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306
307. 업(業) (12)
***
아시프-1은 목이 탔다.
중요한 순간.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실패 또한 마찬가지.
긴장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게, 그는 억지로 웃었다.
“드워프들이나 즐길 이야기를 늘어놓아 죄송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 전지전능 개념을 말한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드워프입니까?”
민준은 캐시를 떠올려 보았다. 그쪽 종족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전 비서라는 대꾸를 듣고 아시프-1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거짓 웃음이 아니었다.
“아아, 누님 말씀이시군요? 그러고 보니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도 한 번 볼 일이 없었습니다. 잘 지내겠지요?”
캐시는 후라이팬 시절의 아시프-1을 가장 자주 사용한 사람이다.
당연히 요리를 가르치거나 대행하며 대화할 기회도 많았다.
아시프-1은 회상에 잠긴 채 빙그레 웃는다.
“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절 놀라게 만든 사람이었지요. 전능의 개념과 반대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절대적이고도 국소적인 ‘무능’의 아이콘이었달까요? 그 누님, 제가 아니었으면 집 여러 번 태워 먹을 뻔했습니다.”
역행하던 기억은 캐시와의 첫 만남까지 닿는다.
그러자 아시프-1의 얼굴은 수치로 일그러졌다. 당시 자신이 뱉은 첫 마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 전 그냥 개돼지라고 불러주십쇼, 누님!
그는 당시 후라이팬으로서 철저하게 피학적이고도 수동적인 도구를 연기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가하는 고통을 즐기고, 자기 의지로 행하기보단 타인 의지로 쓰임받는 데 익숙한··· 물건.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시프-1의 무의식이 거울처럼 뒤집혀 발현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내가 고통받는 대신 타인을 공격하고픈 욕구와, 나는 자기결정권이 있는 존재임을 주장하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었기에.
절망한 그는 욕구를 정반대로 표현한 것이다.
‘기억이 지워졌어도, 무의식에는 날 쪼갠 위원회에 대한 증오와 공격성이 남아있었던 걸까? 그게 굴절되어 드래곤을 향하기도 한 것 같고.’
거기서 생각을 멈춘다.
‘이런, 지금 또 회피하고 있잖아?’
민준의 반응이 두려운 나머지 자꾸 생각이 딴 곳으로 새고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요즘 제가 부딪친 커다란 벽은, 다름 아니라 아버지 당신입니다.”
민준은 놀라지 않는다. 아시프-1은 그가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던 창조주.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쳐야 할 남자.
아시프-1은 지금부터 그에게 저항하려고 한다.
“당신의 영혼을 쪼개 절 창조하셨음을 압니다. 그렇다면 저는 여전히 아버지의 일부입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렇다면 전 당신의 소유물입니까?”
“그렇지 않다.”
“저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렇기에 과거에 아버지께 한 번 거역한 적이 있지요. 이런 제가 또 반기를 든다면, 그리하여 제게 더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저를 다시 흡수하여 당신의 일부로 만드실 겁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아시프-1은 안도감을 느꼈다.
민준은 그 까닭을 말한다.
“하은성을 구조한 뒤에도 다시 흡수하지 않기로 한 이유와 동일해. 영혼이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된 너는, 내가 처음 창조한 당시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나?”
“······.”
아시프-1은 확언할 수 없었다.
쪼개졌다 조립된 자아에 완벽한 연속성이 존재하냐고 창조주가 묻고 있다.
확실한 건, 그때의 자신이라면 절대 민준에게 거역하지 않았으리라는 거다.
“위원회에 잡히기 전, 나는 고작 몇백 년 정도 다른 인격으로 살다가 기억을 찾아도 자아에 큰 영향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지. 오산이었다.”
수형자의 자아는 큰 물결을 남겼고, 지금도 물결을 만들고 있다.
하물며, 민준이 아시프-1과 하은성까지 흡수한다면.
그는 여전히 민준으로 존재할 것인가?
“우주의 혈액이 되어 동족들과 생을 공유할 미래에도, 난 만인의 자아까지 섞을 생각은 없어. 하물며 지금 엉키면 더 위험해. 너를 흡수한 나는 어쩌면 갑자기 목표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내가 나 자신의 장애물이 될 수도.”
아시프-666으로서의 삶이 그에게 준 교훈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시프-1은 일생일대의 용기를 끌어모았다.
“송구스럽지만,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하려는 일에 반대합니다.”
민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떤 일에? 설마··· 우주에 생을 부여하는 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 감동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기 위해, 우주에도 영생을 주는 계획이라니요. 앞서 간 종족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목표에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과정과 수단에 관한 문제겠군.”
“네, 저는 카바이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옅은 한숨.
“결국 그 이야기인가.”
“네, 제가 지구로 출발하기 직전 수용소가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그 작업을 총괄하고 카바이트들이 배치되는 과정을 직접 보았지요.”
그리고 아시프-1은 처음으로 전투나 세뇌, 살해 외 방식을 통해 카바이트와 ‘접촉’했으리라.
그리하도록 방치한 게 실수가 아니었을까, 민준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구로 돌아온 뒤에는 우주 모함의 영상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그럴 여유가 없었을 텐데?”
“짬을 내서라도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창조주의 안색을 살피며, 수용소 이야기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이미 설명하셨습니다. 카바이트의 DNA에는 폭탄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복사하여 심어놓았지요. 그리고 때가 오면···. 아버지는 스위치를 켜실 겁니다.”
그래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카바이트는 태초의 종족을 깨우기 위한 제물이 될 것입니다.”
창조주의 본래 계획은 이러했다.
민준은 잠들기 전 ‘용릉’이라 불릴 행성에 대량의 마정석을 쌓아두었다. 그리고 훗날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연료로 삼아, 그와는 달리 깊은 잠에 빠진 동족들을 깨우려고 했다.
하지만 카바이트의 배신으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고대 종족은 마정석을 흥청망청 써버렸습니다. 이미 각성의 마법을 완성하기엔 모자랍니다. 어차피 모자라기에, 아버지는 그것을 다른 차원에 공급하고 계십니다. 훗날 제가 그들을 통제하기 쉽게 말입니다.”
“······.”
“마정석의 대체제는 준비되었습니다. 당신은 언젠가 선언하셨지요. 카바이트는 멸종할 것이라고. 아버지는 우주 역사상 유례 없는 끔찍한 흑마법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차원계의 모든 카바이트는 자신들의 생명을 내놓아야 할 겁니다.”
민준의 시선은 곧고 단단하다.
반면 아시프-1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여기까지 설명하셨지만, 저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그날이 오면··· 카바이트는 어떤 방식으로 바쳐지는 것일까요? 단체로 몸이 폭발할까요? 미이라처럼 말라비틀어집니까? 아니면 지옥의 문이 열리고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까요?”
그 답을 아시프-1은 최근에 찾았다.
“흑마법은 제물의 생명력은 물론이고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비롯한 부정적 감각과 감정을 원천으로 하는 이능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흑마법의 창조자이십니다.”
제물을 끔찍하게 괴롭힐수록 흑마법은 강력해진다.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든, 아니면 타인이든 간에.
“그렇다면 아버지는 과연, 제물이 될 카바이트를 단번에, 빠르게 죽이실까요?”
목소리의 떨림이 심해진다.
“···이 시점에서 저는 ‘쉘터’를 언급해야 합니다.”
아시프-1은 우주 모함이 몰래 촬영한 영상을 보았다.
분쇄육처럼 다져지는 드래곤. 민준이 쉘터를 손에 넣고 나서야 그런 일이 가능해졌다.
이제 모든 단서는 주어졌고, 조각들을 짜맞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들은 믿기 싫은 가정을 읊는다.
“아버지는 흑마법과 쉘터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드시려는 거지요? 수용소에 바이러스를 풀고 DNA의 스위치가 올라가면, 카바이트는 즉사하는 대신 징표를 몸에 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쉘터의 타깃이 되는 분별이라 추측했습니다.”
바이러스와 유전자.
정확한 선별을 위한 이중의 안전장치.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치면, DNA에 표식이 있는 모든 카바이트는 산 채로 갈리기 시작할 겁니다.”
아시프-1은 울 것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감히 추측컨대, 아버지는 쉘터가 작동하는 방식과 속도도 조절하실 수 있을 겁니다.”
민준이 자신의 추측을 부정하기를 바라며.
“카바이트의 육신은 긴 밧줄 모양입니다. 큰 개체는 길이가 3미터가 넘지만 머리에 해당하는 꼭지, 몸의 10%만 멀쩡하면 오랫동안 죽지 않습니다.”
“······.”
“쉘터가 그들을 어떻게 갈지 저는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꼬리부터 차근차근, 서서히 위로 올라가며 분쇄하겠지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것은 매우 느릿하고도 확실한 죽음일 겁니다. 또한 바이러스는 통증을 극대화하는 효과도 겸하리라 봅니다. 이 끔찍한 ‘도살자의 칼’은 모든 카바이트들을 일제히 덮칠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용소에 갇혀 있던 카바이트들은. 어느 순간 몸 끝부터 걸죽한 핏빛 안개로 으스러지는 것을 보고 절규하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 생지옥이 아시프-1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아뢴 내용 중에 틀린 말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아시프-1은 마지막으로 희망의 불꽃을 피워본다.
제발, 부정해 달라고. 자신이 헛된 의심을 품었음을 지적하며 꾸중을 해 달라고.
하지만.
돌아오는 민준의 말은 차가웠다.
“없다.”
“······!”
아시프-1은 이미 전쟁 중 셀 수 없는 카바이트를 죽였다.
그런 자신이 그들을 옹호하는 현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가 여기기에, 민준의 계획은 옳지 않았다.
“무고한 방관자는 없다지요. 그 말에 부분적으로 동감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준비한 벌은··· 단지 카바이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감당하기에는 과합니다.”
카바이트는 델의 말을 기억하며, 그것에 찬성한다.
원죄는 없다.
“수용소의 카바이트 중에는 분명 전범도 존재합니다. 아버지가 겪은 고통, 제가 통과한 고난, 더 나아가 전 차원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원흉들이 섞여 있을 겁니다. 그 핏빛 과실로 영광을 누린 이상 누구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결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로 긴 시간 고문당하며 죽는 것은 부당합니다.”
드래곤을 예로 든다.
“하다 못해 용족은 자신들이 선택할 기회라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범해야 가축으로 강등됩니다. 하지만 카바이트는 그 종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대안이 있나?”
“······!”
말을 끊은 민준은 지긋이 바라본다.
“마정석은 용족과 고대 종족 간 전쟁 때 대규모로 소모되었어. 그리고 동족을 깨우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네가 왜 카바이트를 변호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군. 그래서··· 카바이트를 살리고 싶다면 대신 누구를 죽일까?”
“아버지···!”
“아니면 다시 마정석이 쌓일 때까지 기다릴까? 엄청난 수의 드래곤을 도살해야겠군. 지금 살아 있는 것들로는 부족할 수도 있어. 어린 드래곤의 심장은 가치가 희박하니까. 일단 개체수부터 늘려야겠는데? 그들이 억지로 알을 많이 낳도록 네가 세뇌할 것이냐?”
창조주는 매우 피곤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지옥에 갇힌 누군가 들으면 분개할 모순된 말을.
“너희들 말대로··· 난 전지전능하지 않아. 희생과 대가 없이 모든 걸 이룰 힘이 내게는 없다.”
세상의 신으로 숭배받을 남자는 선언한다.
“나는 사람이다.”
그 울림에서 아시프-1은 숨 막힐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한계가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이게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야.”
“···네, 아버지는 사람이십니다.”
아시프-1은 간곡하게 호소한다.
“그렇기에 부탁드립니다. 제 소원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사제들이 아버지를 숭배해도, 미래에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를 신격화하더라도, 당신의 근본만은··· 그 본질은 계속 사람으로 남아주십시오. 아버지가 종족 청소를 실행하는 순간 당신은 더이상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 저는 그것을 막고 싶습니다.“
스스로 신성을 부정한 창조주 앞에, 교황은 머리를 숙인다.
“저는 아버지가 사람의 자격을 잃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원죄를 긍정하고, 선택할 수 없는 것을 구형 근거로 삼고, 종족을 기준으로 학살하는 행위를 가리키며.
행위 주체가 사람 자격을 잃는 일이라 말한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준은.
“그 녀석이나, 너나···.”
모래처럼 부석거리는 음성.
“왜 이리 어려운 소원을 고르는 것이지?”
민준은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생각했다.
“······.”
긴 침묵 후에.
그는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래서, 대안은?”
아시프-1이 얼굴을 든다. 그의 눈에 결의가 반짝였다.
“대안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그다지 반기시지 않으실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