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8
8. 직장상사를 살해하는 세 가지 방법 (5)
‘클라이언트가 드래곤이라니!’
정팔 같은 소시민 입장에서는 듣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무거운 단어였다.
드래곤.
소사이어티 쪽에 장태준 집을 뒤지라는 의뢰를 넣은 자의 정체다.
‘형님도 갑자기 말씀이 없으신 걸 보니···. 역시 이대로 붙잡고 가기는 찝찝하신 게지.’
이 세계에 드래곤이 집단 이민 형태로 넘어온 적은 없다. 애초에 위원회에 대규모 망명을 요청한 용족 사례가 없으니까. 설사 생기더라도 목적지로 지구를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계에는 거주 가능한 행성이 하나 밖에 없고 용이 다수 모여 살기에는 좁다.
반면, 개인 자격으로 지구시민권을 획득한 용의 사례는 꽤 되었다.
그들 중에는 지구에 발을 딛자 마자 시끄러운 것은 싫다며 히말라야 산맥이나 아마존 밀림으로 떠나 은둔생활을 시작한 개체도 있고, 지구인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살아가기를 선택한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대부분 짧은 시간 내 막대한 재물과 권력을 얻고 이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막후 실세가 되었다. 정치와 행정, 경제를 주도하는 주요 단체 및 기업 중 용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은 드물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드래곤 심기를 건드렸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았다.
그것이 권력의 힘.
그렇게 용들은 당당하게, 한 세대 만에 지구의 최상위계층으로 자리잡았다. 수천만의 오크 이민자 1세대가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그들은 소수의 힘으로 달성했다. 드래곤에게는 모든 것이 그렇게 쉬웠다.
“······형님?”
“잠깐만,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잠시 후, 민준은 마법사로부터 건질 것은 다 건져냈다. 질문에 열의 넘치게 답하는 수준을 넘어 논문 한 편 쓸 기세였던 남자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자 한 말을 반복하고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까지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됐다. 서에 지원 요청해라. 얘 끌고 가야지.”
눈 앞의 마법사는 명백한 인간이며, 장태준의 정체나 행적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이민국이 아니라 경찰청에 인도될 것이고 후속 수사 및 영장신청 절차도 경찰이 맡는다.
정팔이 전화 한 통을 하자 곧 오크 커뮤니티 내에 경찰차가 진입하는 기척이 들렸고, 그 이동 경로를 따라 문과 창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울려 퍼졌다.
“말 안 듣는다 싶으면, 그 새끼 핸드폰에 녹음된 음성을 한 번씩 들려주세요. 주도권이 심문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걸 알면 고분고분해질 겁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마법사가 끌려 가는 뒷모습을 정팔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래는 그도 따라가야 하지만, 지금은 이민국 요원에게 협력한다는 우선 순위 임무가 있기에 민준 옆에 남았다.
“앞으로 저 놈은 계속 저 상태인가요?”
“경찰에 넘긴 게 오히려 잘 된 거야. 억지로라도 먹이고 재워 줄 테니까. 본인 손에 저 핸드폰 들려 보냈으면 하루 종일 그것만 듣고 있었을 거다. 무한 반복으로.”
“······보통은 죽겠군요?”
“통계에 따르면 50% 정도는 아사 직전에 본능적으로 멈춘다고 해. 저 자식도 감옥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그러니까··· 10년 이상 치료를 받으면 회복이 가능할 거야.”
물론, 저 수치는 일반적인 마법사 기준이며 술사가 민준일 경우 생존율은 훨씬 떨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
두 사람은 장태준의 집을 한 번만 더 수색해 보기로 했다. 마법사가 언급한 ‘자택 내 비밀금고’가 신경 쓰였던 것이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사이 민준과 정팔은 각자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주제는 드래곤이었다.
정팔은 소사이어티 조직원이 말한 그 작자가 왜 이능범죄조직에 접촉하여 의뢰를 맡겼는지, 이 사태를 예민준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상부에는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 것인지 등을 궁리하고 고민했다.
반면, 민준이 생각하는 내용은 훨씬 심플했다. 그는 단 한가지 의문에 골몰히 집중하고 있었다.
‘어떤 년이지?!’
소사이어티에 임무를 맡길 동기가 있는 드래곤을 찾는 것 보다, 절대 그럴 일 없는 용을 리스트에서 빼는 소거법이 더 빨랐다.
지구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용족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다양했다. 굳이 범죄조직과 손잡지 않아도 훨씬 은밀하고 깔끔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하를 뒀거나, 애초에 인간들이 어떻게 지지고 볶고 살든 전혀 관심이 없거나, 비밀 금고를 찾고 싶으면 한국 정부 눈치 안 보고 장태준 집을 통째로 뽑아 가져가는 성질머리를 가졌거나··· 등등.
그래서 민준의 머릿속의 후보는 네 명으로 좁혀졌다.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었다. 문제는, 넷 다 ‘왜’ 그래야 하는지 동기를 짐작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여기부터는 더 추려 내기가 어려웠다.
-다음 뉴스 전해드리겠습니다.
둘이 생각에 빠진 사이, 청자를 놓친 라디오의 음성이 차 안에 낮게 울려 퍼진다.
-베르미 공주의 첫 방문 국가가 우리나라로 결정되었습니다. 한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오가고 있는 와중에···.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국내 영아사망률이 전년 대비 2.5퍼센트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타임워커(Time walker) 특성 보유자의 출생 비율 증가로 해석되며···.
-주식 시장 살펴보겠습니다. ‘효성실업’이 시가총액 15%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 소식에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그 마지막 뉴스가 두 사람의 귀를 간신히 사로잡았다.
“효성실업?”
“장태준 사장 회사잖아요.”
둘은 눈을 마주친다.
장태준 사장의 실종 사실은 아직 공식적으로 언론에 발표되지 않았다. 회사 내에는 출장 간 것으로 둘러댔으며 진실은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다고 했다.
“보통 저런 중요한 일을··· 사장이 없을 때 막 해치우고 그러나?”
지구에서 저런 평범한 업종에 종사해 본 적 없는 민준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뭐, 사라지기 전에 미리 결재를 끝내 놨을 수도 있죠. 실행만 남겨둔 상태에서 없어졌을 수도.”
“흐음.”
민준의 머릿속에서 추측 하나가 간질간질 떠오르려고 했다. 그것에 좀 더 집중하려는 순간.
꼬르르르륵!
운전대를 잡은 정팔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제서야 민준은 자신의 무신경함을 깨닫는다. 점심 때는 진작에 넘긴 상태였다. 오크를 굶겨 가며 일 시키다니! 정서적으로는 대역죄에 버금가는 중죄다. 인간 중에도 삼시세끼는 꼭 챙겨 먹어야 하는 체질이 있지만, 오크는 더욱 그렇다.
“배고파? 이거 나눠 먹자.”
그는 뒷좌석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먹을거에요?”
정팔은 거절하지 않고, 시선을 전방에 둔 채 손을 내민다.
그것은 캐서린이 오늘 아침에 맥락 없이 민준의 사무실에 와서 던지듯 건넨 꾸러미였다.
“햄치즈 샌드위치래. 캐시가 직접 만들었다는데?”
“서린이가요? 걔 요리 안하잖아요.”
“요즘 유튜브 보면서 따라하기 시작했대.”
“와, 고용주한테 바치는 뇌물인가?”
“몰라, 날 더 살찌워서 잡아먹으려는 건지 뭔지 요즘 자꾸 먹을 걸 갖다 줘.”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정팔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다.
“!”
순간 차량 안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정팔은 그것을 입 안에서 한 번 씹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썹이 팔(八)자를 그린 상태로 한 번 더 씹은 다음엔 오열하기 직전의 얼굴로 변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씹은 뒤에는 조용히 차를 세워 도로변에 댔다. 그리고는 문을 박차고 나간다.
“왜 저래?”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민준도 한 입 먹어 보았다. 그리고 그 또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유튜브에 가짜 뉴스가 판친다더니··· 가짜 레시피도 도는 건가?’
그렇게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예상 못한 풍미였다.
캐시가 만든 샌드위치에서는 절인 청어의 맛이 났다.
***
정팔이 가글액 1리터짜리 한 통을 사서 전부 비운 다음, 다시 차를 움직여 두 사람은 장태준의 집을 향했다. 민준은 이번에도 샅샅이 뒤졌지만 역시나, 집 안에 비밀 금고 같은 것은 없었다.
‘누군지 모를 드래곤이 잘못 짚은 거군.’
후라이팬에게도 물어봤지만, 이 집에 그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인지 범위가 3미터 밖에 안 되어서 그 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알 수가 없다고.
민준은 정팔에게 일단 자기 사무소로 가서 향후 대책을 의논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이야기를 경찰서에서 나눌 수도 없기에 그도 동의했다.
상가 앞에 차를 세운 뒤, 민준은 트렁크에서 에고 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몇 걸음 걷는데 1층 서점 셔터를 내리는 고블린, 동철이 보였다.
“···어? 주인님. 다녀··· 왔어요. ······아니, 오셨어요?”
꾸벅, 배꼽 인사를 한다.
그러자 후라이팬이 반색했다.
=오! 꽤 파격적인 플레이를 즐기시는군요? 밖에서도 숨기지 않고 그냥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주변의 귀와 눈은 신경 쓰지 않는 쿨한 플레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2층 상가로 올라간 다음 두 사람은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좋아, 손 떼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타산이 맞지 않았다. 지금까지 장태준이 외계인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잡지 못했다. 후라이팬의 존재는 그 확률을 높여줄 뿐 결정적인 한 방이 되지 못한다. 더군다나 드래곤이 엮여 있고, 소사이어티도 기어나왔다.
애초에 민준은 경찰이 아니다. 실종자 찾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외계 존재의 입증인데, 지금은 그 기본 전제가 흔들리는 상황에 귀찮은 암초도 너무 많다.
정팔 입장에서도 사건을 덮는 것은 간단했다. 상부에 지금 상황을 그대로 보고하기만 하면 미제 사건 파일철 안으로 모든 자료가 넘어갈 것이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캐시 통해서 이민국에 연락을 넣어야겠어.”
그 때, 창 밖에서 묵직한 스포츠카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 정팔이 밖을 내다본다.
“양반은 못 되네요. 서린이 왔습니다.”
상가 주차장을 보니, 정팔이 세워 놓은 수사 차량 옆에 빨간색 재규어 한 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저 왔어요! 어, 정팔이 아저씨도 있네?”
“항상 형님은 민준 씨라고 부르면서 왜 나는 아저씨야?”
“억울하면 액면가 재조정 좀 하세요.”
“젠장, 쿼터 엘프 아닌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민준은 평소 느린 노화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엘프 피가 섞였다는 답변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희석되면 외모에서는 엘프 특성이 거의 안 드러나고, 신분증 상 종족정보도 그냥 인간으로 찍힌다.
“이건 또 뭐에요?”
캐시는 책상 위에 놓인 후라이팬에 관심을 보인다. 그녀가 손을 뻗기 전에 민준이 만류했다.
“그거 잡으면 기분 더러워질 수도 있다.”
“네?”
민준은 그것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를 설명했고, 그걸 다 들은 캐시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저 에고 소드 한 번도 못 만져 봤어요. 아··· 이건 에고 후라이팬이지만. 한 번 잡아 봐도 돼요?”
“난 분명 경고했다.”
캐시는 겁도 없이 편수 후라이팬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 즉시, 얼굴에 얕은 놀라움과 신기한 감정이 오간다.
“세상에, 정말 말할 줄 아네? 넌 이름이 뭐니?”
=전 그냥 개돼지라고 불러주십쇼, 누님.=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인격을 복사한 그 요리사 이름이 뭐라고?”
=디그노브 알챠-테이큐입니다, 누님.=
“이름이 좀 기네. 그럼 앞의 두 글자만 따서 줄이면, 디······ 윽.”
발음을 애매하게 완성시킨 다음, 잠시 고민하다가.
“이름은 차차 정하자.”
민준이 말했다.
“그거 들고 갈 생각 하지 마!”
이대로 사건을 접을 거면 후라이팬은 장태준의 집에 돌려 놓을 생각이었다.
“걱정 마세요. 그나저나··· 아까 목소리는 왜 그랬어요? 뭐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장태준 집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캐시에게 준비해 달라는 전화를 했을 때, 민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톤다운 되어 있었다. 드래곤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뭐. 그렇다기 보다는···.”
말을 얼버무린다. 사건을 접겠다는 이야기는 내일 할 생각이었다.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났으니까.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보네. 갖고 오길 잘 했다.”
“뭐를?”
“기분이 다운된 것 같길래, 술 한 병 사 왔어요.”
후라이팬을 내려놓은 뒤 그녀는 가방에 손을 뻗었다. 주황색 버킨 백 위로 백화점 포장지에 쌓인 길다란 상자가 삐쳐 나와 있었다.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별로, 술 땡기는 기분은 아니야.”
정팔 역시 거절했다.
“나도 오늘 차 몰고 와서···.”
하지만 두 사람의 반응을 무시하며 캐시는 포장지를 찢었다.
그리고는, 모습을 드러낸 스카치 한 병을 보란 듯이 내밀었다.
“킹슬리 애쉬튼, 37년산. 드워프 마이스터 셀렉션!”
“형님, 마트 가서 얼음 좀 사 올까요?”
“아니, 냉장고에 있어. 여기서 3분만 기다려 봐, 술상 봐 올게.”
일사불란하게 술판이 준비되었다.
***
‘······아아. 힘들다.’
몸둥아리를 원심분리기에 던져 넣은 듯한 감각 속에서 민준은 잠에서 깼다.
‘······죽을 것 같다.’
지독한 독기가 몸 곳곳에서 느껴진다. 중독당했나? 아니면, 고문당하는 중인가? 감각에 집중하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숙취다.
눈을 감은 채 혼란스러운 기억 속에서 여기, 이곳에 내릴 닻을 찾는다. 나는 누구이고, 지금 어떤 세계에 와 있는가? 어제 왜 술을 먹었지?
그람 제국의 황태자가 또 불편한 술자리를 강요했나? 아니다, 그것은 대략 250년 전의 일이다.
그럼, 대가리 깨부수기 전에 사령술사가 뱉은 저주 때문에··· 망령의 속삭임을 잊으려고 또 혼자 독주를 퍼붓다 잠들었나? 역시나 아니다. 그건 더 오래 전, 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나약했던 시절 기억이니까.
이럴 때는 손가락을 슥 움직여 본다.
그의 검지는 눅진한 배양액 속에서 꿈틀대지도 않았고, 무중력 수면키트가 만든 허공을 스치지도 않았다. 면직물로 만든 깨끗한 침대 시트의 감촉.
그래, 여긴 지구다. 나는 예민준이다.
그제서야 그는 눈을 떴다.
“·····.”
모르고 싶은 천장이다.
“으으!”
상가 2층 일부를 개조한 민준의 집이었다. 온 몸을 술에 절인 듯한 냄새가 났다. 데굴, 구르면서 바닥에 발을 딛었다.
차라리 신을 한 번 섬겨볼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머릿속에서 지운다. 숙취해소제 용도로 신앙을 갈구했다가는 천벌 받기 딱 좋다.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에, 터벅터벅 걸어서 현관문을 열었다.
“···아! 주인님··· 안녕하세요······?”
현관문 앞 복도에 서서 배꼽 인사를 하는 고블린.
그의 손에는 상가 1층 우편함에 꽂힌 각종 신문과 우편물이 들려 있었다. 모두 수신인은 예민준이다.
“안녕, 동철아··· 좋···지는 않은 아침이다.”
“······헤헤.”
평소에는 더 늦게 오는데 오늘은 우편물이 많아서 일찍 올라온 모양이다.
“매일 아침 이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내가 짬 나면 가져갈게.”
“제가 좋아서··· 하는 거···.”
동철은 해맑게 웃더니 다시 한 번 꾸벅 인사를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문을 닫은 후 민준은 건성으로 우편물을 뒤졌다. 그 중,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보내는 사람: 유한회사 젠킨슨 파더앤선즈 컴퍼니 회장비서실.
-받는 사람: 예민준 님.
민준은 거실 식탁에 앉아, 고급스러운 재질의 편지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간단한 내용을 명시한 ‘출석 요청’이 적혀 있었다.
-현재 배정된 임무와 관련하여 전달사항이 있사오니 빠른 시일 내 본사 회장비서실 내방 바랍니다.
조용히 생각한다. 하필 이 타이밍에?
그는 오늘 이민국에 장태준 건에서 손을 떼겠다고 통보할 참이었다.
‘그것도 회장 비서실에서?’
편지를 보낸 회사는 대한민국 정부 이민국 업무를 위탁 받아서 운영하고 있는 사기업이다. 이민국 공무원들 소속은 국가로 되어있지만 조직 운영은 이 회사에서 맡아서 하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 이민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 공무원은 1할도 안 되고 나머지는 다 사기업에 고용된 이들이다.
민준의 경우도, 공무원은 아니고 계약으로 묶인 프리랜서에 가까웠다.
따라서 이 편지는 민준의 지구 내 고용주가 직접 보낸 업무지시로 보면 맞았다.
‘분명히··· 뭔가 있군.’
이 갑작스러운 호출은 어제 정팔과 그가 알아낸 사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준이 그렇게 확신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재벌 그룹의 정점에 위치한 존재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니까.
젠킨슨 회장은 드래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