”
“수색대를 지구에 더 오래 머물게 하면 가능하겠나?”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구에는 흔적이 없으니, 그가 도망간 차원에서 새로운 흔적이 발견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보고였다. 상황이 퍽이나 고약해진 것이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게드윅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반응을 기다렸다.
눈앞의 상관이 아시프-666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가졌는지 게드윅은 잘 안다.
아니, 그건 단순히 관심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관념이 아니었다. 그 죄수는 동족의 대망(大望)을 위한 열쇠라고 했다. 훗날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영혼을 소거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퇴직금까지 책정하여 손아귀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그런데 그 중요한 죄인이 도주를 해 버렸다!
더 정신이 아득해지는 부분은, 위원회의 총력을 동원했음에도 행적을 찾을 수 없는 점이다.
지구에서 한 번의 도약으로 건너갈 수 있는 차원의 수는 너무도 많았다. 망망대해 위에 떨어진 빗방울 하나를 추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겁 같은 침묵이 끝나고.
“그런가? 어쩔 수 없지.”
“······?!”
너무도 평온한 대꾸 때문에 게드윅은 맥이 빠지는 느낌까지 받았다. 격노를 해도 모자랄 상황인데 대위원은 침착하기만 했다.
이어지는 말 역시 충분히 이성적이었다.
“지구 내 수색에 쓸데없이 많은 힘을 빼지 말게. 자원은 한정적이니 유용한 곳에 사용해야지.”
아시프-666을 찾아낼 때까지 본부에 돌아올 생각하지 말라는 불호령까지 예상했던 게드윅은 조였던 가슴이 살짝 풀리는 것을 느꼈다.
다만, 안도감과 동시에 죄책감 역시 다시 치밀어 올랐다.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건 변함없기 때문이다.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말을 몇 줄 더 얹는다.
“다만, 제가 그리 전달해도 토드 쪽에서는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지구 전체에 계엄령을 내리고 전수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 중입니다. 혹시 존재할지 모를 아시프-666의 ‘내통자’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아시프-666의 탈옥에 가장 격렬하게 반응하는 고대 종족은 토드였다.
복수심에 불타는 그들은 당장이라도 탈옥범을 잡아서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분쇄기에 갈아 버리고 싶어 했다.
“대위원 회의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다네.”
그는 감정에 판단이 흔들리곤 하는 우매한 종족을 비웃었다.
“그들 말대로 실행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네. 토드가 그리 주장해도 우리보다 더 단호하게 거절할 종족이 있잖은가.”
“엔델리온 말이군요.”
“그래, 공주가 납치당한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아시프-666을 자극하기 싫겠지.”
대위원은 회의에서 오간 대화를 떠올렸다. 토드는 당장이라도 아시프-666을 잡은 다음 그의 영혼을 소거하고 싶어 했다.
그는 다시 한번 중얼거린다. 무식한 족속들 같으니.
“지구는 물론이고, 거기와 연결된 모든 차원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 봉쇄하고 포위망을 펼친다? 일단 그럴 자원도 없고 드래곤들의 반발을 누르는 것도 불가능해. 용들은 그걸 선전 포고로 받아들일 거야. 이제는 자네도 알겠지만, 카바이트 입장에서는 3차 전면전으로 얻을 득보다는 실이 크네. 가뜩이나 전쟁 때 수가 줄어든 드래곤을 더 죽여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타당한 말씀이십니다.”
“엔델리온 측은 아시프-666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감시망과 추적대를 구성하여 일단 공주의 신변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네. 아시프-666의 생포는 다음 수순이고.”
엔델리온도 카바이트도, 아시프-666의 영혼 소거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그래봤자 아시프-1 때의 사고가 반복될 뿐이니까.
“토드 측 대위원들이 동의했습니까?”
“날뛰었지. 하지만 다수결에서 패했어.”
행방을 감춘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 종족이 다시 차원계 중심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고대 종족들의 다수결은 항상 명확한 결과를 제시한다.
셋이라는 숫자에서는 동점이 나올 수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과반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드는 이후로도 계속 집요하게 굴걸세.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대위원 중 한 명이 이번에 아들을 잃었거든.”
“자식을요?”
“그래, 지구로 향하던 선발대 도약선에 타고 있었다는군.”
게드윅은 저도 모르게 갈색 체모를 곤두세웠다. 차원의 틈바구니에 끼어 으스러진 그 배의 탑승자들 운명은 잘 알고 있었다.
전원 사망.
설사 몸에 VIP 도약 코드를 심고 있더라도, 엔델리온이 아닌 이상 맨몸으로 버텨 낼 수 없는 압력에 휩쓸린 것이다.
“그 위원은 지금 이성이 거의 날아간 상태야. 죽은 아들 말고 다른 직계 후손은 다 나중에 ‘갈아타기’ 위한 용도로 만든 것밖에 없다는군.”
불완전하게나마 영생을 손에 얻은 종족에게 후손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수명이 대폭 연장된 오늘날에도 고대 종족은 여전히 아이를 낳았다. 다양한 이유에서였다. 자기만족 때문이기도 했고, 배신하지 않을 세력을 늘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다만, 그들은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사랑하는 데에 지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했다. 고대 종족은 모든 후손을 가족으로, 혹은 자신의 아들/딸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후손은 태어난 순간부터 다른 용도를 위해 격리당했다.
차원 도약 중 사망한 토드 부관의 부친에게는 그 말고도 몇 명의 직계 후손이 더 있었다. 하지만 부친은 그들 중 누구도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아들이 죽었다는 이유로 그들의 신분을 다시 아들/딸로 승격시킬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그 기준이 한 번 무너지는 순간··· 절대 섞여서는 안 되는 두 그룹이 섞이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게 엉망이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영생을 얻은 고대 종족. 그들의 사랑을 받는 후손들은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며 구분된다.
아이러니하게, 불완전한 영생의 비결이 바로 그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격리되는 쪽이 그러했다. 기술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호문쿨루스로는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는 진짜 육신.
과거에 카바이트들이 레오의 아버지, 고룡 레이먼드에게 어떤 방법을 제안한 것은··· 그것이 용이 아닌 다른 종족에게는 성공을 거둔 걸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위원회의 상관보다는 동족의 어른으로 입장을 바꾼 대위원이 묻는다.
“지구의 용들 상황은 어떤가? 젠킨슨이라는 드래곤 피는 구할 수 있을 것 같나?”
“쉽지 않습니다. 옛날처럼 용혈을 무기로 쓰는 시대도 아닌지라···.”
“선거는? 새로운 로드를 뽑는 건 최대한 지연시켜야 하네.”
그 질문을 들은 게드윅은 오늘 처음으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 부분은 걱정 마십시오, 대위원님.”
그는 단언했다.
“선거를 앞당기려는 고룡들의 시도는, 뜻대로 실현되지 못할 겁니다.”
***
지구의 고룡, 젠킨슨은 치밀어 오르는 두통을 느꼈다.
“이 어린 것들이 갑자기 단체로 미쳐 버렸나?”
민준을 안전하게 다른 차원으로 도피시킨 뒤, 그는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했다.
로드 후보로 나선 다른 고룡들도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여 그와 의견을 함께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속전속결이 가능했다. 임시 용족 회의를 열고, 투표권을 지닌 모든 드래곤이 모여서 새 로드를 뽑을 것이다. 알 수 없는 행운이 이어진 덕분에 젠킨슨의 승리가 유력해 보였다.
그런데···.
“뭐? 선거를 비토(Veto)하겠다고?!”
비서, 블레어가 어두운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 몇몇 젊은 용들이 ‘차기 드래곤 로드 선거 무용론’을 들먹였을 때만 해도 고룡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린 용들은 결국 고룡의 의견에 복속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보잘 것 없는 재물(특히 주식과 부동산 등)을 지키고 싶으면, 해당 영지를 지배하는 고룡 비위를 맞춰야 하니까.
고룡에게는 그들의 주식을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으로 만들고, 정당한 수단으로 구매한 건물이나 토지에 각종 법령을 들이밀며 헐값에 넘기게 강요할 힘이 있었다.
그런데 기묘한 일들이 벌어졌다.
본디 로드가 없는 용들에게 집단 행동을 유인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 좇는 존재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성룡이 된 세대에서 비슷한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기 시작했다.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지구에서 부화한 해츨링 부머(Hatchling Boomer) 세대였다. 지구 이민길이 열리고 각자의 사정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드래곤들이 안정된 주거지를 확보하자 줄줄이 산란한 아이들. 현 시점으로는 전원 백 살을 넘기지 못한 나이다.
단체를 만들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거의 비슷했다.
-현재의 드래곤 로드 선거 제도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오직 고룡만 입후보 가능한 시스템은 지독한 연령 차별주의의 산물이다!
-드래고닉 코드 역시 마찬가지다. 이대로면 어린 용들은 평생 노력해도 고룡들이 일군 권력과 재산을 능가할 수 없다. 이미 값나가는 모든 것들은 고룡들이 사들인 상태이며, 어린 용들은 그들이 흘린 부스러기를 ‘순종’과 ‘협조’의 대가로 분배받을 뿐이다.
-부의 총량이 무한에 가까웠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다. 온 우주의 부의 드래곤의 것이었고, 자신의 몫이 모자라면 다른 터전을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허나, 그건 우리 대다수가 태어나기도 전의 과거다.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다.
-휴전 후 드래곤 몫의 부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과거의 행운과 향락을 마음껏 누린 고룡들은 지금까지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부를 독점하려고 한다. 이대로면 어린 용들은 영원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미치겠군.”
블레어가 정리해서 전달한 어린 용들의 주장을 살피던 젠킨슨은 지독한 두통을 느꼈다.
“그래서 뭘 바라는 거야? 어차피 고룡이 죽으면 재산은 자식들에게 돌아가잖아!”
젠킨슨에게도 아들이 몇 명이나 있었고, 그들에게 드래고닉 코드에 따라 제대로 상속을 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속까지 걸리는 시간이 수천 년이니, 가난한 상태로 기나긴 시간을 기다렸다가 죽기 직전에야 물려받는 현 상황이 불만스럽다는 주장입니다.”
‘가난’을 입에 담는 드래곤.
그 말 자체로 기만이나 다름없었지만, 그 사실에 집중하는 대신 젠킨슨은 다음 행보를 고민했다.
‘이 녀석들이 정말 전부 기권해 버리면 정족수를 채울 수도 없어. 이건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찝찝한 예감을 느낀다.
‘누군가 바람을 넣는 녀석이 있는 거야.’
하필 지금?
민준, 아시프-666과 연대하여 위원회를 견제해야 하는 이 시점에?
그는 고민했다. 예전 용족 회의 안건이야 모두에게 공유되었지만, 민준까지 얽힌 비밀은 고룡들만 아는 상태다.
저 아이들에게도 비밀을 공유하고 이럴 때가 아니라며 호통을 쳐야 할까?
허나, 혹시라도 위원회에 새어 나가면 반향을 짐작할 수 없다. 저 철딱서니 없는 어린 용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위험한 비밀.
그는 블레어에게 물었다.
“이 나이 또래 용 중에 가장 목소리가 큰 녀석이 그 애지? 작고한 로드의 장남 말일세. 발도 넓고, 힘도 세고. 이미 가진 것도 많고. 그 녀석도 여기 동참하는 추세인가?”
“아니요, 켄티우스는 얼마 전부터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상태입니다. 소문에 따르면, 새로 넓혀 이사를 간 레어 꾸미기에 전념하는 중이라고···.”
“······?!”
자식도 없는 수컷이 왜 넓은 레어를 필요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젠킨슨은 그걸 궁금해하는 대신 지시했다.
“약속을 잡아 보게. 지금 아이들 사이에 정체불명의 바람잡이가 나타난 건 불명해. 그럼 이쪽에서도 역풍을 불어넣어야지.”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이어진 말을 들은 젠킨슨은 당황했다. 요즘 선거 준비 때문에 바빠서 기억 속에서 잠시 지워 뒀던 안건을 비서가 꺼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
이번에 말한 ‘아이들’은 지금까지 언급한 어린 용을 뜻하지 않았다.
“네. 코드명 ‘스파이더’가 낳은 아이들 중, 막내 쪽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거미와 용을 뒤섞은 괴물이 낳은 소년들.
1년이라는 한정된 수명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원하는 것을 최대한 제공해 주라고 지시를 내려 놓았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보고서를 안 읽은 지도 오래였다.
블레어가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신 건 이해합니다만··· 아무래도 회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