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87
787
“습격이다!”
“막아!”
뒷좌석에 있던 혁권은 밖이 조금 소란스러운가 싶더니 갑자기 총성이 연달아 들려오자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러자 앞에 탄 하킴이 가슴에 찬 권총을 뽑아 들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위험하니 그대로 안에 계십시오!”
“으음.”
방금 전 샌더슨이 해 준 경고를 떠올린 혁권은 한쪽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깊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런 가운데 바깥 상황은 아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먼저 총격을 받기는 했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리판이 제대로 조준을 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긴 데다, 뛰어오면서 총을 쐈기에 임영식의 어깨를 맞힌 초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총탄이 형편없이 빗나갔다.
임영식이 신음을 토해 내며 몸을 휘청거리는 것과 동시에 다른 경호원들이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권총을 꺼내 들어 대응사격을 가했다.
쏟아지는 총탄에 맞아 상체를 허우적거리던 리판은 순식간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사격 중지!”
백성균의 외침에 경호원들이 사격을 멈추자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지하 주차장이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총을 쏘며 달려들던 리판이 쓰러졌지만 경호원들은 긴장을 풀지 않고 두 손으로 권총을 움켜쥔 채 언제든지 다시 사격을 가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임영식 괜찮아!”
“으윽, 견딜 만합니다.”
임영식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총탄이 관통해 시뻘건 피로 흠뻑 젖은 팔을 다른 쪽 손으로 꽉 눌러 지혈을 하며 대답했다.
상처 부위에서 마치 누가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마구 쑤시는 것 같은 고통이 올라왔지만, 총탄이 머리나 심장을 관통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걸레처럼 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리판을 쳐다보던 임영식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헐떡이면서 놈이 힘겹게 점퍼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는 걸 보고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주머니 밖으로 살짝 나와 있는 기폭장치를 발견하곤 눈을 크게 치켜떴다.
“폭탄이다. 모두 피해!”
본능적으로 옆에 세워져 있던 봉고차 뒤로 몸을 엎드리는 것과 동시에 리판이 울컥울컥 붉은 피를 토해 내면서 뭐라고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엄지손가락에 힘을 줘서 기폭장치 버튼을 눌렀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꽈아앙!
엄청난 폭음이 사방을 뒤흔드는 것과 동시에 지하 주차장 안은 순식간에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벤츠 승용차 뒷좌석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혁권은 방탄 처리가 된 차창에 금이 갈 정도로 강력한 폭발에 화들짝 놀랐다.
후폭풍과 날아온 파편에 거미줄처럼 금이 쫙 가 있는 전면 유리창 너머로 희뿌연 연기가 가득 찼다.
“빌어먹을!”
부하들한테 미리 경고를 해 줬어야 됐는데 설마 하니 이렇게 빨리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입술을 질끈 깨문 혁권이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걸 하킴이 황급히 막았다.
“어딜 가십니까?”
“폭발에 다친 사람들이 많을 텐데 어서 구해야 될 거 아냐!”
방음이 잘되어 있어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부상을 당한 부하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안 됩니다. 공격이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거야!”
“지금은 보스의 안위가 우선입니다.”
밖에 있는 부하들이 눈에 밟혔으나 하킴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끄으응.”
얼굴을 구긴 채 앓는 소리를 내뱉은 혁권은 잠시 망설였지만 도저히 부하들을 내버려 둔 채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보스!”
혁권이 그대로 차 문을 열고 나가자 하킴도 얼른 뒤따라 차에서 내렸다.
폭발이 일어나면서 천장에 설치된 화재경보기를 건드렸는지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스프링클러에서 세찬 물줄기가 비처럼 쏟아졌다.
값비싼 이탈리아산 수제 정장이 물에 흠뻑 젖었지만 혁권은 신경도 쓰지 않고 폭탄이 터진 곳을 쳐다봤다.
어느새 바닥에 내려앉은 뿌연 먼지 사이로 드러난 광경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차량 유리창이 박살 나 있는 건 물론이고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부하들이 피를 흘리면서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걸 본 혁권은 앞으로 달려가 쓰러져 있는 부상자들을 살피면서 다급히 소리를 쳤다.
“당장 구급차를 불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킴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고 다른 부하들은 그를 도와 급한 대로 옷가지로 상처 부위를 싸매면서 응급처치를 했다.
띠리릭. 띠리릭.
샤워를 하고 나와 아내가 침대에 올려 둔 잠옷으로 막 갈아입은 심인성 과장은 스마트폰 벨이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에 눈가를 찌푸렸다.
이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라면 십중팔구 안 좋은 소식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손을 뻗어서 전화를 받자 심복인 최기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과장님, 큰일 났습니다.
예상이 여지없이 들어맞자 심인성 과장은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김혁권이 사고를 쳤습니다. 아니,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당했다는게 더 정확하지만 어찌 됐건 또 시끄럽게 됐습니다.
두서없는 이야기에 심인성 과장은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 봐!”
-김혁권을 노린 자살 폭탄 테러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아직 파악 중입니다만 최소 네 명이 죽고 부상자도 그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터져 나왔다.
“젠장!”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자살 폭탄 테러라니 뒷수습을 할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난번에 사고를 친 것이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런 일을 벌이다니 김혁권 이 인간은 정말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았다.
-과장님, 듣고 계십니까?
수화기에서 들리는 최기혁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심인성 과장은 애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는 제일 중요한 것부터 확인했다.
“김혁권은 어떻게 됐어?”
-운이 좋았는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 있습니다. 관할 경찰서에 가 있는 걸 급하게 손을 써서 기자들 눈에 안 띄는 장소로 옮기도록 했습니다.
“잘했어.”
최기혁의 발 빠른 조치에 심인성 과장은 살짝 한숨을 돌렸다.
만약 경찰서마다 상주하고 있는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먼저 기사를 올리기라도 했다면 수습하기가 더 어려워졌을 터였다.
“자살 폭탄 테러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일이 시끄러워지니까 기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사건을 뭉개도록 해.”
심인성 과장의 지시에 최기혁이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그게 상황이 녹록지가 않습니다.
“뭔 소리야?”
-사건이 터진 곳이 하필이면 시내에 위치한 특급호텔인 데다가 폭발에 화재경보가 울리는 바람에 투숙객들이 다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져서 그냥 묻어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미치겠군.”
-벌써 사고 뉴스가 인터넷 속보로 올라간 곳도 있습니다.
“설마 자살 폭탄 테러라는 것이 노출된 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건 막았습니다.
“절대 언론에 정보가 흘러가서는 안 돼. 내가 갈 때까지 관계자들 입을 확실히 막아 놔!”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심인성은 어깨를 들썩이며 길게 숨을 내뱉고는 옷장을 열고 방금 벗어 둔 양복을 다시 꺼냈다.
때마침 안방에 들어오던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곤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왜 꺼냈어요?”
“일이 생겨서 다시 나가 봐야 될 것 같아.”
“이 시간에요?”
“그렇게 됐어.”
방금 퇴근해 놓고 다시 또 나간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남편의 직업이 뭔지 알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아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심인성 과장이 막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을 때 상의 안쪽에 넣어 둔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그사이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어 안주머니에 급히 손을 넣어 스마트폰을 꺼낸 심인성 과장은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하곤 얼굴을 구겼다.
직속상관인 도병진 3차장이었는데 소식을 듣곤 한바탕 그를 다그치려고 전화를 건 것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무시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나중에 더 심하게 닦달을 당할 것이 뻔했기에 입맛을 다시며 전화를 받았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검은색 밴 두 대가 환한 전조등 불빛을 밝힌 채 거리를 빠르게 달려갔다.
반포대교를 지나 이태원으로 간 차량 행렬은 큰길을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갔다.
넓은 길을 따라 양옆으로 높다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고가의 주택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안쪽에 위치한 2층 양옥집 앞에 잠시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이 커다란 대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차량들이 안으로 사라지자 건장한 사내 한 명이 나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대문이 굳게 닫혔다.
키가 큰 조경수가 심어진 마당에 밴이 멈추자 혁권이 하킴과 함께 내렸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옆으로 다가온 최기혁의 말에 그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곤 순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당 곳곳에 한눈에 봐도 기관원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에 혁권은 여기가 국정원 안가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현관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꽤 고급스럽게 꾸민 거실 소파에 심인성 과장이 앉아 있다가 그를 보곤 몸을 일으켰다.
혁권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서서는 정색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자꾸 이러면 곤란하다고 전에 분명히 말했지 않소.”
무표정한 얼굴로 심인성 과장의 시선을 받아넘긴 혁권은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소파로 가서 앉았다.
“난 피해자일 뿐이오.”
맞은편 자리로 가서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심인성 과장은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는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하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하면 위에서 그냥 넘어갈 줄 것 같소.”
“그게 사실인 걸 날 보고 어쩌란 거요?”
“끄으응.”
심인성 과장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기댔다.
“지난번처럼 모사드는 아닌 것 같고 어떤 놈들이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벌인 거요?”
“얼마 전에 비즈니스를 하다가 IS하고 부딪친 적이 있는데, 거기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려고 한 것 같소.”
“허어. 모사드도 부족해서 이젠 IS까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구먼.”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지으면서 심인성 과장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물어볼 것이 없으면 난 이만 가 보겠소.”
그러자 심인성 과장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소.”
“······.”
“당분간 이 곳에서 지내도록 하시오.”
혁권이 싸늘한 시선으로 상대를 쳐다보면서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했다.
“지금 날 감금하겠다는 거요?”
순간 서재 안 공기가 팽팽해지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담배를 끼운 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심인성 과장이 차분히 이야기를 했다.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잠시 몸을 숨기고 있으라는 거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오. 지금 밖에 있다가 만에 하나 또다시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수습이 어렵다는 걸 그쪽도 모르지는 않을 거요.”
“배려는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심인성 과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혁권을 봤다.
“이건 제안이 아니라 통보요. 더 이상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릴 줄은 몰랐군.”
“요원들한테 무기 사용 승인이 내려졌으니까. 충고하는데 허락 없이 안가를 나갈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것이 좋을 거요.”
그러고는 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테이블 위에 있는 재떨이에 비벼서 끄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현관으로 나가는 심인성 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혁권은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