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11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1)
하늘을 한참 날아가던 민준은 어떤 건물 옥상 위에 내려 앉았다. 동시에 사하르의 허리를 감았던 꼬리도 풀어낸다. 다행히 그녀는 이번엔 토하지 않았다.
민준이 묻는다.
“죽여도 됩니까?”
외계인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사하르는 고개를 재빨리 저었다.
“아뇨, 말씀드렸듯이 가능하면 생포하고 싶어요!”
검은 기운으로 몸을 감싼 채, 민준은 아래의 빈민가를 내려다본다.
야라가 말했던 것처럼 히잡을 쓰지 않은 긴 머리의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달리 도망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놓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준은 상대가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했다.
심지어 놈에게는 변신 말고도 재주가 하나 더 있었다.
“상대는 도플갱어인 동시에 파이로키네시스(Pyrokinesis) 능력자이기도 합니다.”
방금 전 영계의 흔적을 읽어내고 알아낸 사실이었다.
불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자.
마법사와는 달리 영창이나 복잡한 의식 같은 것도 필요 없이, 생각의 속도로 불길을 일으키고 폭발시킨다. 인구밀도가 극심하게 높은 이런 지역에서는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물며, 생포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는다면 더더욱.
“근처에 인적이 드문 곳이 있습니까? 사냥터로 삼기 좋은.”
“동쪽으로 3km 정도 가면 넓은 폐차장이 있어요.”
“그쪽으로 몰아 넣은 다음 잡읍시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싸우면 주변을 다 태워버릴 겁니다.”
일방적인 방화를 저지를 때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 일으키는 불의 규모는 다를 것이다. 훨씬 큰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할 것이 뻔했다. 모사드의 요원은 민준이 작전 중 많은 무슬림을 죽여줘도 상관 없다는 입장으로 보였지만, 그는 민간인이 피해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1에 갑니다.”
민준이 바라보는 곳에 사하르도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곳에는 한 남자 노숙자가 바닥에 넝마에 가까운 천을 깔고 자고 있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여름 밤은 비록 이슬을 좀 맞더라도 잠을 청할 만한 기온이었다. 여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저렇게 길바닥에 널브러진 노숙자는 몇 명이고 봐 왔다. 저 남자도 얼핏 보기에 특이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민준이 유독 저 노숙자에게 집중하는 이유를, 사하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민준이 카운트다운을 했다.
“3··· 2···.”
“1!” 이라는 호령과 함께 두 사람은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아무 것도 모르고 잠에 빠져 있던 것 같던 남자 노숙인은.
“······!”
번쩍! 눈을 뜨더니 모포를 집어 던지고는 뒤로 몸을 튕겼다. 평범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였다.
방금 전까지 노숙자가 누워 있던 바닥에 민준의 주먹이 내려 꽂힌다.
쿵!
바닥이 갈라지며 내려앉았다. 뒤로 구르며 물러나는 남자.
민준은 그를 향해 동시에 몇 개의 저주를 중첩하여 걸었다. 하지만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상대는 그 시도를 전부 튕겨냈다. 민준은 그가 방금 전까지 마리얌의 모습으로 변신했던 도플갱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강한 녀석이라는 것도.
‘제법 마법 저항도 갖춘 놈이라는 거지.’
민준이 다음 공격을 날리기 직전, 사하르가 주문을 완성시켰다.
“El-yakabid-harun-baim!”
마녀, 야라에게 포박 주문을 가르친 장본인이 바로 사하르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보라색 섬광이 방사형으로 확산된다. 그것은 순식간에 거미줄처럼 남자, 도플갱어의 몸을 꽁꽁 묶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콰-아앙!
그를 중심으로 산더미 같은 불꽃이 폭발하며 터져 나갔다. 넘실거리는 화염은 사하르가 만들어낸 마법 채찍을 전부 끊어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골목을 가득 채우며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불기둥이 이글거리며 공기를 태웠다. 화염의 강이 민준과 사하르까지 덮치려던 순간.
민준의 몸을 덮은 그림자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린다.
포효.
카아아아아아아-!
그 전까지 입가에서 옅게 흘러나오던 피안개가, 마치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진다. 핏빛 기운이 주홍색 불길을 막아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선혈의 운무는 빠르게 주변을 집어 삼켰다. 안개에 담긴 마력이 불기를 억누르며, 주변 건물에 옮겨 붙었던 화재는 금방 진화되었다. 불길이 죽자 검게 그을린 돌벽이 다시 드러나고, 반쯤 타버린 목재 울타리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 올랐다.
타타탓!
노숙자로 변신한 남자는 그 틈을 타 등을 돌리고 맹렬하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민준이 불을 끄는 사이 사하르는 또 하나의 주문을 완성했다.
“El-karud-ba’sheim!”
불이 사라진 뒤 골목을 다시 채웠던 어둠이, 다시 광포한 빛에 잡아 먹혔다.
쿠르릉!
마른 하늘 아래 울리는 뇌성. 섬광과 함께, 새파란 번개가 사하르의 손 끝에서 터져 나왔다.
전류는 잔가지처럼 꺾이며 도망치는 남자의 등에 적중했다.
맞은 순간, 산 채로 몸이 지져지는 고통을 느낄 터다. 그런데도 남자는 땅에 쓰러져 몇 바퀴를 구른 뒤 다시 벌떡! 일어났다. 사하르가 경악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시선 속에서, 남자는 왼쪽으로 급하게 몸을 꺾어 사라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민준이 버티고 있었다.
화르르르!
이글거리는 그림자가 두 손에 둥글게 영글었다. 민준은 앞으로 손을 뻗자, 검은 구체에서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뾰족하고도 긴 창 수십 줄기가 폭사된다. 그것이 남자의 몸을 구멍 투성이로 만들기 직전.
탓!
남자는 등을 돌리지도 않고, 민준을 마주본 채 두 발로 강하게 땅을 찼다.
휙! 허공에서 공중제비처럼 허리를 꺾더니 다시 착지.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몸을 던진다.
그 등을 향해 민준은 강력한 저주 몇 개를 더 퍼부었다. 그러자 도주하던 남자의 다리가 잠시 휘청! 하더니 간신히 균형을 잡고 다시 달렸다. 그 움직임은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는 둔해진 상태. 저주가 조금씩 누적되며 몸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오래 걸리지 않겠군.’
민준과 사하르가 시선을 교환한다.
“이대로 계속 저쪽 방향으로 몰고 갑시다.”
“네!”
***
“이맘! 일어나십시오. 또 불이 났습니다!”
이 지역 무슬림들의 지도자인 이맘 다르하비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수하의 급한 부름 때문이었다.
잠에서 덜 깬 둔한 머리로 상황을 보고 받는다.
“처음엔 바니 파딜 3가의 저택이 전소되었고, 그 다음엔 마가르 1가쪽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이 났다고?”
“마가르 1가의 불은 금방 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는 또 타팔라 사거리에서 불이 난 것을 확인했습니다.”
“방화범은 계속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스무 건이 넘는 화재가 발생하는 동안 이맘과 그의 휘하에 있는 무슬림들은 방화범을 계속 놓치기만 했다.
불을 지른 뒤, 그들이 그 현장에 도착할 쯤이면 이미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계속 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여러 건의 화재를 일으키고 있다.
그 원인은···.
“그냥 불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싸우면서 이동하는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불을 다루는 마법 말고 다른 종류의 마법이 계속 목격되고 있습니다. 우리쪽 마법사는 아닙니다.”
그 사악한 마녀 말고 다른 마법사가 있다?
이맘은 어제 보고 받았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교도 마법사가 우리 구역에 침입했다고 했지.”
설마 그 중국인이 마녀와 충돌한 것인가?
하지만, 무슨 이유로?
이교도 마법사들 중에는 망자를 노예로 부리는 사악한 종자도 존재한다고 들었다. 설마 지옥에서 돌아온 그 마녀를 잡아서 종으로 부리기 위해 온 것인가?
‘아니,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지.’
이맘은 지시한다.
“지옥에서 돌아온 그 지독한 마녀와, 우리 땅을 더럽히는 이교도 마법사가 제멋대로 설치게 둘 수는 없다. 마법사들을 보내. 마녀는 지옥으로 돌려보내고, 이교도 또한 현장에서 처리해라.”
“네!”
화재 사건이 이어지고 나서부터 이맘 휘하의 마법사들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마녀가 나타날 경우 즉각 집단으로 사냥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이맘의 보좌관이 전화를 건다. 잠시 후, 그는 마법사들이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전했다.
이맘 다르하비는 후회하듯 중얼거린다.
“그 마녀를 처음부터 화형했어야 했어.”
마리얌이라는 이름의 마녀를 불에 태워 죽이지 않고 참수한 이유는, 그것이 종교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태우는 것은 오직 위대하신 알라만이 지닌 권리였다. 이슬람의 교리상 죄인은 죽고 나서 신이 준비한 지옥불 속에서 고통받는다. 감히 신도들이 알라보다 먼저 사람을 태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신에게 용서를 빌더라도 그때 금기를 행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이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저··· 이맘.”
보좌관이 조심스레 말을 건다.
“듣자 하니 그 이교도 마법사는 매우 강력한 저주를 내린다고 합니다. 거기에 마녀까지 상대해야 하니, 우리 쪽 마법사들이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북쪽 지구에 연락해서, 미리 신성력 능력자의 파견을 요청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맘이 노호했다.
“입 조심해라! ‘신성력’이라니?!”
그제서야 보좌관은 자신의 말실수를 알아차린다.
“아! 죄송합니다, 이맘. 그러니까 제 말은··· ‘회복 마법’을 쓰는 사람 말입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이맘들은 신성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신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무작위로 사람에게 발현되어 시험에 들게 하는 사악한 마법의 일종으로 본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독 극단적인 교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와하비즘(Wahhabism) 종파가 나온다. 이 종파의 특징은 성인(聖人) 및 사람에 의한 신성한 기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 논리에 따르면 성스러운 기적은 오직 알라만이 직접 행할 수 있으며, 사람이 행하는 이적은 전부 신이 허락하지 않은 사악한 마법이다.
혹시 알라를 향한 신앙이 매우 깊은 자가 신성력을 각성했다면? 그 자는 이 지역에서는 신실함에도 불구하고 신의 규율을 어기고 만 마법사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그 사이한 마법도, 이맘의 허가를 받으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모순이다. 알라의 대의를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나중에 회개하여 용서받는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그 모든 마법사들은 철저하게 이맘의 명령에만 따른다.
“······아니, 회복 마법사는 부르지 마라.”
“하지만, 이맘!”
북부 지구의 ‘회복 마법사’는 다른 이맘의 휘하에 있었다. 혹시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두 이맘의 사이는 절대 나쁜 편이 아니기에 보좌관은 이맘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이맘 다르하비는 예전부터 회복 마법사들을 유독 싫어하긴 했다. 휘하에 단 한 명도 두지 않을 정도로.
“저희 의사들로는 치료하기 힘든 부상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마법사들은 비록 죄인이나 소중한 자원들입니다.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수를 보존하는 것이···..”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쩌렁쩌렁한 이맘의 노호에 보좌관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맘은 손바닥으로 턱을 괸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허공을 쏘아보았다.
그리고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뇌였다.
“필요 없다. 그런 것들은··· 필요 없어!”
***
유대인들은 약 사십 년 전 드래곤과 계약을 맺었다.
모사드 특수작전국 요원, 야킴이 생각하기에 그 계약은 사천 년 전 엘로힘의 예언자 모세가 신과 맺은 계약에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물론 이런 말을 랍비나 극보수주의자 유대인이 듣는다면 야킴을 맹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야킴은 모사드에 가입할 정도로 세속적인 유대인이었다. 그렇기에 현실을 좀 더 냉철한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예언자 모세는 4천 년 전 엘로힘과 신성한 언약을 맺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분의 규례와 법도, 계명을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그 대가로 엘로힘은 우리 민족을 소유하여 우리의 신이 되겠노라 말씀하셨다.’
그 언약을 맺은 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지금 이스라엘 민족은 당시 약속 받은 땅의 열 배에 달하는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있다.
장담하건대, 유대인들의 왕국이 이토록 영광되고도 광대한 국경을 지닌 적은 없었다.
지금의 확장된 영토는 유대인들이 신이 아니라 드래곤과 계약한 대가로 받은 것이었다.
‘이집트의 서쪽 지방,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까지··· 샤론 반도의 7할 이상이 이제 이스라엘의 영토다.’
이 땅을 영지로 삼은 드래곤, 알-사히디는 마정석의 도입에 끝까지 반대한 드래곤들 중 하나였다.
사우디 왕조가 석유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금액 중 일부는 그의 주머니, 이 드래곤의 레어에도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정부의 집요한 구애와 로비 끝에, 그 드래곤은 결국 용족 회의에서 ‘찬성’ 표를 던졌다.
그 결과 이스라엘도 알-사히디에게 많은 것을 바쳐야 했지만, 야킴의 민족은 그 이상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국은 평화를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왕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종자들은 항상 존재한다.
이스라엘 군의 철저한 통제 덕분에, 무슬림 자치구에는 군용 폭약 및 전쟁 무기의 유입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 기껏 해 봤자 권총 몇 자루가 전부다.
다만, 그렇다고 이 땅에 예비 테러리스트, 즉 위협 분자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정보 기관들은 무슬림 자치구의 이능력자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은 손 안에 폭약과 기관총이 없어도 얼마든지 대량 살상을 벌일 수 있는 위험한 존재들이다. 하물며 이스라엘 정부는 자치구 내에 폭탄 유입은 막을 수 있어도, 그 안에서 새로운 이능력자들이 태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힘을 키우고 응집하여, 나중에 장벽 밖에서 연쇄 테러라도 일으키게 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 정부 입장에서는 무조건 막아야 할 최악의 사태다.
따라서 야킴과 모사드는 이 구역에 숨어든 외계인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 외계인을 잡으러 온 한국의 요원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가 거리를 들쑤시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낼 무슬림 이능력자들. 모사드의 데이터베이스에도 아직 사진이 확보되지 않은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그들을 한국의 요원이 죽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혹시 부상만 입힌 채 놔두고 간다면, 자신들이 다가가 친절하게 확인 사살을 해 줄 생각이었다.
혹여 그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더라도, 그 얼굴만 확인하여 데이터베이스에 기재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추적한 뒤 암살할 것이다.
‘계약은 어기지 않아. 드래곤이 지시한 대로, 우린 그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저 멀리서 관찰하는 거다.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잔해를 뒤적거릴 뿐이야.’
무슬림들의 빈민가에 숨어든 야킴은 귀에 손을 대고 근처에 잠입한 요원들에게 전언을 보냈다.
– 전 대원에게 알린다. ‘Ason(אסון)’의 근방 3km 내 절대 접근 금지! 거리를 유지한 채 관찰만 수행할 것!
‘Ason’은 모사드가 한국의 계약요원 예민준에게 붙인 코드 네임이었다.
히브리어로 ‘재앙’을 뜻한다.
***
도플갱어 외계인을 쫓던 민준이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어라? 꼬리가 두 개나 붙었네?’
한쪽은 몰려서 다가오고 있고, 다른 한쪽은 분산되어 거리를 꽤 두고 따라오는 중이다.
전자는 민준의 감각을 통해, 후자는 민준이 붙여 놓은 망령들이 보내주는 정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다 몰아 넣은 것 같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방해꾼부터 치워야겠군.’
외계인은 점점 더 기운이 빠져가고 있다. 아주 잠깐은 사하르에게 맡겨도 되리라.
일렁이는 그림자 속에서, 민준은 입술을 당기며 웃었다.
‘그럼, 두 꼬리 중 어느 쪽부터 잘라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