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59
260. 사람의 자격 (25)
***
윰투스를 비롯한 사제들은 신과 교황의 개선을 환영하기 위해 모였다.
팟!
함내에 두 남자가 나타났다. 등 뒤에 짐을 주렁주렁 달고서.
“아니?”
사제들은 무리를 지어 얌전히 선 이들을 보고 당황했다.
“또··· 고블린?”
“화신께서 이번에는 직접 노예들을 구해오신 것인가?”
진상을 아는 것은 윰투스 뿐이었다.
“전부 48마리군요.”
이번 납치 작전의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57마리의 드래곤 중 포획한 개체가 48마리, 우주선을 타고 도주하는 걸 모함으로 요격한 것이 8마리, 저 행성 토양의 염분 농도 급증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사라진 것이 1마리다.
고블린으로 변신한 용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한 눈빛이었다.
교황이 짝짝, 손뼉을 쳤다. 그는 오랜만에 활개를 치고 오느라 엄숙한 척하는 것을 잊었다.
“자, 여기서 인수인계.”
그 신호에 따라 드래곤들은 이제 주교들의 명령에도 복종하게 되었다. 짧은 설명 후, 나머지 사제들도 저 고블린들의 정체를 이해했다.
윰투스는 나지막이 말했다.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게 조심해야겠군요.”
“······나랑 똑같은 말을 하네.”
민준이 눈짓을 주었고, 교황은 아차 싶었는지 다시 근엄한 표정과 어투로 돌아갔다.
“이들은 일전 무단 침입한 고블린들과 구분된 구역에 보관하라.”
두 집단은 각각 노예와 가축으로 약간 결이 다른 정체성을 지녔다.
공통점은 양쪽 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 저···.”
보급 장교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직접 교황에게 말을 아뢰지 못하고 윰투스의 눈치를 본다. 그 낌새를 보고 윰투스가 말을 대신 전했다.
교단을 대표하는 ‘사람’은 분명 교황이지만 실질적으로 행정적 수장 역할은 윰투스가 맡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저 성스러운 부자에게 직접 목소리를 전하는 일을 독점하는 식으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저 가축들의 먹이도 준비하리나이까?”
이 함대에 실린 식량으로 48마리의 드래곤을 먹였다간 다른 이들의 식량이 부족하게 된다.
여차하면 고대 종족 포로 수를 좀 줄여야 할지도.
“······.”
교황은 그들에게 신의 말을 전달했다.
“아니, 사료는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도 좋다.”
아시프-1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린다.
그는 고블린 껍질을 뒤집어 쓴 용족들을 둘러보았다.
“어차피 이들이 쓸모를 다했을 쯤에는···.”
신은 자신에게 장담했다.
“이미 전쟁이 끝나있을 테니.”
***
잠시 후, 윰투스는 델의 방 앞에 와 있었다.
“성모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으··· 으읍!”
철퍽!
델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문을 열었고, 덕분에 윰투스는 얼굴에 철썩 달라붙는 이물질을 피하지 못했다.
찰싹! 파파팍!
딱지치기를 하는 듯한 찰진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인간의 머리통만한 촉수 생물들이 연달아 달려들며 그의 면상 위에 겹쳐서 달라붙는 소리였다.
=윰투스! 윰투스다!=
=어디 갔다 왔어? 뭐 하다 왔어? 왜 이제 왔어?=
=윰투스, 너도 느꼈어? 아까 배가 엄청나게 흔들렸어. 나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이번에 말고 아까 전에는 더 크게 흔들렸어. 그래서 할머니가 걱정 많이 했어.=
=야, 이 바보야. 할머니 아니야. 공주님이라니까.=
=아니야, 윰투스 말로는 성모님이라던데?=
소리로 전달되었다면 귀가 따가웠을 정도의 정신파.
윰투스는 얼굴에 몇 겹으로 달라붙은 흐느적거리는 생물들을 겨우 하나씩 떼어냈다. 그러는 사이에도 어린 엔델리온들의 수다는 그치지 않았다.
사제가 마지막 한 명까지 떼 내자 시야와 호흡이 다시 확보되고 비로소 델이 보였다.
어두운 표정.
“······제가 좀 늦었지요.”
백 명이 넘는 엔델리온 아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델의 등 뒤에 숨어 있었다. 아직도 윰투스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징그러워서.
반면 일부는 그가 들어오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계속 하던 일을 했고, 또 일부는 지금처럼 윰투스를 보자 반갑게 달려들었다. 마지막 그룹은 더 이상 윰투스에게 역겨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비록 소수에 국한되었으나, ‘접촉’의 빈도와 횟수가 늘며 혐오가 사그라든 것이다. 이제 그 아이들은 윰투스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접촉을 하는 데에도 거리낌 없었다.
쿡! 쿡!
델과 사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촉수들은 윰투스 주변을 둥실 떠다니며 몸 말단을 뻗어 목덜미나 팔등 따위를 대범하게 찔러 댔다. 같이 놀아달라는 듯.
사제는 눈썹 위까지 슬금슬금 침범하는 촉수 가닥을 기겁하며 걷어 내고, 넓은 주교복 소매 사이로 파고드는 촉수 다발을 묶듯이 잡고 던졌다. 두 번째 행동은 실수였다. 던져진 엔델리온은 놀이기구를 타듯 꺄르르 웃으며 다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사제는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성모가 언짢아할 테니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하물며, 여기 있는 엔델리온은 성모와 더불어 신이 유일하게 사람으로 인정하는 촉수 괴물들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출신과 과거를 생각하면 묘한 일이었다.
지금 이 배에는 신이 아직 아무런 선언도 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노예로 간주되는 고블린들과, 한때 자유인이었으나 지금은 가축 취급받는 드래곤, 도구로서 창조되었으나 여기서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엔델리온들이 탑승하고 있다.
그들의 존엄은 신의 인증에 따라 보장되거나 다시 강탈당했다.
사제의 생각에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의 자격은 사람이 부여할 수 없다. 몇몇 사람들은 자연스레 무리 안의 짐승을 무리 밖 사람보다 아낀다. 선악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악인은 그들의 선인보다 소중하게 간주되곤 한다.
이런 사람의 한계 때문에, 사람이 아닌 존재가 나서야 한다.
당연히 자격을 인정하는 주체는 신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난 저 꼬물거리는 것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지.’
사제는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실로 정신 사나운 환경 속에서도, 진지하고도 무거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윰투스는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행성이 폭발한 사실과, 그 보복으로 신이 드래곤들의 납치를 결행한 사실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행성을··· 통째로? 터미널이 있으면 무인 행성은 아니었을 텐데요.”
만오천이 넘는 고블린 노예 중 대다수와 기타 관리직을 맡은 종족들이 행성과 함께 사망했다는 소식에 델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넋이 나간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맙소사, 어머니!”
잠시 고개를 젓다가, 의문을 비친다.
“용은 왜 납치한 거죠? 단순한 보복이라고 보기엔···.”
사제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 모르시는구나!’
성모는 아직 민준이 용혈을 먹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윰투스는 그 비밀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 부분은 신께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 으으읍!”
윰투스는 말하다 말고 식겁했다. 열린 입술 사이로 촉수 가닥 하나가 쑥!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제는 다시 경건하고도 신성하게(실제로 신성력을 살짝 넣었다) 촉수를 공 형태로 뭉쳐 집어 던졌다. 이번에도 아이는 무척 즐거워했지만 다시 윰투스 쪽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방을 빙글빙글 돌도록 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른 촉수들에게도 비슷한 조치를 취한 덕에, 그는 비로소 방해꾼들의 정신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델이 중얼거렸다.
“내가 이 함대와 함께 하는 것이 뻔한데도···.”
포로의 생존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화신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예측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보니···.”
델은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나를 포기했군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슬퍼할 일도 아니었다. 먼저 배신한 것은 델 자신이다.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윰투스는 본론을 꺼냈다.
“교황의 육신을 제공한 이후, 신께서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지요.”
지금 윰투스는 민준이 명령한 적 없는, 그가 스스로 생각하여 떠올린 말을 꺼내고 있다.
신을 섬기는 자유로운 의지로.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엔델리온들의 이번 시도는 꽤나 위험했습니다. 토드와 카바이트 포로들은 행성을 파괴한 그 무기가 뭔지 모르더군요. 이처럼 다른 종족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비밀무기가 또 있을 겁니다.”
손을 휘젓자 차원계 지도가 나타났다.
“앞으로 우리가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경유지가 몇 개 더 있습니다. 엔델리온들이 비슷한 덫을 치고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파악하고 싶습니다. 행성 파괴 말고도 다른 위협적인 방법이 있는지도 말입니다.”
델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저기 나오는 차원의 실상을 다 알지는 못해요. 이곳처럼 쉽게 날려 버릴 수 있는 행성이 있는지, 또 현지의 이해관계가 어떠한지까지는···.”
“그 부분은 제가 포로를 심문하고 이 배의 자료를 검토해서 머릿속에 넣어 뒀으니 괜찮습니다. 성모께서는 엔델리온에 대한 부분만 짚어 주시면 됩니다. 양쪽 지식을 조합하면 답이 나오겠지요.”
이제와 돌이키기에는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 협조하기로 약속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어요. 우리 둘이 머리를 맞대고 한 번 노력해 보죠.”
“네? 여기서요?”
윰투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끔뻑였다.
그의 이마를 본 델은 방금의 관용어구가 적절치 않았음을 깨닫는다.
“아니, 그 뜻이 아니라···.”
오해를 해소한 뒤, 델과 사제는 앞으로의 작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작전은 실패했군요.”
엔델리온의 왕은 부하의 보고를 덤덤하게 들었다.
한 마디를 덧붙인다.
“예상했던 대로.”
광업 조합의 드래곤들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아티팩트를 그 차원에 보낼 때 엔델리온은 감시 아티팩트까지 함께 송출했다.
그 초미세 위성들은 용족 몰래 행성계 곳곳에 퍼져서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을 관찰했다.
부하가 자료를 보며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시도를 통해 적들은 상당한 양의 마정석을 소모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드래곤을 납치하는 기괴한 행동을 보인 것도 특기할 만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전의 가장 큰 성과는.
“저들의 함대가 앞으로 어떤 작전을 펼칠지, 158척의 운용을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펼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데이터를 확보하였습니다.”
지금 수준에서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할만 했다.
엔델리온의 왕은 자료를 살피다가 한 부분을 짚는다.
“이건···?”
“행성이 폭발하기 직전 관측된 기이한 파장입니다.”
드래곤들은 눈치채지 못한 반응.
“아주 잠깐 발산했다가 바로 사라졌습니다만,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설마···.”
왕의 눈빛이 깊어진다.
“저 행성의 주된 인구가 고블린이라고 했지요?”
대다수의 행성에서 노예나 계약 광부로 소모되는 그들이 고대 종족의 눈길을 끄는 부분은 오직 하나다.
DNA에 58만 달란트라는 거액을 건 변이체.
‘우리가 건조한 우주 모함에 장착된 아티팩트로는 저런 파장을 만들어낼 수 없어. 그렇다고 과거 아시프-666이나 아시프-1에게서 검출된 것과도 다르다. 설마?’
혹시 저 별의 주민들이 별과 함께 소멸되기 전에 방출된 것인가?
왕은 차원에 구애받지 않고 그들 종족 대다수에게 구전되는 노랫말을 떠올린다.
‘멸종의 위기에 탄생하는 이능력자.’
그 멸종이 한 행성급인지 아니면 차원계 전체를 아우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개체 수가 얼마나 줄어들어야 위기로 판단하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혹시 그 별의 임박한 소멸을 그 순간으로 간주하였다면?
‘이제와서는 알 수 없는 일이군.’
엔델리온은 그 변이체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지만 검증 방법이 제한적이었다. 전 차원계의 고블린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를 우회했다. 아직 원시적인 채광 작업에 의존하는 차원에 고블린의 집단 이민을 주선한다. 그런 다음, 그곳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싶으면 마정석이나 연금술 같은 신기술을 보급하는 것이다.
설사 화석 연료나 금 외에 지하에서 캐내야 하는 자원이 있더라도, 그들의 일자리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집단으로 해고당한 고블린들은 주거지를 잃고 생계에 불안을 느끼며, 그들의 생리적 특정상 번식을 멈추고 개체 수가 급감했다.
요약하여, 엔델리온은 지금까지 각 차원에서 고블린들의 사회적 멸종을 유발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