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5
25
기자들이 원하는 특종을 제대로 터트렸으니 조지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라면 리비아 특파원 기간이 끝난 뒤 그가 원하는 메인 뉴스 앵커 자리도 꿈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카메라맨이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말했다.
“1분 뒤에 생방송 연결이니까. 준비해.”
“알았어.”
난간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조지는 배경으로 아직도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는 호텔을 두고 카메라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뒤 카메라맨이 신호를 주자 귀에 꽂은 리시버에서 남자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지 기자.
“네. 여기는 트리폴리 코린시아 호텔 테러 현장입니다.”
방금 전까지 늘어져 있던 것과 달리 조지는 열정에 가득 찬 기자의 모습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아직도 대치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부비트랩 폭발 이후 정부군은 행동을 자제하며 호텔을 장악하고 있는 테러범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이슬람 형제단이 이번 테러의 배후라고 스스로 밝히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며 감옥에 갇혀 있는 조직원 마흔 명을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리비아 정부에서 요구를 들어주는 데 난색을 표하면서 사태는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준비한 내용을 말하고 있던 조지는 갑자기 카메라맨이 손짓으로 호텔을 가리키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 순간 지하 주차장을 나와 폭발로 엉망이 된 호텔 앞을 가로지르며 질주하고 있는 짐차를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헉!”
방송인 것도 잊고 헛바람을 삼킨 조지는 이내 마이크를 고쳐 잡으며 잔뜩 흥분한 채 외쳐댔다.
“지금 테러범들이 장악한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정체불명의 짐차 한 대가 나와 정부군 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당황하던 스튜디오에서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긴장된 어투로 말을 받았다.
-무슨 일이죠. 혹시 자살 테러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요?
폭탄을 가득 채운 차량을 몰고 가 자살 테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충분히 그런 의심을 할 수 있었다.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 호텔 쪽에서 짐차를 향해 총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조지의 말대로 테러범들이 쏴 대는 총탄이 짐차에 쏟아지고 있었는데 마치 액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런 멋진 영상을 놓칠 리 없는 카메라맨은 망원 렌즈를 최대한으로 당겨서 총격을 받으며 질주하는 짐차의 모습을 생생하게 촬영했다.
“테러범들의 행동으로 볼 때 자살 폭탄 공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정부군에서 엄호사격을 시작했습니다!”
“사격 개시!”
후세인 대령의 명령에 호텔을 포위하고 있던 정부군 병사들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타타탕! 타탕! 탕! 탕!
처음 짐차가 지하 주차장에서 불쑥 튀어 나왔을 때만 해도 방송국 앵커처럼 자살 폭탄 공격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호텔에 있던 테러범들이 짐차를 공격하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총격을 가한 것이 자신들을 속이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가차 없이 날려 버리도록 RPG-7으로 겨냥을 하고 있었다.
“으악!”
“컥.”
정부군의 총탄 세례에 동료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짐차가 사정거리를 벗어나 버리자 테러범들은 분한 표정을 지으면서 건물 안으로 물러났다.
끼이이익.
호텔 구역을 빠져나와 정부군이 있는 곳에 도착한 혁권은 급히 브레이크를 밝았다.
짐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한참을 더 가서야 겨우 멈춰 섰다.
범퍼는 부서져 보이지도 않고 보닛도 여기저기 우그러진 채 엔진 룸에서는 하얀 연기까지 솟아올랐다.
차는 엉망이 됐지만 무사히 호텔을 탈출한 것에 혁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멋진 운전 실력이었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자말이 AK 소총을 대시 보드 위에 던지듯 올려놓으며 말하자 그새 조금 여유를 되찾은 혁권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자네도 수고했어. 나 혼자였다면 저기서 살아 나오기 힘들었을 거야.”
“그게 제 일이잖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툭 내던지는 말투에 혁권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만 앞선 것보다 과묵하게 맡은 일을 처리하는 자말이 너무나도 믿음직스러웠다.
어느새 주위를 포위한 정부군 병사들이 총구를 겨냥한 채 다가오는 걸 본 혁권은 엔진 시동을 끄며 말했다.
“그럼 나가 볼까.”
“그러시죠.”
총탄에 깨진 차창 밖으로 아무것도 없는 두 손을 보여 주며 혁권이 영어로 소리쳤다.
“우린 테러범이 아니오. 쏘지 마시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총구가 두 사람에게 집중됐고 이내 병사 몇 명이 앞으로 나왔다.
최정예 부대답게 오합지졸인 다른 정부군 병사들과 달리 제법 군기가 살아 있고 행동도 재빨랐다.
가까이 다가온 병사들은 자살 테러에 대비해 혹시 몸에 폭탄이나 무기를 숨기고 있는지 수색을 했다.
아직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었기에 신경이 바짝 곤두선 정부군 병사들의 손길은 상당히 거칠었다.
그때 대위 계급장을 단 사내가 나타나 두 사람을 아래위로 훑어 봤다.
“당신들 정체가 뭐야!”
그의 외모를 보고 대위가 영어로 묻자 머뭇거리지 않고 혁권이 당당한 태도로 대답했다.
“우린 호텔 투숙객입니다. 테러범들을 피해 숨어 있다가 탈출을 한 겁니다. 짐칸에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확인해 보십시오.”
한편의 활극을 찍으며 호텔을 빠져나온 이들이 평범한 투숙객이라는 말에 대위는 불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부하 몇 명을 불러 고압적인 목소리로 짐칸을 살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짐칸을 열자 그때까지 두려움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던 일행이 하나둘 병사들한테 이끌려 차에서 내렸다.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던 정부군은 정부 고위 관리인 모함메드가 나서자 분위기가 바로 바뀌었다.
“내가 누군지 몰라! 어렵게 탈출했는데 이게 뭐 하는 짓들이야.”
“죄, 죄송합니다.”
혁권을 대하던 것과 달리 바짝 얼어붙은 대위는 말까지 더듬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호텔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려는 듯 모함메드 장관은 고압적인 모습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고 이내 혁권과 일행은 안전한 곳으로 안내됐다.
그 전에 혁권은 괜히 잘못 걸려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위한테 가서 말을 걸었다.
“여기 지휘관을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로 그러시는 겁니까?”
“테러범들이 진압을 시도하면 건물 자체를 무너뜨리려고 곳곳에 폭탄을 설치해 놨습니다.”
“……!”
귀찮아하며 쳐다보던 대위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 폭탄이라고 했습니까!”
“여기 계신 장관님도 보셨습니다.”
대위가 고개를 돌리자 모함메드 장관이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아차린 대위는 즉시 혁권을 지휘관인 후세인 대령에게 데려갔다.
상황 설명을 들은 후세인 대령도 눈을 크게 뜨며 경악성을 흘렸다.
“그게 사실이오!”
마치 죄인을 심문하듯 상대가 다그치듯 되묻자 혁권은 살짝 이맛살을 모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증거를 보여 드리죠.”
그러고는 뒤쪽에 선 병사가 들고 있는 자신의 가방을 바라보자 후세인 대령이 넘겨주라며 눈짓을 했다.
압수됐던 가방을 건네받은 그는 테러범들이 다시 폭탄을 사용하지 못하게 챙겨 둔 신관들을 꺼냈다.
“설치된 폭탄을 해체하면서 나온 신관입니다.”
그중 하나를 집어 자세히 살펴본 후세인 대령은 낮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으음. 곡사포용 포탄 신관이 확실하군.”
“건물 하중을 지탱하는 기둥에다가 설치해 둔 걸 볼 때 정부군 병사들이 진입을 하면 호텔 자체를 무너뜨리며 자폭을 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개자식들!”
후세인 대령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미 부비트랩에 부하들을 잃은 상태에서 테러범들이 또 이런 함정을 파두고 있었다는 것에 분노를 드러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놈들이 다시 폭탄을 설치하기 전에 어서 호텔로 들어가십시오.”
잠시 고심을 하던 후세인 대령은 옆에 있던 부관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부관.”
“옛.”
“당장 병력을 투입해!”
“알겠습니다.”
경례를 하며 대답한 부관이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뛰어가자 고개를 바로 한 후세인 대령은 그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까 호텔에 투숙해 있던 상사 직원이라고 하지 않았소?”
“맞습니다.”
“회사원이 폭탄을 해체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요?”
일반인이라면 해체는커녕 폭탄을 보자마자 도망치기 바쁠 것이기에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혁권은 굳이 비밀도 아니었기에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한국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전부 2년간 군대에 가는데 저도 복무 중에 해체술을 배웠습니다.”
“아…….”
그때서야 이해가 됐다는 듯이 후세인 대령은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탄성을 흘렸다.
“군 출신이었구먼. 어쩐지. 아무튼 덕분에 큰 도움이 됐소.”
호의적인 표정을 지으며 후세인 대령이 먼저 악수를 청하자 혁권은 얼른 손을 맞잡았다.
“당연히 도와야지요. 부디 성공적으로 진압 작전을 끝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소.”
“여단장님, 작전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후세인 대령은 다시금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난 이만 가 봐야겠소.”
“그러십시오.”
후세인 대령이 부관과 함께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자 뒤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자말이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냉혈한이 미소를 짓다니 어지간히 보스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아는 사람이야?”
혁권의 물음에 자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 내전 때 벌인 트리폴리 시가전에서 후세인 대령이 지휘하는 아부카 여단에 저희 부대가 괴멸을 당했습니다.”
“그랬군.”
슬쩍 말끝을 흐리는 혁권과 달리 자말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보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인데요.”
“…….”
잠시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때마침 진압 작전을 시작한 정부군 병사들을 보며 혁권이 화제를 돌렸다.
“이제 치고 들어가려는 모양이군.”
앞선 공격 실패로 신중해진 정부군은 먼저 연막탄을 대량으로 터트려 테러범들의 시야를 가렸다.
그러고는 기관총 사격으로 적의 움직임을 봉쇄하면서 병력을 대거 투입했다.
카카캉!
“으아아.”
투퉁!
“끄헉!”
테러범들도 반격에 나섰지만 화력에서 정부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푸슝! 쿠웅!
호텔에서 RPG 로켓이 날아오자 후세인 대령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기 중이던 BMP-3 장갑차에 탑재된 100mm 저압 활강포를 발사했다.
콰쾅!
“커헉.”
비명이 울리며 건물 한쪽 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이어진 기관총 세례에 테러범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막에 몸을 숨긴 채 가까이 접근해 있던 정부군 병사들이 일제히 호텔 안으로 돌입했다.
“돌격!”
타타탕! 탕!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