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116
116
퍼퍼퍽!
“히익.”
“헉!”
화물선 측면 난간에 구소련제 RPK 경기관총 한 정이 설치된 채 민병대 군인들을 겨누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말을 비롯한 부하들이 각자 숨기고 있던 무기를 꺼내 들고는 상대를 차갑게 노려봤다.
혁권이 쏘라고 한마디만 하면 순식간에 스와이단과 민병대 군인들은 벌집이 되어 버릴 상황이었다.
갑자기 뒤바뀐 상황에 민병대 군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른침만 꿀꺽 삼키면서 엉거주춤 서 있을 때 혁권은 바닥에 떨어진 스와이단의 권총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살짝 구부린 채 손목을 움켜쥐고 짐승처럼 신음만 흘리고 있는 스와이단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내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 것 같아?”
“이익.”
이를 갈며 상대가 죽일 듯 자신을 노려보자 그는 냉소를 지었다.
“그러게 뭐든지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
그는 총구를 스와이단의 머리를 바짝 들이대면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 칼자루는 내가 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에 스와이단은 그가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스와이단의 얼굴에서 적개심이 사라지고 짙은 두려움이 떠올랐다.
“이, 이러고도 여길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애써 강한 척 위협을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걸 감추지 못했다.
주도권을 쥔 혁권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 나가는 판에 네놈 하나 없어진다고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조금 귀찮겠지만 지휘부에 돈을 좀 찔러주면 이런 일쯤은 없던 걸로 만들 수 있어. 설마 그쪽 상관들이 끝까지 의리를 지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으음.”
이야기를 들은 스와이단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내뱉었다.
어느새 처음의 순수성이 변질돼 썩을 때로 썩어 버린 민병대였기에 윗대가리들이 돈을 받고 이번 일을 무마시켜 주고도 남았다.
협박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스와이단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손에 쥔 권총을 얼굴 바로 앞에 겨누면서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을 어기고 내 돈을 빼앗으려고 했으니 목숨을 받아 가는 것이 맞겠지.”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와이단은 창백해진 얼굴로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도 있나?”
“살려 주시오.”
“내가 왜 그래야 되지?”
크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싸늘한 말투에 스와이단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를 봤다.
“괜히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소. 날 살려 준다면 앞으로 이곳 항구를 이용하는 데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겠소.”
솔깃한 제안이었다.
미스라타 민병대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도 않고 원래 계획한 대로 트리폴리 항구가 다시 열릴 때까지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니 큰 이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한번 뒤통수를 치려고 한 스와이단을 믿기 어렵다는 거였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지금 당장은 살기 위해 이런 제안을 했다가 나중에 다시 태도가 돌변할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던 자말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한번 약속을 깼는데 두 번이라고 어렵겠습니까. 그냥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깔끔하게 처리해 버리십시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돈은 물론이고 화물선까지 다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다.
목숨은 살려 준다고 했어도 그 이야기를 믿기도 어려웠다.
혁권의 눈에 살기가 떠오르자 스와이단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쪽도 다 돈을 벌려고 이는 거 아니오. 나 하나 죽인다고 무슨 득이 되겠소?”
“날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보일 수 있지.”
심드렁한 얼굴로 그가 말하자 스와이단은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대단한 거물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신경이나 쓰겠소. 그러지 말고 우리 동업을 합시다. 그쪽이 화물을 가져오면 내가 여기서 편의를 봐주는 걸로 어떻소?”
“널 어떻게 믿지?”
“내가 아니라 돈을 믿으면 되지 않소.”
“…….”
“화물을 내릴 때마다 이번처럼 수고비를 챙겨 준다면 내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 하지 않을 것 아니겠소.”
“이미 한번 그러려고 했잖아.”
날카로운 지적에 스와이단은 혀로 입술을 살짝 핥으며 말했다.
“내가 눈앞의 욕심에 잠시 이성을 잃었소. 하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요.”
“뻔한 거짓말입니다.”
자꾸만 초를 치는 자말을 노려보며 스와이단이 소리쳤다.
“아니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간절한 어투로 말했다.
“신과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소.”
혁권은 차가운 시선으로 앞에 있는 스와이단을 지그시 바라봤다.
억겁 같은 시간이 흐른 뒤 혁권이 손에 들 권총을 내렸다.
“만약 또다시 허튼 짓을 한다면 그때는 편히 죽지 못할 거야.”
“고, 고맙소.”
“보스!”
옆에 있던 자말이 정색을 하며 뭐라고 말을 하려는 걸 그가 한쪽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하지만 아직은 널 믿을 수 없으니까 배가 항구를 벗어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가야겠어.”
“할 수 없지.”
살짝 인상을 찡그리던 스와이단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뚜우우우.
긴 기적 소리를 울리면서 선착장을 떠난 화물선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천천히 항구 밖으로 나갔다.
인질이 된 스와이단은 포박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무기를 모두 빼앗긴 채 혁권과 함께 갑판에 서 있었다.
콘크리트를 부어서 만든 기다란 방파제를 지나자 스와이단이 몸을 돌려 그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풀어 줘도 되지 않겠소.”
살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다시 평정심을 되찾은 스와이단의 모습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뒤에 있던 자말이 무전기를 들어 함교에 지시를 내렸다.
배가 속력을 줄이는 가운데 혁권이 담배를 입에 물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는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길 거니까 명심하도록 해.”
그러자 스와이단이 누런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걱정 마시오.”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스와이단을 바라본 그는 이내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냈다.
“받아.”
“뭐요?”
“약속했던 그쪽 몫이야.”
“……!”
무기와 함께 빼앗아 갔던 돈을 다시 돌려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스와이단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난 누구처럼 약속을 함부로 깨지 않아.”
뼈 있는 이야기에 스와이단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눈앞의 욕심에 거래를 어기고 뒤통수를 치려고 한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걸 보며 혁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받을 건가?”
그러자 스와이단이 고개를 들었다.
“부끄러운 행동을 해 놓고 어찌 그걸 받을 수 있겠소. 그냥 내 사과의 표시라고 생각하고 넣어 두시오.”
뜻밖의 말에 그는 상대를 빤히 쳐다보며 다시 한 번 되물었다.
“4만 달러면 꽤 큰돈이오.”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리비아에서 이 돈이면 웬만한 사람은 팔자를 고칠 수도 있었다.
“알고 있소.”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면서도 스와이단이 머리를 내젖자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돈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함단이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준비가 다 됐습니다.”
“보내 줘.”
“예.”
함단이 스와이단을 데리고 사라지자 한쪽에 가만히 서 있던 자말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저놈하고 거래를 다시 하실 생각이십니까?”
“왜, 마음에 들지 않나?”
“이미 한번 배신했던 놈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줄사다리를 타고 밑에 띄워 놓은 구명보트로 내려가고 있는 스와이단을 보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다시 뒤통수를 치려고 할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보자 혁권은 하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면서 차분히 입을 뗐다.
“이용가치가 있으니까.”
그는 고개를 돌려 자말과 시선을 맞추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저놈도 이제 내가 만만치 않은 걸 알았을 테니까 관계를 유지하는 게 돈이 되는 한 쉽게 딴마음을 품지 못할 거야.”
“하지만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려 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혁권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스와이단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때는 지옥이 뭔지 보여 줘야지.”
까르륵-.
파도 소리에 섞여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웃음소리에 혁권은 담배를 입에 물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엄마, 저거 봐! 하늘에 이상한 새가 있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아이가 소리쳤다.
몸통은 하얗고 날개가 옆으로 길쭉하니 뻗었고, 입에서는 보통 새들과는 다른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난생처음 보는 것인지 아이의 눈에 호기심이 잔뜩 묻어났다.
머리를 위로 치켜든 채 새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주춤 뒷걸음질을 치는 아이의 뒤를 어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졸졸 쫓아다녔다.
그런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계속 저것 보라며 소매 자락을 잡아끌었고, 햇볕을 쬐러 밖에 나와 있던 다른 아이들까지 합류하여 꺄아꺄아 떠들어 댔다.
“저건 갈매기라고 하는 거란다.”
“갈매기요?”
“바닷가 근처에서만 볼 수 있는 새지.”
“우리 같은 뱃사람들한테는 제일 반가운 날짐승이란다. 저게 배 주변을 맴돈다는 건 근처에 섬이 있거나 육지가 가깝다는 증거거든.”
다른 선원이 옆에서 거드는 목소리에 맨 처음 아이한테 말을 걸었던 사내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이제 곧 내릴 수 있는 거예요?”
미스라타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온 지도 벌써 나흘째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배 위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선원들에게는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화물선에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할 때였다.
배를 처음 타 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첫날은 다들 뱃멀미에 힘들어하면서 기절하듯 잠들었고, 둘째 날은 슬슬 돌아다니기 시작하였으며 셋째 날엔 선원들과 말을 트기도 하는 등 나름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으나 나흘째에 접어들자 이젠 더 이상 새로운 게 없어진 것이다.
처음엔 상처를 입은 동물처럼 쭈뼛거리며 주변을 경계하던 사람들이 이젠 제 품에 꽁꽁 숨기고 있던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와 갑판 위를 산책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하하, 그렇게 금방 도착하겠냐. 아마 이 주변에 작은 섬이라도 있는 거겠지.”
“에이.”
아쉽다는 듯 볼을 부풀리는 아이에게 선원이 물었다.
“왜, 얼른 내리고 싶어?”
“옆방 아저씨가 계속 구역질을 해 댄단 말이에요. 복도에까지 시큼한 냄새가 퍼져서 우리 다 지나갈 땐 이렇게 코를 막아요.”
그러면서 아이가 양손으로 코를 틀어막는 시늉을 했다.
“아아. 뱃멀미를 심하게 하는 모양이로군.”
“멀미?”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단다. 뭐, 그 사람도 자기가 하고 싶어서 구역질을 하는 게 아닐 테니까 참고 이해해 주렴.”
선원은 굳은살이 가득 박인 두툼한 손바닥으로 아이의 조막만한 머리통을 쓰다듬어 줬다.
뭍에 두고 온 제 아들도 딱 저만 하던 시절이 있었지, 싶어 입에서 절로 허허 웃음이 나왔다.
아이와 얘기하느라 너무 오래 농땡이를 치고 있었던 걸 뒤늦게 깨달은 선원은 끙차 하고 일어서면서 나중에 제 짐을 뒤져 봐야겠다고 중얼거렸다.
아마 찾으면 유통기한이 지난 멀미약 한둘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분명 지금도 침대에 축 늘어져 있을 불쌍한 사내를 생각하며 선원은 끌끌 혀를 찼다.
“보스.”
불현듯 들려오는 목소리가 혁권의 상념을 일깨웠다.
햇살 아래 뛰노는 아이들과 난간에 기대어 가끔씩 서로 말을 주고받는 어른들을 바라보며 약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혁권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함단을 발견하고 어어, 대충 대꾸했다.
“뭘 그리 보고 계십니까?”
“아냐. 그냥 평화롭구나 싶어서.”
“예에?”
혁권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굴린 함단은 이해한다는 듯 얼굴에 살포시 미소를 띠웠다.
“하늘이 맑고 파도도 잔잔하니 다들 할 일이 없는 모양이지요. 이럴 때 실컷 쉬어야 한다면서 대낮부터 방에 처박혀 자는 놈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어딜 가든 요령을 피우는 사람은 있는 법이었다.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으면 그냥 놔 둬.”
선원들 사이에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이라면 어느 정도 잔머리를 굴리는 것 정도야 봐줄 정도의 아량은 있다며 혁권은 어깨를 폈다.
“그런데 역시 인원수가 느니까 전보다는 조금 더 시끌벅적 해진 것 같아. 안 그래?”
“아…….”
함단은 불현듯 먹구름이 낀 것처럼 안색을 흐렸다.
“죄송합니다, 보스. 본래대로라면 아지트에 있던 사람들만 데리고 왔어야 하는 건데.”
지금 화물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쉰 명이 넘었다.
혁권이 그리스로 이주시켜 준다고 하자, 부하들이 친척 한둘씩을 은근슬쩍 끼워다 넣다 보니 이렇게 늘어난 것이다.
큰 은혜를 베푸는 것이니만큼 평생 감사하며 살아도 모자랄 판에 덤까지 붙여 왔으니 함단으로서는 썩 탐탁지 않았으나 오히려 혁권은 아무렇지 않아 하는 듯 보였다.
“고작해야 열 명 정도 더 늘어난다고 배가 가라앉지는 않아.”
“그래도…….”
혁권은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지금 이들을 돕는 것은 제 밑에 있는 부하들과 관련된 가족들이란 이유도 있지만, 차마 한시도 마음 편히 살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연민에서 우러난 감정 또한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함단의 우려는 이런 혁권의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줄곧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 왔던 것인데.
아무리 장본인이 괜찮다고 해도 함단은 이렇게 된 게 마치 다 제 잘못인 것 같아 입맛이 썼다.
“인상 좀 펴라니까. 그러다가 애들이 자네 얼굴 보고 놀라서 도망가도 난 몰라.”
“그럼 또 어떻습니까. 너무 오냐오냐해도 버릇없어집니다.”
“하하. 꼭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막상 자기 자식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쌍심지를 켜고 덤벼든다던데.”
“전 안 그렇습니다.”
뚱한 얼굴로 대꾸하는 함단의 표정이 마치 골난 아이처럼 우스꽝스러워 혁권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한차례 세찬 바람이 불자, 넘실거리는 파도의 움직임에 배가 위 아래로 크게 출렁거렸다.
와아 하고 신나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허공을 높게 흔들고, 뱃머리에 부딪치는 하얀 포말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투명하게 반짝 빛났다.
“일광욕을 하고 싶어지는 날씨야.”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누울 자리를 만들어 드릴까요?’ 하고 함단이 얼른 대꾸했다.
언제 무슨 말을 하건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이 실로 충실한 심복 그 자체다.
“그냥 해 본 말이야.”
‘이거야 원, 혼잣말도 못 하겠군.’
그렇게 혁권이 반장난 식으로 투덜거리자 함단이 또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