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6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6)
다음 날.
민준은 쿨라파 무슬림 거주지를 둘러싼 장벽 앞에 서 있었다.
‘이건 거의 교도소인데?’
수십 평방 킬로미터의 거주지를 통째로 감싸는 3미터 높이의 철벽에는 마법진까지 새겨져 있었다. 곳곳에는 첨탑 같은 구조물도 있었고, 그 내부에서는 거치형 기관총을 든 사수가 아래를 겨냥한 채 경계를 서는 모습이 보였다.
내부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는 군인들도 철저하게 무장을 한 상태였다. 위병소장은 외국인이 분명한 민준이 혼자 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히자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가 서류 한 장을 건네자 상황이 급변했다. 그 종이 제일 하단에 찍힌 인장을 확인한 순간 위병소장은 귀빈을 모시듯이 민준 앞에서 굽신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필수로 거쳐야하는 복잡한 절차도 다 생략한 채, 민준은 굳게 닫혔던 철책이 열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혼자 들어가실 겁니까? 저희가 호위를 붙여 드릴 수 있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당신이 마법사라는 건 저도 압니다. 서류에 적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 안은··· 정말 위험합니다. 그 빌어먹을 놈들이 뭐 하나라도 뜯어먹으려고 거지떼처럼 달려들 겁니다.”
만류하는 위병소장을 뒤로하고 민준은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몇 걸음을 걷자마자 공기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무겁고 축 쳐지는 분위기. 코를 찌르는 악취. 폐자재와 합판으로 지은 판잣집들이 아무런 규칙도 없이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빽빽한 밀집도.
조금 더 들어가자 골목은 점점 더 좁아지고 복잡해졌다. 도시 계획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는 혼란스러운 거리였다. 주민들은 오수를 양동이 채로 길거리에 흘려 버린다. 또한 곳곳에서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가 났다. 먼지가 흩날리는 보도에는 쓰레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생기를 잃은 거지들이 곳곳에 무기력한 눈빛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전부 아랍인이다.
그들을 보며, 민준은 몇 십년 전 이 나라를 방문했을 때를 떠올린다.
‘왕조가 건재했을 때만 해도, 이 나라 거지의 대부분은 외국인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바뀔 줄이야.’
마정석의 보급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경제의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하던 나라로서는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사우디 왕조는 에너지 산업 시장의 급속한 변화를 대비하지 못했고, 그들의 돈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그 틈을 노렸다.
마정석 도입이 10년만 늦었어도 지금의 세계 지도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게 역사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미로와 같은 골목을 주저 없이 걸어 나간다. 중간 중간에는 골목 몇 개가 통째로 타 버린 광경이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트리스탄이 말한 화재 사고의 잔해 같았다. 현장을 살핀 뒤 다시 움직인다. 머릿속에 정해 둔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정처없이 걸음을 옮길 뿐. 이방인인 민준을 흘끔거리는 시선이 곳곳에서 달라 붙었다. 호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뭐라도 나타나겠군.’
그런 민준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 빈민가에 들어선 지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누군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얼핏 보기에도 거칠어 보이는 아랍인 남자들이 그를 빙 둘러쌌다.
민준이 말했다.
“꺼져, 바쁘다.”
“그래? 어쩌지? 이쪽은 남는 게 시간이야.”
히죽거리며 총을 꺼내 겨냥한다. 이렇게 하면 분위기가 급변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가지고 있는 거 다 내놓ㄱ···.”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당황한다.
민준은 그들이 나타났을 때부터 두 손을 주머니 안에 꽂아 넣고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길목을 가로 막고 총을 겨누고 있는 지금도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보폭도 속도도 달라지지 않은 채 계속 걷는다. 지금 나타난 남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였다. 아니, 마치 그들이 거기 없다는 듯 무시하는 것에 가깝다. 이대로라면 곧 민준이 그의 총구에 직접 이마를 가져다 대는 상황이 될 터였다.
“이, 이 새끼가 미쳤나. 당장 안 멈춰? 내가 못 쏠 것 같아?!”
남자가 윽박을 지른다. 하지만 민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계속 걸어갈 뿐이었다.
“이 중국인 새끼가···! 야! 멈추라고!”
터벅, 터벅.
그 위협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계속 걸어나가는 민준.
‘날 무시했어?!’
아랍인 남자는 결심을 한 듯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것을 당기지 못했다.
“끄··· 끄아아아아아악!”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 같은 비명.
남자는 총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손으로 등을 감싸며, 도축 당하는 짐승과 같은 절규를 내질렀다.
“으엑··· 끄에에에에에엑!”
곧, 그 비명이 몇 겹으로 겹쳐졌다.
남자와 함께 나타난 동료들 역시 동시에 허물어지듯 쓰러진다. 그리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목이 터져 나갈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듯 눈에는 핏발이 서고 입에서는 거품이 부글거린다. 이마에 돋은 혈관은 당장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누군가는 등을, 누군가는 허벅지 윗부분을 감싸 안은 채로 뒹군다.
쿵! 철컹!
골목에 비명이 울려 퍼지자 주민들이 일제히 창문을 닫고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사방에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
민준은 생각한다.
‘새끼들, 목청 하나는 좋네.’
그는 방금 저 깡패들에게 몇 가지 저주를 중첩하여 걸었다. 통풍과 CRPS, 요로 결석과 급성 관절염 등의 증상을 동시에, 그것도 가장 심한 케이스의 환자 수준으로 겪게 된 그들은 지금 이성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의 통증을 느낄 것이다. 저렇게 난리를 치는 것도 이해가 될 정도로.
터벅, 터벅.
여전히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도 않은 채, 민준은 본래 가려던 방향으로 계속 걷는다. 총을 겨냥하며 그를 가로막았던 남자는 바닥에서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보폭을 크게 하여 징검다리를 건너듯 그의 몸을 밟지 않고 넘는다.
‘충분한 신호가 되었으려나?’
민준은 이곳에 의뢰인을 만나러 왔다.
하지만 신분을 철저하게 감춘 상대의 특징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접촉할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약속한 것은, 민준이 이곳에 도착하면 그쪽에서 알아서 찾아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준은 시간 낭비를 하기 싫었다.
‘이 정도 시그널이면 되겠지. 내가 여기에 도착했다는.’
이러다 보면 마녀들 측에서 자신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후로도 민준은 정처 없이 골목을 걸어 다녔다.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가자 또 비슷한 패거리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으··· 으아아아악!”
민준에게 총을 겨누던 그들은 다음 순간 그것을 땅에 내팽개쳐버렸다. 그것을 든 자신의 손등 가죽 아래에 구더기 같은 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벌레··· 내 몸에 벌레가···.!”
남자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미친 듯이 옷을 벗어 던지며 몸을 긁기 시작했다. 손톱 아래로 살가죽과 핏덩어리가 엉겨 붙을 정도가 되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긁는다. 온 몸의 가죽을 본인의 손톱으로 벗겨내기라도 할 기세였다. 곧 그들의 몸뚱어리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기생충 망상증.’
자기 몸 속에 벌레가 살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는 정신질환.
상대에게 마력 저항이 없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꽤나 강력하게 저주가 먹혔다.
이렇게 정신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종류의 저주는 본래 준비 시간도 길고, 저렇게 반응이 강렬하게 나오지 않는다.
지금 민준은 예전과는 달라진 효과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확실히 힘이 강해졌어. 정말 용혈을 마신 효과인가?’
***
그 후로도 달라진 자신의 능력을 실험하듯 민준은 꼬여드는 날파리들을 피하지 않고 각종 저주를 걸었다.
한 번 조우할 때마다 그 자리에는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는 아랍인들이 나뒹굴었다. 그렇게 방문객의 존재를 알리는, 살아 숨쉬는 ‘도어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민준이 바라던 바대로.
그런 민준도 충돌을 딱 한 번 피하기는 했다.
‘호오?’
누군가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민준은 나지막이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골목의 어둠 사이로 그의 몸이 녹아들듯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있던 자리에 네 명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 숨은 민준이 그들을 응시한다.
‘이능력자들이군.’
그 중 한 명이 두 손을 허공에 휘두르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파앗!
주변에 퍼져나가는 파장. 무언가를 찾듯이 밀도 높게 공간을 쓸고 지나간다.
‘마력 탐지다.’
하지만 그 파동은 민준이 숨어 있는 어둠 속까지 닿지 못했다. 민준이 흘려 보낸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던 남자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아랍어로 동료들에게 말한다.
“이 근처에는 없다.”
“하지만, 분명 이쪽으로 갔다고 했잖아? 길은 이곳뿐이야!”
“그 중국인은 마법사잖아. 꼭 길을 따라 움직일 필요는 없지. 혹시 벽을 넘어서 날아다닌다면?”
“끄응! 귀찮군.”
“어쨌든 발견하면, 현장에서 바로 죽여버려도 되는 거지? 이교도 마법사니까.”
“그래, 이맘(이슬람 종교지도자)께서 허락하셨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 받으며 이능력자들은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그들이 시야에서 없어지고 난 뒤에야 민준은 어둠 속에서 나왔다.
“뭐야, 교리상 마법은 금지라더니. 잘만 쓰잖아?”
싸운다면 물론 민준이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일단 이능력자들은 건드리지 않기로 한다. 단순히 도어벨로 써먹기 위해 건드리기에는 귀찮은 놈들이니까. 지금은 의뢰인을 만나는 것이 우선이다.
‘그나저나, 언제 접촉해올 참이지?’
빈민가 산책에 민준이 슬슬 실증을 느끼던 그 참이었다.
“야오옹!”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작은 골목 어귀에 고양이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
이슬람교에서 검은 고양이는 못된 요정이 변신을 한 것으로 여긴다. 보이면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질을 하는 것이 보통.
‘이 동네에서 용케도 살아남았군. 그런데···..’
민준은 위화감을 느낀다. 동물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 때문이었다.
‘저 녀석, 내 눈을 마주보네?’
본래 고양이의 습성상 낯선 인간과 눈을 잘 마주치려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민준의 경우, 들고 다니는 단검에 오랫동안 묵은 사기 때문에 저런 작은 짐승들은 가까이 가기만 해도 똥오줌을 지리며 도망간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야아아옹!”
다시 한 번 길게 운다. 마치 자신을 부르듯이.
민준은 이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예상 못한 방식으로 길잡이를 보냈군.’
아무래도 의뢰인이 보낸 고양이 같다.
민준은 검은 고양이가 있는 작은 골목 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고양이는 다시 그 안쪽으로 한참을 달린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민준이 여전히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냐아아아앙!”
재촉을 하듯 운다.
민준은 고양이를 따라 미로 같은 골목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고양이가 멈춰선 장소는 벽돌로 만든 벽 앞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벽처럼 보이게 위장을 해 놓은 장소.
민준은 감탄한다.
‘꽤나 좋은 솜씨. 결계와 위장을 겸하는군.’
그때, 벽의 결계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 안의 술사가 손님이 도착한 것을 알아차리고 주문을 푼 것이다.
스으윽!
그러자 방금 전까지 벽이 있던 장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 하나가 나타나 있었다. 자물쇠는 걸려 있지 않다.
“야오오옹!”
고양이가 민준을 올려다보며 재촉한다.
“알았다, 이 녀석아.”
민준이 문을 열자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날렵한 동작으로 뛰어 들었다.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 따라서 내려가자 작은 지하실이 나타났다.
‘향을 피워 놨군.’
은은한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지하지만 지역 특성 때문인지 습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내부는 창문이 없을 뿐이지 평범한 아랍식 가정집에 가까웠다.
“어서오세요.”
그리고 그 방에, 민준이 지금까지 찾고 있었던 의뢰인이 있었다.
그녀는 이 지역에서 여자들에게 강요되는 히잡도 니캅도 두르지 않았다. 맨 얼굴을 드러낸 채, 긴 머리는 간단하게 한 번 묶어서 어깨 뒤로 넘긴 상태. 복장도 반팔티에 청바지다.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하르라고 불러주세요. 마녀협동조합 사우디 아라비아 지부장입니다.”
민준도 마녀의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예민준입니다. 자기 소개는 생략하죠.”
“이쪽으로 앉으세요. 차 한 잔 하시겠어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사하르가 차를 준비하는 사이 민준은 테이블 앞에 앉아 내부를 둘러보았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어서는 당연히 아니었고, 곳곳에 숨겨져 있는 고급 술식을 관찰한 것이다. 대부분 방어와 은닉 계통의 마법이다. 민준이 보기에는 거의 벙커 수준이었다.
“이곳이 혹시 지부 사무실입니까?”
“그럴 리가요. 이곳은 마녀들이 이 장벽 안에서 운영하는 쉘터(Shelter) 중 하나에요.”
“쉘터?”
“집에서 도망을 나왔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여성들을 보호하는 장소죠.”
“그래서 결계가 이렇게 많군요?”
“네. 이곳에서 자기 집안의 여자가 도망가면, 남자들은 그걸 엄청난 치욕으로 여겨요. 그래서 마법사까지 고용해서 추적하곤 하죠. 그런 시도까지 따돌리려면 이 정도 준비는 필수예요.”
“사실은, 그 부분이 희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지역의 무슬림 사회에서, 마법은 당연히 금지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방금 오다 보니···.”
민준은 오늘 겪은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사하르는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대꾸했다.
“그들은 다 남자들이었죠? 이미 이맘으로부터 허락을 받았을 거예요. 남자라면 특별한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전제 하에 이능력의 사용을 허락받아요.”
민준은 마르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여자들은요?”
“무조건 사형이죠. 예외는 없어요.”
사하르에게 따질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민준은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그의 가치관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대체, 남자는 마법을 써도 되고 여자는 안 된다는 그 근거가 뭡니까? 경전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까? 마법은 남자의 것이라고?”
“간단해요. 여자가 마법을 쓰면 남편이나 아버지, 남자 형제들이 그녀의 행실을 감시하거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되니까요.”
민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사하르의 말투가 너무도 담담해서 순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귀를 의심했을 정도였다.
“고작··· 그 이유 때문이라고요? 정말로?”
“네. 여성의 정절은 이 나라 남자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거든요. 남자들에겐 여자를 감시할 의무가 있어요.”
“·········”
“경전에도 적시되었답니다. ‘신이 남자를 여자보다 우월하게 만들었으므로, 남자는 여자의 보호자이자 관리인이어야 한다.’ 이런 문구도 있지요. ‘여자가 집 밖으로 나가면 악마를 유혹하기 마련이다.’”
이맘들은 이런 문장들을 극단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종교재판소는 판결했죠.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다르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열등하고, 또한 너무도 감정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없다고. 그 결과 장벽 안의 여자들은 남자를 동반하지 않고는 외출할 수 없게 되었어요. 또 남자의 허락 없이는 공부도, 일도, 결혼도 할 수 없죠.”
“······..”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자가 언제나 여자의 행동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여자가 마법을 쓰게 되는 순간, 그들이 꿈꾸는 사회질서는 산산조각이 나며 무너져 내리게 되죠. 장벽 안에서 여자들이 운전할 수 없는 이유를 아시나요? 이맘들은 여자가 운전대를 잡는 순간 자유로이 외간 남자를 만나러 나가서 부정을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물며, 마법을 쓰면 어떻겠어요? 이동 말고도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겠죠. 그걸 용납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사형시키죠.”
“사람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저지르지도 않은 부정 때문이라고요? 혹여 원한다면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니 죽인다는 겁니까? 마치 그건 여자가 당연히···..”
“여자들에게 기회만 주어지면 당연히 부정을 저지를 거라는 집착적인 망상에 가깝죠. 애초에 저는 그 ‘부정’의 개념에도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요.”
사하르가 차를 내놓으며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자 그럼, 의뢰 이야기를 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