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77
677
#톤코릴리Tonkolili 철광산
주식시장 개장과 동시에 엄청나게 쏟아진 매도 물량에 태일그룹 주식은 어제에 이어서 이틀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며 코스피에 큰 충격을 줬다.
“태일건설, 54,0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50,000원 밑으로 떨어지면 안 돼. 어서 매수해!”
태일증권 트레이딩 룸은 마치 전쟁터 같은 모습이었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주가 그래프를 보며 직원들이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서로 고함을 질러 댔다.
“태일물산 주식 2만 주가 나왔습니다.”
“제길! 얼마야?”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센터장의 외침에 부하 직원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바로 대답했다.
“62,100원입니다.”
“미쳐 버리겠군. 전부 다 받아!”
“거래 체결됐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 주식을 수십억 원어치 매입했지만 태일그룹 주식은 하락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된 하한가에 인내심이 바닥난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매물을 쏟아 내면서 자금만 소모한 채 하락폭은 더욱 커져 갔다.
모두들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을 때 연신 매수 주문을 넣고 있던 배원태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젠장!”
“왜 그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황급히 묻는 센터장을 바라보면서 배원태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관에서 매도 물량이 터졌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센터장이 눈을 흡 뜨고 정신없이 다가왔다.
말없이 모니터를 가리키는 배원태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 센터장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그래프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빌어먹을.”
다른 직원들도 상황을 파악하고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손실액이 커지자 기관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물량이 입력된 전산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적으로 손절매되어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거였다.
일시에 수백만 주나 되는 매도 주문이 터지자 자금을 거의 들이붓다시피 하면서 겨우겨우 막고 있던 둑이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트레이딩 룸에 있는 직원들이 어떻게든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지만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했다.
거센 홍수를 견디지 못하고 떠밀려 내려가 손실 폭만 더욱 크게 키우고 말았다.
이날 하루 태일증권이 입은 손실액만 무려 1천억 원이 넘었고, 장이 끝난 트레이딩 룸은 무력과 패배감으로 가득 찼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는데 또다시 공매도 폭탄이 떨어지고 여기에 겁을 먹은 개인 투자자들까지 매도 행렬에 가세하면서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끝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고점 대비 30%나 넘게 빠진 가격에 저가 매수세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공매도가 쏟아져 주가를 주저앉혀 버렸다.
누가 봐도 태일그룹 주식에 작전 세력이 붙어서 의도적으로 주가를 끌어내리는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시장 거래 가격 밑으로 호가를 낼 수 없도록 한 업틱룰Up-tick Rule이 있었으나 샌더슨이 있는 L&S코퍼레이션의 편법적인 공격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이처럼 조직적으로 공격해 오는 상대와 달리 태일그룹은 경영권 문제로 서로 아웅다웅하며 힘겨루기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해 더욱 피해를 키웠다.
패자가 있으면 승리한 사람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였는데 며칠간의 작전으로 혁권은 엄청난 이득을 거뒀다.
-축하드립니다, 존슨 씨.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있던 혁권은 스마트폰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가 들고 있는 태블릿 PC 화면에는 아래로 곤두박질쳐서 횡보하고 있는 그래프가 떠 있었는데, 누군가에겐 엄청난 비극이겠지만 혁권에게는 바라 마지않던 것이었다.
목표로 한 주가보다 가격이 훨씬 더 밑으로 내려가 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기관들의 손절매와 개인 투자자들의 투매 물량이 쏟아져 나온 결과였다.
그만큼 김종원 회장이 없는 태일그룹을 시장에서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가격이 원하는 만큼 떨어지자 L&S코퍼레이션에서 지분을 다시 여러 차례 나눠 대거 매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 그래프는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옆으로 횡보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직 정산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거래로 태일정유 지분 26%를 확보하고 현금 수익도 1억 달러 가까이 거둘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군.”
작전을 벌이기 전까지 태일정유의 시가총액이 10조 원을 훌쩍 넘겼던 걸 고려하면 지분을 거저 쓸어 담은 거나 다름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주가가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태일그룹 주식을 몽땅 다 매집하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는 자금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신에 태일그룹 순환 출자 구조에서 핵심 고리 역할을 하는 중요 계열사인 정유사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언제든지 그룹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주가가 좀처럼 다시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조금 더 쥐고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샌더슨 변호사의 말에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이미 원하던 것 이상을 얻었으니 된 거 아니겠소.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소.”
-맞는 말씀입니다.
“이쪽이 드러나지 않도록 뒤처리를 깔끔하게 했을 거라 믿소.”
-헤지펀드 세 곳을 통해 주식거래를 했고 지분도 케이맨 제도Cayman Islands에 만든 페이퍼컴퍼니 여섯 곳의 명의로 분산시켰으니 태일그룹이 주식 실소유주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수고했소.”
크게 만족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니 샌더슨이 아니라며 겸손하게 대꾸했다.
-당연히 제가 해야 될 일 아니겠습니까.
“그럼 나중에 일이 다 마무리되고 나면 다시 한 번 연락 주시오.”
-예.
짧은 인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그렇게 샌더슨과 통화를 끝낸 혁권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지병하에게 말해 차 머리를 자택이 아니라 남산 쪽으로 돌리게 했다.
정상까지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를 쭉 타고 올라가니 어느새 높다랗게 솟은 전망대가 코앞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서도 괜찮아.”
“괜찮으시겠습니까?”
차 문을 열어 주는 백성균이 그리 묻자 혁권은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덩치도 큰 사내놈을 뒤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다들 수상쩍게 쳐다본다고. 괜히 이목을 모을 필요는 없으니까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네, 하고 고개를 숙이는 백성균과 부하를 뒤로하고 혁권은 하킴만 대동한 채 천천히 전망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양쪽으로 울창한 숲이 우거진 가운데 혼자서 길을 걷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산속인지라 경쾌한 새 울음소리가 들리고, 햇살도 적당히 따뜻했으며 평일이라 그런지 전망대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아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기에 딱이었다.
난간 앞에 서서 발아래 펼쳐진 서울의 정경을 잠시 바라보는데 문득 발랄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저, 죄송한데, 저희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서울로 여행을 왔는지 아래 지방 사투리가 섞인 투였다.
여자애 세 명이 각자 빨간색, 주황색 등 눈에 확 튀는 색깔의 캐리어를 쥐고 나란히 서 있는데,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에 여행의 흥분감으로 인해 진한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물론이죠.”
혁권은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디지털 카메라를 받아 ‘자, 하나둘셋, 찍습니다.’ 하고 외쳤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꺅 소리를 내면서 자기네들끼리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혁권은 절로 소현과 그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지도 꽤 되었는데 간간이 소현을 통해 들리는 소식으로는 여전히 연락도 자주 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잡생각에 사로잡힌 혁권은 이내 머리를 좌우로 털듯이 흔들곤 다시 매서운 빛이 돌아온 눈동자로 서울 시내, 태일그룹의 본사가 있는 방향 쪽을 쳐다보았다.
최근 태일그룹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나타내듯 본사 대회의실 안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대책을 마련하기 전에 김종원 회장의 병세가 외부에 알려진 데다 작전 세력의 공격을 받아 그룹 계열사 주식이 모두 바닥을 치고 있으니 표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특히 지난 며칠 동안 주가 폭락을 막느라 큰 손실을 입은 정덕진 태일증권 사장은 처음부터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이번 주가 폭락으로 지금까지 그룹 전체에서 발생한 손실이 10조 원이 넘습니다. 더 심각한 건 공매도 세력이 이득을 챙기고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망가진 주가가 회복될 기미도 안 보인다는 겁니다.”
정덕진 사장의 말에 모여 있던 임원들이 웅성거리면서 간간이 한숨과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이제 더 이상 나올 악재도 없는데 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맞은편에 앉은 김성균이 마치 윗사람처럼 따지듯이 묻자 기분이 상한 정덕진 사장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자연히 돌아오는 대답이 곱지 않았다.
“주가를 끌어 올릴 호재도 없으니 횡보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지금 시장에서는 우리 그룹이 앞으로 더 큰 위기를 겪게 될 거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는데,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다니 정말 답답합니다.”
그러자 김성균 측 임원 한 명이 발끈하며 말했다.
“꼭 주가가 떨어진 것이 김성균 사장님 때문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불쑥 대화에 끼어든 김인철은 작정한 듯 큰형인 김성균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애초에 빨리 비상 경영 체계로 그룹을 운영했으면 공매도 세력이 하이에나 떼처럼 덤벼드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룹이 처해 있는 어려움이 모두 그의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하자 김성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는 것이 만약 다른 임원들이 없었더라면 바로 욕설이라도 내뱉었을 모습이었다.
김성균이 애써 감정을 가라앉히고 있는 가운데 수족인 손종환 건설 상무가 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면서 반박했다.
“불손한 의도로 그룹을 안정시키는 걸 방해하며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쪽이 누군데, 그런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상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오차돈 사장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지금 이 사태가 우리 때문이라는 거요!”
“그럼 아닙니까?”
“아니, 보자보자 하니까.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거 아니요!”
“먼저 시비를 건 쪽이 누군데 그럽니까?”
감정이 격해지면서 서로 얼굴을 붉힌 채 쌍욕이 오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나이도 있고 사회적 위신도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일어서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박상빈 비서실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김종원 회장이 자리를 비운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 정도다.
대체 앞으로 태일그룹의 기강이 얼마나 더 흐트러질지 짐작도 안 가는지라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평행선을 달리듯 양측은 좀처럼 합의를 이루어 내지 못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대로 회의를 끝냈겠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상황이 너무 안 좋았기에 결국 다수결로 새로운 경영 체제를 결정하고 바로 투표에 들어갔다.
“1안에 찬성하시는 분 거수를 해 주십시오.”
사회를 맡은 이두현 과장의 말에 김성균 사장을 따르는 임원들이 한쪽 팔을 들었다.
“모두 13분입니다. 다들 내려 주시고 그럼 이어서 2안을 지지하시는 분은 의사 표시를 해 주십시오.”
말이 떨어지자마자 김인철을 비롯해 정덕진 사장을 통해 미리 교감을 나눈 중도파 임원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대충 봐도 과반수가 넘어 보이는 숫자에 김성균 사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슬쩍 눈치를 살핀 이두현 과장은 짧게 헛기침을 내뱉고는 결과를 발표했다.
“17 대 13으로 2안이 확정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상대편의 박수가 터져 나오자 눈을 치켜뜬 채 맞은편에 앉아 있는 김인철을 노려보던 김성균 사장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대로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그걸 보며 김인철은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