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69
669
“그만하며 충분할 것 같은데······.”
혁권은 다이아몬드 원석에서 시선을 떼고는 대답했다.
“물품 대금을 전부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내실 겁니까?”
“그러네.”
당연하다는 듯 코로마 대통령이 머리를 끄덕였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도 계속된 내전과 정치 불안으로 인해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에라리온이었으니, 돈을 대신할 수 있는 건 다이아몬드 원석밖에 없을 터였다.
물론 국민들은 가난해도 코로마 대통령이나 두테 장관 둘 다 그동안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뇌물을 받아 스위스와 버진아일랜드 비밀 계좌에 어마어마한 거액을 몰래 예치시켜 두고 있었다.
그가 두 사람한테 뒷돈을 챙겨 줄 때 그쪽으로 돈을 넣어 줬으니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경우 망명 자금으로 쓰려고 할 테니 끝까지 움켜쥐고 있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코로마 대통령이 따로 챙겨 둔 다이아몬드 원석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으나 만약 시에라리온 중앙은행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까지 다 쓸어 왔다면 족히 수억 달러어치는 될 게 틀림없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쿠데타였기에 미처 중앙은행 금고까지 손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대통령궁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는 걸 생각하면 혁권의 짐작이 맞을 가능성이 컸다.
독재자들의 특징이 바로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 놓는 것 아니던가.
스스로가 떳떳지 못하다는 걸 아니 하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중앙은행 금고 안에 있을 외화와 다이아몬드 원석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으리라.
“알겠습니다. 적어도 빈손으로 오시진 않았군요.”
“그럼 물건을 가져다줄 수 있겠나?”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한 것뿐이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들려 드리기 힘듭니다.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코로마 대통령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는지라 그로선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꾸만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혁권의 모습에 짜증이 났지만, 지금 급한 건 자신이었기에 코로마 대통령은 미간을 찡그린 채 입을 열었다.
“정말 답답하구먼.”
“······.”
입꼬리를 딱딱하게 굳히면서 다시 한 번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코로마 대통령은 몸을 뒤로 기대면서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주면 되겠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에 조금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코로마 대통령 측 역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대화를 끝내고 나온 혁권은 수행원들과 함께 미리 준비해 둔 숙소로 안내됐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이었는데 코로마 대통령이 임시 거처로 사용하는 곳보다 시설은 조금 떨어졌지만, 그럭저럭 묵을 만했다.
이곳 역시 2군단에 징발돼 강제로 일반 손님을 다 내보내고 장교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창가에 서서 군복을 입은 한 무리의 병사들이 대열을 갖춰 이동하는 걸 내려다보고 있던 혁권은 노크 소리에 몸을 뒤로 돌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하킴이 안으로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물었다.
“알아봤나?”
“예.”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닌지 앞에 선 하킴의 얼굴이 살짝 굳어 있었다.
“예상대로 2군단의 보급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연료와 소총탄 부족이 심각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유가 뭐야?”
어떤 부대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항상 일정량의 보급 물자를 비축해 두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특히 2군단은 크게 세력이 약해졌지만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 중인 PASL 반군과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부대였기에, 코로마 대통령의 신변을 지키는 친위대 다음 순위로 보급을 받았다.
그런 부대가 쿠데타가 벌어진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보급품이 부족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파괴 공작에 당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미간을 좁히면서 묻자 하킴이 2군단 보급 장교를 매수해서 얻어 낸 정보를 이야기해 줬다.
“북동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 상에 위치한 전략 거점인 파두구Fadugu에 2군단 보급 물자 집적소가 있었는데, 쿠데타가 발생한 당일 쿰부야 참모총장을 지지하는 일부 장교가 방화를 저지르는 바람에 비축해 둔 물자의 상당수가 불에 타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
혁권은 혀를 차면서 천천히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그의 뒤를 따르던 하킴 역시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맞은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일반 병사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 함구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당시 상황을 목격한 이들이 워낙 많기에 조금씩 소문이 퍼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프리타운 진격을 서두르는 거군.”
“시간이 갈수록 불리할 테니까요.”
하킴의 말에 그는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프리타운이 함락됐다는 소식에 가뜩이나 불안해하고 있을 병사들이 보급품마저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크게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대규모 탈영 사태가 벌어지거나 내부 반란으로 쿠데타군과 제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져 버릴지도 몰랐다.
그걸 막기 위해 장교나 병사 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급하게 전장으로 몰아가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시간을 끌면 아직 어느 쪽에 붙지 않고 중간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지방 관리와 군 지휘관들이 우세를 점한 쿰부야 참모총장한테로 도미노처럼 넘어갈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실제로 프리타운 함락 이후 시에라리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인 보Bo 시장이 쿰부야 참모총장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남부 지역이 완전히 쿠데타군의 손에 들어갔다.
“3군단이 이미 프리타운으로 들어갔다고 했지?”
“네. 아직 완전히 다 이동을 끝낸 건 아니지만 상당수 병력이 도착해 수도로 들어가는 길목인 워털루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마 대통령이 2군단을 밀어 넣는다고 해도 프리타운을 되찾는 것이 쉽지 않겠군.”
“지금 상황에서는 패배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흐음.”
팔짱을 낀 채 그가 고심하는 표정을 짓자 하킴이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도 이쯤에서 코로마 대통령과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
“이미 코로마 대통령은 침몰하고 있는 배입니다.”
적나라한 표현이었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데 아무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지만 코로마 대통령한테 베팅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이번 일은 자네 말대로 접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잘 생각하셨습니다.”
도움을 기대하고 있을 코로마 대통령이 크게 화를 내겠지만, 어차피 비즈니스로 묶인 관계였기에 서로가 이득이 안 된다면 끝나는 거였다.
마음을 굳힌 혁권은 고개를 들며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코로마 대통령을 만날 때 불편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부하들을 단단히 대비시켜 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살짝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하는 하킴의 눈빛이 매섭게 번득였다.
그렇게 막 대화를 끝내려고 할 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백성균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야?”
혁권의 물음에 약간 당황한 얼굴로 백성균이 대답했다.
“밖에 움부야 소장이 찾아왔습니다.”
“뭐?”
뜻밖의 말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로?”
“용건은 직접 말씀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가 이맛살을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자 옆에 있던 하킴이 말했다.
“오더 문제로 온 것이 아닐까요?”
“그렇겠지.”
움부야 소장하고는 안면만 있을 뿐 그다지 깊은 친분이 없었기에, 오더가 아니라면 이렇게 숙소까지 따로 자신을 만나러 올 이유가 없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짐작이 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만나 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
작게 머리를 끄덕인 혁권은 문 앞에 서 있는 백성균을 보며 말했다.
“안으로 데려와.”
“예.”
백성균이 짧게 대답을 하고 나간 뒤 얼마 있지 않아서 군복을 입고 허리에는 베레타 권총까지 찬 움부야 소장이 부관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서자 그도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거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오. 쉬고 있는데 내가 방해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소.”
“아닙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눈 혁권이 자리를 권하자 두 사람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절 찾아오신 겁니까?”
“용건이라면 하나밖에 더 있겠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혁권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원하시는 대답을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군요.”
에둘러 오더를 받지 않을 거라는 의사를 밝히자 움부야 소장은 얼굴을 굳혔지만 예상과 달리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없겠소?”
“힘들 것 같습니다.”
이미 마음을 정했기에 그는 단호하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대가가 부족한 거요.”
당신들이 질 것 같으니까 발을 빼려 한다고 직접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었기에 혁권은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그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진중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톤코릴리Tonkolili 광산에 대해서 알고 있소?”
“몇 년 전에 개발된 대규모 철광산 아닙니까.”
“맞소.”
범부나 인근에 위치한 톤코릴리 철광산은 지하자원 확보에 혈안인 중국 기업체들이 합작 형식으로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서 개발한 대규모 광산이었다.
한때 다이아몬드에 이어서 시에라리온 경제를 되살려 줄 수출 품목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원자재값 폭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거기다가 내전으로 인해 채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투자를 했던 중국 기업체들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합작회사마저 파산해 지금은 폐쇄된 상태였다.
“갑자기 거긴 왜 거론하시는 겁니까?”
“톤코릴리 광산 지분 25%를 넘겨준다면 우릴 도와줄 수 있겠소?”
“······!”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혁권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상대를 쳐다봤다.
“물품 대금으로 광산 지분을 주겠다는 겁니까?”
그러자 움부야 소장이 입술 한쪽을 비틀어 올렸다.
“그렇다면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
소파 등받이에 어깨를 기댄 움부야 소장은 혁권의 시선을 마주 하면서 말을 이었다.
“대금과 별개로 지분을 넘겨주겠다는 거요.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중국 기업이 톤코릴리 광산 지분 25%를 획득하기 위해서 지불한 돈이 무려 15억 달러였소.”
당시에 크게 화제가 됐던 일이었기에 혁권도 중국 기업이 톤코릴리 광산이 많은 투자를 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