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91
192. Prisoner of Love (11)
***
민준이 토드의 영육을 갈아 그림자 괴물을 빚던 그때.
검은 폭풍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거대 함선이 은폐한 채 떠 있었다.
여기 원주민들에겐 자세한 내막을 알리지 않고 긴급 도약한 배는 조세징수사령부가 보낸 차원도약선인 동시에 군함이었다.
선내 지휘실.
선장은 얼어붙은 채 화면을 응시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방금 모함은 무장한 토드 전사 수백을 사출(射出)했다. 그들의 임무는 촉수들과 협의한 대로 엔델리온 공주를 회수하고 탈옥범 아시프-666을 체포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는가?
대대는 제대로 양동작전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갑작스레 소환된 회오리는 병사들을 무시무시한 인력으로 끌어당겼다. 그들이 터지고 으깨지며 빨려 들어간 후 생명 반응은 사라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야전 지휘관이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하고 너무 빨리 죽느라 지시하지 못한 그 단어를, 선장은 단호하게 외쳤다.
“퇴각! 퇴각한다!”
그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뭐? 그 겁쟁이 촉수들이··· 공주를 되찾기 위해 필사적인 괴짜들이 예측한 게 틀릴 리 없다고?
우주 최고의 계리사들이 계산한 승률이 잘못될 리 없다고?
기술력으로는 다른 두 종족을 월등히 뛰어넘은 그 종족의 말을 카바이트와 토드는 쉽게 믿어 버리곤 한다. 여태 틀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토드에게 공주 구출을 의뢰하며 그들은 장담했다. 지금까지 아시프-666이 되찾은 기억 수준을 추정해 볼 때, 이 병력이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으며 작전은 성공할 거라고.
“완전히 틀려먹었잖아!”
아시프-666의 힘은 엔델리온이 추측한 범위를 한참 벗어났다.
선장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클어진다. 이제 드래곤들 눈치 따위 볼 상황이 아니다. 여태까지의 국지적 작전으로 해결할 단계를 넘어섰음을 그는 직감했다.
“전쟁이다. 이제 전면전 수준의 대응이 필요해!”
퇴각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등껍질에 불붙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항로를 계산하던 병사가 다가와 보고한다.
“가장 가까운 도약 터미널은 이곳입니다!”
선장은 차원을 넘어 본부로 복귀할 계획이었다. 거기서 엔델리온의 실착을 비난한 뒤 더 많은 병력을 끌고 와야 한다. 두 종족의 결탁을 눈치챈 카바이트가 움직이기 전에, 빨리.
마음이 급했다. 홀로그램의 지도를 본다. 여긴 슈탄 왕국의 영공이다. 차원 터미널이 전무한 낙후된 국가. 가장 가까운 터미널은 인접국, 인간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수도에 있었다.
“터미널에 긴급 도약을 준비하라 해! 바로 거기로 이동한다!”
선체를 숨긴 채 군함은 허공을 가로지른다. 여기에서 군함급 텔레포트를 펼쳤다가는 저 미친 괴물이 눈치챌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수도까지 이 배 성능이면 몇 분이면 도달할 거리였다.
그런 함선의 움직임을···.
캬아아!
그림자 괴물은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밤하늘에 녹아 들며 움직이는 궤적을 괴물은 놓치지 않는다.
그녀를 소환한 술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스으윽!
붕괴된 성소 부근에 휘몰아치던 회오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으악!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숲속에 추락하듯이 착륙한 드래곤이 숨을 헐떡였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정말 이러다 제 팔자에 못 죽지. 아니, 이미 죽긴 했지만··· 아씨! 아무튼, 이게 무슨 일이야?!’ 연신 속으로 중얼거리며 놀란 마음을 달랬다.
그는 회오리 범위에 휘말리지 않게 멀어지며 고도를 낮추다 여기까지 도달한 참이다. 비로소 괴물이 사라진 걸 확인한 뒤 공주를 내려놓았다.
“크뤠렉!”
잡초투성이 바닥 위에서 공주는 몸을 뒤틀며 뒹굴었다. 그녀가 계속 외치는 말을, 하은성은 여전히 이해 못했다. 아마도 욕설이거나 의미 없는 비명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유리아의 절규는 이런 뜻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악어는 그치지 않는 눈물을 쏟으며 하늘을 보았다. 결계가 찢어지며 드러났던 성소 입구는 온데간데없다. 그곳이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그녀는 직감했다. 슈탄 왕이 숨어 있던 장소는 폭발에 휘말려 완전히 소멸된 것처럼 보였다.
“아아, 아아악! 어머니!”
유리아는 쿠데타를 꿈꿨다. 모친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강제로 승계하려 했다. 공정하게 사랑을 배분하지 않는 그녀를 향한 복수였다.
하지만 왕을 해치거나 죽이려는 생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꿈에도 계획한 적 없다.
유년기에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되고서도 그것을 갈구한다. 어렸을 때 결핍을 이제 와 채울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집착한다.
유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안 돼! 안 돼에에에!”
악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몸과 마음을 찢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그러다가 결국···.
“······.”
움직임을 멈춘다.
산란 중에 기절한 것이다. 축 늘어진 그녀를 향해 드래곤이 주저하며 다가가던 찰나.
“······!”
그의 예리한 감각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드래곤은 몸을 낮추고 날개를 부풀렸다. 등에 채권자를 태운 경험은 유전자 속 본능을 상당 부분 깨워 냈다. 금빛 눈동자의 중심, 초승달 모양 홍채가 뾰족하게 날을 세운다. 하은성은 풀숲 너머를 노려보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곳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악어?!’
그들은 전원 슈탄이었다. 얼핏 보아도 단단히 무장한 상태. 그들은 드래곤을 보며 긴장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슈탄 입장에서 여길 찾아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주변을 으깨던 회오리가 사라지고 겨우 고요함을 되찾을 뻔한 숲에서, 유리아가 고래고래 지르는 비명은 먼 곳까지 퍼졌다.
선두에 선 악어가 공용어로 말했다.
“드래곤이여, 우리가 공주를 돌보도록 허락하십시오. 알 낳는 도중의 기절은 치명적입니다. 저대로 알이 산란관 안에서 터지기라도 하면 그녀는 즉사할 겁니다.”
그리 말한 것은 슈탄 왕실을 위해 일하는 비밀 결사의 일원이었다. 민준의 손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갔던 다크바라와 귤레쉬가 속한 조직.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하은성은 경계하며 노려볼 뿐이었다.
상대가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자 슈탄은 손짓 발짓으로 뜻을 전했다.
그러자 드래곤의 반응은.
크르르!
순간, 밤이 내린 숲속의 악어들은 비늘이 곤두서고 체액이 얼어붙는 공포를 느꼈다.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린다. 마주한 드래곤의 두 눈이 번들거리며 빛났다.
드래곤 피어.
본능이 용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지시를 어기고 공주를 땅에 내려놓은 것이 그가 택할 수 있는 불복종의 한계였다. 하물며 ‘주인’이 지키라고 한 상대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용맹한 전사인 대다수의 슈탄이 호흡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그때.
그들 어깨 사이로 한 명의 악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멀찍이 뒤에서 사태를 지켜보기만 하던 자였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자, 여태 드래곤과 대화를 시도하던 슈탄이 경악했다.
“전하!”
모두가 공포에 움츠러든 그때, 유일하게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나온 악어는 슈탄의 왕이었다.
민준이 성소 안에서 결국 찾아내지 못한 그녀.
그 보물 창고가 붕괴할 때 휘말려 죽었으리라 유리아가 으레 짐작했던, 그녀의 모친.
“어머니!”
또 한 명의 악어가 왕을 따라 나와 만류한다. 그녀가 슈탄 왕의 둘째 딸임을 하은성이 알 리 없었다. 몸이 약한 탓에 다른 차원에서 요양 중이라고 알려진 그녀가 이곳에 있었다.
딸의 손길을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밀어내며 왕이 말한다.
“부탁하오, 드래곤이여. 유리아를··· 내 딸을 우리가 보살피게 해 주시오. 비록 허물 있는 자식일지라도 어미 된 입장에서 저리 비참하게 죽게 둘 수는 없소.”
용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뒤늦게 깨어난 유전자 속 본능이 뇌리를 쿡쿡 찔러 댈 뿐이었다.
그때였다.
-좋아요. 그 공주를 데리고 멀리 떨어져요! 하지만 당신은 여기 남아서 잠시 나랑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요.
또렷한 발음의 공용어.
이 자리 누구도 아닌 제3자의 말이었다. 악어와 드래곤의 머리가 동시에 돌아간다.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려온 것처럼 생생했지만 그 방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음성을 전한 것은 델의 마법이었다. 그녀는 유리아에게 접근하는 대신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화염 주술의 발동은 마나에 의존하지만 결과물인 불꽃은 마나 없이 타오르는 것처럼, 이 마법도 목소리를 마나가 얼어 붙은 여기까지 전한 것이다.
이어서 이번에는 하은성이 이해 가능한 언어가 들렸다. 델의 마법을 빌려 윰투스가 한 말이었다.
-하은성 님! 그들이 유리아 공주를 데려가게 두십시오. 그래야 이쪽의 공주님이 거기까지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거기 슈탄들에게 확인할 것이 있다 하시는데, 이 분의 폴리모프가 풀리고 본체로 돌아가 버리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익숙한 사제의 목소리는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하은성은 그제서야 적의를 억눌렀고 유전자의 충동 역시 서서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놀란 마음은 여전했다.
‘젠장, 지금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드래곤은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기절한 공주를 향해 고갯짓한다. 재빨리 달려 나온 것은 유리아의 동생이었다. 둘째 공주가 다른 결사원 도움을 받아 마나 응결 능력자를 데리고 멀리 사라졌다. 대다수의 악어는 왕을 호위하기 위해 남았다.
잠시 후. 유리아가 충분히 멀어졌는지 하은성의 몸에서 빛이 번뜩였다. 그가 장착한 아티팩트가 능력을 회복한 것이다. 빛 싸라기가 드래곤을 휘감더니 몸을 인간 형태로 바꾸었다. 델과 윰투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깨어났어?’
하은성의 시선이 델의 얼굴에 멎었다. 그녀는 봐서는 안 될 걸 본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림자 괴물의 여파였다.
대략적인 정황을 윰투스에게 들은 델은 악어들을 향해 시선을 차례로 던진다. 그중 엔델리온의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얼굴이 있었다.
슈탄 왕.
그녀에겐 저 악어와 확인할 사항이 있다.
“성소 안에 있던 것이 대체 뭐죠?”
“······.”
델은 곧 고개를 젓는다.
“아니, 뭐긴 뭐겠어. 저 난리가 난 걸 보면 당연히 달란트겠지. 거기에 대체 얼마나 많은 달란트가 있었나요?”
민준이 얼마나 많이 흡수했는가?
델이 알고 싶은 것은 오직 그것이었다.
윰투스는 질문을 들으면서도 의아해했다. 이방인의 질문에 슈탄 왕이 답할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비밀을 아는 자들이 오다니, 드디어 때가 된 것이로군!”
슈탄 왕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들이 배어 들었다.
“······?!”
유리아를 포함한 사람들은 왕이 성소에서 기도 중이라고 착각했지만, 그건 거기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의 오해였다.
민준이 이미 목격한 것처럼 성소에는 왕이 거할 공간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성소에서 가까운 비밀 결사 은거지에 숨어서 지금까지 지내 오던 참이었다. 막내딸이 외계에서 체포된 사건 이후, 그녀까지 노리는 움직임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록 왕의 소재를 찾아낼 수 없자, 인간을 중심으로 한 타 종족들은 유리아에게 손을 뻗어 그녀를 회유한 것이다.
장녀가 쿠데타를 꾀한 참담한 상황임에도, 왕의 눈동자에 서린 감정에는 묘한 희열이 섞여 있었다.
델은 이해할 수 없었다.
‘때가 왔다고?’
왕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투에서는 감출 수 없는 환희가 느껴졌다.
“드디어! 그래, 이제와 여기에. 드디어!”
“···저기, 아직 질문에 답하지 않았는데요.”
델은 고민했다. 저들은 좀 전까지 드래곤 때문에 위축된 상태였다. 이 틈을 타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왕의 반응이 예상 밖이다.
협박이라도 해야 하나?
그때 슈탄이 말했다.
“우리에게 계량 도구가 없으니 정확하게 산출할 수는 없지만, 대략 2백만 달란트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소. 나의 4대조께서 유적지에서 처음 입수한 이래 거의 줄어들지 않은 그대로이지!”
델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2백만 달란트?!
“믿을 수 없어. 그토록 많은 달란트가 애초에 여기에 왜 있었던 거지? 그리고 당신들은··· 몇백 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보관만 했다고?”
왕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소.”
“왜?! 내가 듣기로 슈탄 왕실은 자금난 때문에 별도의 비자금까지···.”
“4대조 선왕께서 그리 지시하셨기에.”
“······?”
“보물을 발견한 조상이 명령하셨소. 이것의 주인이 스스로 찾아올 때까지 다른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우린 여태 그 유지를 이어 왔을 뿐.”
민준이 여기 올 것을 예언이라도 했단 말인가?
델은 두통을 느꼈다. 그녀가 알기로 아시프-666의 미래는 위원회의 예언자들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 허락하지 않은 것처럼.
델이 혼란에 빠진 사이, 슈탄 왕은 비밀리에 전승되는 문장을 떠올린다.
-보물의 주인이 돌아오는 그때, 비로소 우리 종족은 자유를 손에 쥘 것이며 왕좌에 오른 나의 후손은 그녀의 셋째 아이이자 막내인 딸을 되찾으리라.
그 예언 이후 오랫동안, 왕의 셋째가 막내인 동시에 여아로 태어나는 케이스는 없었다. 일반적으로 슈탄은 한 번에 셋보다 많은 알을 낳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 세대에 드디어 처음으로 그 조건이 충족된 것.
그렇기에 슈탄 왕은 여태 막내딸, 베르미 공주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믿기 싫었다.
예언에서 말하는 딸이 베르미라면 분명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귀환하는 날, 다른 종족에게 억압당해온 슈탄은 진정한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
그때, 왕을 호위하던 결사들 사이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서로 바쁘게 고유어를 주고받았다. 개중 한 명의 손에 무전기가 들려 있었다. 방금 그걸로 입수한 소식이 문제였다.
“무슨 일이냐?!”
결사 한 명이 다가와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델과 대치한 채 그걸 들은 왕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전하.”
자기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더듬거리며, 그는 무전기로 들은 내용을 다시 읊었다.
“지금 인간들 왕국 수도 중심에 검은 폭풍이··· 끓어오르는 어둠이 나타나 주변을 집어삼키는 중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