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21
721
#솔레이마니
키돈 요원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샌더슨을 통해 알게 된 혁권은 상대가 언제 움직일지 몰랐기에 곧장 행동에 나섰다.
혁권이 향한 곳은 김포에 위치한 임대 창고 건물이었다.
주위에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뒤로는 나지막한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낮에도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여전히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탓에 사방에 깔린 어둠은 더욱 짙었고, 산등성이 저 너머에서 멀리 보이는 유일한 불빛도 마냥 흐릿하기만 했다.
투둑. 툭.
자동차 지붕에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혁권은 뒷좌석 시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시선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먼 곳을 보는 것처럼 깊이 생각에 잠긴 눈빛이었다.
뒷좌석 팔걸이에 올린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톡, 톡 느리게 손가락을 움직이던 그는 빗소리에 섞여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비에 맞아 머리가 축축하게 젖은 정지택이 살짝 허리를 숙이고는 차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입을 벙긋거리는 모양새를 보면서 혁권이 차창을 내리자, 정지택이 가볍게 머리를 꾸벅하고는 곧장 말했다.
“밖에서 지키는 놈이 있어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했지만 창고에 수상한 녀석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몇 명이나 돼?”
“열 명이 조금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정보가 사실인 걸 확인한 혁권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친다. 다들 준비하라고 해.”
“옛, 보스.”
차창을 다시 올린 혁권은 안주머니에서 글록 권총을 꺼내 탄창을 확인하고는 능숙하게 슬라이드를 뒤로 당겨 총탄을 장전했다.
철컥.
그러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백성균이 몸을 뒤로 돌리고는 혁권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직접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그래.”
“몸도 성치 않으신데 저희한테 그냥 맡겨 두십시오.”
백성균의 만류에 그가 머리를 저었다.
“알아바디와 죽은 부하들의 복수를 하는 일인데 내가 빠질 수는 없지.”
다른 이유라면 모를까,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백성균의 동료이기도 했다.
잠시 입을 꾹 다물더니 백성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신 지난번처럼 너무 앞에 서시지는 마십시오.”
“그러지.”
여전히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속에 부하들이 준비를 다 끝마친 걸 본 혁권은 백성균과 함께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자신과 백성균까지 합쳐서 일곱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두 동료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에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눈을 매섭게 번득였다.
금방 옷이 비에 흠뻑 젖은 혁권은 앞에 서 있는 부하들을 천천히 둘러보고는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다. 그러니 하나만 부탁하겠다. 절대 죽지 마라.”
“예.”
빗소리에 묻혀 크진 않았으나 그 안에 들어찬 기백과 각오만큼은 남달랐다.
부하들의 눈을 마주하면서 얼굴 표정에 흔들림이 없는 것을 확인한 혁권은 그럼 됐다며 안심한 듯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창고를 바라보았다.
“가자.”
혁권과 부하들은 비를 맞으면서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몇 명 남지 않은 키돈 요원들과 함께 은신처에 머물면서 설욕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슈페너는 갑자기 찾아온 새넌의 말에 눈을 부릅떴다.
“그게 무슨 말이오!”
맞은편에 앉은 새넌이 사나운 슈페너의 시선을 받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본국으로 소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아직 목표를 처리하지 못했는데 이대로 가라고?”
복수는 고사하고 혁권을 죽이지 못한 채 또다시 키돈 요원들을 잃는 치욕을 당한 슈페너는 잔뜩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상황이 안 좋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번 일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며 당장 작전을 중단할 것을 본국 정부와 모사드 본부에 요구해 왔습니다.”
“양키 놈들이 또 왜 그 자식을 감싸는 거야?”
지난번에도 CIA가 중간에 끼어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혁권과 싸움을 중단해야 됐던 걸 떠올린 슈페너가 이를 갈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리버만 지부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미국 정부가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걸 중단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더군요.”
“이런 젠장!”
슈페너가 얼굴을 구기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현재 텔아비브에 위치해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도록 해 국제사회에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걸 확고히 하는 건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들이 가장 열망하는 일이었다.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결실을 보기 직전인데 이전 결정을 보류하겠다고 압박을 가한다면, 이스라엘 정부 입장에서는 정말 절대 양보하기 힘든 것이 아닌 이상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이해가 됐지만 또다시 요원들만 잃은 채 이대로 물러나야 된다는 걸 슈페너는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 측에서 이번 일에 대해 강하게 항의를 하며 우리쪽 요원 열 명을 강제추방시켰습니다. 저도 거기에 포함이 돼서 내일 서울을 떠날 예정입니다.”
새넌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슈페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무리 CIA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사드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한국 안에서는 국정원의 영향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자존심이 상한 국정원이 작정하고 색출에 나선다면 키돈 요원들은 물론이고 모사드의 한국 활동 자체가 크게 위축될 터였다.
인정하기 싫었으나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상황이 아니라는 걸 어렵사리 수긍한 슈페너가 마뜩잖은 얼굴로 답했다.
“어쩔 수 없지.”
“출국할 준비는 이쪽에서 다 끝내 놨습니다. 내일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슈페너가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떫은 감을 씹은 것처럼 구겨진 표정이었다.
바로 그 순간, 정적을 가르고 날카롭게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선 쉬지 않고 굵은 빗방울이 내리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 속에 섞인 총성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슈페너는 본능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를 쳤다.
“이게 무슨 소리야!”
창고 안에 있던 요원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바깥에서 연속으로 들리는 총소리에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걸 바로 직감했다.
손에 든 권총을 쏘면서 뒤로 쓰러지는 적을 보며 혁권은 짧게 욕설을 내뱉었다.
“제길!”
빗속에 숨어 최대한 은밀하게 접근했지만 창고 밖에 서서 경비를 서던 적에게 예상보다 빨리 들키고 말았다.
방금 전 울린 총성에 적이 습격을 알아차렸을 것이 분명했다.
아쉬웠지만 지금은 그런 걸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섬광탄!”
혁권의 외침에 어느새 앞으로 달려 나간 정지택이 가지고 있던 CAR816 자동소총 개머리판을 들어 창고 한쪽에 있던 유리창을 깨 버리고는 수류탄을 꺼내 이빨로 안전핀을 뽑은 뒤 안에다가 던져 넣었다.
꽈아앙!
다른 부하들도 바로 이어서 창문을 깨고 수류탄을 투척하자 연달아 요란한 폭음이 터졌다.
강력한 후폭풍과 함께 수류탄 파편이 사방을 뒤덮으며 창고 내부를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섣불리 밖으로 달려 나가지 않고 무기를 챙겨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던 키돈 요원들은 수류탄 투척에 제대로 붙어 보기도 전에 큰 타격을 입었다.
“크윽.”
슈페너 역시 충격파에 뒤로 내동댕이쳐져 벽에 몸을 부딪치고 말았다.
내부는 순식간에 자욱한 먼지에 휩싸였고 누군가 옆에서 기침을 해 댔고 고통에 찬 신음도 어디선가 들렸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형광등이 불꽃과 함께 파지직 소리를 내면서 터지는 가운데 바닥에 넘어져 있다가 억지로 상체를 일으킨 슈페너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대로 허를 찔리고 말았는데 설마하니 사냥감으로 생각한 혁권이 거꾸로 자신들을 습격해 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당해 놓고 방심한 걸 자책하면서 몸을 일으킨 슈페너는 한쪽 손에 권총을 든 채 악을 썼다.
“곧 놈들이 들어올 거다. 어서 일어나!”
충격이 상당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최정예 요원들답게 다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상태로 비틀거리며 각자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의지가 대단했지만 혁권은 상대가 정신을 수습하고 반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직 먼지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깨진 창문으로 시커먼 물체가 날아 들어왔다.
마치 음료수 캔처럼 생긴 물체는 깡통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굴러가다가 이내 펑 하고 터졌다.
폭음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한순간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릴 만큼 엄청난 섬광과 함께 삐 하는 소리가 나와 청각을 마비시켰다.
“으으윽.”
“큭.”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혁권과 부하들이 창고 안으로 일제히 들어가며 가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탕! 타탕! 탕!
양손을 귀에 댄 채 괴로워하던 키돈 요원 한 명이 허겁지겁 자동소총을 들어 올리면서 쏘려고 했지만 혁권이 한 박자 더 빨랐다.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총탄이 상대의 가슴에 어지럽게 박혔다.
비틀거리면서 적이 뒤로 넘어지자 그는 거침없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부하들도 자동소총을 짧게 끊어 쏘면서 눈에 보이는 족족 적을 사살했다.
반대편에서 응사를 해 오기도 했지만 이미 기세에서 밀린 데다 섬광탄이 터지면서 시각과 청각이 마비된 상태였기에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등이 다 나가 버려 어두운 가운데 상대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스스로 알려 주는 꼴이 돼서 혁권과 부하들은 총성이 들리는 곳에다가 곧바로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시뻘건 피와 비명이 난무하며 키돈 요원들은 실력을 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금방 탄창 하나를 다 비우고 능숙하게 탄창을 갈아 끼운 뒤 아수라장이 된 창고 안을 재빨리 살피던 혁권의 눈에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권총을 쏘고 있는 슈페너의 모습이 들어왔다.
단번에 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그는 눈을 번득이며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피슝. 퍼퍽!
섬뜩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온 총탄이 옆에 쌓여 있던 나무 상자에 박히자 슈페너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혁권과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부릅떴다.
“네놈은!”
살기에 가득 찬 얼굴로 총구를 돌리려는 찰나, 어깨와 왼쪽 무릎에 마치 누군가 뜨겁게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몸을 마구 쑤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허억!”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슈페너는 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놓치고 말았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슈페너는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어떻게든 앞에 떨어진 권총을 다시 집어 들려고 기를 썼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막 닿으려고 할 때 불쑥 발이 하나 나타나 허무하게도 권총을 멀리 차 버렸다.
이를 악다문 채 고개를 들자 혁권이 총구를 겨누며 서 있었다.
“죽은 부하들의 복수다.”
“지옥에서 가서도 네놈을 저주하겠다.”
“얼마든지.”
악에 받친 듯 소리를 지르는 상대를 무심하게 내려다보며 그는 방아쇠에 대고 있던 손가락에 힘을 줬다.
타아앙!
가슴을 들썩인 슈페너는 허물어지듯 쓰러져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붙인 채 마지막 숨을 천천히 내쉬고는 이내 의식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