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391
391
짐을 다 싸 놓고 공항까지 데려다줄 차량을 기다리고 있던 김영철과 수행원들은 갑자기 객실 문이 열리면서 무언가 시커먼 물체가 날아들자 본능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 뭐야!”
“피해!”
하지만 놀란 외침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둔탁한 폭음이 울리면서 환한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밖에서 던져 넣은 건 강력한 빛을 뿜어내서 순간적으로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드는 섬광탄Flash bang이었다.
“아앗!”
상대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휘청거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혁권과 부하들이 객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고는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피슝! 피슝! 피슝!
낮은 총성이 연달아 울리자 비틀거리면서도 품속에 넣어 둔 권총을 뽑아 들려던 수행원들이 억눌린 신음을 토해 내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뒤로 넘어졌다.
“으악.”
“크흑!”
김영철 역시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을 꿰뚫는 느낌을 받으면서 쓰러졌다.
“으…….”
차가운 객실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진 김영철의 흐릿한 눈에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혁권의 얼굴이 잠시 담겼다가 이내 의식을 잃었다.
마지막 확인사살을 하려고 할 때 하킴의 목소리가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보스, 이건 것 같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소파 바로 옆에 은색 하드케이스와 함께 검은색 헝겊 가방이 두 개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확인해 봐.”
혁권의 말에 하킴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외교 행낭이라는 표식과 함께 단단히 밀봉되어 있는 은색 하드케이스를 열었다.
달러 고액권 뭉치가 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걸 보고 혁권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찾았군.”
얼핏 봐도 수백만 달러는 되어 보였다.
혹시 몰라 같이 있던 헝겊 가방도 마저 열어 보자 거기서도 돈뭉치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잭팟Jackpot을 터트렸군.”
“그러게 말입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어서 다 챙겨!”
“알겠습니다.”
하킴은 얼른 등에 매고 있던 백팩에 은색 하드케이스를 통째로 집어넣었고 헝겊 가방은 부하 한 명이 양손에 들었다.
돈이 얼마나 무거운지 헝겊 가방을 든 부하는 잠깐 중심을 못 잡고 몸을 휘청거렸다.
“가자!”
최대한 신속하고 조용하게 움직였다고 해도 섬광탄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다른 객실에 있던 투숙객이 프런트로 전화를 걸었을지 몰랐기에 빨리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혁권이 앞장을 섰고 하킴과 부하가 돈 가방을 들고 바짝 붙어 왔다.
나머지 한 명은 제일 뒤에 서서 경계 자세를 취했다.
텅 빈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간 일행은 곧장 멈춰 서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혁권이 손을 뻗어 작동 스위치를 다시 올리고는 지하 2층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덜컹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문이 닫히고는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고개를 돌려 함께 타고 있는 부하들의 얼굴을 한 명씩 쳐다본 혁권은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무사히 돈 가방을 탈취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하 2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바로 앞에 밴을 세우고는 백성균이 옆문을 활짝 열어 둔 채 손짓을 했다.
“어서 타십시오!”
혁권과 부하들이 짐을 던져 넣으면서 밴에 올라타자 계속 시동을 걸어 두고 있던 알아바디가 지체 없이 가속 페달을 밟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부아아앙.
거친 엔진 소리를 토해 내면서 튕기듯 앞으로 나간 밴은 지하 주차장 출구와 이어진 비탈을 올라섰다.
끼끼끽.
올라가는 길이 상당히 좁아 벽에 차체가 긁힐 것 같았지만 알아바디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타이어와 바닥이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밑에서 고무 타는 냄새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빨리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 급했기에 아무도 천천히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좁은 통로가 끝나고 환한 햇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일행이 탄 밴이 지하 주차장 밖으로 나왔다.
차들이 차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알아바디는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대로에 들어섰다.
빵빵! 빠아앙.
화들짝 놀라 멈춰 선 차들이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 댔지만 일행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차선을 바꾸면서 앞선 차들을 추월해 가자 혁권이 힐끗 계기판에 붙어 있는 속도계 바늘을 보며 말했다.
“괜히 교통경찰한테 잡히면 골치 아프니까 속도를 줄여.”
“예.”
애애앵. 애애앵.
얼마쯤 가자 뒤늦게 신고가 들어갔는지 반대편 차선에서 순찰차 두세 대가 경광등을 번쩍이면서 지나가는 모습에 혁권이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면서 말했다.
“센토사Sentosa 섬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이 상태라면 넉넉하게 잡아서 2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20분이라…….”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서 가야 되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빨리 도착하는 거였다.
하지만 혁권은 마음에 차지 않는지 얼굴을 살짝 굳힌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빠듯할지도 모르겠군.”
그러자 옆에 타고 있던 하킴이 그를 보면서 말을 건넸다.
“현지 경찰과 북한 대사관에서 상황 파악을 하고 저흴 추적하려고 할 때쯤에는 이미 싱가포르를 떠나고 없을 겁니다.”
“그래야지.”
작게 머리를 끄덕인 혁권은 이미 저지른 일이었기에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함’을 뜻하는 센토사 섬은 싱카포르 남쪽에 위치한 유명한 휴양지였다.
동양 최대의 해양 수족관과 커다란 음악 분수 그리고 난을 심어 놓은 오키드 가든이 바로 이곳에 위치했다.
이것들 말고도 많은 놀이 시설이 있어 섬 차제가 하나의 종합 휴양지였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센토사 선 동쪽에 위치한 요트 정박지였다.
한적한 주차장에 밴이 멈춰 서자 혁권과 부하들은 어느새 옷을 다른 걸로 갈아입고는 짐을 챙겨 들고 내렸다.
“어디지?”
“저쪽입니다.”
하킴이 한쪽 팔을 들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많은 요트들 사이에 하얀색 선체를 가진 파워 보트 한 척이 부교 끝에 묶인 채 바다에 떠 있었다.
검색이 까다롭고 자칫 탑승을 기다리다가 경찰에 붙잡힐 수도 있는 공항 대신 싱가포르를 빠져나가기 위해서 미리 빌려둔 파워 보트였다.
일행은 곧장 정박지에 들어가서 바다에 놓인 부교를 빠르게 걸어갔다.
잔잔한 물결이 밀려와 부교 기둥에 부딪치는 소리가 너무나도 평화롭게 느껴졌다.
부교 양옆으로 여러 척의 요트가 정박해 있었지만 평일이라서 그런지 별다른 인기척이 없었다.
“밧줄부터 풀어.”
“예.”
부하들이 부교 기둥에 묶여 있는 밧줄을 푸는 동안 배에 올라탄 혁권은 조타석에 올라가서 상태를 점검했다.
그동안 틈틈이 케노스 함장한테 보트 운전하는 법을 배웠던 그는 능숙하게 장치를 조작했다.
연료와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언제든지 출항이 가능한 상태였다.
열쇠를 꺼내 키박스에 꽂아 넣고 돌리자 우렁찬 소리와 함께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부르르릉!
“밧줄을 다 풀었습니다.”
때를 맞춰 기둥에 묶인 밧줄을 풀어 낸 부하들이 보트에 올라타자 그는 기어 봉을 손으로 잡아 올리면서 소리쳤다.
“좋아. 그럼 가자고!”
이내 일행이 탄 파워 보트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면서 정박지를 천천히 벗어나 드넓은 바다로 나아갔다.
평소처럼 대사관에 나와 업무를 보고 있던 임화룡은 김영철 소좌 일행을 공항까지 배웅해 주기 위해 나간 직원의 연락을 받고는 그대로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임화룡 대사의 고함에 송화구에서 당황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 났습니다. 호텔에 갔더니 39호실에서 나온 동지들이 괴한의 공격을 받아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눈을 부릅뜬 임화룡 대사는 수화기를 움켜쥔 채 다급히 물었다.
“돈은? 평양에 보낼 충성의 자금은 어떻게 됐어!”
-그게…… 경찰들이 현장 출입을 막고 있어서 아직 확인을 못 했습니다.
“일이 터졌으면 그것부터 확인을 해야지. 충성의 자금을 상납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동지도 알 것 아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정해진 날짜까지 상납금을 채워 넣지 못한다면 김 부자에 대한 충성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해 혹독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평양에서 나온 39호실 인원들의 안위보다 돈 가방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부터 하는 거였다.
-지금 바로 확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외교 행낭 표식이 붙어 있으니까 찾으면 본국에 보고할 중요한 서류가 들어 있다고 하면서 즉시 회수하도록 해.”
-네.
그때서야 마음을 조금 가라앉힌 임화룡 대사는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호텔에 투숙해 있던 39호실 동지들은 어떻게 됐나?”
-괴한의 습격에 두 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나머지 한 명은 가슴에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라고 합니다.
“미치겠군.”
돈이 어떻게 됐는지도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39호실 인원들까지 피살됐다고 하니, 임화룡 대사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튀어나왔다.
이렇게 되면 일이 수습되더라도 문책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임화룡 대사가 말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일을 벌인 거야?”
-아직 확인 중입니다만 총기를 사용하고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에서 이런 일을 벌인 걸 보면 보통 놈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으음.”
낮게 침음을 흘린 임화룡 대사는 이내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가도록 할 테니까 동지는 그 전에 돈 가방의 행방부터 확인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귀국 일정을 미루고 싱가포르에 남아 있던 샌더슨은 호텔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고 받고는 눈썹을 살짝 좁혔다.
“이거였군.”
“두 명은 죽고 한 명은 중태라고 합니다.”
심복인 루이스의 이야기에 샌더슨은 앉아 있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객실에 있던 놈들이 북한 외교관들이라고 했나?”
“여권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북한 수뇌부의 통치 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 소속 인물들인 걸로 파악됐습니다.”
북한 담당은 아니었지만 39호실에 대해서는 샌더슨도 잘 알고 있었다.
“왜 여기에 와 있던 거지?”
“통치 자금 마련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쯧.”
북한 정부가 외화 벌이를 위해서 가짜 담배와 달러 위패 유통 그리고 금괴 밀수는 물론이고 마약 거래까지 손을 대고 있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기에 샌더슨은 이맛살을 찌푸린 채 짧게 혀를 찼다.
특히 39호실과 각 나라에 나가 있는 북한 대사관에서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고 있었다.
각국 정보기관에서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외교특권 때문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그건 그렇고 블랙래빗은 그놈들하고 어떻게 엮인 거지?”
“그것까지는 아직 파악을 못 했습니다. 따로 조사를 해 볼까요?”
팔짱을 낀 채 잠시 고심하던 샌더슨은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괜히 우리가 관계된 것이 들킬 수도 있으니까 그냥 놔둬.”
“알겠습니다.”
“블랙래빗은 싱가포르를 빠져나갔나?”
“예. 지금쯤 공해상에 있을 겁니다.”
어차피 싱가포르에 들어올 때 가짜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사라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군.”
쓴웃음을 지은 샌더슨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루이스를 봤다.
“더 볼 게 없을 것 같으니까 랭리로 돌아가도록 하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한 루이스가 나가자 샌더슨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