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902
902
붉은색 조명이 켜져 있는 치누크 헬리콥터 내부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그를 반긴 건 코를 찌르는 독한 항공유 냄새였다.
처음 맡는 사람은 두통이 생길 정도로 독한 내음이지만 혁권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헬리콥터에 오르기 전 팀원들과 똑같이 주머니가 많이 달린 모래색 군복 바지에 편한 긴팔 티, 전투조끼로 갈아입은 그는 야구모자에 걸쳐 둔 선글라스가 제대로 놓여 있는지 한 번 만지작거리곤 벽에 붙어 있는 접이식 의자를 내려 엉덩이를 붙였다.
한쪽 어깨로 메고 있던 가방까지 바닥에 툭 내려 두고 나자 아래위가 하나로 된 일체형 승무원복을 입은 사내가 주먹을 쥔 양팔을 들어서 가볍게 부딪치며 영어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안전벨트! 안전벨트!”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차린 혁권과 팀원들은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는 안전벨트를 찾아 착용했다.
곧이어 엔진이 가동되자 엄청난 소음이 실내로 밀려들었다.
그러자 이런 경험이 많은 혁권과 팀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지에 있는 건빵 주머니에서 귀마개를 꺼내 귀를 막거나 MP3 플레이어 이어폰을 꽂았다.
위이이잉.
인원을 확인한 승무원이 한쪽 벽면에 달린 스위치를 누르자 활짝 열려 있던 후방 램프가 천천히 올라와서 완전히 닫혔다.
실내가 완전히 밀폐되자 소음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벽면을 타고 울리는 진동이 커서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항공유 냄새만 더욱 진해졌다.
잠시 뒤 기체가 천천히 떠오르는 느낌이 들며 치누크 헬리콥터들이 차례대로 지상에서 이륙했다.
혁권이 고개를 뒤로 돌려 옆에 있는 둥근 방풍창을 너머를 쳐다보자 조명이 밝게 켜진 격납고와 활주로가 어느새 한참 아래에 있었다.
머리를 바로 한 혁권은 앞으로 지루하게 이어질 비행시간을 어떻게 때울지 생각하다가 일단 눈을 감았다.
어차피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때부터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니 지금이라도 잠을 보충할 요량이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리는 느낌에 혁권은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하킴이 헬리콥터 로터 소리에 안 들릴까 봐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5분 뒤에 중간 급유 지점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알았어.”
머리를 끄덕인 혁권은 소매를 살짝 걷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검은색 우레탄 밴드로 된 전자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자정에 출발을 했으니 꼬박 2시간을 날아온 거였다.
하지만 아직 사우디아라비아 국경도 넘지 못했는데 작전 지역까지 가려면 넉넉잡아 2시간은 더 가야만 했다.
입안이 마른 혁권은 한쪽에 놓인 작은 생수병을 집어서 뚜껑을 따고 목을 축였다.
얼마 있지 않아 고도가 내려가는 걸 느끼고 고개를 돌려 방풍창 밖을 쳐다보자
어둠 속에 군용 트럭과 소형 전술 차량 서너 대가 전조등을 환하게 밝힌 채 세워져 있는 것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작전을 위해서 임시로 마련된 중간 급유 지점에 도착한 거였다.
리야드에서 작전 지역까지 거리가 무려 1천 킬로미터가 훌쩍 넘었기에, 아무리 치누크 헬리콥터의 항속거리가 길다고 해도 중간에 연료를 급유하지 않으면 안 됐다.
치누크 헬리콥터 두 대가 동시에 착륙하자 대기하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군 소속 병사들이 유조차에서 급유 호수를 끌고 와서 연료 탱크에 연결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연료를 공급받는 중에도 일행은 그대로 헬리콥터에 탑승해 있고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로터와 엔진도 끄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 혁권이 이리저리 움직여서 굳은 몸을 풀어 주고 있을 때 승무원이 가까이 다가와 반으로 접힌 쪽지를 내밀었다.
“리야드에서 보낸 전문이라고 합니다.”
쪽지를 받아서 내용을 확인하자 어느새 옆으로 와 있던 태영준이 물었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타리크가 갑자기 약속을 오후로 늦췄다는군.”
이야기를 듣자마자 태영준이 이맛살을 찡그렸다.
“혹시 작전을 눈치챈 것 아닙니까?”
“아예 취소를 한 것이 아니라 시간만 뒤로 미룬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아.”
“일부러 함정을 파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잖아.”
“그건 안 되지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이 나왔다.
무장 단체 정도는 충분히 싸워 이길 자신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 이대로 작전을 중단하면, 정보가 새어 나가 오히려 위험 부담이 더 커지고 상황 변화에 따라 아예 취소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른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한 작전은 이대로 계속 진행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알겠습니다.”
이십분 뒤 연료 보급을 전부 끝낸 치누크 헬리콥터 두 대는 다시 이륙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기서부터는 국경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깜빡이는 비행등까지 전부 끈 채 어둠 속에 기체를 완전히 숨기고 이동했다.
국경 지역은 아랍연합군과 친정부 성향의 무장 단체들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비밀리에 진행하는 작전인 만큼 그 누구의 눈에 띄어서도 좋을 것이 없었다.
국경을 넘어 예멘 영토로 진입한 뒤에도 한참을 더 날아간 일행은 마침내 오랜 비행 끝에 작전 지역 영공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자 머리에 헤드셋을 쓴 승무원이 한쪽 손을 활짝 편 채 돌아다니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도착 5분 전! 5분 전!”
동시에 붉은색 조명 등이 들어오자 혁권과 팀원들은 몸을 일으켜 각자 소지한 장비하고 물품을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실수로 안전핀이 빠져 사고가 벌어지는 걸 예방하기 위해 수류탄에 붙여 둔 마스킹 테이프를 때고 사용하기 좋은 위치에 수류탄 세 발을 꽂았는데, 그중에 하나는 백린 연막탄이었다.
그리고 전투조끼에 붙어 있는 파우치를 열어 예비 탄창들이 잘 있는지도 살펴봤다.
이미 출발 전에 확인을 했지만 전투 중에는 작은 실수 하나가 목숨하고 바로 직결됐기에 점검하고 또 점검을 해 두어야 했다.
“1분 전!”
승무원의 외침에 그는 배낭을 등에 메고는 들고 있는 M4 자동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노리쇠를 당겨 총알을 장전했다.
이제 손가락만 살짝 움직여 방아쇠를 당기면 바로 총을 쏠 수 있었다.
가볍게 숨을 몰아 쉰 혁권은 그림자처럼 언제나 뒤를 따라다니는 하킴과 백성균 두 사람과 함께 후방 램프로 갔다.
태영준과 팀원들은 먼저 준비를 끝내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에 서십시오.”
혁권이 오자 자연스럽게 대열 중간에 자리를 만들어 줬는데 앞뒤로 보호를 받을 수 있어 제일 안전한 위치였다.
살짝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태영준과 팀원들 입장에서는 그의 안전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모르는 척 넘어갔다.
“모두 야시경을 착용해!”
최태경이 주먹을 쥔 손을 흔들면서 크게 소리를 치자 일행은 모자에 쓰고 있던 단안식 야시경인 AN/PVS-14을 내려 착용했다.
아직 바깥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기에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움직이기 위해서는 야시경이 필수였다.
천장에 늘어져 있는 끈을 한쪽 손으로 붙잡고 서 있자 이내 치누크 헬리콥터가 고도를 낮춰 지상에 착륙했다.
머리에 쓴 헤드셋을 통해 조종사에게 지시를 받은 승무원이 한쪽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기계음을 내며 후문 램프가 서서히 열렸다.
그러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회전하는 로터 블레이드에 휘날리는 모래 바람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지금이 가장 취약한 순간이었는데, 지상하고 가까운 데다가 한곳에 멈추어 있었기에 만약 적이 매복해 있다면 자동소총 사격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작전지역은 황량한 사막인 데다가 반경 5킬로미터 안에 별다른 위협 요소가 없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덜컹하는 충격에 몸이 흔들리며 바퀴가 지면에 내려앉자 승무원이 다급히 손짓을 하면서 크게 소리쳤다.
“고! 고!”
그와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이 거침없이 어둠 속으로 뛰어 나갔다.
혁권 역시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지향 사격 자세를 취한 채 치누크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그러는 사이에 또 한 대의 치누크 헬리콥터는 적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양쪽 측면에 설치된 M-240 기관총으로 엄호사격을 해 줄 수 있도록 공중에서 천천히 선회를 하면서 대기했다.
일행이 전부 내리자 치누크 헬리콥터는 후방 램프도 다 닫지 않은 채 그대로 다시 하늘 위로 떠올랐다.
-알파탱고. 여기는 찰리 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혁권은 한쪽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리는 치누크 헬리콥터 조종사의 목소리에 재빨리 총구를 내리고는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찰리 원. 말해라.”
-지상에 위협요소가 있나?
“아직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이대로 다음 포인트로 빠져나갈까 하는데 괜찮겠나?
“상관없다.”
-오케이. 사냥을 잘하길 바라고 나중에 다시 보자.
“라저.”
교신을 끝내자 머리 위에 있던 치누크 헬리콥터 두 대는 고도를 높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사라져 버렸다.
요란한 로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주위는 금방 무거운 적막감에 휩싸였다.
달도 없어 먹물을 뿌려 놓은 것처럼 어두운 하늘에는 가끔씩 별빛만 반짝였고 동서남북 어딜 둘러봐도 인적 하나 없이 황량했다.
아직 해가 뜨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지만 야시경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둠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위치를 확인해 봐.”
“예.”
혁권의 지시에 M249 미니미 기관총을 든 박원중이 곧바로 휴대용 GPS 장비를 꺼내 위치를 측정했다.
치누크 헬리콥터 조종사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줬겠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 제대로 왔는지 위치를 확인해 봐야 됐다.
“15.0022, 48.9518 작전 지점 좌표하고 정확히 일치합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인 혁권은 소매를 걷어서 시간을 확인하곤 지시를 내렸다.
“좋았어. 조금 있으면 해가 뜰 테니까 그 전에 매복 지점으로 이동한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다른 팀원들도 따라서 움직였다.
“방향은······.”
“저쪽입니다.”
최태경이 낮게 속삭이면서 한쪽 팔을 들어서 왼편에 있는 낮은 언덕을 가리키자 그는 살짝 고맙다는 눈짓을 하곤 지시를 이었다.
“왼편 언덕으로 올라간다. 주변이 적이 있을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해.”
“옛.”
“자, 출발!”
삼각형 모양의 전술 대형을 갖춘 일행은 지향사격 자세를 취한 채 어둠을 헤치고 조심스럽게 이동을 시작했다.
지면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완전한 모래사막이 아니라 크고 작은 암석들이 함께 뒤섞여 있어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야시경을 착용한 혁권과 팀원들은 그리 큰 어려움 없이 황량한 벌판을 가로질러 갈 수 있었다.
벌레 울음 하나 들리지 않는 가운데 자그락거리며 군화로 돌을 밟고 걸어가는 소리만이 나직이 울렸다.
야시경을 착용했다지만 너무 서두르다가 자칫 돌에 걸려 넘어져 작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치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손실인 데다가 다른 팀원들한테도 부담이 됐기에 조심하면서 적당한 속도로 이동을 했다.
그 때문에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매복 지점으로 삼은 언덕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