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10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0)
***
사하르는 화재가 일어날 만한 곳의 리스트를 추려 놨지만, 애초에 한정된 마녀들이 그곳을 전부 1:1로 커버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녀들이 감시해야 하는 쿨라파 자치구는 매우 넓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녀들은 한 명이 인접한 몇 개의 후보지를 한꺼번에 감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마녀, 야라가 맡은 후보지는 총 네 군데였다. 그 중 세 장소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시야권에 들기에 함께 묶었다. 그 상태로도 보이지 않는 후보지에는 그녀와 감각을 공유하는 패밀리어를 보내서 감시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불길이 피어 오르는 장면이 보인 것은 새벽 네 시쯤의 일이었다.
‘시작되었다!’
야라는 불길을 보자마자 그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녀가 감시하던 장소에서 일 킬로미터 남짓 거리의 떨어진 곳이었다.
‘나디아 알-타마르의 집이야!’
나디아, 그 소녀 역시 기숙사의 생존자 중 한 명이다.
거리가 멀지 않았으므로 야라는 순식간에 나디아의 집 앞에 도착했다. 이 자치구에서는 꽤 부유한 축에 드는지 이층 구조에 넓은 마당까지 있는 집이었다. 덕분에 아직 이웃까지 불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 거대한 이층집이 통째로 화염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해가 뜨려면 아직 먼 시간이었지만 산더미 같은 불길 때문에 사방이 환했다.
마녀 야라가 불길을 발견하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타오르다니. 이 속도는 정상이 아니다. 열기가 얼마나 강한지 야라의 머리카락이 몇 가닥 그을리며 굽어들 정도였다.
주변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 나디아 알-타마르의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얼굴 정도는 임무에 파견되기 전 기억해 두었다.
더군다나, 마리얌의 모습을 취한 외계인도 없다.
‘전부, 아직 안에 있다!’
그리 판단하고 주문을 외운다. 불을 피하는 마법이었다. 야라가 타오르는 집 안으로 몸을 던지려던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 불길 속에서 튀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화르르르륵!
순간, 야라는 코란에 기록된 구절을 떠올렸다. 알라께서 보내신 예언자 무세(Muse, موسی) 앞에서 홍해의 바닷물이 갈라졌던 것처럼, 이집트의 파라오가 알라의 존재를 믿게 된 계기가 된 그 사건처럼··· 저택을 휘감았던 불길이 순식간에 두 갈래로 쪼개졌다.
그리고 불꽃이 물러나며 만들어진 길을 따라 어떤 형체가 튀어나왔다.
가장 먼저 야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히잡으로 가리지 않은 여성의 긴 머리였다. 불길이 만들어낸 주홍빛 속에서, 그녀의 검고 굽이진 머리카락이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그 사이로 드러난 얼굴을 마녀 야라는 알아보았다.
‘마리얌!’
마리얌을 흉내낸 외계인은 어깨 위에 소녀 한 명을 짊어 매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체형을 봐서는 마리얌의 친구였던 나디아가 분명했다.
이대로 골목 사이로 사라지려는 듯, 뛰어나가려던 나디아를 야라가 쫒았다.
“El-yakabid-harun-baim!”
야라가 주문을 외우며 손을 뻗는다. 그러자 그녀의 오른손 전체가 보라색 빛으로 휘감겼다. 동시에, 손이 늘어나기라도 하듯 한 줄기의 섬광이 앞으로 뻗어 나간다. 그것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물뱀처럼 빠르고도 유연하게 공간을 가로지르더니, 소녀의 형체를 빌린 그 팔뚝에 휘감겼다.
휘릭!
팔뚝이 묶이자 달려나가던 몸이 허공에 우뚝! 멈췄다. 살을 조여 드는 마법 밧줄.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됐어!’
야라는 상대가 반격하기 전에, 더 많은 주문을 외워서 몸 전체를 꽁꽁 묶어 놓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다음 주문이 완성되기도 전 소녀가 눈을 빛냈다. 줄다리기를 하듯 팽팽하게 잡아당긴 덕에 팔은 움직일 수 없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자유로운 상태였다.
긴 머리의 소녀가 엄지와 검지를 교차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파직!
야라가 했던 것과는 달리 주문의 영창도, 정신을 집중하는 과정도 없이.
콰—아아앙!
회오리치는 불꽃이 마녀의 눈앞에서 폭발했다.
***
“여기서 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마리얌의 동급생 자택이에요. 조합원 야라가 시간을 끌고 있어요. 다른 마녀들도 모이고 있지만 우리가 제일 빠를 거예요. 당장 출발하죠.”
민준은 사하르와 쉘터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낮에 봤던 양탄자를 챙겨 나온 상태였다. 이번에도 이걸타고 날아가려는 것 같다. 양탄자를 바닥에 깔려고 하는 마녀를 제지하며 민준이 묻는다.
“양탄자, 어제 그게 최대 속도입니까?”
“······?! 네 맞아요.”
“그럼 깔지 마십시오. 다른 방법을 씁시다.”
그럼 어떻게 이동할 것이냐고 사하르가 질문하려던 순간.
민준이 옷깃에서 검은 돌칼을 꺼냈다. 마녀가 보기에 심상치 않은 사기가 넘실거리는 무기였다. 단지 꺼낸 것만으로도 골목에 불길한 기운이 가득 퍼진다. 사하르의 숨이 순간 턱 막힐 정도였다.
놀라운 광경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요원은 그 돌칼로 자신의 손바닥을 주저 없이 그어 버린 것이다.
촤악!
붉은 선혈이 튄다. 요원은 심지어 주먹을 쥐고 피를 더 짜내기까지 했다.
“요원님, 지금 대체 뭘?”
그 순간.
화르르르르륵!
민준의 발길에서 그림자가 들끓어 오른다. 그것은 순식간에 민준의 몸을 완전히 감싸더니, 인간의 몸을 몇 배나 확대한 것 같은 거인의 형체를 완성시켰다. 검은 기운은 서로 엉켰다가 허물어지며 괴물의 실루엣을 기괴하게 빚어냈다.
이제 민준은 괴물 속에 완전히 묻혀 보이지 않았다. 그 존재와 눈을 마주친 사하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
적의.
괴물의 찢어진 눈에서 번뜩이는 감정은 순수하고도 지독한 적의였다. 사하르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을 겨냥한 적의가 아님을 깨달았다.
또한 민준이 보내는 감정도 아니었다. 지금 느껴지는 적의는 온전히 괴물의 것이다.
그렇다면 저 괴물은, 대체 누구를 저토록 증오하는 것일까?
“갑시다.”
목소리는 괴물 쪽에서 나왔지만 괴물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옅은 피안개 비슷한 것이 끊임 없이 흘러 나오기만 한다. 그 음성은 소환수로 몸을 완전히 감싼 민준의 것이었다.
그제서야 사하르는 괴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설마, 흑마법?’
경악하며 몸을 떤다.
‘저 요원··· 방금 이 임무를 위해 자기 수명을 몇 년이나 써 버린 거야? 대체 본부로부터 사례금을 얼마나 약속받았기에?’
그런 의문에 오래 매달려 있을 시간이 없었다.
스르륵!
괴물의 몸 뒤에서 짐승의 그것과 같은 긴 꼬리가 뻗어 나온 것이다. 검은 꼬리는 순식간에 사하르의 허리를 감싸며 그녀의 몸을 허공에 들어올렸다.
“······?!”
그녀가 당혹한 목소리를 낼 틈도 없이, 민준이 짧고도 강렬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향!”
“저, 저쪽이에요!”
꼬리로 사하르를 들어올린 채, 민준은 그녀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그리고 도움 닫기 자세를 하듯 무릎을 살짝 굽히며 앉았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듯, 검게 들끓는 두 다리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그 상태로 민준은 생각했다.
‘뭐, 마녀니까 죽진 않겠지.’
다음 순간, 사하르는 허리가 끊어지는 격통을 느꼈다.
쿠-웅!
“꿰에에에에에엑!”
비명은 물론 사하르가 내지른 것이었다.
마녀는 자신의 두 눈알이 뽑혀 나갈 것 같은 압력을 느꼈다. 전신의 혈액이 살가죽을 뚫고 외부로 폭발하며 분출할 듯한 불쾌감. 뱃속 장기가 전부 아래로 쏠리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느낌도 따라왔다.
하지만 그런 아픔도 잠시였다.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몸의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다음 순간, 회복된 시야로 주변을 인지한 사하르는 소스라치며 놀랐다.
“아, 아니?!”
방금 전까지 그들이 있던 골목의 풍경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비행기에 탄 것 같다. 그녀는 공중에 떠 있었다. 어제 양탄자를 타고 움직였던 것보다 훨씬 높은 고도. 발 아래 쿨라파 자치구의 거리가 장난감 모형처럼 작게 보였다.
그제서야 상황을 깨닫는다. 괴물의 형태로 변한 민준이 그녀를 꼬리로 묶은 채로 힘차게, 사하르가 가리킨 쪽을 향해 45도 각도에 가깝게 ‘뛰어 오른’ 것이다.
순식간에 높은 고도에 도달해 마을을 내려다보게 된 민준. 그의 시선에 유독 환한 빛이 일렁이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소가 보였다.
‘좋아, 저기군.’
민준의 몸이 허공에 정지한 것은 채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찰나였다.
그는 그 상태로 다시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머리를 가리키는 방향이 방금 전에는 우상향하는 직선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우하향하는 직선이 된다.
그 상태로, 민준의 발이 허공을 찼다.
퍼—엉!
제트 엔진의 분사음처럼, 대기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마녀의 절규도 뒤따랐다.
“퀘에에에에에에에엑!”
민준은 한 줄기의 검은 유성이 된 것처럼 허공을 가르며 급강하했다.
그런 그의 시야 속에서, 불타오르는 현장의 모습이 점점 커진다. 민준은 적당한 타이밍에 속도를 조절했다.
그리고, 충돌.
쿠—웅!
민준이 착륙한 자리의 대지는 작은 크레이터처럼 둥글게 붕괴하며 무너졌다. 피어오르는 먼지는 화재가 만들어낸 열류에 금방 날려갔다. 민준은 꼬리를 움직여 마녀를 내려 놓는다. 그녀는 다시 호흡이 가능하게 되자 가쁜 숨을 터뜨렸다. 그런 사하르를 보며 민준은 생각한다.
‘역시 안 죽었군.’
마녀는 몇 걸음 비틀거리며 걷더니.
“우웨에에에에엑!”
민준이 만들어 놓은 크레이터를 향해, 뱃속의 것을 요란하게 토해내기 시작한다. 묶은 머리라 누가 뒤에서 잡아줄 필요가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일까? 어제 그녀와 여인들이 공들여 준비한 캅사와 요거트 샐러드가 허무하게 땅으로 환원되는 광경이었다.
그녀가 사우디 전통 식단과 재회하는 사이, 민준은 두 눈에 백광을 덧씌우며 빛냈다.
현장에는 외계인도 사하르가 보냈다는 마녀 야라의 모습도, 이 집에 살고 있었을 여타 생존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앗!
그대로 영계의 상태를 관찰한다.
물질계와 겹쳐진 공간 좌표에서는 방금 전 이 장소에서 벌어진 마법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싸움은 길지 않았군.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렸다.’
서로 공격하고 방어한 흔적은 남아 있으나, 어디론가 멀리 이동한 흔적까지는 남아있지 않아. 이곳에서 벗어날 때 텔레포트 등의 마법 대신 걷거나 뛰어서 사라졌다는 뜻이다.
민준이 영계를 관찰하던 그때, 겨우 안정을 되찾은 사하르가 귀에 손을 대고 누군가와 교신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마력의 움직임 역시 민준의 시야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야라! 너 어디니? 무사한 거야?”
대답이 돌아오는 듯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괜찮아! 이 남자는 우리 편이야. 내가 설명했잖아!”
그때, 어둠으로 몸을 감싼 민준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불길에 휩싸이지 않는 옆집의 돌 벽 앞에서 멈춰선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벽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네, 맞습니다. 같은 편입니다. 그러니 숨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자.
스르르르!
벽처럼 보였던 곳이 일렁이며, 그곳에 숨어있던 여인들의 모습을 토해냈다.
그림자 속에 가려진 민준의 진짜 얼굴이 일그러진다.
‘처참하게 당했군.’
사하르가 말한 야라라는 마녀를 민준이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한쪽 손은 처참하게 그을려 있다. 보나마나 3도 화상으로, 어깨까지 심하게 손상된 상태.
그런 그녀는 멀쩡한 왼손으로 한 소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마리얌의 또래로 보이는 그녀는 부들부들 떨면서 쉴 새 없이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야라가 민준을 두려운 표정으로 잠시 보더니, 그 너머의 사하르를 향해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마리얌이랑 똑같이 생긴 외계인이었어요. 이 아이를 납치하려고 하기에 제가 막았어요. 간신히 구해냈지만, 도망치는 것을 놓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준이 질문했다.
“방향은?!”
야라가 왼손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킨다.
“갑시다!”
“자, 잠깐!”
사하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민준의 꼬리가 다시 사하르의 허리를 감는다. 마녀는 황급하게 들고 온 양탄자를 야라에게 던졌다.
“남자들이 곧 몰려 올거야. 그 애를 데리고 쉘터에 대피해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전언 마법으로 다시···.”
쿠-웅!
“꿰에에에에에에엑!”
야라는 멍한 표정으로, 이미 밤하늘의 검은 점이 되어버린 민준과 사하르를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