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901
901
사막용 군복 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전투조끼 안에 받쳐 입고 뉴욕 양키즈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가 그를 보고는 한쪽 손을 올려 경례를 했다.
“충성!”
햇볕을 받아 시커멓게 탄 얼굴에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기르고 허벅지에 베레타 권총을 차서 영락없이 용병처럼 보이는 상대는 바로 태영준이었다.
태영준의 인사를 따라 뒤에 나란히 도열한 다른 부하들도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모자에 손을 갖다 대었다.
혁권은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태영준을 가볍게 끌어안은 뒤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어서 오게.”
구리 빛을 띠는 피부와 대비되어 유독 하얗게 보이는 치아를 드러낸 상대가 혁권에게 먼저 물었다.
“일거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있어.”
“그런 건 저희가 전문이지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하는 태영준을 보며 혁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팀 실력은 믿을 만하지. 이번에도 화끈하게 해결해 주는 걸 기대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역시 든든하군.”
흡족한 표정을 지은 혁권은 다른 팀원들하고도 한 명씩 다 악수를 나누고는 주기장 바로 옆에 세워진 대형 격납고로 자리를 옮겼다.
넓은 격납고 안에는 위장 도색이 칠해진 CH-47 치누크 헬리콥터 두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3,750마력의 T55-L-712 터보 샤프트 엔진을 장착해 성능을 향상시킨 D형이었다.
기체에 아무런 국가 표식이 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번 작전을 위해서 민가 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을 통해 임대한 기체였다.
그리고 격납고의 다른 한쪽에는 치누크 헬리콥터하고 마주보듯 커다란 군용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혁권이 먼저 가림막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가자 태영준과 팀원들도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이제 막 지상에 발을 내린 팀원들이었으나 짧게나마 쉴 틈도 없이 바로 브리핑을 시작하려는 것에 전혀 불만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프로답게 단 한 점의 군더더기도 묻어나지 않는 효율적인 동작으로 비어 있는 철제 의자에 앉아 브리핑이 행해질 정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레이저 포인트를 받아 든 혁권은 옆에 서 있는 함단을 보며 말했다.
“화면을 켜.”
“예.”
짧게 대답한 함단이 리모컨을 조작하자 대형 LED 화면에 예멘 남서부 지도와 함께 NRF 지도자인 타리크의 얼굴 사진이 떠올랐다.
혁권이 레이저 포인트로 타리크를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이름은 타리크 살레,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살레 전 대통령의 조카로 현재 전국 저항군 줄여서 NRF의 지도자이다. 현재 정부군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명령 체계 밖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멘 내전 가운데 가장 교전이 치열한 남서부 호데이다주州 일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뒤에서 지원하고 있는 남부저항군하고는 이념적 차이 때문에 적대적인 관계인데, 며칠 전 기습적인 포격을 가해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알 알라비 아랍에미리트 파견군 사령관이 시찰을 나왔다가 포격에 휘말려서 다수의 병사들과 함께 폭사를 하고 말았다.”
다들 베테랑답게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자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더욱 브리핑에 집중했다.
“당연히 아랍에미리트에서 보복으로 NRF 점령지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는데 이때 폭탄 하나가 유엔 구호 물품 보관소에 떨어지는 오폭이 일어나서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몸을 바로 한 혁권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태영준과 팀원들하고 시선을 마주하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할 일은 바로 NRF 점령지로 몰래 침투해 들어가서 타리크를 체포한 뒤, 곧장 아랍에미리트로 끌고 오는 거다. 질문 있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마 전에 휴가를 끝내고 다시 복귀한 김선호가 한쪽 팔을 살짝 들어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명색이 한 단체의 우두머리인데 경호가 꽤 붙어 있지 않습니까?”
예상한 질문이었기에 그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바로 대답했다.
“맞아. 삼촌인 살레 대통령이 후티 반군한테 죽임을 당해서, 그런지 항상 어딜 갈 때마다 서른 명이 넘는 경호원과 기관총을 장착한 픽업트럭 두 대를 데리고 다닐 만큼 병적으로 신변 안전에 신경을 쓴다더군.”
만만치 않은 인원인 데다가 적지 한가운데 들어가서 임무를 수행해야 됐지만 다들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작전도 여러 차례 수행한 데다가 무엇보다 팀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놈들 주둔지로 들어가서 목표를 잡아 오는 겁니까?”
태영준의 물음에 그는 머리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그럼 귀찮은 날파리 떼를 처리해야 되니까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놈을 밖으로 끌어 낸 뒤에 잡을 거야.”
“그거 아주 잘됐군요.”
이쪽에서 유리하도록 상황을 만들어 작전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에 태영준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른 질문은 없나?”
팀원들을 둘러본 혁권은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지 않자 브리핑을 마무리했다.
“작전을 벌일 현장 위성 지도를 나눠 줄 테니 완전히 숙지를 하고 필요한 장비를 점검하도록 해.”
소매를 걷어 시계를 확인한 그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5시간 뒤에 작전을 개시할 거니까 그때까지 대기하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알겠습니다.”
손짓을 하자 라미가 작전 현장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는 대축척 위성 지도를 팀원들한테 한 장씩 나누어 줬다.
그러자 팀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위성 지도를 보면서 각자 어떻게 작전을 실행하는 것이 좋을지 의견을 교환했다.
자유로운 가운데 팀원 한 명 한 명이 작전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임무를 완벽히 수행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자넨 나하고 이야기를 좀 더 하지.”
“예, 보스.”
태영준과 함께 군용텐트 바깥으로 자리를 옮긴 혁권은 활짝 열린 격납고 출입문 앞에 서서 안주머니에 넣어 둔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담배들 사이에서 하나를 꺼낸 그가 먼저 제 입에 물고는 태영준에게도 권했다.
“자네도 한 대 피울 텐가?”
“주시면 감사하죠.”
이럴 때는 절대 사양하는 법이 없는 태영준이 넙죽 감사하다며 자기도 담배를 받아 들었다.
그런 다음 바지주머니에서 지포라이터를 찾은 뒤 혁권에게 불을 붙여 주고는 마지막으로 자기도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팀원들 상태는 어떤가?”
한쪽 손에 담배를 든 태영준은 자신 있는 태도로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다들 최상입니다.”
“다행이군.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작전에 투입해야 되서 걱정했는데 말이야.”
“하도 많이 타서 다들 이제 비행은 이골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반이 여객기에 탄 것처럼 편하게 데려다주기도 했고 말입니다.”
“생긴 것만큼 조종이 거친 이반이 여객기처럼 비행기를 몰았다고? 그건 좀 믿기지가 않는군.”
“그래도 적응이 되면 나름 탈 만합니다.”
“난 사양하고 싶군.”
피식 웃으면서 머리를 절래 가로저은 그는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타리크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신속하게 일을 끝내고 작전 구역을 빠져나오는 거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NRF의 주둔지가 있기 때문에 자칫 시간이 지체됐다가 놈들과 전투를 벌이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골치 아프게 될 수도 있어.”
“주둔지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 겁니까?”
“위성 지도를 확인하면 알겠지만 21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어.”
“그 정도면 습격을 받은 걸 알아차리면 곧바로 달려올 수 있는 거리군요.”
“맞아.”
혁권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신속하게 치고 빠져야 돼.”
“탈출은 어떻게 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까?”
“격납고에 있는 치누크 헬기들이 팀원들을 내려놓고 알무카에 있는 아랍에미리트 파견군 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다시 날아올 거야.”
태영준은 고개를 슬쩍 뒤로 고개를 돌려 주기되어 있는 치누크 헬리콥터를 쳐다봤다.
“만약 헬리콥터를 타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때는 사막을 가로질러서 아랍에미리트 국경을 넘어가야 돼.”
“가까운 곳에 파견군 기지가 있는데 그리로 가면 안 되는 겁니까?”
“아부다비에서 타리크의 신병을 넘겨받을 때까지 아랍에미리트는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이번 작전에 대해서 연관성을 일체 부정할 테니 그럴 수는 없어.”
그러자 태영준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위험은 다 이쪽에 떠넘기고 자신들은 과실만 챙기겠다는 심보군요.”
“그 대신 우리도 성공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기로 되어 있으니까 인상을 풀어. 자네와 팀원들한테도 작전이 끝나면 5만 달러씩 보너스가 지급될 거야.”
“다들 아주 좋아하겠군요.”
“그러면 미리 알려 줘서 사기를 좀 올려놔.”
“정말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웃으면서 말한 태영준이 그를 보며 물었다.
“이번에도 같이 가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나만 빼놓고 가서 파티를 즐길 셈은 아니겠지.”
“저희야 보스께서 함께 가신다면 언제나 환영이지요.”
“샴페인을 시원하게 얼려서 준비해 놓으라고 할 테니까 어서 끝내고 와서 마시자고.”
“작전에서 돌아와 마시는 술보다 맛있는 것도 없지요.”
“그리고 비밀유지를 위해 현장에서 타리크를 제외하고 단 한 명의 적도 살려서 돌려보내면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태영준이 돌아가고 얼마 있지 않아 보너스 이야기를 했는지 등 뒤에서 팀원들의 환호성이 크게 들렸다.
다른 숙소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혁권은 그러지 않고 부하들과 똑같이 격납고 안에 펼친 텐트 안에서 잠깐 취침을 한 뒤에 일어나서 직접 개인 장구를 쌌다.
밑에 있는 부하들한테 시켜도 되는 일이었으나 유사시에 목숨하고 직결될 수도 있었기에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고 물품을 챙겼다.
12시간 안에 작전을 끝내고 나올 예정이었기에 옷은 추가로 필요 없었고, 두 끼 분량의 전투식량과 응급 의료 키트만 넣어 짐을 최소화시켰다.
대신 글록 권총과 M4 자동소총 탄약을 소지하고 다닐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많이 챙겼다.
불량을 막기 위해 29발만 채운 탄창은 전투조끼 양옆과 배낭에 전부 12개, 348발을 가져갔다.
거기다가 신호탄 하나에 연막과 수류탄도 잊지 않고 배낭에 담은 뒤에 마지막으로 등에 매는 휴대용 물 가방에 깨끗한 생수를 채워 넣는 걸로 모든 준비를 끝냈다.
혹시나 잊고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물품을 체크하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하킴이 안으로 들어왔다.
“보스, 출발 5분 전입니다.”
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한 혁권은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그럼 나가 볼까.”
배낭과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가자 치누크 헬리콥터들이 옮겨져 휑한 느낌이 드는 격납고 내부에 팀원들이 어느새 준비를 모두 끝내고는 정렬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혁권은 팀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다들 보너스 이야기는 들었지?”
“옛.”
“눈먼 총탄에 맞는 놈이 있으면 내가 궁둥이를 차 버릴 테니까 작전이 끝날 때까지 정신들 바짝 차려!”
“알겠습니다.”
“함께 갔으니 나올 때도 같이 나오는 거야.”
“예.”
“좋아. 전부 탑승해!”
말이 떨어지자 팀원들은 태영준을 따라 환하게 불이 켜진 격납고를 나가 어둠 속에 커다란 덩치를 뽐내며 세워져 있는 CH-47 치누크 헬리콥터 쪽으로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