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56
257. 사람의 자격 (22)
***
용들은 몹시 흥겨웠다.
위원회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배송해 온 그 아티팩트의 원리는 드래곤들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한 일은 그걸 몰래 설치한 것 뿐이다.
제대로 준비한 것이 맞는지 불안했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잘 작동한 것 같다.
레이더는 방금 전 조합이 보유한 소행성 하나가 폭발하는 반응을 감지했다.
“성공이다. 으하하!”
이 차원에서 가장 비옥한 행성에 모인 그들은 서로의 잔에 축하주를 따르며 다시 한번 건배를 했다.
오직 채굴 작업만을 위해 선택된 행성과 달리 그들이 거하는 별은 일조량이 풍부했고 대기 성분은 생명체에게 최적화되어 있었다.
넓은 유리창을 뚫고 찬란한 태양광이 내려쬔다. 그들 앞에 펼쳐진 화려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다.
입 안에 감도는 달콤한 기포를 삼키며 누군가 말했다.
“그래서 그 우주 모함들은? 어떻게 됐어?”
“문어 새끼가 장담한 대로 한 방에 다 소멸했나?”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럴 거라 보장은 안 했지. 상당한 손실이 예상된다고만 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행성이 폭발하는 여파에 직격당하고 멀쩡할 수 있겠어?”
위원회의 특사라고 자기를 소개한 괴물은 그들이 항상 그렇듯 직접 대면하는 대신 영계를 경유한 통신으로 연락을 해 왔다.
그 제안은 파격적이고도 위험한 것이었지만, 소행성을 공동소유한 드래곤들은 고심 끝에 딜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주 모함이 여기 도달하기 직전, 드래곤들은 행성파괴용 아티팩트를 받았다.
“오!”
영상 데이터는 시간차를 두고 도달했다.
“확실하군. 깔끔하게 터졌어.”
검은 우주를 물들이는 별의 잔해는, 그들 눈에는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보였다.
흡족스러운 수익을 기념하는 폭죽.
“400만! 400만 달란트다!”
“역시 고대 종족이군. 그 금액을 선뜻 수락할 줄이야. 어차피 달란트 따위는 얼마든지 찍어내면 된다는 건가?”
해룡 한 명이 입가의 비늘을 핥으며 웃는다.
드래곤들이 산정한 금액은 솔직히 말해 엄청난 바가지였다.
“폐광을 앞둔 행성과 어차피 살처분했을 고블린 노예 값이 400만이라니. 참 후한 촉수들이야.”
“우리야 이 깜짝 수익을 즐기면 그만이지!”
조합원들이 한창 즐거워하는 가운데, 한 드래곤은 마법 영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별이 있던 자리에는 눈부신 섬광의 구름이 끝없이 확장 중이다. 그것이 삼킨 함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시스템을 관장하는 인공지능에게 물었다.
“아직 다른 신호가 잡히는 건 없나? 저놈들 전투함은 어떤 상태야?”
인공지능이 답한다.
-행성 붕괴의 여파로 모든 파장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파악 불가합니다.
그의 곁에 화룡 하나가 다가와 웃었다.
“너무 걱정 말라고. 생존자가 있어도 우리에게 문제가 될 수는 없을 테니!”
용은 키득거린다.
“항의하더라도 우리는 몰랐다고 잡아떼면 그만이지!”
증거는 없다.
그리고 촉수들과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 드래곤들은 자기들 행성을 날려 먹은 범인을 찾겠다며 격노하는 연기를 할 것이다.
“설사 몇 척 살아 남았어도 우리와 싸우자고 덤벼들 여유가 있겠어? 심증만 존재할 뿐, 우리가 결탁한 물증을 느긋하게 수집 할 여력도 없을 거다. 너도 봤잖아? 행성이 날아가면서 증거까지 깔끔하게 사라졌다니까!”
그 결과 증거는 드래곤들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그들 머리를 까서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전말은 밝힐 수 없을 터.
화룡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설사 피해가 생각보다 미미하고 전함이 많이 살아남았다 한들, 아시프-666이 드래곤까지 건드릴 수는 없단 말이지! 증거도 없이 괜히 들쑤셨다가 드래곤과 위원회를 동시에 적으로 삼고 싶지 않다면!”
실제로 아시프-666의 함대는 지금까지 통과한 차원에서 드래곤들과의 갈등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대 종족과 결전을 앞둔 지금, 등 뒤에 드래곤들까지 적으로 심어 놓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기 위해서이리라.
그에 호응한 용족이 암묵적으로 방조한 덕분에 함대는 여태 방해 없이 차원계를 횡보할 수 있었다.
화룡이 그렇게 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흐음.”
처음 인공지능에게 상황을 확인한 드래곤은 어쩐지 불안한 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아직 무엇도 식별되지 않는 영상을 응시했다.
* * *
아시프-1은 전력을 다해 함대를 통제했다.
“크윽!”
한때 소행성이었던 물체가 빛의 먼지로 화하여 흩어지고 있었다.
함대에서 볼 때는 얼핏 느릿하게 느껴졌지만, 영상의 척도를 감안할 때 맹렬한 에너지가 무서운 속도로 확장 중임을 탑승자들은 알았다.
쿠쿵!
미리 준비하지 않았으면 함대도 휩쓸렸을 막대한 충격파가 몰아쳤다.
시간이 지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행성 잔해는 인력 때문에 한 곳에 응집되면서 크기를 키워나갔다.
저것에 스치기라도 하면 실드도 무용지물일 것이다.
=“빨리! 더 빨리!”=
교황이 각 함선 조타수들의 정신을 두드렸다.
채찍질과 같은 날카로운 외침에 따라, 주교들은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아!”
그리고 마침내.
외부 영상을 가득 채운 빛의 구름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섬광의 가장자리에 어둠이 나타났다. 아직 섬광 폭풍에 휘말리지 않은 공간이 시야권에 들어온다. 그만큼 함대가 폭발로부터 멀어졌다는 뜻이었다.
행성 파편들이 발광하는 증기가 되어 회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휴.”
교황이 한숨을 내쉰 순간.
“오···. 오! 신이시여!”
“했다! 해냈다!”
교인들 사이에서 뜨거운 환호가 터졌다.
신의 군대가 나아가는 길에 오점을 남기려는 짐승들의 시도는 실패했다.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친다.
이번에도 신은 그들을 보호하셨다!
“각 함선 현황 보고하라.”
기적적으로, 단 한 척의 배도 파괴되지 않았다.
“사상자는 전무합니다.”
그들은 몰랐지만, 행성이 폭발하는 속도는 엔델리온들이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너무 느렸다.
민준이 이끄는 함대의 진군이 예상보다 빨랐기에 고대 종족은 충분한 준비를 기울이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아티팩트를 처음 접한 드래곤들 역시 시간에 쫓기느라 완벽한 세팅에 실패했다. 폭탄을 심을 현지의 마력 흐름을 직접 파악해야 할 엔델리온은 이번에도 기술자를 파견하는 대신 원격 통신으로만 이래라 저래라 말을 얹었다.
이 어긋남이 겹쳐, 결과적으로 아군에게는 운으로 작용했다.
“예상치 못하게 힘을 많이 소모했군.”
그렇다고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
교황은 자신을 채웠던 생명력의 상당량을 써 버렸음을 자각했다. 그런 자신을 돕기 위해 창조주도 만만치 않은 용혈을 소모했을 터.
“각 함선 상태는?”
함선의 동력원도 마찬가지였다.
우주 모함의 배터리 슬롯에 채워 넣었던 마정석이 대량으로 소모되었다. 무리하게 실드를 펼치고 최고 출력으로 전개한 결과였다.
다음 차원으로 나아가기 전, 마정석을 열심히 생산하여 다시 여분을 확보해야 할 터다.
‘어쩌면 놈들은,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여겼을 수 있겠군. 우리의 발걸음을 늦추는 것 말이야.’
아시프-1은 그들을 이해하는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그것을 위해··· 행성 하나를 날려 버린다고?’
교황이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사이에도 주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모든 영광을 오직 신에게 바치겠다고 노래하는 가운데.
“······.”
정작 찬미의 대상이 된 당사자는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민준은 생각한다.
‘전쟁이 끝나고 천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건만.’
용에 대항하는 전쟁에서 자신들 편을 들어 달라 청하며, 카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드래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해내자고.
-그 비늘 덮인 괴물들의 압제와 폭정을 끝냅시다!
하지만 그는 실감한다.
고대 종족이 승리했음에도 본질적인 부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그저 드래곤의 이익을 빨아먹는 또 하나의 계층이 그들 머리 위에 생겼을 뿐이며, 오히려 위원회에 상납하는 세금과 로열티를 벌충하기 위해 용족의 착취가 더 심해졌다.
오래전 그가 이름 모를 용에게 한 말을 떠올린다.
‘시간이 흐른다고 모든 것이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아. 놈들은 오히려 퇴보하고 퇴행하려 든다.’
감시와 통제의 눈길이 사라진 순간 욕망은 폭주할 뿐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런 부분은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허락된 자유의 결과를 민준은 방금 똑똑히 목도했다.
“아니?!”
그때.
“화, 화신이시여!”
계기판을 보던 주교 한 명이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인공지능이 기능을 멈춘 덕에 많은 부분이 사람의 직접적인 개입을 필요로 했다.
그 때문에 뒤늦게 알아차린 이변을, 주교는 경악과 죄책감 섞인 목소리로 아뢰었다.
“함내에··· 침입자 반응이 있습니다!”
“······?!”
이번에는 민준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일그러졌다.
* * *
잠시 후.
민준과 아시프-1, 그리고 몇몇의 주교는 함선 화물칸에 내려와 있었다.
그들 모두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
‘대체 어떻게?’
아시프-1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읊조렸다.
“방금 전의 그 결계, 공간 왜곡 기능도 있지 않았습니까?”
민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대신했다.
다른 이들만큼이나 그 역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방금 전, 행성 폭발의 여파로 민준의 감각이 뒤죽박죽이 되었다고는 하나.
‘나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교황이 지적한 대로, 158척의 배가 함께 펼친 방어막은 행성 폭발을 물리적으로 막는 것은 물론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간 왜곡까지 병행했다.
그걸 뚫고 배 안으로 침투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민준의 귓가에 이질적인 언어가 스며들었다.
쉬-! 쉬쉿!
쉬이- 쉬쉬! 쉬이이!
쉬쉿- 쉬이이잇!
주교가 중얼거렸다.
“이게 전부 몇 명이야?”
화물칸에는 본래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자들이 있었다.
본래 비어 있던 화물칸의 한 구역을 소음과 냄새, 그리고 사람이 가득 채웠다.
누군가 그들의 종족명을 말한다.
“···고블린?”
상처 입고 쓰러졌거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울부짖거나,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움츠리거나, 혼란스러운 눈빛을 정처없이 쏘아 보내거나,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을 꼭 감은 고블린들.
얼핏 봐도 수백은 되어 보인다.
“부상자가 많지만 대부분 숨통은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 팔이나 다리 등이 잘려 나간 이들도 눈에 띄었으나, 절단 부위를 보니 최근 일 같지는 않다. 상대적으로 몸이 왜소한 노인이나 여인 중 특히 그런 이들이 많았다.
주교들이 추측을 주고 받는다.
“목에 묶어 놓은 것은 추적 장치군요. 여러모로 자유인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광산 노예 아니겠습니까?”
초췌한 행색의 그들 대부분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몸을 벌벌 떨었다. 고블린들 역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로 보였다. 주교들을 노예 상인이나 관리인 따위로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팔다리가 잘린 이들은 왜 저렇게 많지요?”
“아마 드래곤의 소유물일 겁니다. 그들이 종종 저지르는 짓이지요. 노예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 가족의 신체를 훼손하는 식으로 협박하는 겁니다.”
“그런데, 고대 종족이 기록한 이 배 화물 목록에는 노예 같은 건 없었잖습니까?”
“설사 리스트에 빠져 있었더라도 출항까지 우리 눈을 피했을 리 없습니다. 저들은··· 방금 여기로 공간 전이를 해 온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요?”
답을 구하듯 주교들의 시선이 화신 쪽으로 모인다.
하지만 민준 역시 알 수 없었다.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드래곤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런데 그런 기적을······.
‘너희는 대체 어떻게?’
멸망과 행성 소멸을 앞둔 시점에, 가장 가까이 있던 우주 함대를 인지했다면.
이 배는 먼지로 변하기 직전의 고향에서 도망쳐 목숨을 의존할 수 있는, 일종의 방주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단순히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을 넘어 여기까지 집단 전이를 했다.
하필이면 민준이 탄 지휘선을 골라서 말이다.
‘이건 다양한 종류의, 매우 강력한 이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고블린에게서는 본래 이능력자가 태어나지 않지.’
현실로 확인되지 않은 예외를 뺀다면 말이다.
‘설마?’
그때, 민준의 시선을 끄는 개체가 있었다.
“······?!”
왼팔을 잃은 고블린 여인이 한손에 아이를 안고 목놓아 울고 있었다.
다른 고블린들이 만류하려 했지만 그녀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꺽꺽거리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겹친 주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으윽?! 저건······.”
그것은 뼈와 살을 통째로 고아서 녹여 버린 듯한 걸죽한 웅덩이였다.
주교들은 그 형상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민준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뿌연 안개.
녹아버린 누군가의 몸 주변에 매우 옅은 영체의 안개가 서서히 퍼지고 있다.
아시프-1 역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에게는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의 영혼 역시 한때는 저것과 비슷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주 잘게 쪼개진 영혼 조각이군요. 얼핏 보면 기체에 가까울 정도로 바스러진.”
영혼은 소멸되지 않으나 매우 작은 조각으로 분해될 수는 있다.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그것이 흐트러지는 과정이었다.
아시프-1이 손을 내밀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영체의 안개에 가져다 댔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미세한 입자들이 흘러내린다.
“본래 여기에 있었을 한 명의 영혼이, 계속 분열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완전한 소멸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소멸에 끝없이 수렴하는 변화를 시작한 영혼.
저 영체는 이제부터 고정된 존재라기보다는 변화하는 현상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아시프-1은 의혹을 표한다.
“누가 이런 짓을?”
민준은 그것들이 인지 불가능한 영역까지 흐트러지기 전에 일부를 갈무리해 두었다.
‘복구가 불가능하겠지만, 일단은.’
그래도 붕괴는 막을 수 없으며, 보관한 부분 역시 관찰 불가능한 상태로 변하겠지만 적어도 그곳에 그것이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도록.
그가 그리 조치한 직후, 눈 깜짝할 사이에 남은 입자들은 한때 아시프-1이 쪼개지며 흩날렸던 미세 입자보다도 더 작은 파편으로 변한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관측 범위 밖으로 사라졌다.
민준은 그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흐느끼는 고블린 여인과 아이를 스치는 것을 본 것 같았다.
* * *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은, 그들 우두머리 역할을 하던 고블린의 것이라고 합니다. ‘하얀 눈깔’이라고 불렸다는군요.”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살던 땅을 잃은 고블린들을 우주 공간으로 쫓아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제들은 일단 그들을 남는 객실로 이동시켰다. 본래 훨씬 많은 인원까지 상정한 설계인지라 수용에 무리는 없었다.
그렇게 조치한 뒤 민준은 지휘통제실로 돌아왔다.
고블린들과 공용어로 소통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아시프-1이 직접 나서서 생존자들의 기억을 읽은 뒤 보고했다.
“어떻게 화물칸으로 숨어들었는지는 자기들도 모르겠답니다. 행성에 지진이 시작되었을 때, 자신들은 갱내 거주지역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뒤틀리기 시작했고, 다들 어쩔 줄을 모르고 공포에만 떨고 있었다는 군요. 그러다가 갑자기······.”
빛이 그들 모두를 덮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이 배의 화물칸이었다고.
“그런데 죽은 그 고블린, 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드워프 관리인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부분을 아시프-1이 짚어냈다.
“그런 특이한 이름으로 불린 이유가 있더군요. 들어보니, 그는 중증의 백내장을 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백태 때문에 눈동자가 하얗게 물들 정도로요.”
시간이 지나며 증상이 악화되며 점차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고 작업이 느려졌던 것 같다. 경고가 쌓여 갔고, 더이상 드워프 관리인들이 간과할 수 없는 상태까지 치달았다.
그렇게 그와 가족들을 향한 위기가 코앞까지 엄습하고, 모두가 그의 폐기를 예상하게 되었을 즈음에.
“그러던 타이밍에 갑자기, 거짓말처럼 작업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며 다시 할당량을 채웠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사물의 구별에 전혀 어려움이 없던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마치 시력에 의존하지 않는 것처럼.
“······.”
예측의 재료가 되는 기억은 있으나 단정짓기가 힘들다.
‘혹시 데모닉 고블린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현장에서 수습한 고블린의 시신. 그의 유전자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왜 유전자는 평범하지? 이해할 수 없군.’
고블린은 태초의 종족이 우주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관심을 둔 적이 없는 종족이다. 그들의 선조가 어떤 형태였는지, 그 뒤로 어떤 진화과정을 겪어 왔는지도 모른다.
민준은 위원회를 통해 알게 된 지식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종족이 멸종을 앞둔 시기에 탄생하는 초인. 본래 이능력자가 태어나지 않는 종족임에도, 동포의 염원에 부응하듯 탄생하는···. 상상을 초월한 이능력자.’
참으로 허황된 이야기다.
더군다나 저 ‘하얀 눈깔’이 태어났을 시기를 진정 고블린의 멸종 위기로 간주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아시프-1은 지시를 기다렸다.
“일단, 할 일을 해야겠지.”
머릿속이 복잡해 질 때마다 민준이 외우는 주문과 같은 말이었다.
지금 할 일을 한다.
“그 말씀은.”
아시프-1은 조심스레 의향을 묻는다.
“바로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자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그 질문에 싸늘한 침묵이 돌아오기에, 교황은 실수를 깨닫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 그렇군요.”
태초의 종족은 누군가의 예측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내린다.
“모든 드래곤이 순순히 길을 터주지 않을 것은 예상했다. 그런데, 아예 위원회와 손을 잡는 놈들까지 나온 것은 확실히 문제야. 전쟁을 겪지 못한 놈들 짓이겠지. 차라리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물어뜯으면 나으련만.”
“하오면?”
민준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앞으로 경유할 차원에서는, 이런 일을 꿈도 꾸지 못하게 본보기를 삼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