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383
383
-금수 조치와 점차 F-14전투기가 노후화되면서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란 공군이 러시아로부터 최신예기인 SU-35S 구매를 추진 중이라는 첩보가 있어. 아직 협상 단계지만 정말로 도입이 이루어진다면 중요한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Hormuz strait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지.
SU-35S는 러시아 수호이사가 제작한 다목적 전투기로 서방의 우수한 전자 기술을 대거 채용한 4.5세대 성능을 자랑하는 최신예 기체였다.
러시아 공군의 주력이자 F-15에 대항하는 SU-27의 개량형으로 그중에서 SU-35S는 러시아에서도 최근에서야 개발을 끝내고 배치를 시작한 전투기였다.
F-14가 아무리 손에 꼽히는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발전된 항공 전자 기술이 집약된 SU-35S와 비교해서 한참 성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F-14하고 달리 러시아 기체라 제재 조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손쉽게 부품과 무장을 구매할 수 있으니, 만약 실제로 SU-35S가 이란에 대량으로 도입된다면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위협이었다.
머릿속으로 CIA의 의도를 유추해 낸 혁권이 눈가를 찌푸렸다.
“이란이 더 좋은 전투기를 사들일 것 같으니까 F-14 부품을 줘서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 SU-35S가 뜨는 걸 최대한 늦추겠다. 이건가?”
-맞아. 금수 조치가 유효한 상황에서 대놓고 부품을 넘겨줄 수는 없으니까 중간에 자넬 끼워 넣는 거지.
결국 CIA의 꼭두각시가 되어 원하는 대로 움직이라는 뜻이었다.
탐탁지 않은 마음에 막 거절하려고 할 때 상대가 먼저 이야기를 했다.
-지난번 시리아에서 항공폭탄을 넘겨준 빛을 이걸로 갈음하도록 하지.
“쯧.”
이쪽에서 거절하지 못하도록 샌더슨이 먼저 선수를 쳐 버리자 그는 짧게 혀를 찼다.
먼저 도움을 받은 것이 있었기에 싫다고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런다면 앞으로 샌더슨하고는 끈이 끊어진다고 봐야 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자넨 돈을 챙기고 이란 측은 필요한 부품을 얻고 우린 러시아 전투기의 도입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으니 모두가 다 이득을 보는 일이지 않겠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필요한 부품도 우리가 다 알아서 구해 줄 테니 그냥 받아서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고. 이것보다 쉬운 돈벌이가 어디 있겠어? 한국에서는 이런 걸 보고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한다지.
“다른 거래상도 많을 텐데 왜 날 선택한 거요?”
-제일 믿을 수 있으니까.
“웃기는군.”
실소를 흘리자 샌더슨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입이 무겁고 일 처리가 확실한 건 인정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런 제안을 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군.”
-사실이니까. 어때, 할 거야?
잠시 고심을 한 혁권은 이내 스마트폰을 고쳐 쥐면서 말했다.
“뒤통수를 치거나 하지는 않겠지.”
-후후후. 염려하지 마.
“이란 쪽과 이야기를 해 본 다음에 다시 연락을 주겠소.”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도록 하지.
혁권은 통화를 끝낸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또 귀찮은 일에 말려들었군.”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미국 정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금수 품목인 만큼 좀처럼 구하질 못하고 있던 하즈사피는 혁권의 연락을 받고는 반색했다.
-존슨, 내가 보낸 메일을 확인했소?
인사를 생략한 채 다짜고짜 용건부터 이야기하는 하즈사피의 말에 그도 바로 대답했다.
“처음 이야기했던 것보다 품목이 더 늘어난 것 같더군요.”
하즈사피가 암호화된 메일로 보낸 주문서에는 TF-30P-414A 터보팬 엔진 20개 말고도 F-14 전투기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들이 여러 개 포함되어 있었다.
레이더는 물론이고 전투기용 타이어까지 들어가 있어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주문한 부품들을 조립하면 전투기 몇 대는 거뜬히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일단 필요한 품목은 다 포함시켰소. 그중에 할 수 있는 것들만 구해다 주면 되오.
퇴역을 시킨 지 꽤 됐지만 미국 정부가 일련번호까지 매겨 F-14 기체와 잉여 부품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하즈사피도 그리 큰 기대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흐음.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이 있으시면 편하게 하십시오.”
-스페로우나 피닉스 미사일도 구할 수 있으면 가져다줬으면 좋겠소.
두 미사일 다 F-14 전투기에 장착되는 무기로 역시나 금수품으로 묶여 있는 것들이었다.
“흐음. 글쎄요. 알고 계시겠지만 말씀하신 것들은 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관리가 엄격하게 이루어져서 빼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 꼭 해 달라는 건 아니고 가능한지 한번 알아만 봐 달라는 거니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소.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물건은 언제쯤 받을 수 있겠소?
샌더슨과 연락을 취하면 금방 날짜가 나올 테지만 혁권은 일부러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말을 얼버무렸다.
“일단 물건이 구해지는 걸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모호한 대답에 하즈사피는 다소 불만스러운 기색이었으나 상황을 이해한 듯 별다른 질책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가능한 한 서둘러 주시오.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낸 혁권은 하즈사피가 요구한 품목과 수량을 정리해서 샌더슨한테 보냈다.
어차피 CIA에서 구해 주는 걸 받아 그대로 넘겨주기만 할 거였기에 어떤 품목을 얼마만큼 줄 건지는 고스란히 그쪽 몫이었다.
혁권은 그저 중간에서 이득만 취하면 됐고 괜히 불필요한 일에 말려드는 걸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라도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집에서 쉬는 휴일 혁권은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오락 프로를 보고 계시는 부모님께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이거 지난번에 보신 거 아니에요?”
“다른 채널도 딱히 볼게 없어서 그냥 틀어 놓은 거야.”
한쪽 손에 리모컨을 든 아버지의 말에 그는 머리를 가볍게 내저었다.
“날씨도 좋은데 집에만 계시지 마시고 밖에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는 것이 어때요?”
“뭐 하러. 괜히 나가면 미세먼지만 잔뜩 마시지. 그냥 집에 이렇게 있는 게 쉬는 거야.”
“저렇게 하늘이 맑은데 무슨 미세먼지예요. 오랜만에 꽃구경도 하고 좋잖아요. 나간 김에 가족들끼리 외식도 하고요.”
“쓸데없이 돈을 왜 써? 바깥에서 사 먹는 것보다 집 밥이 몸에 더 좋아.”
어머니도 별로 내켜 하시지 않았지만 혁권이 억지를 부렸다.
“에이, 그러지 말고 나가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족끼리 외식을 하겠어요. 어머니도 점심을 안 차려도 되고 좋잖아요.”
“얘가 왜 이래?”
“맞다. 지난번에 백화점에서 사 드린 옷을 입고 나가시면 되겠네. 어서 갈아입고 나오세요.”
어머니는 억지로 등을 떠밀리듯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결국 옷을 갈아입고 나오신 부모님은 혁권의 차를 타고 아파트를 나섰다.
“뒤에 안 좁으세요?”
머리 위에 달린 룸미러로 힐끗 쳐다보면서 묻자 뒷좌석에 앉은 어머니가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괜찮아. 그런데 왜 차를 이런 걸 샀니?”
“나름 좋은 건데, 마음에 안 들어요?”
“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점잖은 걸 타야지. 차 문도 한 짝밖에 없고, 이게 뭐니? 너 혹시 가끔씩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도로에서 속도 무시하고 막 달리는 건 아니지?”
“하하하. 그럴 리가요.”
그러자 옆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도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여셨다.
“겁 없이 차를 몰고 다니는 걸 볼 때마다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몰라. 사고를 내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주는 거야.”
“염려하지 마세요. 15년 무사고 모범운전사 아들인데 제가 설마 그러고 다니겠어요.”
“그래야지.”
차에 문짝이 두 개 달린 것 때문에 괜히 부모님한테 한 소리를 듣자 혁권은 내심 가족을 태울 때 쓸 승용차를 따로 한 대 더 사야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는 사이 혁권의 차는 새로 산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왜 들어온 거냐?”
“아, 잠깐 들를 데가 있어서요.”
다른 사람을 태워 가는 것도 아닌데 남의 아파트에 들를 이유가 어디 있을까.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눈치 빠른 어머니는 대번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너 혹시……?”
평소 혁권이 새집 타령을 해 대던 걸 귀 기울여 듣던 터라 설마, 하는 촉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바로 알아차리셨네.”
혁권은 옆의 아버지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어차피 미리 말하면 반대하실 게 뻔하니까 제가 그냥 계약해 버렸어요.”
“너 진짜!”
“뭔데 그래?”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는 아버지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아, 휴, 글쎄 얘가 우리 집을 샀다지 뭐예요.”
“뭐어?”
그제야 아버지의 눈도 크게 떠졌다.
“자, 자,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구경이라도 한번 해 보세요.”
당장이라도 잔소리가 쏟아질 것을 혁권이 능청맞은 웃음으로 틀어막았다.
다년간 바이어들을 상대하면서 쌓은 스킬이 부모님을 상대로 빛을 발할 줄이야.
혁권은 입주민만 사용할 수 있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두 사람을 달래며 위로 올라왔다.
“정원은 잘 꾸며 놨구먼.”
분재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가 제일 먼저 반응을 보였다.
단순히 가로수를 몇 개 심어 놓은 게 아니라 나름 사계절에 피는 꽃과 모양을 생각해서 아파트 단지 전체를 빙 둘러 가며 길을 따라 꼼꼼히 꾸며 놓은 것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었다.
비록 흠흠, 헛기침을 내뱉으며 마지못해 토해 낸 감상이긴 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쯤에서 어머니는 어떤가 하고 보았더니 옆을 지나가는 유모차 탄 아기에게 정신이 팔려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어머나, 아기가 참 귀엽네.”
“이제 3개월째예요.”
아기나 동물이 있으면 금방 친해지는 여자들의 습성에 따라 분명 생판 본 적이 없을 젊은 주부하고도 이미 아는 사이인 것처럼 친숙하게 얘기를 나눴다.
유모차의 아기가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흔들자 딸랑하며 맑은 소리가 울렸다.
“예쁘기도 하지.”
그럼 전 이만, 하고 고개를 숙인 뒤 마트에 살게 있다고 먼저 가 버리는 주부의 등을 어머니가 아쉬운 눈으로 뒤쫓았다.
“놀이터도 잘되어 있네. 애들 키우기 참 좋겠다.”
주부와 헤어져 조금 더 단지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엔 제법 넓게 지어진 놀이터가 있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꺄아 소리를 내지르면서 놀고 있는 모습에 어머니는 저절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쪽으로 가면 헬스장도 있어요.”
이때를 놓칠세라, 혁권이 재빨리 덧붙였다.
“날씨 궂은 날에도 편하게 운동하실 수 있으니 좋지 않아요? 두 분 다 슬슬 건강관리를 하셔야 할 때고…….”
“뭐라는 거야? 내 무릎은 아직 멀쩡해.”
의도와는 달리 아버지가 발끈했으나 어쨌든 전에 살던 아파트하고는 차원이 다른 주변 환경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분명했다.
혁권은 생각 외로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곧 새로 들어가서 살게 될 집을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비밀번호는 일단 아버지 생신으로 해 놨어요.”
나중에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부언 설명과 함께 혁권이 입으로 드럼 소리를 내면서 문을 활짝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