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86
187. Prisoner of Love (6)
***
유리아 공주는 불길한 통증을 느꼈다.
“크읍!”
그녀를 등에 태운 하은성은 움찔했다.
또 왜 저러지?
하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애초에 말이 안 통하니.
‘안 돼!’
공주는 비늘을 움찔거렸다. 얼굴에 불안이 가득 차오른다.
‘하필 이럴 때!’
결혼권을 인정받기 전까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루에 한 번 겪는 지옥.
슈탄으로 태어났음에 절망하게 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주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옛 여인들은 지금처럼 매일 산란하지 않았다. 무정란은 한 달에 한두 번 낳는 정도였으며 크기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일도 없었다. 그 고통이 두려워 스스로 죽음을 택할 일도 없었고.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누군가 슈탄이라는 종족의 피에 저주라도 내린 것처럼.
아니, 분명 저주받은 것이다.
그녀는 한탄한다. 내가 슈탄이 아니라면 이런 고통에서 자유로울 텐데!
더군다나 오늘은 너무 일렀다.
‘아직 해도 안 떴잖아!’
극도의 긴장과 흥분 때문에 체내 호르몬이 미쳐 날뛴 결과로 추측되었다.
유리아 공주는 시야가 흐려지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과 운명이 원망스러웠다. 으득, 이 가는 소리와 함께 턱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분해서 입술이 떨렸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오늘날의 산란은 누구에게도 가혹한 일이었지만 왕족은 그나마 처지가 나았다. 성직자가 곁에 붙어 과한 출혈을 막고 통증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아는 그런 혜택을 받은 적 없었다. 신성력 또한 이능이다. 그녀 곁에 다가온 성직자들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유리아는 항상 평민처럼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지금까지, 계속.
때문에 지금 느끼는 공포는 평범한 여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안전한 환경에서도 버티기 힘든 고통, 슈탄 여성의 자살률을 다른 종족과 비교할 수 없도록 치솟게 만드는 그 지옥을··· 이곳에서?
해발 몇백 미터 상공, 이 뻥 뚫린 공간에서 드래곤의 등 위에 탄 채 알을 낳으라고?
···죽을 수도 있다!
슈탄은 겁에 질려 외쳤다.
“퀘퇄콹퉾칵!”
긴장한 탓에 고유어로 뱉은 문장은, 하은성 귀에는 철골이 분쇄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는 실수를 깨닫고 이번에는 공용어로 다시 말했다.
“나를 잠시 땅에 내려 주시오!”
하지만 용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공주는 두려움 속에서 의혹을 느꼈다. 대체 어디서 온 드래곤이기에 공용어를 모르지?
동시에 다시 한번 현실을 저주했다. 목표가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순간에 닥친 시련. 돌이켜 보면 그녀의 삶은 항상 이랬다. 베르미와는 달리 자신에게는 뭐든 쉽지 않았다. 동생은 쉬이 손에 넣는 것도 유리아는 기를 쓰고 노력해서 획득해야 했다.
공주는 분에 겨워 이를 간다. 그리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멍청한 드래곤을 향해 포효했다.
***
‘저기군. 여기서 코너 한 번만 돌면 유리아 공주 방이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인간들이 슈탄 왕궁 깊숙한 곳까지 진입했다. 미리 매수한 슈탄 병사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다. 덕분에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들은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안배한 대로, 공주의 방 앞 경비병들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
침입자들의 리더는 복면 안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상부에서는 슈탄 왕을 끌어내리고 유리아 공주를 새 왕으로 등극시키기를 바랐다.
‘좋아, 거의 다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다른 슈탄 눈에 띄지 않게 그녀를 무사히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공주가 현왕이 숨은 장소로 인도···.
=잠시만요. 뭔가 이상합니다.=
마법사가 리더에게 정신파를 보낸다. 그는 수신호로 대꾸했다.
‘뭐가?’
=유리아 공주는 마나 응결 능력자잖습니까?=
‘그게 뭐··· 헉!’
리더는 손짓을 하다 말고 얼어붙었다.
그렇다. 유리아 공주는 분명 이능력자다.
평범한 종류도 아니었다. 다른 이능을 발동 못 하게 억제하는 힘을, 알려진 누구보다도 강하게 발산한다는 천재 능력자.
그런데.
‘저놈은 여기까지 와서 텔레파시를 어떻게 보내는 거야?!’
공주의 방은 바로 코앞이다.
‘젠장, 진입!’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사전에 모의된 대로 어떤 잠금장치도 없었다.
그들이 들이닥친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리고.
“······!”
텅 비어 있었다.
리더의 입이 열리고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뭐야, 여기서 기다릴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어디 갔어?”
***
“뭐야, 여기서 숨어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어디 갔어?”
후라이팬의 인도에 따라 걷던 민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소 내부의 통로는 텅 비었다. 악어 비늘 한 장 찾아볼 수 없다.
왕실의 비밀 결사 기억에 따르면 슈탄 왕은 이곳에 몇 달째 은신 중이라고 했다. 베르미 공주 사망 소식이 전달된 그날부터.
덕분에 왕국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가장 아끼는 막내딸을 잃은 그녀가 이성도 잃었다고. 베르미 공주가 살아 있다는 망상에 매달리며 이곳에 틀어박혔다고 말이다. 왕실의 조상신에게 딸의 구명(救命)을 기도하기 위해서.
“아까 그 난리를 겪고도 조용하고···.”
성소의 결계를 걷어 낼 때 꽤 큰 충격파가 발생되었다. 안에 있었다면 모를 리 없다.
“좀 더 들어가 보면 나오려나?”
후라이팬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이동한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아시프-1의 환희 섞인 정신파가 손잡이를 타고 전달되었다. 어찌나 요란한지 뒤통수가 아릴 정도다. 지구에서 민준이 직접 튀김 요리를 했을 때 이후 가장 강렬한 반응이었다.
“···트랩 같은 것도 없고.”
처음의 결계를 뚫고 나니 그를 방해하는 슈탄도, 결계도, 함정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저기, 저쪽입니다!=
흥분하여 주인을 무시하고 멋대로 달려 나가는 대형견 목줄을 쥔 것처럼, 민준은 손바닥을 당기는 후라이팬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통로 끝에서 마주한 것은.
“······.”
커다란 문.
“여기까지 왔는데도 안 보인다는 거지.”
둘 중 하나였다.
애초에 왕은 이곳에 없었거나, 민준의 침입을 알아차리고 별개 장소에 숨어 버렸거나.
민준이 잠시 선 채로 생각하는 사이.
=저 너머입니다! 강렬하게 느껴져요! 바로 저기입니다! 틀릴 수가 없어요! 짜릿해요!=
그는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아!=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아시프-1이 애타게 기다리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영혼을 충분히 감탄하게 만드는 절경이었다.
후라이팬은 직전까지 몹시 흥분한 상태였음에도 뚝! 텔레파시를 멈추고 조용해졌다.
마도구의 감각은 방 안에 펼쳐진 것을 생생하게 관찰했다. 민준 역시 온갖 감정이 뒤범벅된 시선으로 그것들을 살폈다.
잠시 후.
정적을 깨고 후라이팬이 중얼거렸다.
=설마 저게 다··· 그겁니까?=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눈으로 가늠한다.
“대충 2백만 달란트 정도 되겠군.”
문 너머의 두 번째 방 안에는 가장 아름다운 광채가 흘러넘쳤다.
민준의 차분한 시선이 곳곳에 머문다.
투명한 수정 비슷한 재질의 상자가 벽면을 따라 나열되어 있는데, 각각의 표면은 햇빛을 담은 렌즈 같았다. 내부에 상서로운 섬광이 결을 유지한 채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빛을 얼린 다음 덩어리를 정육면체로 조각내 차곡차곡 수납한 듯한 광경이었다.
민준은 저 상자들을 잘 알았다.
그가 오래전에 이곳에 남겨 놓은 안배이기에.
“그 시골 유적지에 있던 것을 여기 다 옮겨 놓았군.”
=그럼 저게 다 원래 요원님의···?=
“그래.”
민준은 자신이 유적지에 남겨 둔 걸 묘사하기 위해 ‘보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 남자의 입장에서 가장 가치 높은 보물은, 당연히 달란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좀 이상하군. 내가 숨겨 놓은 당시와 비교해서 거의 쓴 게 없어.”
슈탄 왕실의 재산은 철저하게 감시를 받기에 필사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중이라고 했다.
궁핍에 시달린다면서, 이만한 달란트를 그동안 거의 손 안 대고 얌전히 보관만 해 놓다니?
“실물 달란트를 평범한 화폐로 유동화할 여력조차 없었던 건가?”
그렇게 궁금해하는 것도 잠시.
민준은 그대로 정신을 열었다.
화아앗!
=아아!=
아시프-1은 멍하니 이어지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빛이 쏟아져 내린다.
벽면에 가득 나열된 투명한 상자들이, 일제히 안에 품은 빛의 씨앗을 토해 냈다. 그 한 톨, 한 톨이 모여 만든 빛의 비가 민준을 향해 흡수되었다.
화앗!
찰나의 번뜩임 후, 수정 상자는 전부 빛을 잃은 평범한 수납 도구로 돌아갔다. 그 안에 맺혀 있던 달란트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전부를 내면에 빨아들인 민준은, 도취감 속에서 눈을 떴다.
“···좋아.”
그걸 본 아시프-1은 다시금 의문을 느꼈다.
‘대체, 애초에 왜?’
하지만 민준이 바로 걷기 시작한 탓에 물을 수 없었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또 하나의 문으로 다가갔다. 방금 진입한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아시프-1이 여태 느꼈던, 그를 끌어당기는 파동은 저 너머에 있었다.
또 한 번, 문이 열리고.
민준은 느긋한 목소리로 묻는다.
“저것이지?”
수형자 시스템에 포획된 최초의 죄인이었던 자는, 영혼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네, 맞습니다.=
그곳의 제단 위에는 앞선 방의 것과 비슷한 수정 상자가 한 개 놓여 있었다.
하지만 투명한 외피 안에 든 건 달란트가 아니었다. 달란트처럼 아름답게 빛나지도 않았고, 영체와 물체 사이에 낀 묘한 개념으로 볼 수도 없는 그것은, 누군가의 영혼이었다.
더 정확히는 그것이 부서지며 남긴 조각.
“슈탄의 선조 짓이군. 내가 달란트를 봉인할 때 쓴 상자 하나를 재활용한 거야. 유적지 제단에 포획된 영혼 조각을 봉인구에 담은 채 여기까지 옮겼어. 유적지보다는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했나?”
그런데 민준의 말을 듣는 후라이팬의 낌새가 이상했다.
아시프-1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요원님.=
갑작스럽게 부르더니.
=아니, 이제 이런 역할극은 의미가 없겠지요.=
정신파에 묘한 울림이 섞여든다.
이 순간 아시프-1의 혼은 제단의 영혼 조각과 공명하고 있었다.
마도구에 깃든 자아는 앞서 봤던 장면과 유적지의 제단에 대해 숙고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주가 여태 보인 행동과 그가 우주에 남긴 흔적을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의 의미를 곱씹었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지금까지 내비친 적 없었던 진중함과 경의를 담아.
=나의 창조주시여.=
완전히 달라진 어투.
민준은 의도를 가늠하는 눈빛을 던진다.
아시프-1은 오래 묵은 질문을 끄집어냈다.
=당신은 태초의 종족 중에서도 고귀한 자라 하셨습니다. 다른 동족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긋나지 않는 말이다.
=제가 쪼개지기 전 그리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무엇이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가?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는 잣대, 고결함을 계량하는 추는 어디에 닿는가? 당신께서는 그 물음의 답을 알고 실천한 자라 하셨지요.=
아시프-1은 기억하는 바와 깨달은 바를 계속 읊었다.
=여하튼, 이제 와 생각하되 당신이 특별한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다른 동족이 모두 잠든 이 시대에 홀로 깨어 있으니까요. 홀로 생각과 행동을 멈추지 않았으니까요. 홀로 시련과 고통을 견디며 극복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찰나의 머뭇거림.
=당신의 피.=
“······.”
=네, 당신의 피. 엘라후-프라가 교인들이 신혈이라 부르는 그것 말입니다.=
아시프-1은 해묵은 기억과 개념을 언어화한다.
=달란트는 태초의 종족이 흘린 피라고 하였습니다. 영체와 물체의 경계에 존재하며, 자연 상태에서는 끓어올라 비산해 버리는··· 자칫 잘못하면 영계로 증발하는 보물 말입니다. 그래서 작은 상자 형태 결계에 봉인하셨지요. 그런데.=
아시프-1은 그간 몇 차례나 본 장면을 떠올렸다.
제례 단검 따위로 육신을 자해하여 선명한 피를 뿜어내던 민준.
그의 피부를 타고 흐르던 붉은 선혈.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평범한 인간의 피로 보였다.
=이 몸은 본래의 육신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왜 당신의 피는 달란트가 아닙니까? 방금 흡수한 유적지의 달란트와, 엘라후-프라가 대주교가 훔친 달란트, 창천의 금고에서 도난당한 달란트는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의문은 멈추지 않는다.
=저를 단검 형태로 바꾸어 스스로 목덜미를 찌르셨을 때. 그리하여 당신에게 걸린 암시를 새로운 암시로 찔러서 부순 그때. 당신의 목덜미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평범한 인간의 피도, 찬란한 섬광을 발하는 달란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득하고도 농밀한··· 어둠이었습니다. 왜 당신은 빛 대신 어둠을 흘립니까?=
그리고 마지막 질문.
=그리고 당신은··· 대체 왜.=
며칠 전 솔라다의 저택 지하 제단에서 아시프-1은 경악했다. 민준에게 전하지 못하고 속에 고이 묻어 두었던 의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여기까지 안배한 당신은 대체 왜, 어떻게 잡힌 겁니까?’
달란트로 가득한 방을 본 오늘, 아시프-1의 의혹은 확신으로 변했다.
=나의 창조주여. 당신은 대체 왜···.=
그렇기에 질문을 살짝 바꿔 읊는다.
=대체 왜 잡혀 주신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