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157
157
알할부시한테 오더를 받은 것 외에도 리비아와 이집트에 가져가서 팔 물건을 한꺼번에 합쳐서 다 수송하려다 보니 물량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TC인터내셔널과 김인철을 상대로 한 작업에 이번 화물 매입까지 상당한 액수의 돈이 지출됐지만 그동안 벌어둔 자금이 충분해서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미스라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 화물을 가져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으나 이미 대금까지 다 받았기에 일단은 그리스까지 운송해 가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혁권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참. 지난번에 이야기한 재생 부품은 알아보셨습니까?”
그러자 배도환이 얼른 대답했다.
“저도 몰랐는데 폐차되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재생 부품이 엄청나더군요. 솔직히 조금 찝찝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알아보니 성능도 꽤 괜찮았습니다.”
“그래요?”
“예전처럼 그냥 폐차에서 부품만 달랑 빼서 파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꼼꼼하게 정비를 해서 내놓더군요. 물론 새 제품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만 아주 못 쓸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가격은 절반도 안 되고요.”
“만약 구매를 한다면 필요한 수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없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달에 폐차되는 자동차가 족히 수만 대는 될 테니까요. 하지만 이게 아무래도 중고다 보니까 판매 인증을 받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배도환과 달리 혁권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어차피 재생 부품을 팔 곳은 딱히 인증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괜찮아요. 그것보다 성능만 확실하면 됩니다.”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배도환이 자신하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부품 목록과 수량을 알려 드릴 테니까 물건을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또 새로운 일거리를 받게 된 배도환은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화물을 무사히 실어 보내고 며칠 뒤.
정말 벼락에 콩 볶아 먹듯 TC인터내셔널의 유상증자가 실시됐다.
원래대로라면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일이었으나 뒷거래와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넘어가 버렸다.
유상증자 직전 대형 펀드 몇 곳이 TC인터내셔널 주식을 쓸어 담으면서 물량 부담에 약간 주춤하던 주가를 단단히 떠받쳤다.
그리고 이쯤에서 TC인터내셔널이 앵글로아메리칸과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광산의 본격적인 상업 생산을 위한 MOU 체결이 임박했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두 개나 한꺼번에 터진 호재에 시장은 바로 뜨겁게 반응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주가가 다시 폭등했다.
6천 원 대에 머무르면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주가가 단숨에 다들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던 1만 원을 넘어가 버렸다.
여기에 런던에서 TC인터내셔널 사장이 정말로 앵글로아메리칸 관계자와 MOU를 체결한 뒤 활짝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사진이 경제 신문에 실리자 매수 열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주가 포시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더불어서 근래 드물게 일반 주주에 배정된 유상증자 물량이 실권주 하나 없이 100% 청약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유상증자로 늘어난 주식이 2천만 주로 상당히 많은 데다 이미 주가가 많이 올랐다고 생각하고 처분에 나서려는 이들이 없지 않을 테니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그런 가운데 유상증자 이후 첫 번째 거래일이 밝았다.
유상증자 주관사인 오성증권 VIP룸에 김인철과 조현태 그리고 이동철이 소파에 둘러 앉아 있었다.
무거운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세 사람 모두 시선이 한쪽에 설치된 대형 LED 텔레비전에 쏠려 있었다.
“후우. 이거 은근히 심장이 쫄깃해지는 걸.”
벌써 다섯 개째 담배를 꺼내 입에 문 조현태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맞은편에 있는 김인철을 봤다.
“잘되겠지?”
김인철이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미 밑밥을 다 깔아 뒀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잖아. 기껏 여기까지 주가를 끌어 올렸는데 개미들이 단물만 빨아 먹고 싹 다 빠져나가 버리면 그대로 쪽박을 차는 거라고.”
“쯧. 재수 없게. 그딴 소리를 하려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어.”
“뭐야!”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조현태가 발끈하자 옆에 있던 이동철이 급히 나서며 말렸다.
“왜들 이러십니까? 두 분 다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지신 것 같은데 진정들 하십시오.”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은 이내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돌렸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이동철은 때마침 개장 시간이 임박한 걸 확인하곤 말했다.
“이제 곧 시작할 시간입니다.”
그러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두 사람 다 초조한 얼굴로 LED 텔레비전을 쳐다봤다.
LED 화면에는 컴퓨터와 연결된 TC인터내셔널 주가 그래프가 떠 있었다.
긴장감에 침이 마르고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나는 가운데 마침내 LED 아래쪽에 표시된 시계가 9시를 가리켰다.
“시작입니다.”
이동철의 말과 함께 장 시작 동시호가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주가 그래프를 위로 힘차게 끌어 올렸다.
“11,000원, 아니 11,200원. 저것 보십시오. 계속 올라갑니다!”
잔뜩 흥분한 이동철의 말이 아니더라도 주가 그래프를 주시하던 두 사람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저것 봐. 내가 성공할 거라고 했잖아.”
“좋았어!”
방금 전 다툼이 있었던 것도 잊은 채 김인철과 조현태는 실내가 떠나 가라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주당 4,700원에 유상증자를 받아 벌써 두 배가 넘는 11,200원을 기록했으니 엄청난 대박이 터진 거였다.
당장 조현태만 해도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늘어난 주식 평가액이 수십억 원에 달했다.
중요한 건 상승세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 펀드 세 곳을 포함해 기관들이 가세하고 상승세에 고무된 개미들이 따라붙으면 목표액에 도달하는 건 결코 꿈이 아니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D-데이가 될 때까지 절대 정보가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게 조심하도록 해.”
“염려 마.”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이번에는 조현태도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인철 역시 위로 끝없이 올라가는 주가 그래프를 바라보며 입가에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유상증자 성공과 앵글로아메리칸과의 MOU 체결 그리고 기관 투자자들의 매수 대열 합류로 TC인터내셔널 주가는 날개를 달았다.
거기에 늘어난 유동주식 물량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계속 나오는 매수 주문과 일부 외국인의 투자에 주가는 상승을 거듭하며 어느새 2만 원을 넘어 이제 3만 원 선에 근접했다.
이 외국인들은 실제 투자자가 아니라 일명 검은 머리 외국인들로 주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김인철이 홍콩에 설립한 법인을 통해 우회해서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을 해도 전문가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상당수의 대형 펀드와 기관 투자자 운용자들은 TC인터내셔널이 작전주라는 걸 일찍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는 호재가 있더라도 이렇게 단기간에 주가가 말도 안 될 정도로 급등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자들은 너무나도 달콤한 시세 차익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작전주에 가세했다.
아무튼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 대세 하락장에서 유일하게 상승을 거듭하고 있는 TC인터내셔널은 이제 모든 코스피 시장 참가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건 뭐야?”
시장 감시 위원회 조사관인 최원혁은 가지고 온 보고서에서 고개를 든 과장을 보며 이야기를 했다.
“지난 한 달간 TC인터내셔널의 주가 변동 그래프와 공시 자료들입니다.”
“누가 그걸 몰라. 이걸 왜 가져왔냐고?”
“보시다시피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주당 300원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것이 지금은 3만 원 대로 껑충 뛰었습니다. 무려 100배가 오른 겁니다.”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최원혁과 달리 과장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게 어때서. 자주는 아니지만 주가가 급상승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 특히 여기처럼 만 원 미만인 소형주들은 등락이 더 가파르고 말이야. 거기다가 그 아프리카에 있는 다이아몬드 광산인가? 아무튼 오를 만한 호재도 있잖아.”
예상치 못한 반응에 최원혁은 살짝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는 것도 아직 정확한 실체가 나온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쩌자고?”
“주가 조작이 의심되니 조사에 나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과장이 손에 든 보고서를 던지듯 책상 위에 내려놓으면서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
“그게 아니라…….”
설득을 하려는 최원혁의 말을 중간에 끊고 과장이 마구 소리를 쳤다.
“당신 말고도 여기 똑똑한 사람들 많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가!”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최원혁이 머뭇거리고 있자니 과장이 의자가 덜컹거릴 정도로 몸부림을 치면서 외쳤다.
“나가라고!”
“예, 예.”
최원혁은 수치심에 벌게진 얼굴로 화급히 책상에 흩어진 서류들을 주워 모으곤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갔다.
“쯧.”
짧게 혀를 찬 과장은 방금 최원혁이 나간 문을 바라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자식이 쓸데없이 유능해서는…….”
그러자 손을 뻗어 한쪽에 있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 김 과장입니다.”
-아이고, 과장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뜻밖에도 이동철 전무였다.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직원들 가운데 TC인터내셔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어서 연락을 했습니다.”
-그래요?
이동철의 목소리가 살짝 굳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참 주가를 끌어 올리고 있는데 시장 감시 위원회에서 조사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 바로 상승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 과장은 잔뜩 목에 힘을 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일단 내 선에서 막기는 했지만 너무 일을 크게 벌이면 커버를 해 주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마무리를 지을 테니 너무 염려 하지 마십시오.
“잘 생각했습니다. 한 번에 크게 먹으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
-명심하도록 하죠. 아. 그리고 고생하시는데 약소하나마 음료수 상자 하나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말에 과장은 얼굴 가득 탐욕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음료수를 보내는 건 당연히 아닐 테고 5만 원 권을 대신 넣으면 정확하게 현찰로 1억이 들어갔다.
“뭘 그런 걸 다…….”
-도움을 주셨는데 당연히 보답을 해야지요. 일이 끝날 때까지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후후후.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과장은 득의만만한 얼굴로 기분 좋은 듯 제 배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