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58
259. 사람의 자격 (24)
***
드래곤은 광자포에 격추 당하기 직전 간신히 주문을 완성시켰다.
텔레포트. 바로 이어서, 폴리모프 해제.
시야가 급변하고.
—!
눈을 깜박인 순간 드래곤은 우주선 밖에 있었다.
가까스로 비상탈출을 한 용은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피는 환한 꽃망울을 보았다. 용도 살아남기 힘든 지옥불이 장미꽃처럼 개화했다. 매질이 없는 공간을 장식하는 고요한 폭발.
‘사, 살았나? 살았다!’
그는 이제 맨몸으로 우주에 내팽개쳐졌다. 플래티넘 드래곤의 거체가 어둠 속에서 빙글빙글 돌며 한 방향으로 쭉 밀려갔다. 마침 용과 태양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없었기에, 그의 백금색 비늘은 금새 황금처럼 물들며 발광했다. 지금 지상에서 밤하늘을 보는 이가 있다면, 본래 별이 없던 자리에 생긴 반짝임을 관측했을 터다.
‘크윽!’
몸이 우주 공간에 노출된 즉시 체내 수분이 증발하며 코와 입가에 살얼음이 맺혔다. 거죽 밑에서 오장육부가 팽창하는 불쾌한 느낌이 꿈틀거렸다.
그나마 바로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은 그가 용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 더 텔레포트를···!’
그리 결심하던 순간 드래곤은 절망스러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방금 전 그의 우주선을 격추시킨 포신 주변에 또 한 번 섬광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재장전 및 충전 딜레이가 없다고 봐도 될 속도.
용의 눈동자에 짙은 감정이 일렁였다.
‘안 돼!’
폴리모프를 해제한 순간 그는 부피가 커서 겨냥하기 더 좋은 표적이 되었을 뿐이었다. 모함 내에서 광자포를 겨냥하던 누군가는 쾌재를 불렀다.
용이 응시하던 캄캄한 우주를 하얀 섬광이 덮었다.
그것이 플래티넘 드래곤이 살아 목격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
“명중! 명중했습니다! 오오, 신이시여!”
우주 모함의 통제실.
한 주교가 기뻐하며 두 손을 휘둘렀다. 윰투스에게 고민 상담을 했던 함포 장교였다.
그는 첫 실전에서 목표를 두 번 연속으로 격추시켰다.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 해 낸 쾌거였다. 두 눈이 도취감에 번뜩이고 콧노래처럼 찬송가를 흥얼거리던 그때.
누군가 계기판을 보며 말했다.
“잠깐, 이거 뭔가 이상···.”
그 순간.
그들이 보던 화면 속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뭐야?!”
광자포에 파묻혀 있던 용의 사체에서 섬광이 터진다.
바로 이어 충격파가 주변의 모든 것을 강타했다. 방금 전 소형 우주선이 터질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용을 구성하던 물질이 미세 먼지와 가스의 형태로 붕괴된 후 엄청난 열과 빛, 힘을 담은 채 사방으로 퍼진다. 그를 격추한 모함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왜곡장에 숨어있던 다른 배들조차 영향을 받았을 정도였다.
“시, 신이시여!”
한참 후, 겨우 진동이 멎었다.
통제실의 주교들은 잠시 말을 잊고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었다.
– 방금 대체 뭘 한 겁니까?
기겁을 한 주변 모함에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피드백이 즉각적이고도 격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여기까지 날아오기 직전에 비슷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용이 소멸한 자리에서 생긴 현상은···.
“이거, 별이 폭발할 때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물론 소행성 폭발 때보다 에너지 방출량은 적지만 매우 흡사하다.
통제실에 함께 있던 보급 장교가 곧 문제를 파악했다.
“이런, 드래곤 하트 반응이 없습니다!”
광자포가 저 용의 드래곤 하트마저 터뜨려 버린 것이다.
방금 전 예상을 초월한 반응은 그 결과로 추측되었다.
드래곤 하트를 용족이 쪼개서 흡수하거나 공정을 거쳐 마정석으로 바꾸는 대신, 지금 같이 고출력 에너지에 노출시킬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교들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보급 장교를 맡은 주교는 함포 장교를 비난했다.
“명중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어요. 방금 전 광자포 출력이 과했습니다. 뼈와 비늘, 살점 같은 것은 태우더라도 드래곤 하트는 남겼어야 했는데 그것까지 터져버렸잖습니까!”
미숙한 사제는 명중에는 성공했으나 화력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그들 대화를 듣던 윰투스의 생각이 깊어졌다.
‘이거 여차하면··· 드래곤 하트를 행성파괴병기로 쓸 수도 있겠군. 충분한 양을 터뜨리면 말이야.’
절로 감탄이 나왔다.
대체 용이라는 생물의 쓸모는 어디까지인가?
피를 뽑으면 신의 식량이 되고, 심장은 마정석의 재료가 되며,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화약 역할까지 한다.
‘신께서 용들을 잡아오시면, 일단 가둬 놓고 피를 뽑다가 상황이 위급하면 폭탄으로 소모하는 방법도···.’
윰투스의 두 눈이 반짝였다.
아마도 신께서는 여기까지 계획하신 바가 틀림없다.
“화신이시여.”
주교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절로 신의 증거를 찬미했다.
***
‘맙소사,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거지?’
대기권 밖에서 탈주자 요격이 이어지던 때.
행성 내에서도 사냥과 수렵이 진행 중이었다. 대부분은 은밀하게 행해졌지만 모든 케이스가 완벽할 수 없었다.
민준이 애초에 꾀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 행성 지표에서는 대대적인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땅 위와 땅 속을 모두 어우르는 규모였다.
‘도망쳐야 한다! 더 멀리!’
쿠르르!
민준이 노리는 마지막 사냥감은 조합장 라흐강퀴아의 친척뻘인 지룡이었다.
용은 지저에 구멍을 파고 도주 중이다. 칠흑같이 검은 비늘 틈에서 강력한 충격파가 발산되고, 길쭉한 동체가 스치는 곳마다 암석과 토양 따위가 잘게 부서졌다. 거기에 드래곤다운 월등한 신체 조건까지 더해져 지룡의 착굴과 타공 작업은 어떤 생물보다 빨랐다.
그 효율만 따지면 고블린이 아니라 드래곤을 광산에 보내야 하는게 아니냐고 누군가 주장했을 법도 한 광경이었다.
물론 입에 올린 순간 손발목이 문제가 아니라 더 굵은 것을 잘렸겠지만.
으득!
검은 용은 이를 악문다.
‘그 짧은 시간에 모두 당해버렸어!’
동료들이 하나씩 납치당하는 동안, 몇몇 드래곤들은 결국 이변을 알아차리고 대항하거나 도주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행성 밖으로 도망치다가 잠복한 우주 모함에게 격추당했고.
지룡이 다른 방향으로 도주를 결심한 것은 그런 상황까지 파악한 뒤였다.
– 하늘로 도망쳐 봤자 개죽음을 피할 수 없다!
지룡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머리 위가 아닌 발 밑으로 숨어들었다.
그것은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멈춰라!”=
칼날처럼 파고드는 목소리.
근원지는 몇 킬로미터 밖의 지표면이었다.
“으윽!”
땅을 파던 지룡은 순간 멈칫했지만, 다시 움직였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구멍을 내고 지하를 관통한다.
지상에서 추적하는 위원회(소속으로 추정되는) 능력자는 연신 괴이한 정신파를 터뜨려 자신의 정신을 흐려놓으려 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성공하지 못했다.
‘더! 더 깊이 들어가자!’
후끈거리는 지열을 견디며 지룡은 낮게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목소리도 멀어지고 희미해졌다.
희망이 보인다!
검은 비늘의 드래곤은 안간힘을 끌어내며 침하했다.
***
“······면목 없습니다.”
용을 추적하던 아시프-1은 고개를 숙인다.
민준은 마음에 두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드래곤들이 바보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납치당하는 동안 깜깜무소식이리라는 기대는 안 했다.”
땅을 파고 도망간 드래곤에게 아시프-1의 능력은 100% 통하지 않았다.
일단 정확한 위치 파악이 힘들어 힘을 집중하기 힘들었다. 또한 상대는 이미 정신방어가 무너진 상태였던 엔델리온의 아이들이나, 미리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던 조타수 사제들과 달리 멀리서 세뇌하기가 힘들었다.
“저대로 놓치면 화근이 될 터인데.”
“걱정 마, 방법이 있으니.”
“그림자 괴물을 쓰실 겁니까?”
“아니, 그쪽은 아직··· ‘작업’이 덜 끝났어.”
“······?!”
민준은 어딘가를 향해 손짓했다. 저 멀리, 지금까지 세뇌해서 납치해 놓은 드래곤들이 있었다.
그가 고른 것은 그중에 가장 살집이 많은 용이었다. 지목되자 바로 폴리모프를 풀고 용의 본체로 돌아간다.
피막 날개가 공기를 찢는 소리를 울리며, 빙룡속 화이트 드래곤이 날아왔다. 횟대에 앉는 새처럼 다소곳한 자세로 언덕 꼭대기에 내려앉는다.
용에게 다가선 민준은 단호하게 손을 휘둘렀다.
도구 하나 없는 빈손이었지만.
촤악!
용 목덜미를 덮은 흰 비늘이 종이조각처럼 찢겨졌다. 새빨간 선혈이 폭포처럼 솟구친다.
생살이 찢기고 피를 쏟아내는 중임에도 용은 얌전했다. 채혈에 익숙한 짐승처럼, 무기력한 눈빛은 고요하다.
화아아!
핏물이 만든 폭포는 옅게 퍼지며 기화된다. 민준은 그 피안개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그 녀석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엘라후-프라가의 통제권을 찾으면 구출할 수 있는 채무자 말고도.
그에게는 물리적 장애물을 무시할 수색꾼이 있었다.
=꺄아아아악!=
민준의 두 눈동자에 순간 귀기가 어리더니.
등 위로 발악하는 망령의 산이 솟아난다.
아시프-1은 뒤늦게 감탄했다.
“아아, 그렇지. 그때 그림자 괴물의 밥으로 주지 않으셨지요?!”
그들은 민준이 여태 끔찍한 방법으로 죽여 저절로 망령이 되거나, 그가 억지로 붙잡아서 망령으로 타락시킨 영혼들이었다.
대부분 토드와 카바이트로 구성된 그들은 처절한 비명을 지른다. 죽은 직후부터 지금까지 고통에 사로잡힌 상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지옥.
=아파, 제발··· 싫어··· 나는··· 이렇게···=
=날 가야 할 곳으로··· 여기가 아니라···=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난 죄가 없어! 나는··· 나는···!=
민준은 방금 용혈로 채운 힘을 발산했다. 명령에 따라, 망자들이 강처럼 흐르며 땅속으로 파고든다.
움직이는 도중에도 망령들은 곁에 붙은 귀신의 어깨를 물고, 머리를 깨고, 배를 째서 내장을 끄집어낸 다음 사방에 던졌다. 영체로 재구성한 허상에 불과했기에 정신적 고통만 남고 그대로 재생된다.
해소되지 않는 괴로움은 증오로 탈바꿈하여 가장 가까운 대상을 노렸다.
=캬아아아아!=
토양과 암석층은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서로를 할퀴고, 물어 뜯고, 갈기갈기 찢던 귀신의 행렬은 땅 속에서 널리 퍼졌다.
그들이 지저의 용 한 마리를 발견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뭐냐?!”
내려갈 수 있는 한계까지 파고들었던 고룡은 경악했다.
갑자기 들려 오는 귀기 어린 의념.
영체 감응력자가 아니었음에도 망령들의 곡조를 들을 수 있었다. 고통으로 음율을 쌓고 절규로 가사를 엮은 노래였다. 술사의 힘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아아아! 너도, 너도!=
땅을 뚫고 망령의 강물이 범람한다.
용으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목격하는 망자들.
몸이 반으로 갈라진 카바이트가 전신에 뒤엉킨 내장을 두른 채 기어온다. 동료의 뭉개진 두개골을 든 토드가 광소를 흘리며 구른다. 서로의 눈을 파고, 융모를 뽑고, 등껍질을 젖혀 까던 고대 종족들이,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절규하며 손을 뻗는다.
“저, 저리가! 저리···.”
그것은 용의 정신을 압도하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용은 땅을 파며 도망쳤지만 망령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귀신들은 드래곤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상대에게 영매의 자질이 없었으며, 드래곤이었기에 몸을 빼앗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용에게 끔직한 기억을 전달하는 것은 충분했다.
지룡의 뇌리에, 수없이 많은 죽음이 전달되었다. 귀신들은 그들이 살해당하던 시점의 기억을 무기삼아 용을 괴롭혔다. 산 자를 향한 순수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그나마 산 채로 겪은 기억은 양호할 정도였다. 망령의 대다수는 죽고 나서 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그것 역시 고스란히 전달된다. 죽은 자의 괴로움과 광기가 몇천 겹, 몇만 겹 쌓여 심저를 공격했다.
제정신으로 버틸 방도가 없었다.
“크아아아악!”
지룡이 이성을 잃고 몸을 뒤튼 순간.
쿠르르르릉!
지상까지 그 흔들림이 전달되었다.
민준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저기다!”
두 사람과 막 공혈을 마친 흰 용은 하늘을 가르며 진동이 발생한 지점으로 날아갔다.
그 사이, 지룡은 광기에 가득 차 지금까지의 목표를 잃고 광분하고 있었다.
“어두워! 어두워! 여긴 너무 어두워!”
망령들은 여태 갇혀 있던 곳에 대한 공포스러운 기억을 전달했다.
그러자 지룡은 더 이상 땅속에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망령의 기억을 자기 것처럼 느끼며 혼란 속에서 포효했다. 그리곤 아가리를 쳐들고, 지표면을 위해 필사적으로 구멍을 파며 솟구쳤다.
콰쾅!
땅이 화산처럼 터지며 바위과 흙먼지가 사방에 휘날렸다.
쿠르르릉!
암석과 흙덩어리, 나무 뿌리가 비처럼 후두둑! 쏟아져 내린다.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낸 지룡이, 낚시바늘에 꿰인 물고기처럼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강한 힘으로 땅을 긁을 때마다 까만 비늘이 벗겨져서 뒹굴고 핏자국이 거친 붓 선처럼 남는다.
민준이 눈짓을 주기 전에 아시프-1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쉬이이익!
공기를 찢으며 유성처럼 내려꽂힌다. 그의 손에는 은색 후라이팬이 들려 있었다.
어깨를 힘껏 젖혀 올렸다가.
휘두른다!
콰아아아앙!
아시프-1은 오리할콘 팬으로 지룡의 뒤통수를 후들겨 깠다.
그곳은 용의 여섯 번째 뇌, 마법을 관장하는 그것이 위치한 장소.
“퀘르르륵!”
용의 몸에서 마법 저항력이 사라진다. 지룡은 몸을 축 늘어뜨리더니 경련했다. 입가에는 피가 섞인 거품이 부글거린다.
목에 피범벅을 한 채로도 얌전히 앉아 있는 백룡과, 그 발치에서 피거품을 물고 경련하는 흑룡의 대비.
민준은 망령들을 거두어들였다. 용을 살피며 무언가를 시도하던 아시프-1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완전히 맛이 갔는데요?”
완전히 정신이 붕괴했다는 뜻이었다. 세뇌도 불가능할 정도로.
민준이 중얼거렸다.
“아깝지만···.”
저런 상태라면 버리는 것이 낫다. 전함 내에서 자칫 난동이라도 부리면 곤란하므로.
그는 항마력을 잃은 용을 향해 주문을 중얼거렸다.
반응은 즉각 일어났다. 심장에서 먼 사지 말단부터 흰색으로 굳는다. 흑룡이 백룡으로 변이하는 듯한 광경.
까만 비늘이 하얗게 변하는 경계선을 따라 핏기가 빠져 나오며 증발했다.
스으으으으!
“카르르··· 카르르!”
용은 계속 몸을 움찔거리며 떨었다. 핏물이 빠진 발 끝부터 결정화되더니 그 영역이 점차 네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날개의 움직임도 멎는다. 흰 부분이 넓어질수록 사방에 짠 냄새가 풍겨왔다.
가슴께 바로 아래까지 하얀 결정으로 변한 찰나.
용의 동공에서 빛이 사라졌다.
잠시 후, 그들 눈앞에는 길쭉한 몸을 뒤집어서 경련하는 드래곤을 본뜬 소금 동상이 생겨났다.
그 규모 때문에 사람 손을 탔다기보다는 자연지물로 착각될 법한 물체였다.
“증거를 남기면 안 되니···.”
창조주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시프-1이 다시 은색 팬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바닥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내려친다.
구우우웅-!
종소리와 같은 묵직한 울림이 울려 퍼지고.
쩌적! 쩌저적!
드래곤 모양의 소금 동상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와르르! 무너졌다.
조형물로서의 형태를 잃고 소금 동산으로 변한 용의 사체.
그 위에 아시프-1은 집중 호우처럼 물줄기를 뿌렸다. 지룡은 소금물이 되어 그전까지 자신이 열심히 파 놓았던 구멍 속으로 흘러 스며들었다.
팟!
아시프-1은 첨벙이는 염수 속에서 붉은 결정을 낚아 올린다.
그런 다음 땅에 뚫린 구멍까지 메운 교황이, 칭찬을 바라는 눈빛으로 창조주를 보았다.
“···완벽하군.”
히죽거리는 아시프-1에게서 시선을 떼고, 민준은 저 멀리서 대기하는 고블린 무리를 보았다.
하나같이 자신들이 부리던 노예들의 모습을 본뜬 드래곤들은, 어찌 보면 노예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하여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시선에 담은 민준은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배가 부른 것 같은 흡족감과 동시에.
“······.”
떨칠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그가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에, 이미 그것이 결정된 것 같은 기분.
“돌아가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민준의 지시를 받고, 왜곡장으로 모습을 감춘 우주 모함들이 천천히 그가 지정한 터미널을 향해 하강 접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