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70
670
막대한 투자금을 끌어 모으면서 한때 런던 시장에도 상장이 됐었지만 예상보다 몇 배로 불어난 개발비에 원자재 가격 폭락까지 겹치는 바람에 현재는 합작회사가 파산하며 광산이 폐쇄 상태인 걸 그가 지적했다.
말을 들은 움부야 소장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만만치가 않구먼.”
“썩은 사과를 받아 들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 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겹친 데다 과도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기는 했지만, 언제든지 채굴이 가능할 정도로 광산은 개발이 다 끝난 상태요. 화물 부두가 있는 페펄Pepel까지 철로까지 연결되어 있으니, 운송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고 말이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혁권을 움부야 소장이 상체를 똑바로 세우면서 바라봤다.
“직접 광산을 운영할 마음이 없다면 지분을 다른 광산회사에 바로 팔아도 수익이 꽤 나오지 않겠소.”
나중에 자세히 알아봐야 확실히 걸 알 수 있겠지만 매장량이 상당한 데다 채굴이 쉬운 노천광산이었기에 지분을 매물로 내놓으면 관심을 가질 곳이 많을 터였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었다.
“쿠데타군과의 전투에서 패한다면 지분을 양도받는다고 해도 그저 종잇장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승리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 아니겠소.”
“그러니까 이길 수 있도록 도와라, 이거군요.”
“원래 큰 걸 얻으려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되는 법이지 않겠소.”
무표정한 움부야 소장을 보면서 혁권은 자신이 상대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냉철하지만 전형적인 군인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계산이 빠르고 나름 야심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통령하고 이야기가 된 겁니까?”
혁권의 물음에 움부야 소장은 약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설마 하니 각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런 제안을 하겠소.”
진위 여부는 어차피 내일 코로마 대통령을 만나면 바로 알 수 있는 거였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것보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제안으로 이번 거래에 걸린 판돈이 커지자 혁권은 처음 결심한 것이 흔들렸다.
고심에 찬 표정을 짓고 있자 움부야 소장은 성급하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마지막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오. 잘 생각해 보고 내일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겠소.”
“신중하게 고려해 보지요.”
혁권도 따라 일어나서 상대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그렇게 움부야 소장을 보낸 혁권은 다시 자리에 앉아 팔로 턱을 괴고 삐딱하게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듯 자연스럽게 담배를 입에 물자 하킴이 얼른 불을 붙여주고는 그에게 물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글쎄······.”
애매한 대답을 흘리면서 담배 연기를 몇 모금 삼키자 니코틴 효과 덕인지 점차 머릿속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짧게 생각을 마친 혁권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함단에게 연락해 봐.”
“예.”
하킴은 군말없이 품속에서 위성 전화기를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누르곤 전화가 연결되자 그에게 다시 건넸다.
그사이 반도 줄어들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혁권은 위성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나야.”
-요즘 시끄러운 시에라리온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십니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락을 했어.”
-뭐든지 말씀을 하십시오.
“지난번 예멘에 보낸 화물을 기억하지.”
-직접 아덴에 가셨을 때 말씀이십니까?
“그래.”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가져갔던 화물 2배를 보름 안에 준비할 수 있겠나? 전투 식량 10톤까지 더해서 말이야.”
-적은 물량이 아닌데요.
“알고 있어. 부두에 내려서 다시 육로로 수송을 해야 되니까 화물 트럭도 넉넉하게 있어야 돼. 물론 연료도 함께 포함되어야겠지.”
-도착지는 시에라리온이겠군요.
“맞아.”
잠깐 침묵이 흐른 뒤 확인을 끝냈는지 함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시간이 조금 빡빡하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잘됐군. 그럼 지금 바로 자세한 물품 목록을 보내 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물량을 확보해 놓도록 해.”
-그러겠습니다.
위성 전화기를 내려놓자 옆에서 가만히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하킴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코로마 대통령과 계속 손을 잡으실 생각입니까?”
“이런 조건이라면 도박을 걸어 볼 만하지 않겠어.”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나도 알고 있어.”
혁권은 후, 하고 짧은 숨을 내쉬며 눈매를 날카롭게 치켜 올렸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이라면 나한테 유리하게 뒤집어 버리면 되지 않겠나.”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대화는 이제 끝이라는 듯 더 이상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하킴은 그의 의중이 궁금하지만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라고 여기며 그저 고개만 숙였다.
다음 날 혁권은 수행원들과 함께 숙소 현관 앞에서 대기하던 차량을 나눠 타고는 코로마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넓은 스위트룸에는 어제처럼 코로마 대통령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두테 장관과 움부야 소장이 앉아 있었다.
친위대 장교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들어온 혁권은 상석에 있는 코로마 대통령한테 살짝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다른 두 사람들과는 눈인사만 하며 빈 소파에 자리했다.
코로마 대통령은 가늘게 눈을 뜬 채 두테 장관 옆에 앉아 있는 혁권을 쳐다보며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제 만남에서 자신의 부탁을 거절한 것에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시선을 받았다.
잠시 방 안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움부야 소장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깼다.
“흐흠. 각하, 먼저 말씀을 하시지요.”
그러자 코로마 대통령이 떨떠름한 얼굴로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래, 생각은 해 봤소?”
혁권은 맞은편의 움부야 소장에게 힐끗 시선을 던진 다음 코로마 대통령과 눈을 맞추면서 말했다.
“어젯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상황이 불리하지만 그동안 각하와 맺어 온 관계를 생각해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많은 걸 내놨는데도 요구할 것이 있다고 하자 코로마 대통령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옆에 앉은 두테 장관도 그를 노려보며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원하는 것이 뭐요?”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판단할 문제이니 어서 말이나 해 보시오.”
소파에 등을 붙인 혁권은 여유 있는 자세로 요구 조건을 밝혔다.
“저한테 넘겨준다는 톤코릴리 철광산 지분을 조금 더 늘려 줬으면 합니다.”
“얼마를 원하는 거요?”
“절반인 50%를 원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테 장관이 손바닥으로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를 세게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코로마 대통령 역시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면서 방 안 공기가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하다못해 움부야 소장까지 눈가를 미미하게 굳혔으나, 그는 태연한 낯짝으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세 사람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로서도 자칫하면 이곳에 벌여 놓은 사업을 모두 잃어버리는 걸 각오해야 되는데, 감수하는 위험을 생각하면 최소한 그 정도는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분율을 얼마로 하건 쿠데타군과의 싸움에서 진다면 다 필요 없는 일이겠지요.”
“으음.”
핵심을 찌르는 말에 코로마 대통령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가 잠시 말을 잃은 사이, 움부야 소장이 몸을 대통령 쪽으로 향해 돌리면서 혁권의 이야기를 거들고 나섰다.
“각하, 존슨 씨 말대로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것은 쿠데타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은근히 가해지는 압박에 코로마 대통령이 짧게 혀를 찼다.
어쩐지 혁권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마음엔 안 들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두 사람의 말이 맞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톤코릴리 철광산 지분도 자신이 정권을 지켜 내야지 있는 것이지 이대로 쿠데타군에 밀려 쫓겨난다면 모든 것이 다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거였다.
그래도 선뜻 말이 안 나오는지 코로마 대통령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자 혁권이 마음을 굳힐 수 있게 솔깃할 제안을 했다.
“요구대로 해 주신다면 같은 배를 타게 되는 만큼 쿠데타군을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흥. 고작 해 봤자 보급 물자를 공급해 주는 것 정도겠지. 그것도 몇 배로 값을 받으면서 말이야.”
바로 그 보급 물자를 구하지 못해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잔뜩 볼을 부풀린 채 비아냥거리는 모습이 한심스러웠지만, 혁권은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Mi-24 하인드Hind 공격헬기 두 대를 지원해 줄 수 있습니다.”
“······!”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코로마 대통령이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고 움부야 소장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다그치듯 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자신을 뚫어질 듯 쳐다보는 뜨거운 시선에 혁권은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있게 대답했다.
“사탄의 마차가 앞장을 서서 뜨거운 불벼락을 쏟아 낸다면 쿠데타군 병사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허겁지겁 도망치기 바쁠 겁니다.”
사탄의 마차는 구소련 시절 만들어진 대형 공격 헬기인 Mi-24 하인드에 붙은 별명이었다.
무시무시한 별명답게 전차도 한 방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30mm Gsh-30K 트윈 배럴 기관포에 122mm 다연장로켓 포트 그리고 각종 대전차미사일까지 한꺼번에 무려 2톤에 육박하는 무장을 장착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중요 부위를 티타늄으로 강화시켜 12.7mm 기관포에 맞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강한 맷집을 자랑했다.
양쪽 모두 제대로 된 공군은 고사하고 대공 장비도 변변히 없는 상황이었기에 MI-24 하인드 같은 대형 공격 헬기가 전투에 가세한다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움부야 소장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상석에 있는 코로마 대통령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각하, 강력한 화력을 갖춘 공격 헬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쿠데타군을 격파하고 프리타운을 되찾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코로마 대통령도 정권을 잡기 전에는 군대에 몸을 담고 있던 장군이었기에 MI-24 하인드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무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아까와 달리 치켜뜬 두 눈에 흰자위가 번들거렸다.
“방금 한 말 정말 책임질 수 있나?”
의도한 대로 완전히 넘어온 걸 알아차린 혁권은 내심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행할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흐음.”
진담인지, 아니면 단순한 허풍인지 속내를 살피려는 것처럼 혁권에게 관찰하는 듯한 시선을 던진 코로마 대통령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좋아. 원하는 대로 지분을 주지.”
“감사합니다.”
코로마 대통령의 입에서 의도한 대답이 나오자 그는 반색을 하며 살짝 머리를 숙였다.
“대신 약속한 건 꼭 지켜야 될 걸세.”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을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백만 달러의 값어치를 가진 다이아몬드 원석이 계약금으로 건네졌고, 코로마 대통령이 직접 톤코릴리 철광산 지분 절반을 양도하는 서류에 서명을 했다.
합작사가 파산하면서 톤코릴리 철광산 지분이 전부 시에라리온 정부로 귀속된 상황이었기에, 이런 계약을 맺는 데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었다.
물론 코로마 대통령이 권좌權座에서 쫓겨나고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겠지만, 아무튼 이걸로 톤코릴리 철광산 절반을 혁권이 소유하게 됐다.
그렇게 모든 일이 마무리되자 혁권은 수행원들과 함께 다시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마케니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