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69
769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설득해 긴장감을 높여 가던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무력 충돌을 중재하고 이번에 알 살라위까지 죽였으니 그동안 애써 무시하던 사람들도 이제 혁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터였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어느새 하역이 다 끝났는지 자드란 비서실장이 옆으로 다가와 보고를 했다.
“화물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인 만수르 회장은 담담한 얼굴로 서 있는 혁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가 잔금을 계산해 줄 차례군. 저기 세워 둔 화물차에 그림을 넣어 놨으니 가져가도록 하게.”
고개를 돌리자 흰색 탑차 한 대가 한쪽에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혁권이 눈짓을 하자 백성균이 자드란 비서실장한테 열쇠를 받아 탑차 짐칸을 확인하고는 돌아와 귓속말을 했다.
“그림이 두 점 다 실려 있습니다.”
그는 만수르 회장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자, 그럼 일이 전부 끝난 것 같으니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군. 마음 같아선 아침 식사라도 함께하고 싶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피곤할 테니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세.”
“예. 기회가 되면 또 뵙죠.”
혁권은 만수르 회장이 먼저 내민 손을 붙잡고 악수했다.
그러곤 몸을 돌려 타고 왔던 차량에 올라타고는 그림이 실려 있는 탑차와 함께 그대로 보안 구역을 빠져나갔다.
만수르 회장이 준비해 준 호텔에서 하루를 푹 쉰 혁권은 부하들과 함께 다음 날 바로 비즈니스 제트기를 타고 카타르에 있는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로 날아갔다.
카타르 수도 도하Doha에서 서남쪽으로 32킬로미터 떨어진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는 중동 지역 최대 미군 시설로 미군 중부사령부 공군 지휘부와 합동항공우주작전센터, 제379공군원정비행단 등 핵심 전략 부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미군뿐만 아니라 카타르 공군과 미국하고 동맹 관계인 영국 공군도 함께 주둔하면서 작전을 펼칠 정도로 핵심 시설이었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CIA와 NSA 등 미국 정보 방첩 기관들도 이곳에 은밀하게 둥지를 틀고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
혁권이 탄 비즈니스 제트기가 도착했을 때는 선글라스 없이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는 오후였다.
군사기지답게 하늘에서 내려다본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는 주변에 인가 하나 없이 온통 황량한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항상 테러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중동 지역이었기에 기지 보안 측면에서 최상의 조건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지에서 근무하는 인원들의 생활에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1만 명이 훌쩍 넘는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는 만큼 마치 미국의 소도시 하나를 통째로 옮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지 내부에 별도의 소방서와 병원 그리고 바BAR를 비롯한 온갖 오락 시설이 모두 다 갖추어져 있었다.
특히 병원은 병상 숫자만 1천 개가 넘고 MRI는 물론이고 수술용 로봇까지 최첨단 의료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다.
바로 여기에 지병하를 비롯해 부상당한 부하들이 입원해 있었기에 일을 끝내자마자 곧장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로 날아온 거였다.
비즈니스 제트기에서 내리자 한증막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기다리고 있었소.”
검은색 시보레의 서버밴 앞에 서 있는 샌더슨을 본 혁권은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미국으로 돌아갔을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었소.”
떨떠름한 기색이 그대로 느껴지는 말투였으나 어깨를 으쓱인 샌더슨은 모른 척 두꺼운 낯짝을 들이밀었다.
“존슨 당신이 온다는 얘길 듣고 출발 시간을 미뤘지. 그쪽 부하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까지 데려다줄 테니 함께 갑시다.”
“그런 배려는 필요없소만…….”
“자, 너무 사양하지 말고.”
끈덕지게 권유하면서 버티니 도저히 이겨 낼 수가 없었다.
결국 고개를 절래 흔든 혁권은 샌더슨과 함께 밴 뒷자리에 탔다.
당연히 하킴은 경호를 위해 같은 차량에 동승했으나 그 외 다른 부하들은 다른 탈것을 이용해 밴을 뒤따르기로 했다.
엔진을 켜고 밴이 출발하자 살짝 차창을 내린 샌더슨이 자연스럽게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며 물었다.
“피우겠소?”
고개를 돌린 혁권은 샌더슨이 내민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지포 라이터를 켜서 불까지 붙여 준 샌더슨은 하얀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인 후 천천히 내뱉으면서 말했다.
“이미 연락을 받았겠지만 이쪽으로 후송된 인원들 모두 치료가 잘 끝난 모양이오.”
“어차피 필요한 걸 서로 주고받은 거니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소.”
샌더슨은 그런 반응을 보일지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이번 일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그동안 골칫덩이였던 알 살라위를 처리할 수 있어서 랭리는 물론이고 워싱턴에서도 이번 작전에 대해 크게 만족하고 있소. 그런데 알아보니까 그쪽이 아부다비로 옮긴 트럭에 아주 흥미로운 화물이 실려 있었던 모양이오.”
빈알둘만 회장과 사우디아라비아 유력가들의 은닉 재산을 빼내 온 걸 상대가 알아차린 것에 살짝 미간을 찡그리던 혁권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받았다.
“그래서 문제 될 거라도 있소?”
시선을 마주친 샌더슨은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고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분노가 아주 크다고 하니까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요. 우리야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을 하면 그만이지만, 존슨 당신은 아니지 않소.”
“CIA가 내 걱정도 해 주는 거요? 이거야 원,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그렇게 비아냥거렸으나 샌더슨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오. 빈살만 왕세자는 노쇠한 국왕을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끌어 가는 권력자인 만큼 마음을 먹고 찍어 내려고 한다면 버텨 내기가 어려울 거요.”
“…….”
잠시 말없이 상대를 바라본 혁권이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한테 왜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거요?”
“존슨 당신은 우리 CIA의 중요한 파트너니까 당연한 일 아니겠소.”
혁권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짧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하는 말이오?”
그러자 샌더슨이 흰 이를 드러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나한테 당신이 필요하거든.”
눈을 가늘게 뜬 그를 보며 샌더슨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일도 그렇지만 심심치 않게 굵직한 실적을 올리니 나한테 그쪽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라 이거야. 그러니까 서로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 없게 하라는 거요.”
“이득이 되니 한 팀이라 이거군.”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 아니겠소.”
“하긴, 씨도 안 먹힐 말을 주절거리는 것보다 이게 훨씬 수긍이 되는군.”
어차피 혁권 역시 상대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딱히 배신감을 느끼거나 화를 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게 됐다.
누가 손해 보는 것 없이 필요할 걸 주고받는 것이니 양측 다 윈윈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뜩이나 모사드와 IS하고 안 좋은데 빈살만 왕세자를 자극해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알겠소. 충고를 새겨듣도록 하겠소.”
“역시 말이 잘 통하는군.”
때마침 병원 앞에 도착해 밴이 멈추자 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끄고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존슨, 또 이번처럼 좋은 건수가 있으면 연락하시오.”
샌더슨의 말에 그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차 문을 닫았다.
그날 저녁 혁권은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를 떠났는데 올 때와 달리 부상자들을 후송할 의료진을 태우고 급히 날아온 이반의 AN-26 수송기와 함께 움직였다.
다행히 치료가 잘됐지만 아무리 의료진을 동승시킨다고 해도 오래 비행을 하는 건 안 좋은 데다가 총상銃傷 환자에 예민한 한국으로 가면 불필요한 문제가 생길수도 있었기에 비행기 기수를 서울이 아닌 그리스 아테네로 향했다.
서울. 용산드림타워 공사 현장.
계절은 가을이었지만 여전히 한낮에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는 가운데 작업복과 안전모를 쓴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하수가 나오고 흙벽이 무너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하 층 기초 공사를 끝내고 골조 작업에 들어가 하루가 다르게 빌딩 높이가 올라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경미하지만 사고가 있었던 만큼 공사장 곳곳에 안전을 강조하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는 가운데, 하청업체 사장과 점심을 먹은 현장소장 홍정기는 부른 배를 쓰다듬으면서 만족한 얼굴로 현장 사무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는데, 술까지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업비만 수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공사인 만큼 삼 층으로 지어진 현장 사무소에는 60명이 넘는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홍정기 소장은 평상시와 달리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가 눈썹을 찌푸렸다.
“나 없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러자 막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끝낸 최 과장이 홍정기 소장을 보곤 다급히 뛰어왔다.
“소장님, 어디 계셨습니까? 열 번도 넘게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시던데요.”
“그랬어?”
안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을 꺼낸 홍정기 소장은 시커먼 액정을 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아침에 충전을 해 두는 걸 깜빡했더니 그새 배터리가 다 나갔나 보군. 그런데 왜 전화를 한 거야?”
심드렁한 홍정기 소장과 달리 최 과장은 창백해진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면서 사무소가 소란스러운 이유를 설명했다.
“레미콘 업체에서 오늘 보내 주기로 한 콘크리트를 못 보내 준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그게 뭔 헛소리야!”
술이 깰 정도로 놀란 홍정기 소장은 눈을 크게 뜨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당장 물건을 가져오라고 전화해!”
“벌써 제가 몇 번이나 통화를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정말 미쳤나!”
홍정기 소장의 입에서 대번에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만약 오늘 예정되어 있는 콘크리트 타설을 계획대로 하지 못한다면 다음 공정들이 줄줄이 지연되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높이와 무게를 견뎌 내야 되기에 특수하게 제작된 초고강도 콘크리트(Super high strength concrete)만 사용해야 돼서 다른 업체에서 대신 콘크리트를 받아 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오늘 제때 콘크리트가 도착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며칠은 공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건 시간이 곧 돈인 건설 현장에서 최악의 사고였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일로 공사 기간이 늘어났는데 본사에서 이걸 알게 되면 당장 김성균 사장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홍정기 소장은 거친 숨을 내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게…….”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최 과장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콘크리트 대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사에서 결재를 해 줬다고 어제 연락을 받았는데 뭔 소리야!”
“미수금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6개월짜리 어음은 받을 수 없다고, 거래를 계속하려면 현금을 지급해 달라고 합니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린 홍정기 소장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끄으응. 지금 바로 본사에 전화 연결해!”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