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01
201
병실 앞은 여전히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관 두 명과 국정원 요원이 지키고 서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간호사가 총상 부위를 소독하고 다시 붕대를 감아 주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봉합 부위에 고름도 안 생겼고 열도 없어요. 조금 있다가 항생제를 놔 드릴 테니까 당분간 움직이지 마시고 침대에 누워 계세요.”
치료를 끝낸 간호사가 카트를 끌고 병실 밖으로 나가자 혁권이 미소를 지으며 침대로 다가갔다.
“몸은 좀 어때?”
흰 붕대로 한쪽 어깨를 완전히 칭칭 감은 알아바디는 그를 보며 면목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수술이 잘됐다고 하니까 푹 쉬면서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나을 거야.”
“죄송합니다.”
“그런 말하지 말고 얼른 낫기나 해.”
“······예.”
“뭐 필요한 건 없어? 말만 해, 다 사다 줄 테니까.”
“아닙니다.”
워낙 병실이 좋아서 기본적인 건 다 갖춰져 있다며 알아바디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힘들 텐데 누워서 좀 쉬어.”
손수 베개 위치까지 바로 고쳐 주며 강하게 권하는 통에 알아바디가 힘겹게 몸을 누이자, 혁권은 한쪽에 서 있는 백성균을 돌아보고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방심하지 말고 잘 지키고 있어.”
“맡겨 주십시오.”
철통같이 지키겠다고 백성균이 안심하란 말을 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혁권은 마침내 소파에 앉아 편하게 몸을 기댔다.
한동안은 자신도 이 병실에서 지낼 생각이니 꼼짝없이 셋이서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했다.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군.’
그렇게 생각하며 혁권은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려다가 환자가 있는 걸 떠올리곤 다시 집어넣었다.
시립 병원 주차장, 전날 부두 창고에서 부상당한 심정열을 데리러 왔었던 낡은 승합차가 세워져 있었다.
“인원은?”
조수석에 앉은 성무태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병원 안을 살피고 온 부하가 얼른 대답했다.
“복도에 무장한 경찰관 둘이 있고 안에도 국정원 요원 두 명이 지키고 있습니다.”
“모두해서 넷이군.”
“예.”
“그런데 바로 위층에 타깃인 놈이 입원해 있어서 경찰관과 국정원 요원 들이 세 명 정도 더 있었습니다.”
“흐음.”
생각지 못한 변수에 성무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체포된 차정태가 자살에 실패했다는 걸 알게 된 북한 공작원들은 조직의 비밀이 새어 나가기 전에 구출해 내거나 아예 입을 막아 버리기 위해 온 거였다.
“어떡하지요?”
말을 한 사람은 성무태의 오른팔이자 격술의 고수인 이정철이었다.
딱 벌어진 어깨에 눈빛이 매섭게 번득이는 것이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남조선 아새끼들 몇 놈 더 있다고 과업을 포기할 수는 없지.”
그러고는 시선을 뒤로 돌려 치료는 했지만 병색이 완연한 얼굴의 차정태를 보며 말했다.
“동무, 괜찮갔서?”
“일 없습니다.”
“좋았어. 시간 끌 것 없이 빨리 마무리 짓고 여길 뜨자고. 중간에 퍼지지 않게 저 동무 진통제 몇 대 놔 주라우.”
“알겠습니다.”
옆자리에 있던 공작원이 가방에서 유리로 된 약병과 일회용 주사기를 꺼내 심정열의 팔뚝에 약을 놔 줬다.
잠시 있자 통증이 싹 사라지면서 온몸에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아무리 한국 약이 좋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효과가 오는 것은 없었기에 심정열은 자신이 맞은 것이 마약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치료를 위해 모르핀 같은 마약성 진통제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건 그것보다 훨씬 순도가 높은 거였다.
몸을 좀먹는 행동이었으나 이대로 북한으로 돌아간다면 임무 실패에 대한 질책을 받고 자칫 불명예제대를 당할 수도 있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과오를 만회하기 위해서 마약을 투여하는 것도 불사했다.
“자, 가자.”
성무태의 말에 북한 공작원들은 차문을 열고 승합차에서 내렸다.
한편 혁권은 병실에서 내려와 로비에 있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었다.
“19,500원입니다. 넣어 드릴까요?”
“예.”
혁권은 카드를 내밀고 점원에게서 비닐봉투를 받아 들었다.
안에는 그가 즐겨 피우는 외국 브랜드 담배 두 갑과 500미리 생수병, 그리고 주전부리용 과자 몇 개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얇은 잡지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후우.”
바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지 않고 정문 현관 쪽으로 나온 혁권은 새로 산 담배를 뜯어 한 개를 입에 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최대한 벽면 구석진 곳으로 붙어 불을 붙인 그는 나른한 얼굴로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내리 쬐이는 햇살이 눈부시도록 밝아, 아직 여름이 아직 다 가지 않았음을 피력하는 듯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실내에만 처박혀 있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으나 이내 그것도 자업자득이란 생각에 입맛이 씁쓸해졌다.
하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서 있던 혁권은 구급대원 복장을 한 사내들이 빈 침대를 끌고 지나가는 걸 무심코 바라보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병원에 구급대원들이 드나드는 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왠지 이질감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뭐지······.”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던 그는 이내 구급대원들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맞아. 그놈이야.”
헬멧을 써 얼굴을 가렸지만 구급대원 중 한 명이 호텔 객실에 침입했다가 그가 쏜 총에 부상을 입고 도망쳤던 북한 공작원이었다.
뒤엉켜서 싸우는 난전 와중이라 이목구비를 세세하게 살필 겨를 따윈 없었으나 그래도 직감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혁권은 그 사실을 눈치챈 즉시 피우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세게 던져 버리곤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음질쳤다.
수배령을 피해 도망쳐도 시원찮을 놈이 어째서 병원에?
순간 입원해 있는 알아바디나 자신을 노리는 건가 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탈취하려던 TA-50 관련 보안 서류는 국정원 요원들한테서 아직 돌려받지 못했고, 자신 때문에 임무를 실패했다고 해도 그 복수를 하려고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이는 건 너무 비상식적인 행동이었다.
해답은 엘리베이터가 멈춰 선 층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5층이라면 자신이 때려눕혀 현장에서 체포된 북한 공작원이 치료를 받고 있는 곳이었다.
놈들이 뭘 하려는지 눈치챈 혁권은 재빨리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연결 음이 몇 번 울리고 백성균이 전화를 받자 그는 다급히 말했다.
“나야, 거기 별일 없지?”
-옛? 예.
“내 말 잘 들어. 북한 공작원들이 병원에 나타났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병실을 지키고 있어!”
-저, 정말이십니까?
깜짝 놀란 백성균이 말까지 더듬으며 되묻자 그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다가 이내 코너를 돌아 비상구 쪽으로 뛰어가면서 소리쳤다.
“그래! 길게 말할 시간 없으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알겠습니다.
손으로 문을 열 여유도 없이 그대로 발로 차 통로 안으로 들이닥친 혁권은 비상계단을 성큼성큼 뛰어오르면서 제 주머니를 뒤졌다.
“제길, 어디 있는 거야?”
그러다 마침내 바지 뒷주머니에서 구겨진 심인성 국정원 팀장의 명함 한 장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김혁권입니다.”
-어쩐 일이시오?
뭐 빠지게 계단을 뛰어 오르고 있는 자신과 달리 너무나도 느긋한 목소리에 그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튀어나오는 말이 곱지 않았다.
“놈이 버젓이 나타나 돌아다니고 있는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총에 맞은 채 객실에서 달아난 녀석이 여기 있단 말입니다.”
-그럴 리가.
심인성의 목소리에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정보력을 총동원하고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던 북한 공작원이 뜻밖의 장소에 나타났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로 코앞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세 명이 더 있었습니다. 5층으로 간 걸 보면 아무래도 붙잡힌 공작원을 구하러 온 것 같습니다.”
-이런!
베테랑 요원답게 심인성은 상황을 바로 파악하곤 말했다.
-알려 줘서 고맙소. 우리가 처리할 테니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으시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빨리 오기나 하십시오.”
종료 버튼을 누른 혁권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계단을 뛰어서 오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금방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예상과 달리 놈들이 알아바디가 있는 병실로 갈 수도 있었기에 쉬지 않고 발걸음을 놀렸다.
위이잉.
진동 소리에 병실을 지키고 있던 국정원 요원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거기 별일 없어!
다급한 심인성의 목소리에 국정원 요원은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북쪽 애들이 구급대원으로 위장해서 병원에 나타났다는 첩보가 있어!
“예?”
귀에 스마트폰을 댄 채 고개를 든 국정원 요원의 눈에 빈 침대를 끌고 다가오는 구급대원들이 들어왔다.
그중 한 명과 시선이 마주친 국정원 요원은 얼굴을 와락 구기면서 황급히 혁대에 찬 권총을 빼 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성무태가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먼저 쐈다.
푸슝!
“크헉.”
타앙!
요원이 쓰러짐과 동시에 커다란 총성이 울렸다.
방아쇠에 걸려 있던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면서 총탄을 발사한 것이었다.
“뭐, 뭐야!”
푸슝! 푸슝!
갑작스러운 상황에 엉거주춤 서 있던 다른 국정원 요원과 경찰관 들은 연이어서 발사된 총탄에 제대로 저항도 못 해 보고 목숨을 잃었다.
“꺄아악!”
요원들이 인형처럼 털썩 쓰러지는 것을 보고서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간호사가 제 볼에 튄 뜨끈한 피의 감촉을 느끼고는 그제야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자 복도에 있던 다른 환자와 보호자 들도 이쪽을 돌아보곤 공포에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 달아났다.
“쯧. 빨리 움직여!”
그 모습에 시끄럽게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던 성무태는 짧게 혀를 차며 부하들을 다그쳤다.
길쭉한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손에 들고 부숴 버릴 듯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얼굴 여기저기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차정태가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입에는 자살을 막기 위한 재갈이 물려 있었다.
“읍읍.”
난입해 들어온 이들을 보고 경계 가득한 표정을 짓던 차정태는 심정열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했다.
재갈을 벗겨 주자 차정태가 혁권한테 들이받혀 부러진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대위 동지.”
“괜찮나?”
“조금 다쳤지만 움직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잘됐군.”
심정열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차가운 시선으로 차정태의 상태를 살핀 성무태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어서 풀어 줘.”
허락이 떨어지자 심정열은 주머니에서 도구를 꺼내 순식간에 수갑을 풀어 줬다.
철커덕.
어깨를 부축해서 차정태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 바깥에서 요란한 총성이 터졌다.
타탕! 탕! 탕!
“뭐야!”
“국정원 아새끼들입니다.”
이정철의 외침에 성우태는 눈썹을 찡그렸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불리한 건 자신들이었다.
미간을 좁힌 성우태는 손에 든 권총 슬라이드를 뒤로 당겨 장전하고는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