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51
252. 사람의 자격 (17)
***
드래곤들의 전진기지.
지휘관은 지금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전투력으로 손에 꼽히는 전사 다섯을 보냈는데···.”
그의 눈앞에는 이번 인질 구출 작전에서 살아 돌아온 침투조들이 있었다.
“생존자는 단 두 명뿐이라고?”
다섯 명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된 골드 드래곤은 기지 내에서 위치를 발각당했다.
추격이 시작된 즉시, 그는 도청을 염려하여 금지되어있던 텔레파시로 나머지 침투조원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그가 카바이트들의 이목을 끌고 쫓겨 다니는 사이 나머지 전사들은 기지 밖으로 나와 행성 탈출을 꾀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주 모함마저 피하지는 못했다.
생존자 중 한 명이 우울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모여 있어봤자 전멸이라는 판단 하에, 먼저 탈출한 네 명 다 다른 방향으로 찢어졌지. 두 명이 당했고, 그 틈을 타 우리라도 빠져나올 수 있었소.”
지휘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대체 어쩌다가 들킨 거요?”
작전 실패의 원인은 그에게 있는 것 같았다.
질문을 하자, 생존자 뇌룡의 눈동자에 살기가 맴돌았다. 파직! 사슴을 닮은 두 뿔 사이에 번개가 튀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텔레파시에 의하면··· 그가 가지고 있던 폭탄이···.”
뜨거운 불을 토하듯이 말한다.
“······불량이라더군! 또!”
헉! 곁에 있던 개발자가 긴장하며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부, 불량이라고요? 그럴 리가.”
뇌룡은 골드 드래곤이 다급하게 남긴, 생존자의 사견으로는 유언이나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한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하지만 개발 책임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사용자 측의 조작 문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폭탄을 회수해서 정밀분석하지 않는 이상 불량이라고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
뇌룡이 거칠게 포효했다.
“그럼, 우리 더러 저 행성에 다시 가서 껍데기만 남은 폭탄을 찾아 오라고?! 당신이야말로 내 손에 뼈와 살이 발리고 껍데기만 남고 싶나?!”
“어허, 거 말이 너무 심하시···!”
“심해? 말이 심해? 정말 심한 게 뭔지 알아? 당신과 당신 아래 연구원들이야. 어떻게 두 번 연속으로 그딴 불량품을 만드냐고!”
뇌룡을 비롯한 생존자 둘은 선언했다. 다시는 용혈 폭탄인지 뭔지 하는 망할 것이 동원된 작전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저건 전략무기가 아니라, 동족들의 피를 거하게 끌어 모아 자신의 목숨을 날려버리는 데 쓰는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자살도구라고 비난하면서 말이다.
그들 둘이 조성한 분위기는 향후 오랫동안 용족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잘잘못은 나중에 가리고, 앞으로 대책을 논의해봅시다.”
지휘관은 얼굴을 찡그리며 지도를 보았다.
“카바이트들이 인공섬을 중심으로 전병력을 동원하여 수색 중이더군요. 그가 우주로 탈출한 흔적이 없으니, 아직 행성 내에 있다고 확신하고 어떻게든 찾아내려는 것이죠. 산 채로든, 죽은 채로든.”
“······살아있을까요?”
“그러길 기원할 수밖에요.”
그들은 골드 드래곤이 인질과 함께 움직이리라는 예측까지는 하지 못했다. 지휘관이 손짓하자 영상이 바뀌고, 행성의 모처를 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혼자 행성을 탈출할 여력은 없을 겁니다. 도청 때문에 우리에게 구출 신호를 보낼 수도 없구요. 살아있다면 저 지점으로 올 테니,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려 봅시다.”
그때 생존자 뇌룡이 개발자를 노려보았다. 그의 화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푸른 비늘의 드래곤이 악의 가득한 저주를 뱉었다. 아군이 낙오된 아군에 대해, 다른 아군에게 언급한 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당신은 차라리 그가 죽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거야.”
드래곤들의 부대 기강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증명하는 한 마디였다.
개발 책임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뇌룡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교신이 끊기기 전 그 골드 드래곤이 이렇게 말했지.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제일 먼저 개발자들 먼저 구워버리겠다고!”
순간, 개발 책임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
민준의 계획은 간단했다.
드래곤의 행성 탈출 여정에 가능한 만큼 오래 얹혀 간다. 수습이 가능한 수준까지만 프리 라이딩을 하는 것이다.
물론 타이밍을 잘 가늠하지 않으면 정말 드래곤의 포로로 전락할 수 있기에, 그 전에 찢어질 생각이었다.
상황을 보며 유연하게 대응하긴 하겠지만, 현시점에 가장 적합해 보이는 타이밍은 저 이름 모를 드래곤이 구출대와 합류해서 행성 궤도를 이탈하고 부대로 복귀하기 직전이 될 것 같았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까?
다시 한번 자문해본다.
‘내가 드래곤과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이번에도 답은 똑같았다.
불가능한 일이다.
민준은 본래 계획을 고수하기로 했다.
‘여차하면 내 몸 하나 빼내는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다.’
두 차례에 걸친 용혈 공급 덕분이었다. 거기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민준을 우려하게 만드는 것은···.
‘이 자식, 왜 이렇게 비실비실해?’
자신을 납치한 드래곤의 상태였다.
용은 기지를 탈출한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마나가 고갈되어 가는 것을 민준마저 쉽게 눈치챌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저 자식을 들쳐업고 갈 수도 없고.’
민준은 저 드래곤이 향하는 픽업 사이트(로 추정되는 장소)의 좌표를 모른다. 그걸 인질이 물어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것 참 애매하군.’
드래곤을 기진맥진하게 만든 도주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 틈틈이 용은 인질로부터 정보를 빼내려고 했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일방적인 대화의 흐름이 바뀐 것은 민준이 더 이상은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린 즈음이었다. 추격을 피하며 보내는 또 한 번의 밤. 고요한 공기를 울리며 그가 말했다.
“······왜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지 않지?”
기지를 탈출한 이후로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용의 흥미로운 시선이 민준에게로 옮겨졌다.
“인질이 입에 담기에는 묘한 질문이군.”
용은 드래곤 하트를 제대로 흡수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인질범이 카바이트로부터 빼앗은 한 쌍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한다면 즉각적인 수명 연장과 적당한 수준의 마력 보충 효과가 생겨난다. 종을 개량한 자들이 의도한 보상이었다.
그 질문을 대화 물꼬를 트고자 하는 제스처로 판단했는지 드래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 대해 상당히 깊이 연구했을 텐데, 설마 모르진 않겠지. 드래곤 하트를 흡수할 때 우리가 어떤 상태가 되는지 말이야.”
아, 그거였나. 민준이 중얼거린다.
한 쌍의 드래곤 하트를 자신의 것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용은 여태 봤던 것과는 달리 깊고도 긴 무아지경에 빠질 것이다.
“흡수하는 사이 적이 접근하거나 내가 도망갈까봐?”
민준은 속이 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망을 봐준다고 말할 수도 없고, 이거 원···.’
민준이 자기 자신을 인질이 아닌 자의적인 탈출범으로 재연출할 방법이 있을까 궁리하는 사이, 고룡이 말했다.
“나도 질문이 있다.”
그 순간 분위기가 급변한다.
용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었다.
“너희 카바이트는··· 그리고 다른 고대 종족은 대체 왜 이 전쟁을 일으킨 거지?”
민준은 카바이트가 할 법한 대답을 골랐다. 오리 음경과 거머리 사이 그 어딘가를 닮은 벌레들의 심정을 헤아린다.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차원은 본래 우리의 것이었다. 지금 네가 머무는 이 행성을 포함해서.”
공교롭게도 그것은 카바이트 입장에서도 태초의 종족 입장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답이었다.
드래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내가 들은 미친 소리가 사실이었군. 머나먼 옛날에 여기 살았다는 이유로 자기 땅이라고? 그러면 계속 점유권을 유지할 것이지 어디를, 왜 갔다 온 건가?”
민준은 답하지 않았다. 진짜 인질이라면 순순히 털어놓을 리 없는 극비였기 때문이다.
“이것만 물어보면 포로들은 입을 다물더군. 그중 상당수는 아예 이유를 모르는 것 같기도 했고.”
드래곤은 인상을 찡그렸다.
“너희들 주장이 설사 사실이라고 한들, 이 차원엔 한참 전부터 우리들이 거주하고 있었어. 갑자기 돌아와서 땅을 내놓으라고 하면 순순히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나? 정말 갈 곳이 없었다면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은 떠올릴 수 없던가? 난민 같은 형식으로 말이야.”
민준은 코웃음을 쳤다. 카바이트 입장에서 항변하자니 짜증이 났지만, 연기에 충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드래곤들이 난민을 받고 영토 일부를 선의로 내준다고?”
“적절한 대가를 약속했다면···.”
“착취와 노예화가 그 대가였겠지.”
용은 항변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동족이 보일 법한 반응이었기에.
그는 말을 돌린다.
“그래서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을 한 건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그 어쩔 수 없는 선택 때문에 수많은 우리 동족들이 죽어나갔군. ···나의 양친을 포함하여!”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민준은 지독한 살기 앞에서 긴장했다.
‘아니, 이 새끼가?’
설마 여기까지 와서 죽이려는 건가?
그렇게 나온다면 민준의 계획에도 급수정이 필요했다. 태초의 종족은 여차하면 드래곤의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킬 준비를 했다.
하지만.
“······.”
스으으!
서서히, 주변을 진동시키던 예기가 수그러들었다. 드래곤은 평정심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은 미련처럼 남았다.
‘정말 최고위층이 맞다면 두 분이 목숨을 잃은 작전을 이 자가 명령했을지도 모른다.’
이 자리에서 복수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끌고 온 인질을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 역시 확실했다.
“···그래, 지금 여기서 널 죽여봤자 의미가 없지. 그건 복수나 징벌이 아니라 분풀이에 불과하니까.”
민준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를 자극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 다 기온에 영향 받지 않는 몸이고 야간에도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었기에 주변에는 모닥불을 비롯한 어떤 인공적인 광원도 없었다. 구름이 달을 스친다. 민준은 어둠에 파묻힌 인질범의 얼굴을 경계 섞인 눈빛으로 관찰했다. 여차하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끊어진 대화를 다시 이은 쪽은 드래곤이었다.
“너희는 이 전쟁을 통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망상에 빠진 것 같더군. 우리가 먼저 이 땅을 강탈하는 피해를 입혔고, 이 싸움은 그것을 돌려받기 위한 복수라고 말이야.”
구름이 지나가고, 다시 달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용은 잠깐 사이에 완전히 진정된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됐다는 건가?”
“그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됐어. 더 나은 선택지를 골랐어야 했다. 피를 흘리지 않을 방법을. 양측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말이야.”
드래곤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듯 고개를 돌렸다. 검푸르게 얼룩진 밤하늘을 응시한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별이 흐드러졌다.
민준은 천천히 말을 골랐다.
“너는 지성체의 욕구를 과소평가하고 있군.”
입 밖으로 뱉고 나서 조금 후회했다. 방금 그 말은 카바이트가 할 법한 말이라기 보다는, 한때 무수한 실패를 반복한 태초의 종족으로서의 읊조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가 잠에 들기 전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한 진리가 있었다.
자연 상태에서는 서로 죽이고, 빼앗고, 번갈아 복수를 주고받는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모두가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태초의 종족은 중얼거렸다.
‘이 녀석, 답이 안 나오는 이상주의자야.’
고룡이 말을 이었다.
“난 나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그걸 고민하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에게 복수할 의무와 권리를 주었어.”
이미 오래전 이 화두를 생각하고 결론까지 낸 적 있는 입장으로서는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민준은 얼핏 카바이트를 옹호하는 것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드래곤의 꿈이 허망됨을 지적하는데 방점을 두며 말했다.
“이상이 공상의 영역에 머무는 이유가 있지.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신기루를 쫒아 봤자 무의미해. 넌 지금 불가능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어.”
젠킨슨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레드 드래곤은 단호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목표의 불가능성과 비현실성이 그걸 추구할 시도마저 멈출 이유는 못 되지. 비록 현실에서 닿을 수 없는 꿈이라도, 거길 향해 걸으며 남긴 발자국은 현실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 줄 테니까.”
용의 두 눈동자는 별을 담은 채 반짝인다.
민준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