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25
225
바쁘게 일을 진행시키고 있을 때 거물 암거래상인 압둘라흐만의 전화가 걸려 왔다.
-미스터 김, 어디서 전쟁이라도 벌일 셈인가?
인사를 건너뛴 압둘라흐만의 이야기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이거, 안 보는 사이에 사람이 아주 과격해졌어.
“그보다 압둘라흐만 씨는 어때요?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항상 똑같지. 듣자 하니 지난번에 독일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
“언젠가는 되갚아 줘야 하겠지만 이번은 아닙니다.”
-단순 무기 거래용이라고 하기에는 주문한 내역이 수상해서 묻는 말이야. 그럼 대체 목적이 뭔가?
압둘라흐만이 묻는 것은 치우 팀이 쓸 장비와 물자였다.
피카티니 레일을 장착한 HK416 자동소총, 야시경과 연결되는 광학 조준경 그리고 최신 FAST 헬멧에다가 헤드세트형 통신기까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들이었다.
아주 고가품이라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 정부군과 반군 들이 쓸 장비는 절대 아니었기에, 눈치가 빠른 압둘라흐만이 뭔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곤 이렇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일이 시작되기 전에 자칫 반군한테 정보가 누설되기라도 한다면 큰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몰랐기에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쪽 세계로 처음 발을 들이도록 하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 후견인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인 데다 압둘라흐만의 정보력이라면 얼마 안 가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기에 그냥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최근에 다이아몬드 광산을 하나 매입했는데, 불청객들이 거길 점거하고 있어서 쫓아내려고 합니다.”
-호오. 다이아몬드라……. 그거 아주 매력적인 보석이지. 혹시 광산이 시에라리온에 있는 건가?
“맞습니다.”
이어진 이야기에 역시나 압둘라흐만이 어느 정도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값어치가 큰 것인 만큼 피를 부르는 요물이니까 거기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될 걸세.
“명심하지요.”
-화물은 납기일에 맞춰 원하는 곳으로 보내 주겠네.
용건이 끝났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압둘라흐만의 목소리가 밝게 변했다.
-참, 그렇지. 자네 얼굴 본 지도 너무 오래됐는데 슬슬 이쪽에 발걸음 한번 해 볼 생각 없나?
“안 그래도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풍광이 아주 좋아. 느긋하게 휴양을 즐기려면 최고지. 예전엔 프랑스의 니스 해변이 괜찮았는데 관광객이 너무 많아져서 이젠 별로야.
그는 근처라도 오게 되면 꼭 들르라면서 재차 말했다.
-자넨 언제라도 환영받는 손님이니까.
“그러지요.”
통화를 끝낸 혁권은 스마트폰을 안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왼편 소파에 앉아 있는 김덕현 전무를 봤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지.”
“예.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기니 공화국 쪽을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라이베리아 역시 보급기지로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닙니다.”
“왜 그렇지?”
“일단 제대로 된 공항 시설이 있는 도시에서 광산 지역까지 거리가 최소 26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 중간 급유지를 따로 설치하지 않으면 보급이 쉽지가 않습니다.”
한국과 달리 열약한 아프리카 지역의 기간 시설을 고려하면 최소한의 규모를 갖춘 공항을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나 라이베리아는 오랜 내전을 끝낸 지 1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 데다 유엔 정전 감시 병력이 상시 주둔하고 있을 정도로 정치 상황이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
“적당한 곳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야?”
김덕현 전무는 탁자에 펼쳐 놓은 커다란 지도에서 한 지점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여깁니다.”
“케네마Kenema?”
“그렇습니다. 여기라면 광산까지 직선거리로 89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으니까, 별도의 연료 보충 없이 헬리콥터로 왕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거기에다가 도시 북쪽에 제법 큰 규모의 공항까지 있어 보급기지로 딱 안성맞춤입니다.”
“흐음.”
몸을 살짝 앞으로 당겨 앉은 그는 지도에서 케네마의 위치를 살펴보며 흥미를 보였다.
“여긴 아직 반군이 점령하지 못한 모양이지?”
“예. 확인한 바로는 인접한 팡구마까지는 내려왔지만 프리타운을 함락시키는 데 전력을 집중하면서 케네마까지는 쳐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반군 입장에서 수도인 프리타운을 함락시켜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이 최우선 목표일 테니 당연한 행동이었다.
덕분에 혁권은 광산을 탈환하는 데 최적의 보급 거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거기다가 시에라리온 정부에서 이미 저희의 무력 사용을 허가해 준 상태이니까 공항 사용권을 얻어 내는 것도 한결 쉬울 겁니다.”
“듣고 보니 그렇군.”
라이베리아를 통해 보급을 하려면 그쪽 정부와 별도의 협상을 벌여야 했기에 여러모로 번거롭고 추가 지출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케네마를 거점으로 선택한다면 그런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런 조건이라면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케네마 상황을 좀 더 확실하게 알아본 다음에 괜찮다면 거점을 그곳으로 정하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새로 부하로 받아들인 은완코와 함께 함단이 프리타운에 머물고 있었기에 둘을 시켜 케네마를 직접 살펴보도록 하면 됐다.
“그리고 계약한 대로 3개월 치 비용인 750만 달러(한화로 약 85억 원)를 아틀라스사 계좌로 입금시켰습니다.”
“잘했어. 그럼 시에라리온 광산에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이 얼마나 되지?”
“보크사이트 광산을 추가로 매입한 것과 기타 지출을 모두 합치면 1,300만 달러(한화로 약 146억 원)가량 될 겁니다. 정확한 내역을 정리해서 보고 드릴까요?”
김덕현 전무의 말에 그는 한쪽 팔을 내저었다.
“아니, 됐어. 그것보다 내일 법인 계좌로 500만 달러를 입금시킬 테니까 그걸로 당분간 비용을 충당하도록 해.”
그렇지 않아도 지사 운용 자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라 돈 이야기를 꺼내려던 김덕현 전무는 반색을 했다.
“예.”
아직은 태일그룹에서 합의금으로 받아 낸 돈 안에서 해결이 됐기에 딱히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만약 5,000만 달러를 넘긴다고 해도 그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자금을 투자했는데 막상 다이아몬드 광산의 가치가 낮거나 탈환에 실패한다면 상당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발을 빼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고 다이아몬드를 채굴해 내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최대한 빨리 반군을 밀어내고 광산을 탈환한 뒤에 다이아몬드를 캐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국에서 일을 거의 마무리 짓고 출국을 준비하고 있을 때 뜻밖의 손님이 그를 찾아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혁권은 하킴과 함께 붉은색 카펫이 깔린 호텔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 제일 끝에 위치한 객실 앞에 발을 멈췄다.
방문 한가운데 붙어 있는 호실 번호를 확인하곤 그가 머리를 작게 끄덕이자 하킴이 초인종을 눌렀다.
찌이잉.
얼마 안 있어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객실 문이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지난번에 독일에서 봤던 흑인 CIA 요원이었다.
그와 하킴을 힐끔 쳐다본 CIA 요원은 옆으로 비켜서며 짧게 말했다.
“들어가십시오.”
CIA 요원을 지나쳐 객실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샌더슨이 일어나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어서 오시오.”
혁권은 샌더슨이 내민 손을 잡으며 악수를 했다.
“갑자기 무슨 일로 서울까지 먼 걸음을 했는지 궁금하군.”
“꼭 일이 있어야 된다는 법은 없잖소.”
“그럼 CIA가 여기까지 단체 관광이라도 왔단 말이오? 미국도 참 평화로운 모양이로군.”
콧방귀를 뀌면서 대꾸하는 말에 샌더슨이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소파에 마주 앉자 샌더슨이 탁자에 놓여 있던 위스키 병을 집어 들며 물었다.
“한잔하겠소?”
“조금만 주시오.”
샌더슨은 빈 잔에다가 얼음을 몇 조각 넣은 뒤 위스키를 약간 채우고는 그의 앞에 내려놨다.
“서로 바쁘니 본론부터 이야기합시다. 정말 내 얼굴을 보러 온 건 아닐 테고 여기까지 무슨 일이오?”
그러자 샌더슨이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느긋한 얼굴로 말했다.
“뭐가 그렇게 급하오?”
“우리가 한가하게 농담 따먹기나 하고 앉아 있을 사이는 아니지 않소.”
약간은 퉁명스러운 말에 상대는 어깨를 으쓱이곤 이내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를 한다면 미스터 김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윗선에서 승인이 났소.”
기다리던 대답에 혁권은 눈에서 이채를 띠었다.
하지만 이어진 샌더슨의 말에 콧잔등을 찡그렸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게 뭐요?”
샌더슨이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이름은 마싱가 RUF 반군 간부로 시에라리온에서 불법적으로 캐낸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IS와 거래하고 있는 걸로 파악된 인물이오. 더불어서 유럽에서 벌어진 몇 차례의 테러와도 관련이 있어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놈이오.”
두툼한 입술에 선글라스를 낀 마싱가의 사진을 쳐다본 혁권은 이내 고개를 바로 하며 말했다.
“그래서 날보고 어쩌라는 거요?”
“마침 이놈이 미스터 김의 광산에 머무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게 됐소. 해서 일을 벌이는 김에 마싱가를 함께 제거해 줬으면 좋겠소.”
이야기를 듣자마자 혁권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갑자기 한국까지 날아온 걸 보고 뭔가 원하는 것이 있다고 짐작했지만 이런 요구를 할 줄은 몰랐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탈환하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해도 부족할 판에 CIA의 뒤치다꺼리까지 하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색을 한 혁권은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CIA에서 할 일을 왜 나보고 하라는 거요! 그까짓 헬기 필요 없으니 다 그만두시오.”
비용이 더 들어가겠지만 찾아보면 다른 이동수단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흥분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시오. 어차피 광산을 탈환하려면 마싱가의 부하들과 충돌을 벌이게 될 테니, 그때 놈을 없애 버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소.”
“그렇게 쉬우면 CIA에서 직접 처리하지, 왜 날 시키는 거요?”
그가 날카롭게 되묻자 샌더슨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능청스럽게 말을 받아 넘겼다.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직접 병력을 투입하면 여러 가지로 해결해야 될 것들이 많으니까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오.”
“그래서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날 총알받이로 내세우겠다?”
부릅뜬 눈에 매서운 질책의 빛이 깃들자 샌더슨이 진정하라는 듯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물론 공짜로 해 달라고 할 수는 없지. 나름대로 합당한 대가는 치러 주겠소.”
“대가?”
샌더슨이 몸을 살짝 기울여 은근한 목소리로 속닥였다.
“앞서 제시한 돈을 안 받는 건 물론이고 무인기 한 대를 띄워서 정찰 정보를 알려 주도록 하겠소. 이 정도면 그쪽도 손해는 아닐 것 같은데…….”
돈이야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나 무인기를 이용한 정찰 정보는 구미가 당겼다.
공격에 앞서 상대의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면 그만큼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잠시 머릿속으로 득실을 따져 본 혁권은 이내 고개를 다시 들었다.
“거기에 더해서 필요한 장비와 무인기에 탑재된 헬파이어 미사일로 근접 지원을 해 준다면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소.”
“장비는 모르겠지만 공중 지원은…….”
상대가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이자 혁권이 딱 잘라 말했다.
“그 정도 지원도 못해 주겠다면 더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소.”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모습에 샌더슨이 얼른 그를 붙잡았다.
“알았소. 그렇게 해 주겠소.”
“나중에 딴 이야기를 하기 없기요?”
“물론이오.”
샌더슨이 머리를 끄덕이자 그때서야 혁권은 다시 소파에 앉고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