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60
60. 21세기 로빈 후드 (14) >
***
그렇게 결론은 도출했으나 그녀가 레어에 버티고 있을 때 당당하게 쳐들어갈 수는 없다. 따라서 레어를 비울 타이밍을 노려야 했는데, 논의 과정에서 민준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파이라고?”
젠킨슨은 당연한 듯 말했다.
“그 여자가 레어에서 부리는 직원 중 내 눈과 귀가 되어 줄 이를 포섭해 놨지. 창천이 무슨 비밀스러운 짓을 하는지까지는 몰라도, 오늘 출타 중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려 줄 수 있는 자들 말일세.”
그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창천이 집을 비웠다는 보고는 전해지지 않았다.
의심스러워진 민준이 그에게 물었다.
“제대로 포섭해 놓은 거 맞아? 창천이 며칠째 레어에만 처박혀 있다고? 원래 그런 스타일 아니잖아”
“끄응··· 그런데 정황을 보니 정말 안 나오고 있기는 한 것 같네. 요즘은 출근도 안 하고 있어.”
기묘한 일이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창천은 두문불출하며 레어에 틀어박힌 것이다.
그 사이 오크 커뮤니티 내 전쟁은 격화되었으며 젠킨슨은 나름의 방법을 동원하여 양쪽 세력이 소모되는 과정을 관찰했다.
이미 두 조직 모두 전쟁이 더 길어졌다가는 뿌리가 흔들릴 거라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휴전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진 이상 그들이 손댈 수 있는 것은 더욱 과격한 방법이었다.
결국 전화(戰火)는 빈민가 밖까지 튀기 시작했다. 두 조직 관련 인원이 모두 오크 커뮤니티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김광우는 대외적으로는 기업인의 탈을 썼던 오크고 그들 가족은 부유한 엘프나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고급 주택가에 거주했다.
그리고, 레드 스타가 김광우 장남이 사는 한남동 자택에 로켓포를 발사한 것은 많은 이들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할 만한 일이었다.
가난한 자들 구역에서 벌어지던 전쟁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언론이 그 사실을 대서특필했고 부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강 건너에서 서로 오물을 던져대던 자들 싸움 때문에 그들 안마당이 더러워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제서야 군대를 동원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무렵 젠킨슨이 개입했다. 두 조직이 서로를 충분히 죽고 죽였다는 판단을 내린 뒤였다.
SNS와 커뮤니티에 어떤 문서가 유포되었다. 그걸 확인한 이들은 대부분 음모론이라며 비웃고 무시했다. 거기서 주장하는 의혹에 주목한 매체는 이전에도 있었기에.
– 레드 스타는 인권연대의 위장조직이다.
반응은 의외의 집단에서 나타났다.
일반인들보다도 레드 스타 소속원들이 그것에 더 주목하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문서는 지선경을 통해 알아낸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배경지식이 있는 조직원들은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조직원 다수를 차지하는 오크들의 이탈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동족을 혐오하고 죽이기 위해 결성된 조직에서 일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치를 떨었다.
자신들이 번 돈은 오크를 학살하기 위해 쓰이고 있었다.
배신감과 수치심,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은 물론, 순식간에 몸담았던 조직의 적으로 돌아서서 테러를 가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아슬아슬하게 평행선을 그리던 전황은 순식간에 기울었다. 지휘부 실세 중 한 명인 지선경이 실종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결국, 갱단은 레드 스타의 세력권을 완전히 점령했다. 압도적인 승리.
비로소 오크 커뮤니티는 평화를 되찾았다. 전쟁에서 이긴 뒤에도 김광우의 후계자는 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레드 스타의 잔당들을 소탕하고 뿌리 뽑는 데에 집중했다. 이대로 창천만 제거된다면, 앞으로 그들의 지배력은 흔들리지 않고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여겨졌다.
젠킨슨은 그런 그들이 잠깐의 행복을 누리도록 두었다. 승자들이 잡초를 마저 뽑을 때까지는 기다려주기로 한 것이다.
***
“어··· 다··· 어디갔지···?”
전쟁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동철은 참으로 오랜만에 빈민가 친구들을 찾았다.
“아무도··· 없어···.”
하지만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급하게 철수한 듯한 흔적이었다.
경찰의 노력이 있었다곤 하지만 전투가 격렬해지며 전장이 확대된 것은 어쩔 수 없던 것 같다. 친구들이 텐트를 친 골목 벽과 바닥 곳곳에 총알자국이 보였다.
그는 두 손 가득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려놓은 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텐트를 비롯한 각종 짐도 챙기지 못하고 떠난 것으로 보였다.
“어?”
조심스레 둘러보던 동철은 텐트 안에서 무언가 발견했다.
“아아··· 다행이다.”
혹시라도 끔찍한 일을 당한 게 아닐까 마음 졸이던 동철은 안도감 속에서 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눈물이 살짝 글썽이는 눈으로 발견한 것을 읽었다.
그들은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면 동철이 걱정할 걸 알고 있었다. 박스를 찢은 종이에는 삐뚤삐뚤하고 맞춤법이 틀린 몇 줄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동철을 위해 남긴 편지였다.
친구들은 결국 드래곤이 운영하는 의료원에 입소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이 와중에 안 죽었으면 그것 만으로도 천만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동철은 서점으로 돌아왔다. 오후에 휴가를 낸 직원이 어마어마한 양의 도시락을 든 채 돌아온 걸 본 엘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 사장님. 한가지··· 부탁···.”
이어지는 말을 들은 엘프는 흔쾌히 요청에 응했다.
많은 고블린들이 그러하듯 동철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로 문의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말이 느리고 어눌하다 보니 상대가 무시하거나 짜증 내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몇 마디 나누다가 그냥 끊어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래서 레이크필드가 대신 전화를 걸었다. 창천이 운영하는 의료원 전화 번호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나왔다.
“네, 수고 많으십니다. 면회 가기 전에 미리 좀 여쭤보려고 합니다만···.”
동철은 도시락을 들고 친구들에게 갈 생각이었다. 그 사이 여러 군데 의료원이 새로 생긴 터라 그 중 어디에서 보호하고 있는지 확인은 필수였다.
고블린은 물론 친구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동철이 또박또박 정자체로 쓴 내용을 레이크필드는 돋보기 안경 너머로 찡그리며 읽었다.
그러다가 얼굴을 굳혔다.
“···네? 이런 사람은 없다구요? 그러면 다른 지점 좀 확인해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를 듣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고블린 역시 조마조마한 표정이 되었다.
“네? 그럴 리가.”
대표 전화로 연결된 직원의 말은 의외였다. 그가 문의한 고블린 대다수는 입원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동철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거기로 간다고··· 편지가···!”
그 중에 입원이 확인된 이름도 몇 명 있기는 했다. 하지만···.
“네, 일단 알겠습니다.”
레이크필드는 전화를 끊은 뒤 말했다.
“몇 명은 자기들이 보호하고 있긴 한데, 하나 같이 면회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구나.”
“네?! 왜요?”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있다는 거야. 면회는 가족이 와도 불가능하다면서 잘라 버렸다.”
동철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까지만 해도, 다들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잔병은 달고 살았지만 그렇게 위태로운 수준은 아니었다.
설마 그 사이 악화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예외 없이 같은 처지가 되었다니.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결국 레이크필드는 정령을 불렀다. 민준의 불완전한 망령술과 달리 먼 거리에서도 장시간 통제 가 가능한 영계의 주민이 의료원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런.”
돌아온 정령의 이야기를 들은 레이크필드가 침음을 흘렸다.
“······들어갈 수 없다고?”
모든 의료원에 강력한 결계가 설치되어 정령의 진입을 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복지시설에 왜 그렇게까지?’
딱딱한 표정으로 레이크필드는 전화기를 들었다.
“잠깐 기다려 보거라. 이건··· 정말 이상하군.”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상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창천은 레어에서 일할 직원으로 트롤을 선호한다.
그나마 지구에서 수급이 간편한 지성체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거칠게 다뤄도 어지간하면 죽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고용인들은 암묵적으로 추측했다.
그만큼 창천은 흉포한 고용주였으며 밑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공포스러운 존재다.
“아, 정말이야? 드디어 출타하셨어?!”
교대 시간, 지금 막 출근한 아침조와 퇴근하는 야간조 사이 인수인계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침조는 레어의 주인이 며칠 만에 드디어 집을 비웠다는 소식에 화색이 되었다.
“와, 이게 진짜 얼마 만이야? 그동안 바깥 출입 전혀 안하고 레어에만 있길래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상관이 최대한 근무지를 비워주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직장인들의 소망이지만 상대가 창천이라면 그 마음은 더욱 간절한 기원이 되었다.
심기가 뒤틀리면 폭력과 살해라는 방식으로 질책하는 고용주를 뒀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요즘 영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그 은행장 이야기 들었어?”
이야기에 언급된 그는 대외적으로는 퇴근 후 사고를 당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그 진실을 알 만한 고용인들은 알았다. 그가 분노한 창천의 손에 갈기갈기 찢어져 죽었다는 것을.
이쯤 되면 돈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탈주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고룡의 복수가 따라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취업사기야···. 창천이 이런 용이라는 걸 왜 아무도 몰랐던 거지?”
“아니, 사실 소문은 돌았지. 우리가 돈에 눈이 멀어서 무시한 거지.”
고룡이 운영하는 회사면 절대 망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시한 보수도 두둑했기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이런 진실을 알았다면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목이 날아간다’는 진실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전현직자가 인터넷에 진실을 알리거나 구직자 사이트, 회사 리뷰 사이트 등에 비슷한 내용을 암시만 해도 그녀에게 암살당하기 때문이다.
자기욕이나 회사욕을 하면 찾아서 죽여버리는 사장 앞에서 고용인들은 그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나간 거래? 언제 돌아오고?”
“그건 나도 모르지.
“그나마 오늘은 마음 좀 놓고 일하겠네. 요즘 왜 그렇게 날카로운 거야? 예전보다 훨씬 심해졌던데. 일하다가 마주칠까 무섭다니까.”
“아무래도··· 요즘 30층에서 하는 그거 때문 아니겠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도 화물 트럭이 몇 대나 들어왔잖아. 그거 다 30층으로 갔다고 하더라고.”
“아, 오늘도 입고 계획 있었는데 취소됐네?”
“그래. 무슨 뜻인지 알지? 자기가 오늘은 직접 관리 감독할 수 없으니까 취소한 거야. 그만큼 중요한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거지.”
“에휴, 여기까지 들으니 알고 싶지도 않네. 그게 뭐든 간에.”
“그래, 많이 알아봤자 목숨만 간당간당해지지.”
그렇게 투덜거리던 두 명의 트롤은 버기카를 타고 레어 내 일터로 출발했다. 드래곤 사이즈에 맞춰진 이 거대한 지하공간에서 걸어서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편,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고용인 탈의실에는 한 명의 트롤이 남아있었다.
그는 조용히 들은 내용을 복기했다.
‘30층이라고?’
머릿속에서 정보를 확인하며 거울을 흘깃 본다. 그곳에는 젠킨슨이 이 레어에 심어 놓은 스파이의 얼굴이 비춰졌다.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는 감탄했다.
‘역시··· 드래곤 애들이 폴리모프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는 트롤은 물론 민준이었다.
젠킨슨이 레어에 심어 놓은 스파이는 다양한 용도를 위해 안배된 것이었다. 그는 간자를 고를 때도 아무나 택하지 않았다. 창천에게 보복당할 일가족이 없으며 이대로 한국 땅을 훌쩍 떠나도 미련이 없는 자.
또한 죽을까 두려워 도주하지 못하는 다른 트롤과 달리 이 자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고룡의 마수에서 벗어날 안전장치란 결국 다른 고룡 밖에 없는 법이다. 젠킨슨 같은.
‘어디 보자··· 지하 30층이면, 하은성 걔가 드래곤 망령을 본 거기잖아.’
아무리 기다려도 창천이 레어를 비울 기미가 없자 젠킨슨은 전략을 바꿔서 그녀를 밖으로 불러 냈다.
두 고룡이 만날 때 장소는 둘의 레어가 아닌 다른 곳으로 정하기 마련이다.
상대의 레어를 찾아가는 행위는 어지간히 친밀한 사이가 아닌 이상 일종의 ‘알현,’ 즉 스스로 굽히고 들어가는 행동으로 해석되기 때문.
젠킨슨이 이 지역을 관할하는 자이긴 해도 다른 용 위에 군림하는 자는 아니었기에 둘이 만나려면 그녀는 레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30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따로 있댔지. 이 ID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니까 다른 놈들이 들어갈 때 따라붙어서···.’
민준은 CCTV를 의식하여 갑자기 투명화 주문을 외우는 대신 사각지대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당한 기회를 봐서 주문을 발동시킨 뒤 눈에 띄지 않는 상태로 곳곳을 뒤지고 다닐 생각이었다.
보안을 우려해 레어 전체에 텔레포트 발동이 봉인된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넓기는 더럽게 넓군.’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는데.
“어이, 거기!”
등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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