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136
136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희뿌연 먼지가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크윽.”
뒤로 나동그라져 바닥을 뒹굴던 혁권이 신음을 흘리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쿨럭.
먼지를 잔뜩 먹은 목에서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귓속에서 작은 벌레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이명이 울리고, 망치로 한 대 얹어 맞은 것처럼 머리가 쿵쿵거렸다.
힘들게 고개를 드니 시야가 빙빙 돌았다.
멀리서 들리는 외침조차 길게 늘어뜨린 필름처럼 알 수 없는 소리로 변환되어 웅웅거리는 가운데 보이는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고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머리를 고정시키고 심호흡을 하니 울렁이던 속이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혁권이 창가로 가서 바깥을 살피자 엉망으로 부서진 정문 바리케이드와 그 주위로 온몸이 걸레처럼 찢긴 민병대 병사들의 시신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끔찍한 광경에 침음을 삼킬 틈도 없이 시커먼 연기 사이로 적들이 밀고 들어오는 걸 발견하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런, 정문이 뚫렸다!”
자폭 트럭 공격에 정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무력화됐고 이대로 잔디밭을 가로질러 호텔 건물 안으로 치고 들어올 기세였다.
“적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알할부시가 다급한 얼굴로 소리치자 1층 로비에 남아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창문에 쌓아 둔 모래주머니 뒤에 몸을 숨긴 채 적에게 총격을 가했다.
타탕! 타탕! 탕! 탕!
“아악!”
“크헉.”
그러자 기세 좋게 덤벼들던 적들 가운데 두세 명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거기다 잠시 침묵하고 있던 옥상 위 기관총이 다시 불을 뿜어 대자 적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허둥지둥 양옆으로 흩어져 엄폐물을 찾았다.
혁권도 가지고 있던 권총을 쏘다가 탄창이 모두 비어 슬라이드가 뒤로 젖히자 새 탄창을 꺼내려고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민병대 병사가 적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아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컥!”
흠칫 놀란 표정을 짓던 혁권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병사 옆에 AK47자동소총이 떨어져 있는 걸 보곤 얼른 집어 들었다.
철컥.
노리쇠를 당기며 확인해 보자 다행히 부서지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혁권은 죽어 있는 병사의 몸을 뒤져 총알이 꽉 장전된 탄창 세 개를 찾아내 허리에 단단히 끼워 넣었다.
시체의 물건을 훔치는 도적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으나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 대신 혁권은 죽은 병사의 눈꺼풀을 손으로 감겨 주며 속으로 감사의 말을 읊조렸다.
부디 고통 없이 갔기를.
그것만이 그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총을 챙겨 몸을 일으키자 하킴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뒤쪽도 적이 공격해 오고 있어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건물 뒤편을 살펴보고 온 하킴이 굳은 얼굴로 이야기하자 그는 이맛살을 살짝 찡그리고는 손에 든 AK47 자동소총의 노리쇠를 당겨 총알을 장전했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버텨 보는 수밖에.”
“지금이라도 탈출을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잠시 고심하던 혁권은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괜히 성급하게 움직였다가는 총알받이가 되고 말 거야. 그것보다는 건물 안에서 버티는 것이 더 나아.”
“하지만…….”
“협공을 받아 상황이 여의치 않다지만 어찌 됐건 아군 진영 안이잖아. 공격을 막아 내고 있으면 지원 병력이 오지 않겠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한쪽 손으로 하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혁권은 창가로 가서 공격해 오는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또 한 명의 부하가 기관총탄에 맞아 벌집이 된 채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걸 본 자심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걸로 벌써 여섯 명째!
한둘도 아니고 여섯 명이나 헛되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복장이 뒤집혔다.
건물에 숨어서 저항하는 민병대도 문제였으나 그것보다 심각한 것은 옥상에서 총탄을 마구 쏟아 내는 기관총이다.
호텔 건물로 들어가려면 엄폐물 하나 없는 넓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야 되는데 기관총 때문에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탐스러운 먹잇감을 바로 앞에 두고 엄폐물 뒤에 웅크리고만 있으니 당연히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하지만 마냥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기습을 가해 주도권을 쥐기는 했지만 호텔로 진입하기도 전에 놈들의 지원 병력이 도착한다면 언제든 판세가 뒤집힐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전에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내야 했다.
자심은 차에 맞대고 있던 등을 떼어 손짓으로 부하를 불렀다.
“RPG를 가져와.”
“예?”
“씨발, 귓구멍이 막혔어? 저놈들 몽땅 다 날려 버리라고!”
초조함에 휩싸인 자심은 당황해하는 부하의 표정을 보고서도 얼른 튀어갔다 오라며 세차게 닦달했다.
쥐새끼처럼 숨어서 야금야금 갉아 대기는!
뭐든지 빨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상 이러고 있는 건 영 성미에 안 맞았다.
차라리 조금 피해가 나더라도 화려하게 빵빵 터트려 버리는 것이 낫지, 계속 이런 식으로 속만 태우다간 되레 자기가 고혈압으로 쓰러질 판이었다.
잠시 뒤 호텔 맞은편에 있던 건물 모퉁이에서 적군 네다섯 명이 뛰어 나왔다.
곧장 호텔로 달려오는 적들 가운데 두 명이 RPG-7을 들고 있었다.
그걸 본 민병대 병사들이 사격을 가하자 적들도 기다렸다는 듯 응사를 하며 전투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앞으로 달려 나가던 적 한 명이 기관총에 맞아 시뻘건 피를 뿌리면서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적병이 바닥에 떨어진 RPG-7 발사관을 집어 들고는 계속해서 뛰어갔다.
겨우 호텔 정문에 도착한 적들은 검문소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아서 만든 진지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두두둑!
총탄이 쏟아졌지만 애꿎은 모래주머니만 두들기고 적병들한테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그때, 바리케이드를 들이박은 채 불에 계속 타고 있던 자동차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타이밍 좋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적들의 모습을 가려 주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RPG-7 발사관을 든 적 두 명이 모래주머니 위로 몸을 드러내고는 옥상에 있는 기관총 진지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푸슝!
쉬이이익.
강한 후폭풍을 일으키며 발사된 RPG 탄두 두 발이 하얀 궤적을 그리면서 일직선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고는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기관총 진지에 정확히 명중했다.
꽈아앙! 꽝!
오렌지색 섬광이 일더니 방금까지 기관총 진지가 있던 곳이 완전히 부서져 주저앉은 채 시커먼 연기를 피어 올렸다.
그걸 본 자심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지금이야. 돌격해!”
아직 건물 안에 엄폐해 있는 민병대 병사들이 남아 있었지만 가장 큰 위협이 되던 기관총을 침묵시킨 만큼 모험을 걸어 볼 만했다.
“와아아아!”
족히 마흔 명은 넘는 적들이 함성을 내지르면서 일제히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건물 안에 있는 민병대 병사들이 총을 쏘며 저항했지만 기세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만큼 옥상에 설치되어 있던 기관총의 역할이 컸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민병대 병사들이 상대의 돌격에 당황하고 있기도 했다.
“막아! 적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총을 계속 쏴.”
급박한 상황에 알할부시까지 직접 권총을 쏘면서 부하들을 독려했지만 적들의 돌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 방금 전 기관총 진지를 날려 버렸던 RPG 사수가 또다시 로켓탄을 발사했다.
콰쾅!
로켓탄이 틀어박힌 1층 일부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커다란 폭발과 함께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벽이 단숨에 허물어졌다.
자욱한 먼지가 실내를 가득 채운 가운데 한쪽 구석에서 혁권이 기침을 하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콜록. 콜록.”
소매 끝으로 입과 코를 막은 혁권은 역시 비슷한 모양새로 하킴이 비틀거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늘게 눈을 떴다.
“이봐, 괜찮아?”
“예. 보스야말로 다친 덴 없으십니까?”
“나는 멀쩡해.”
그러면서 혁권은 아직도 먼지가 분진처럼 흩날리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아무 데나 던져 둔 인형처럼 곳곳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커다란 파편에 깔려 신음을 흘리면서 꿈틀거리는 자도 있었고, 피구덩이에 얼굴을 처박은 채 비명을 지르려던 표정 그대로 숨이 끊어진 사내도 보였다.
“미치겠군.”
어떻게 된 게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는커녕 계속 악화되어 가고만 있으니 이젠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킴, 그거 알아? 한국에서는 이럴 때 점입가경이라는 사자성어를 써.”
“사자성어? 그게 뭡니까?”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멀뚱거리면서도 하킴이 착실하게 대꾸해왔다.
“뭐,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차 가르쳐 주기로 하고…….”
혁권은 머리카락에 뽀얗게 쌓인 흰 먼지를 툭툭 털었다.
잠깐 헛소리를 지껄이고 나니 조금이나마 기분 전환이 된 듯, 눈동자에 다시 예리한 빛이 돌아와 있었다.
“일단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날 궁리나 하자고.”
그때 혁권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적들이 쏜 총탄이 쏟아져 들어왔다.
타타탕! 타탕!
와장창.
남아 있던 유리들이 산산조각 나고 현관과 창문 쪽에 있던 병사들이 총에 맞아 비명을 내질렀다.
벽에 총탄이 박혀 구멍이 숭숭 뚫렸고 시뻘건 피가 튀어 올랐다.
로켓탄 공격에 충격을 받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어느새 적들이 지척까지 접근한 거였다.
“씨발.”
거칠게 욕설을 내뱉은 혁권의 눈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그 폭발의 와중에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다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알할부시를 스와이단이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부축하고 있었다.
그나마 상태가 멀쩡해 보이는 스와이단이 애써 격려하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부상 때문에 알할부시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지 팔에 몇 번 힘을 주다가 그대로 주저앉곤 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던 혁권은 또다시 울려 퍼지는 총성에 어깨를 움찔하고는 눈썹을 크게 일그러트렸다.
순간 도와줄까 했지만 이내 제 처지도 쉬운 형편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은 탓이다.
제 코가 석 자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 화상을 입을 지경인데 누가 누굴 돕는단 말인가.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혁권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돌아섰다.
그러나 앞으로 한두 걸음쯤 걸어갔을까.
“제길.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착했다고…….”
있는지 없는지 존재조차 희미하던 양심이란 놈이 아까부터 계속 콕콕 찔러 대는 바람에 아주 돌아 버리겠다.
혁권은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벅벅 긁으며 결국 가던 발길을 다시 되돌렸다.
그러고는 알할부시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많이 다친 거요?”
낭패한 표정의 스와이단이 그를 보며 말했다.
“파편에 왼쪽 다리를 다치셨소.”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왼쪽 정강이 부분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으윽. 난 괜찮아.”
이를 악문 채 알할부시가 간신히 말을 내뱉었지만 일그러진 얼굴에서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주머니에서 스위스 군용 칼을 꺼낸 혁권은 부상당한 왼쪽 바지를 길게 찢었다.
부욱.
날카로운 쇳조각이 살갗 깊숙이 박혀 있었다.
상처가 컸지만 다행히 혈관을 건드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긴 동맥이라도 찢겨 나갔다면 과다출혈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조금 아플 겁니다.”
“뭘 하려고…….”
스와이단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혁권이 손으로 상처에 박힌 쇳조각을 뽑았다.
“크윽.”
극심한 고통에 알할부시가 신음을 내뱉었고 상처 부위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감염을 막으려면 소독을 해야 됐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에 혁권은 급한 대로 가지고 다니던 손수건으로 더 이상 피가 나오지 않게 상처 부위를 꽉 묶었다.
출혈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빨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한쪽 다리를 잘라 내야 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