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02
202
총성을 들은 건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뛰어 내려온 국정원 요원과 5층 비상구 계단에서 마주친 순간 이었다.
“제길!”
결국 염려하던 일이 터지자 욕설을 내뱉는 혁권을 한쪽 팔을 들어 제지하며 국정원 요원이 권총을 뽑아 들었다.
“위험합니다. 여기에 계십시오!”
그가 멈춰 서자 국정원 요원은 철문을 열고 5층 복도로 나갔다.
하지만 이내 적이 쏴 대는 총탄을 피해 뒤로 물러서야 했다.
퍼퍼퍽!
“큭.”
총탄이 박힌 벽에서 회색 시멘트 가루가 튀며 국정원 요원이 낮게 신음을 내뱉자 혁권이 황급히 말했다.
“괜찮소?”
인상을 구긴 국정원 요원은 머리를 끄덕이곤 문 옆에 몸을 숨긴 채 권총을 쏴 댔다.
타탕! 탕! 탕!
하지만 이쪽에서 쏘는 것보다 날아오는 총탄이 더 많았다.
국정원 요원 뒤에 바짝 붙어 서 있던 혁권은 혀를 차고는 한쪽 팔을 뻗어 어깨를 두드렸다.
“지원은 언제 오는 거요?”
그러자 국정원 요원은 시선을 계속 적에게 둔 채 짧게 대답했다.
“5분, 아니 10분 안에 올 겁니다.”
“미치겠군.”
당장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 그렇게나 오래 걸린다고 하자 혁권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위층에 무장한 경찰관 두 명이 있었지만 알아바디가 치료를 받고 있는 병실을 지켜야 했기에 부를 수는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 질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권총 더 가진 것 없소?”
고개를 돌린 국정원 요원이 뭔 소리냐는 얼굴로 쳐다보자 혁권이 말을 이었다.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저 자식들을 잡아 둬야 되는데 혼자서는 어려울 것 아니오.”
“그건 그렇지만…….”
가타부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에 그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러다가 다 놓치고 말아요!”
그러자 국정원 요원이 결심을 한 듯 허리에서 예비로 가지고 있던 권총과 탄창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사용하십시오.”
“걱정 말고 놈들이나 신경 쓰시오.”
슬라이드를 뒤로 당겨 총알을 장전하며 아주 능숙하게 권총을 다루는 모습에 국정원 요원은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살짝 몸을 내민 그는 적을 겨냥하고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총구에서 섬광이 번득이자 혁권은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아악. 타탕! 탕…….
“이봐! 괜찮아?”
스마트폰을 타고 들려오는 날카로운 총성에 심인성 팀장이 다급하게 부하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뚜뚜뚜…….
이내 전화까지 끊겨 신호음만 들리자 그는 씹어뱉듯 욕설을 쏟아 내며 핏발 선 눈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최기혁을 다그쳤다.
“아직 멀었어!”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온 심인성은 지휘 본부에 있던 인원을 모조리 다 데리고 상황이 벌어진 시립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절대 놈들을 놓쳐서는 안 돼. 더 밟아!”
“예.”
심인성의 재촉에 최기혁은 가속 페달를 밟고 있는 발에 더 힘을 줬다.
부우우웅.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는 순찰차를 따라 차량 두 대가 시내 도로를 질주하듯 내달리고 있었지만, 부하들과 연락이 끊어진 심인성은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개자식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적들이 이렇게 나올 걸 미리 예측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국정원을 무시하듯 활개를 치고 다니는 북한 공작원들의 행동에 이를 부득 갈았다.
한편 시립병원 안의 상황은 점점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탕! 탕! 타탕!
복도 건너편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발이 묶이자 얼굴을 구긴 성무태는 옆에 있는 이정철을 보며 소리쳤다.
“썅!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 없어. 어서 퇴로를 열어.”
“옛.”
대답과 함께 이정철은 주머니에서 깡통 캔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 바닥에 굴렸다.
퍼엉!
둔탁한 폭음이 울리면서 뿜어져 나온 자욱한 연기가 순식간에 복도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푸슝. 푸슝!
“지금이야!”
성무태가 고함을 쳤다.
그러자 심정열을 비롯한 북한 공작원들이 견제 사격을 퍼부으면서 민첩하게 반대편 복도로 움직였다.
언제 지원 병력이 올지 몰랐기에 억지로 뚫고 나가기보다는 우회로를 택해 현장을 빨리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폭음에 소스라치듯 놀라 몸을 움츠렸던 혁권은 이내 사방에 깔린 연기를 보곤 눈가를 찡그렸다.
“빌어먹을! 연막탄이야.”
국정원 요원이 반사적으로 뛰어나가려는 걸 그가 황급히 붙잡았다.
“뭐 하는 거요!”
“적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야 될 것 아닙니까!”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연막에 가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뛰쳐 나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뿌연 연막 속에서 소음기를 통해 발사되는 낮은 총성이 연달아 울리며 섬광이 번득였다.
“이리로 가면 너무 위험하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반대편으로 돌아갑시다. 놈들도 그리로 빠져나가려고 할 것이 분명하니까 중간에 잡을 수 있을 거요.”
잠시 생각을 해 본 국정원 요원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날 따라오시오.”
혁권이 앞장을 서자 국정원 요원이 재빨리 탄창을 갈면서 뒤를 따랐다.
서너 개씩 날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간 두 사람은 금방 로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덜컹.
비상구 문을 박차고 나온 병원 로비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비명과 고함, 욕설이 마구 뒤섞인 채 사람들이 서로 먼저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 몇 명이 통제를 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처음 겪어 보는 총격전에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사람들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아 버리겠군.”
그런 모습을 본 혁권은 얼굴을 있는 대로 구겼다.
이런 난장판에서 인파에 섞여 빠져나가는 북한 공작원들을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 전에 자신들부터 움직이기가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제 어쩝니까?”
국정원 요원이 낭패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북한 공작원을 잡아야 되는 사람이 거꾸로 자신한테 방법을 묻고 있으니 절로 인상이 써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한국에서까지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됐는지 작게 한숨을 내쉰 혁권은 주위를 살펴보다 이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눈을 크게 뜨고 있으시오.”
그러고는 총구를 천장을 향하게 하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고막을 찢는 듯한 총성에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본능적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억!”
“살려 줘.”
“초, 총이야!”
그 순간 시야가 확 트이면서 막 건물 입구 회전문을 빠져나가려는 북한 공작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깁니다!”
국정원 요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혁권의 권총이 먼저 발사됐다.
탕! 탕! 탕!
와장창!
회전문 유리가 총탄에 맞아 박살이 났고 북한 공작원들이 몸을 돌려 곧바로 응사를 해 왔다.
불꽃이 튀며 상대가 쏜 총탄이 사방에 박혔다.
“꺄아악!”
여자 한 명이 잔뜩 겁에 질린 채 비명을 내지르자 그는 콘크리트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탄창을 갈아 끼우면서 소리쳤다.
“다들 죽기 싫으면 꼼짝하지 말고 엎드려 있어!”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친절하게 말을 해 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때 기다란 의자 뒤에 엄폐해 있던 국정원 요원이 한쪽 팔로 앞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놈들이 도망칩니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입구 쪽을 보자 정말로 북한 공작원들이 주차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씨팔!”
욕설을 내뱉은 그는 기둥 밖으로 나와 앞으로 뛰어갔다.
“비켜! 비켜.”
그러자 국정원 요원도 두 손으로 권총을 쥔 채 뒤를 따라 움직였다.
사람들을 헤치면서 로비를 가로지른 혁권은 북한 공작원들이 건물 앞 주차장 한쪽에 세워 둔 승합차를 타고 달아나려는 걸 보곤 거의 난사를 하듯 연이어 권총을 쏴 댔다.
타탕! 탕! 탕! 탕!
날아간 총탄에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 철판이 푹푹 들어가면서 섬뜩한 소리를 냈다.
“크흑!”
공작원 중 한 명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트리면서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한 놈 잡았습니다.”
화단 뒤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권총을 쏘던 요원이 신이 나서 소리쳤지만 어쩐지 그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피슝. 퍼퍽!
복수라도 하듯 총탄이 쏟아지자 재빨리 한쪽에 세워져 있는 구급차 뒤로 등을 기대고 선 혁권은 국정원 요원을 보며 말했다.
“탄창 남은 거 있소!”
“이게 마지막입니다.”
손에 든 권총을 가리키며 요원이 대답하자 그는 와락 얼굴을 구겼다.
“제기랄.”
적을 쓰러뜨린 건 좋았지만 아까 쏜 걸 마지막으로 총알이 다 떨어져 버렸다.
애초에 국정원 요원이 예비로 가지고 있던 권총을 받아서 쓴 거였기에 탄약이 충분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총알이 바닥나 버리다니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국정원 요원도 상황을 알아차린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봤다.
“어떻게 하지요?”
간첩을 때려잡아야 되는 국정원 요원은 내가 아니고 그쪽이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에 참으면서 혁권이 말했다.
“일단 총알을 최대한 아끼도록 해요.”
“하지만 저것들이 총을 쏴 대는데…….”
“쏴 대는 대로 응사를 하다가 총알이 다 떨어지면 그때는 어쩔 거예요!”
“……알겠습니다.”
짜증을 내며 쏘아붙이자 요원은 수긍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도 아직 국정원 지원 병력은 고사하고 경찰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자 그는 도로 쪽을 힐끗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5분 좋아하시네.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겠다.”
북한 공작원들을 붙잡아 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랄 같네.”
상대가 쏜 총탄에 시멘트 파편이 튀고 화단에 심어져 있던 나뭇가지가 힘없이 떨어지는 걸 보며 그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편 이쪽이 바짝 몸을 웅크린 채 응사를 하지 않자 적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저 아새끼들 총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정철의 말에 성무태가 눈을 번득였다.
“확실해?”
“아까부터 전혀 응사를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조용했다.
속임수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끝장을 내 버리지요.”
핏발이 선 눈으로 심정열이 말했다.
당한 것이 있으니 그대로 갚아 주려는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성무태는 정말 총알이 다 떨어졌거나 얼마 없다면 빨리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고 빠져나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머리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으니까 서둘러 마무리 짓도록 해.”
“예.”
복수할 기회가 주어지자 심정열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에 든 권총을 꽉 움켜쥐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심정열은 이정철과 함께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을 엄폐물로 삼아 혁권 쪽으로 다가갔다.
“어어? 저것들이 이리로 옵니다.”
당황한 요원의 말에 그는 전방을 살펴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쪽 상황을 알아차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대응을 해야 됐다.
요원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권총을 발사했다.
탕탕탕!
하지만 몇 발 쏘지도 못하고 탄창에서 빈 쇳소리가 나며 슬라이드가 뒤로 젖혀졌다.
철컥. 철컥.
국정원 요원마저 총알이 다 떨어진 것이다.
총격에 황급히 몸을 숨긴 심정열은 이내 더 이상 총탄이 날아오지 않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