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12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2)
민준은 결정을 내렸다.
‘일단 가까운 곳부터.’
사하르에게 그 사실을 알린 뒤, 민준은 하늘 높이 뛰어 올랐다.
쐐애애액!
공기를 가르며 타깃으로 찍은 지점으로 향한다.
스무 명에 가까운 아랍인들이 여러 대의 차에 나눠 타서 큰 대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쿵!
민준이 바닥에 착륙하자 아랍인들은 타고 있던 자동차를 급정거시켰다.
끼이익!
끼이이이익!
타이어가 마찰하는 소리.
“내려! 내려!”
급한 호통과 함께 남자들이 우르르 내린다. 전부 이능력자들이었다.
“저, 저건?”
그들 앞을 가로막은 것은 소름 끼치는 모습을 한 무언가였다. 온 몸에서 증기처럼 끓어오르는 어둠. 밤공기와 섞여 까맣게 부글거리는 가운데 핏빛 연기가 흘러 나온다. 팔다리가 달린 모양은 사람을 닮았으나, 그 뒤에는 사하르 때문에 만들어 놓고 민준이 아직 없애지 않은 긴 꼬리가 늘어져 있었다.
누군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샤··· 샤이탄(사탄)!”
그 존재가 낮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
상대가 누가 됐든 일단 경고는 하고 본다. 민준이 어지간하면 지키는 방침이었다.
“흐익!”
주춤, 누군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 두려움이 무리 전체에 전염되기 전에, 아랍인 측의 지휘관이 외쳤다.
“공격! 공격해!”
그리고 상대가 경고에 불응할 경우, 그 뒷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또한 민준의 방침이다.
파앗!
남자들이 주문을 영창하는 동시에, 그림자 괴물이 검은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Al-rebuatan-khali······!”
저 악마를 물리치기 위한 주문을 외우던 한 남자는 그것을 끝맺지 못했다. 그림자 괴물에 덮여서 직경 5cm에 달하는 민준의 손가락은 그 끝이 송곳처럼 뾰족했다. 민준은 그런 손가락 두 개를 남자의 입 안에 쑤셔 넣었다.
우득!
꼬챙이처럼 단단하고도 치명적인 손가락은 남자의 앞니를 부순 뒤, 혀를 긁고 목젖을 지나 그의 연구개에 파고들며 박혔다. 그 두 개로는 남자의 아래 치열을, 나머지 손가락으로는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의 아래턱을 잡는다. 그대로 주먹을 움켜 쥔 뒤, 민준은 팔을 힘차게 뒤로 잡아당겼다.
콰직!
“끍에에에에에!”
피거품을 토하며 남자가 무너져 내린다. 찢듯이 뜯어 낸 아래턱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는 민준에게, 나머지 마법사들이 완성시킨 마법들이 쇄도했다.
“죽여버려!”
쾅!
콰콰쾅! 콰-쾅!
불기둥, 번개, 푸르스름한 에너지 탄환, 염동력으로 만들어낸 무형의 압력이 민준의 흑색 갑옷 위로 쏟아졌다.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하면서도 민준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부-웅!
무겁게 공기를 밀어내는 소리. 민준의 꼬리가 채찍처럼 길게 늘어나더니, 한 무슬림의 목을 가격했다.
퍼억!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난다. 타격을 당한 그는 순간 호흡을 멈추고 무릎을 꿇었다. 검고 굵은 꼬리는 허공에서 다시 한 번 휘익! 신축성 있게 곡선을 그리며 궤도를 바꾼다. 그대로 이번에는 남자의 뒷통수를 후려 갈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는 비명도 내지 못하고 앞으로 기운다.
탓!
남자의 얼굴이 지면과 충돌하기도 전에, 민준은 다시 한 번 그 몸을 허공에 띄웠다. 검은 번개가 내려치듯이 사방 팔방으로 몸을 튕긴다. 그의 몸이 누군가를 스칠 때마다, 반드시 한 명 이상이 쓰러졌다. 누군가는 길게 오열했고 또 누군가는 얼어 붙을 것 같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허물어졌다.
“괴··· 괴물! 사탄이다! 죽여! 죽이라고!”
악을 쓰듯 소리지르는 남자에게 민준이 눈빛을 한 번 주었다.
그 순간.
그르르르르!
남자가 헛구역질을 몇 번하더니, 목구멍이 막힌 듯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무언가를 토해낸다.
“그륵··· 그르륵!”
그것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남자 자신의 혀였다. 저주를 당해 기이할 정도로 팽창한 그것은 남자의 턱 아래까지 내려와 덜렁거렸다. 밖으로 드러난 피부 역시 화상이라도 당한 것처럼 붉게 물들며 눈에서는 진액이 흘러내렸다.
급성 알레르기 반응.
그가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쓰러졌을 때, 지금까지 한 번도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던, 마른 남자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Al-zigridha-hashim···!”
시동어와 함께 남자는 두 눈과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눈구멍과 입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것은 연기처럼 사방에 퍼지더니, 곧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영글며 서로 엉켰다. 그것은 뼈와 근육, 가죽을 푸른 빛으로 대신한 소환수였다.
민준은 그것을 향해 메마른 시선을 던졌다.
‘지니군.’
=크르르르르!=
위협적으로 울리는 정신파.
“크하! 크하하하! 됐다! 지니다!”
민준이 아직 턱을 뜯거나 혀를 잘라 놓지 않은 누군가 의기양양하게 광소를 흘렸다. 무슬림들은 저 주문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지니는 본래 영계에 속한 존재로, 물질계에 속한 사람들은 저것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가할 수 없다. 검을 휘두르든 총을 쏘든 저 영체를 그대로 뚫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의 공격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지니는 그 괴력으로 사람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니는 마법에 대한 저항도 매우 높았다. 전투의 밸런스를 완전히 붕괴시켜 버리는 비장의 소환수.
“지니! 어서 저 괴물을···!”
아랍인 마법사가 그렇게 외쳤을 때였다.
부우욱-!
“······?!”
영체인 지니에게서는 날 수 없는 소리가 골목 안에 울려 퍼졌다.
‘······꿈인가?’
지니를 소환한 마법사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 앞에서 푸른 거인이 두조각으로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검은 괴물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움직임을 마법사는 자신의 두 눈으로 쫒아가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몇 미터 전에 있었던 그 괴물은 중간의 움직임을 생략하듯,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다음 순간 지니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 괴물의 붉은 입 사이로 드러난 이빨이 지니의 목덜미에 박혀 있다. 그리고 한 손은 지니의 어깨를, 다른 한 손은 지니의 반대쪽 팔을 움켜쥔 상태였다. 양갈래로 찢어지듯 뜯겨 나간 것은 괴물에게 잡힌 쪽의 팔과 어깨, 그 아래의 가슴 일부였다.
휙!
괴물은 지니의 팔을 내던지더니, 콰직! 지니의 목덜미를 물어 뜯으며 입에 든 것을 뱉는다. 처음 던졌던 팔도, 지금 뱉어낸 푸른 살점도 연기처럼 희미해지며 증발했다. 괴물은 그 상태로 허리를 유연하게 굽히며 그 두 발을 지니의 가슴 위에 올렸다. 자유로워진 나머지 한 쪽까지 가세하여 두 팔로 지니의 남은 한 팔을 잡았다. 그대로 무를 뽑듯, 힘차게 허리를 튕긴다.
부-욱!
남아있던 지니의 한 쪽 팔마저 뽑혔다. 그 과정에서 그림자 괴물의 두 발이 지니의 몸을 밀어냈기에, 소환수는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캬아아아아악!=
어느 사이엔가 공중 회전을 하며 다시 자세를 잡은 그림자 괴물이, 두 발로 이번엔 허공을 차냈다.
퍼-엉!
검은 벼락처럼 지니를 쫒아간 괴물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지니의 남은 육신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대로에는 푸른 우박과 빗물이 규칙성 없이 온갖 방향으로 뿌려졌다. 소환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몇 번이고 부렸던 지니가 괴로움, 혹은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후둑! 후두두둑!
치이이이이익!
작게 조각난 채 사방에 흩뿌려져 증발하는 지니의 영체를 보며, 소환사가 처음 알게 된 것은 또 하나 있었다.
들끓는 그림자로 몸을 덮은 저 괴물 역시 영계와 물질계 양쪽에 간섭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치이이익!
지니의 영체가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모두 증발했을 때.
털썩!
소환사가 무릎을 꿇으며 허물어졌다. 두 눈에는 촛점이 없었다.
뚜벅, 뚜벅.
그런 그에게 그림자 괴물이 다가왔다. 무서울만치 큰 손을 들어올린다. 소환사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눈을 감았다.
털썩!
소환사가 바닥에 쓰러졌다.
놀랍도록 빠르게 ‘청소’를 마친 민준이 주변을 둘러 보았다. 어디 한군데가 찢어지거나, 뜯기거나, 부러지거나, 잘려 나간 아랍인들은 신을 부르거나 악마를 저주하며 절규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다, 아직은 살아 있는 것 같다. 방금 쓰러진 소환사를 포함하여.
‘무슬림은 얼마든지 죽여도 된다고?’
누군가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이상하게, 누가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진단 말이야.’
민준은 사하르에게 전언을 보내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의 몸이 어둠 속에 녹듯 투명하게 사라졌다.
이제 두 번째 꼬리를 자르러 갈 시간이다.
***
쿨라파 자치구, 빈민가의 어느 으슥한 골목.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더럽고 낡은, 언제 세차를 마지막으로 했는지 알 수 없는 승합차 한 대가 서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내부를 보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외견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최첨단의 모니터와 통신기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사드 특수작전국의 작전 차량이었다.
그 안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는 남자, 야킴은 매서운 시선으로 상황을 살폈다. 자치구 곳곳에 띄워놓은 초소형 드론이 골목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포착하여 비추고 있었다.
야킴이 웃는다.
“좋아. [Ason]이 적을 무력화했군.”
모니터를 함께 바라보던 오퍼레이터 요원이 말한다.
“현장에 생존자 반응 다수. 대부분 중상으로 파악됨.”
야킴이 중얼거린다.
“왜 안 죽였지? 그답지 않게. 뭐, 상관 없지.”
야킴은 귀에 손을 가져다 댄다. 이어진 그의 음성은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현장 요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전 대원, 32-6-11 좌표로 이동. [Ason]이 남긴 쓰레기를 정리하라.”
모사드 요원들은 싸움이 벌어졌던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하여, 그곳에 남겨진 부상자들은 전부 사살할 것이다.
민준이 사라진 뒤 야킴은 현장에 드론을 더욱 가까이 접근시켰다. 의식을 잃거나, 큰 부상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는 아랍인들이 보였다.
그 중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한 야킴이 탄성을 내지른다.
“아니, 저 새끼! 아부 압둘라잖아? 우리가 저 자식을 5년동안 쫒아 다녔는데!”
그는 이능력으로 테러 행위를 몇 번이나 저지르고 도주 중이던 아랍계 테러리스트였다. 종적을 알 수 없다 했더니 여기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화면을 함께 보던 오퍼레이터도 말한다.
“그 옆에 라우드 알 다크힐도 보입니다. 2018년에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역시 거짓 정보였군요.”
“좋아, 아주 좋아.”
드론이 비추는 이들 중에는 처음 보는 얼굴도 많았다. 하지만 상관 없다. 저 테러리스트들과 행동을 함께 하는 이상, 그리고 아랍계 이능력자임이 확인 된 이상 다 척살 대상이다.
그리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는 사이.
“그런데 [Ason]의 움직임을 놓쳤습니다.”
“너무 티나게 찾으러 돌아다니지 마. 아마 그 외계인을 다시 추적하겠지. 절대 그의 신경을 건드리면 안 된다.”
야킴이 그리 말했을 때였다.
삐이이이이익-!
작전 차량에 장치된 경보 기기가 굉음을 울린다. 오퍼레이터가 경악하며 눈을 크게 떴다.
“대, 대장님! 지금···.”
화면을 보던 야킴도 순간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나타내지 않던 레이더의 화면과 드론이 찍은 영상에, 어떤 존재가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좌표는 방금 전까지 전투가 벌어진 곳도, 외계인이 도주하고 있는 경로도 아니었다.
“이건··· ‘여기’잖아?!”
머릿속에 번개가 치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야킴은 절규를 하듯 통신기에 대고 외쳤다.
“전대원! 즉시 B-2 복귀! B-2 복귀! [Ason] 출현! B-2에 [Ason] 출···!”
쿠-웅!
차량에 갑작스럽게 가해진 진동 때문에 야킴의 통신이 끊겼다.
특수 장갑과 충격 흡수 시스템 및 결계가 감춰진 차량이 사정 없이 흔들렸다.
오퍼레이터는 위를 올려다본다.
“처, 천장이!”
반듯했던 차량의 천장이 움푹 패여 있다.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사람들이 모두 그곳을 바라보던 순간.
콰직! 끼이이이이익!
차의 천장 쪽 내장재가 일그러지며 불꽃이 튀었다. 야킴을 포함한 요원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특수 차량의 천장이 통째로 찢겨져 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잠시 후, 그들은 차 내부에서는 보여서는 안 될 쿨라파 자치구의 밤하늘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걸터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는 공포스러운 존재도.
그림자에 휘감긴 괴물의 입이 붉은 초승달을 그린다.
재앙이 말했다.
“안녕, 야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