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812
812
#형제의 난
태일정유가 큰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 혁권은 텍사스 퍼미언 분지에 합작 법인인 아메리칸 에너지가 매입한 셰일 오일 광구를 헬리콥터에 탑승해 둘러보고 있었다.
두두두두.
벨430 10인승 헬리콥터에는 혁권과 수행원들을 비롯해 솔루시두스 소속으로 합작 법인 이사를 맡은 윤영석이 함께 탑승해 있었다.
머리에 무전 기능이 달린 방음 헤드폰을 쓰고 있었지만 요란한 로터 소리가 귀에 시끄럽게 들렸다.
혁권은 검은색 선글러스를 낀 채 방풍창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자세히 바라봤다.
첫 느낌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초록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이 붉은 땅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가운데 군데군데 높은 암벽이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정말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기 어려워 보이는 모습에 왜 지금까지 이곳이 버려진 땅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기 보이는 곳이 우리 회사 시추탑입니다!”
옆에 앉은 윤영석 이사가 한쪽 팔을 들어서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자 컨테이너로 만든 간이 시설들 중앙에 높다란 철탑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예상했던 것보다 더 규모가 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시설을 상당히 잘 갖춰 놓은 것 같군.”
“다 본사에서 지원을 넉넉하게 해 주신 덕분입니다.”
윤영석 이사의 대답에 그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본격적으로 시추를 시작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았지만 벌써 1억 달러가 넘는 비용이 들어갔다.
원하는 자원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확인하는 시추 작업은 원래 많은 돈이 소모되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례적으로 지출이 상당히 큰 거였다.
그게 다 자금 세탁을 위해 비용을 크게 부풀리고 장비와 물품 들을 필요 이상으로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메리칸 에너지 직원들은 아주 풍족한 지원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낮게 선회를 한 헬리콥터는 중장비와 차량 들이 세워진 공터 한쪽에 뿌연 모래 바람을 일으키면서 사뿐히 착륙했다.
옆문을 열고 헬리콥터에서 내리자 건장한 덩치에 콧수염을 기른 백인 중년인이 안전모를 쓴 채 가까이 다가와 일행을 반겼다.
“레드 베이스에 온 걸 환영합니다.”
혁권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윤영석 이사가 웃으면서 설명했다.
“직원들이 시추 기지를 부르는 별칭입니다.”
“그런 거였군.”
“이쪽은 현장 소장인 길럼입니다.”
“반갑네.”
영어로 말을 건네면서 먼저 한쪽 손을 내밀자 길럼 소장이 맞잡고 악수를 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구른 베테랑 엔지니어답게 손에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었고 성격도 상당히 호탕해 보였다.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 첫 번째 시추공을 뚫는 날인데 아주 딱 맞추셨습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었기에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고는 길럼 소장을 따라 한쪽에 설치된 임시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후끈한 열기가 감도는 바깥과는 달리 일단 실내로 들어가자 에어컨의 냉기가 그들을 반겼다.
“어떻게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나?”
“주 정부에서 받은 자료와 예비 조사 때 나온 결과를 비교해서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지점이 여깁니다. 하지만 땅 밑에 노다지가 묻혀 있을지 아니면 꽝일지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알 수 있겠지요.”
아무리 과학 기술이 크게 발달했다지만 여전히 자원개발은 일종의 도박과도 비슷한 같은 사업이었다.
그리고 땅에 묻힌 셰일 오일을 찾아내 퍼 올리는 것보단 완다그룹에서 들여온 자금을 세탁해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기에, 그는 크게 예민하게 굴지 않고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여기 말고 다른 시추 예정 지점을 확보해 둔 곳이 있나?”
혁권의 물음에 길럼 소장이 사무실 한쪽에서 동그랗게 말린 커다란 지도를 하나 가져와서는 탁자에 펼쳤다.
“현재 있는 곳에서 동남쪽으로 1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을 비롯해 모두 4개의 시추 예정지를 정해 뒀습니다. 물론 그 전에 경제성 있는 셰일 오일을 발견하면 아주 좋겠지만 말입니다.”
지도에 붉은색 원을 그려 표시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키자 팔짱을 낀 채 자세히 살펴본 혁권은 이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네 곳 다 유력한 시추 포인트라 이거지.”
“그렇습니다.”
“여길 하나씩 다 돌아가면서 시추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겠군.”
“준비 작업까지 합치면 시추공을 하나 뚫는 데 최소 한 달가량은 필요하니까 반년 정도는 소요될 겁니다.”
“반년이라······.”
“그 전에 경제성 있는 시추 지점을 찾아낸다면 굳이 다른 곳에다가 구멍을 힘들게 뚫을 필요는 없겠지요.”
“흐음.”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잠시 생각을 하던 혁권은 맞은편에 서 있는 길럼 소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시추 포인트 두 곳을 더 작업한다면 탐사 기간을 확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시추공을 한꺼번에 두 개나 뚫자는 말씀입니까?”
혁권이 머리를 가볍게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여기까지 포함하면 세 곳이지.”
길럼 소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다 이내 헛기침을 내뱉으며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시간은 단축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비용이 3배로 들어갈 겁니다.”
그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거였기에 혁권은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비용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네는 신경을 끄도록 해.”
“뭐 그러시다면야······.”
길럼 소장의 기준에서는 그렇게 불필요한 지출을 해 가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됐지만, 어쨌든 결정권자는 혁권이었기에 딱히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추가로 시추 작업을 진행하는 데 문제는 없겠지.”
그러자 길럼 소장이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경기가 다시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놀고 있는 기술자와 장비 들이 많으니까 급히 수배를 해서 작업을 시작하면 될 겁니다.”
“잉여 장비가 꽤 있나 보지?”
“몇 년 전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찍었을 때 경쟁적으로 셰일 오일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갑자기 가격이 폭락해 원가도 못 맞출 지경이 되니까 광구를 폐쇄되고 사용하던 장비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왔는데, 그게 아직 쌓여 있는 거지요.”
셰일 업계의 흥망성쇠를 직접 온몸으로 겪었던 길럼 소장은 이야기를 하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에도 퍼미언 분지는 가장 각광받는 셰일 오일 매장지였기에 불황으로 인한 타격을 가장 크게 받았다.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군. 윤 이사.”
“말씀하십시오, 대표님.”
“실무자들하고 협의해서 방금 내가 말한 것들을 최대한 빨리 진행시키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합작 법인의 진짜 목적인 뭔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인 윤영석 이사는 별말 없이 지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눴을 때 작업복을 입은 직원 한명이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소장는 시추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길럼 소장은 고개를 돌려 혁권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지금 바로 시추공을 뚫을 건데 직접 나가서 보시겠습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볼 순 없지.”
사양하지 않겠네, 하며 혁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길럼 소장은 일행을 현장 한가운데 우뚝 세워진 철탑으로 안내했다.
족히 30미터는 넘어 보이는 철탑 주위로 여러 장비가 배치되어 있고 현장 직원들이 살짝 긴장한 모습으로 모여 있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서자 길럼 소장이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 송신 버튼을 누르며 입으로 가져갔다.
“머피, 굴착기에 이상없지?”
-한참 전부터 엔진을 예열시켜 뒀으니까 어서 신호나 줘요.
“오케이. 그럼 시작해!”
-그럼 갑니다.
길럼 소장이 신호를 보내자 요란한 디젤엔진 소리를 내며 굴착기 드릴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드르르륵.
바위 부수는 소리가 나면서 흰 돌가루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이 넓은 벌판에서 고작 한 뼘 정도밖에 안 되는 파이프를 깊숙이 박아 넣어 땅속에 숨겨져 있는 셰일 오일 층을 찾아내야 된다고 생각하니, 새삼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굴착을 시작하는 걸 직접 참관한 혁권은 일행과 함께 다시 헬리콥터를 타고 인근에 위치한 도시인 미들랜드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샤워를 한 뒤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혁권은 소파에 앉아 윤영석 이사에게 합작 법인의 현황을 보고 받았다.
“오늘까지 완다 그룹에서 넘어온 자금은 모두 20억 달러입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그사이 꽤 많이 들어왔군.”
“다음 달에 5억 달러를 더 보내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상반기 안에 자금을 전부 받을 수 있겠군.”
“그럴 겁니다.”
“세탁은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겠지?”
시선을 받은 윤영석 이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런저런 비용을 부풀려서 벌써 1억 달러를 깨끗하게 돌려 놨습니다. 오늘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시추 장비와 인력을 추가로 새로 갖추면서 또 한 2~3천만 달러 정도는 빼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혁권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대한 것보다 액수가 그리 크지는 않군.”
“무리를 할 수도 있지만 괜히 연방 국세청(IRS)의 시선을 끌 필요는 없으니까요.”
“흐음. 그렇지.”
흔히 IRS로 불리는 연방 국세청은 소속 직원만 10만 명에 달하는 공룡 기관으로 산하에 있는 세금 범죄 조사국 같은 경우에는, 권총은 물론이고 자동소총까지 소지한 채 필요할 경우 무력도 써서 법집행을 하는 무시무시한 조직이었다.
혁권은 가볍게 수긍하고는 말했다.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한 참인데 자네 말대로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겠지.”
“시에라리온에 있는 보크사이트 광산에서 빼내는 것까지 합쳐서 올해 안으로 10억 달러 정도는 세탁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나쁘지는 않군.”
혁권은 하얀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뱉으면서 말을 이었다.
“송금은 언제부터 시작할 거지?”
“이번 주 안으로 먼저 만들어 둔 1억 달러하고 시에라리온 광산에 나온 돈을 합쳐 모두 5억 달러를 여러 차례 쪼개서 리히텐슈타인 계좌로 보낼 계획입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처리하도록 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는 혁권을 보며 윤영석 이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텍사스 주지사 측에서 초대장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초대장이라니?”
“텍사스 상공회의소 주체로 연말 파티를 하는데 거기에 참석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조금 뜬금이 없군.”
“아무래도 기존 광구와 함께 합작 법인 형태지만 퍼미언 분지에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한다고 하니까 주 정부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내년에 있을 주지사 선거에서 후원금을 좀 받으려는 의도도 있고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주가 바로 텍사스였지만 이만한 액수를 투자하는 회사는 그리 흔하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그냥 무시하긴 그러니까 파티 참석은 정중하게 거절하고 주지사 쪽에 적당히 정치 후원금을 보내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텍사스주의 유력가들과 친목을 다지기에 좋은 기회였지만, 합작 법인은 자금 세탁만 끝나면 조용히 청산할 거였기에 불필요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