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
114화.
가상현실.
이준희 회장의 발언과 함께 공개된 호접몽 프로젝트의 실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저건 또 뭔 헛소리야?”
“가상현실이 나올 정도의 기술력이 지금 되나?”
아진 전자의 기자회견이 모두 끝나고 난 후, 밤이 된 한국 술집 곳곳에서는 가상현실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뜨거운 논쟁이 펼쳐졌다. 터무니없다는 등의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믿음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야! 아진 전자를 상대로 기술력을 따지면 안 되지! 생각해 봐! 전에 갑자기 어느 순간 스마트폰이라는 것도 전부 아진 전자 덕분이잖아. 아까 기자회견에서 보여줬던 그 영상도 솔직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장면들도 엄청 많았고!”
“맞아! 그리고 이준희 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저렇게 공식 석상에 나와서 거짓말을 하겠어? 이상하잖아. 게다가 아르고스랑 실리코프 회장도 함께 등장했고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그 실리코프 회장 말이야. 분명 전신마비······.”
기자회견에 관해 여러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 미국은 이른 새벽부터 이와 관련한 공식 브리핑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좀 자두지 않아도 되겠소?”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을 하는 헬렌을 보며 피어슨이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피곤하지만, 총명한 눈빛으로 그에게 서류 몇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저희에게 잠을 잘 시간이 어디 있나요. 큰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와야죠. 그보다 대통령님도 저랑 같이 꼬박 밤을 새웠는데 쌩쌩하시네요.”
“원래 내가 밤잠이 없어서 그렇네.”
굳은 얼굴로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던 그는 이내 펜을 들어 그녀가 건네준 서류에 사인했다. 그리고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헬렌에게 다시 되돌려주며 물었다.
“이제 이것으로 된 건가?”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가상현실 산업의 진흥과 지원 및 규제에 관련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부여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2135호가 발효될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제 곧 있을 언론 브리핑 자료에 모두 첨부되어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그 말에 피어슨 대통령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재임은 확정적이겠군······.”
민주당의 반발로 가상현실과 관련한 법이 통과를 목전에 두고 좌절되었다. 물론 가상현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결정이 매우 합리적이고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는 달랐다.
“이미 언론에서 여론의 방향이 다양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그쪽도 당황하겠지. 지금껏 꼰대 취급을 받던 공화당이었는데, 삽시간에 자기들이 보수 꼴통이라고 욕을 먹고 있으니까.”
언제나 민주당은 진보적이고, 새로운 혁신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갖은 노력을 하며 지지자들을 설득해 왔다. 그리고 그 노력이 빛을 발하며 여러 유권자의 표를 받아오던 그들이 이번에는 공화당이나 할 법한 꼰대 짓을 한 것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들도 가상현실 기술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반대했을 리 없었지만, 일반 대중들은 그런 점에 중요치 않았다.
“그림 좋지 않나? 보수적이라고 비난받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민주당의 반대로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법안 통과가 무산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직권으로 행정명령을 발효한다······.”
대중들은 과정을 보지 않는다. 여느 선거가 그렇듯이, 누가 이기고 지냐만이 중요한 것. 흑색선전이나 어떤 음해 공작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하면 장땡이었다. 그러면 그 어떤 오점도 묻어버릴 수 있는 권력이 생기기 때문에, 피어슨은 개의치 않았다.
“민주당 놈들도 똥줄 타겠군. 이제 선거가 얼마나 남았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말이야.”
피어슨 대통령은 뒤통수 맞았다며 방방 날뛰고 있을 민주당 의원들을 생각하며 웃었다. 그가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집무실 문을 두들기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대통령님. 언론 브리핑을 직접 하시려면 지금 출발하셔야 합니다.”
“아.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자리에서 일어나서 브리핑 룸으로 걸음을 옮기는 피어슨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
[ 다음 소식입니다. 어제 오후에 있던 아진 전자의 기자회견에서 이준희 회장이 한 발언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가파른 변동을 보인 아진 전자의 주식을 매입해 손실을 보는 투자자들에게 한 주당 500만 원에 매입해 주겠다는 발언을 했는데요. 이 기자가 관련 내용을 보도하겠습니다. ]이른 아침에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아빠는 멍하니 TV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밥은 안 먹고 TV는 또 왜 그렇게 집중해서 보고 있어요. 빨리 밥 먹어요.”
“으응······? 아 어어······. 밥 먹어야지.”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화들짝 놀라며 수저를 집어 들었다. 다급하게 입안에 음식물을 집어넣는 아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민수야······. 우리 대박이야. 대박!’
아빠의 눈빛을 보기만 해도 그의 생각이 전달되는 듯한 기분에 나는 입을 오물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에게 이번 일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아진 전자의 주식이 상승하는 것은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 확실한 사실이었기에 아무런 걱정 하나 없이 매입할 수 있었지만, 아빠는 아니었다.
“이 양반이······? 왜 그렇게 실실 웃고 있어요!”
자꾸 이상한 웃음을 실실 흘리는 아빠의 행동이 짜증이 났는지 엄마는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이번에 도움을 준 것이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이런 일확천금의 기쁨도 맛보는 날이 있어야 인생 사는 맛 아니겠는가. 나 역시 내 명의로 산 액수는 푼돈 수준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꽤 좋았다.
“잘 먹었습니다. 엄마.”
“그래······. 학교 갔다가 어디 딴 곳으로 새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라!”
“네에~”
엄마의 말에 대충 대답하며 집을 나서면서 나는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민수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깜짝 놀란 기색이 역력하게 유진은 내 전화를 받았다. 한동안 조용히 지낸 탓에 그녀에게 무슨 도움을 요청할 일이 없었지만, 명색이 내 비서인 그녀였기에 주는 월급이 아깝지 않으려면 무슨 일을 시키긴 해야 했다.
“그럼요. 요즘 바빠서 통 연락도 못 했네요.”
[ 그······그러게요. 저번에 그 중국 인신매매단들 관련해서 이야기 한 이후로······. 아 맞다! 그때 한국에서 일어난 해킹 사건. 그거 민수님이 한 일이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너무 알려고 하지 마세요. 다쳐요.”
[ 그래도······. 아니! 아니에요! 말해주지 마세요.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나와 지낸 시간이 그래도 짧지만은 않은 듯, 그녀는 나와 관련해서는 여러 속사정을 모르면 몰랐지, 알아서 좋을 일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오늘은 부탁이 하나 있어서 전화를 드렸어요.”
[ 부탁이요? ]“네.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거긴 한데······. 이번에 집 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 싶은데 딱히 좋은 곳을 아는 데가 없어서요. 혹시 알아봐 주실 수 있으세요?”
[ 네? 이사요? 아니······. 갑자기 왜요? ]내 뜬금없는 부탁에 유진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번에 주식 투자를 했는데 운 좋게 돈을 좀 많이 벌어서요. 이참에 효도도 좀 해 보고 기자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으로 이사를 좀 해 보려고요.”
[ 주식 투자요? 뭐 얼마나 버셨길래 그러세요? ]“음······. 글쎄요. 아직 청산을 안 해서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대충 보면······. 다 팔면 아마 700억은 넘을 것 같은데요?”
[ ······네? 뭐라고요? ]내 말에 사고회로가 정지한 듯, 유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귀가 터질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방심한 틈에 그녀의 음파 공격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나는 저절로 얼굴을 찌푸렸다.
“아오······. 왜 갑자기 그렇게 소리를 빽 질러요! 깜짝 놀랐잖아요.”
[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700억? 도대체 뭘······. 얼마나 투자하셨길래? ]너무 놀랐는지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는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때 윙윙이 팔고 받은 돈을 요번에 아진 전자 주식에 몰빵 했거든요. 하도 가격이 떨어져서 어지간히 쌌어야죠. 그냥 전부 질렀는데 운이 좋았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내 말에 유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 아······ 아진 전자요? 도대체 얼마나 사신 거길래. 그런 금액이······. ]“평균 단가가 112만원에······. 대충 14000주 정도 사 뒀어요. 그런데 이준희 회장이 500만 원에 사 준다고 했으니까 최소 그 가격으로 잡으면 아마도 700억 정도 되지 않을까요?”
14000주. 어디 잡주도 아니고 한국 시가 총액 1위인 아진 전자의 주식을 14000주나 들고 있는 개인은 아마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거기에 700억이라는 막대한 자산을 보유한 14살은 재벌 총수 집안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유진은 민수의 능력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 정말이지······. 민수님은······. ]“아무튼. 그 정도면 집값으로는 문제없겠죠? 가격은 상관하지 마시고 최대한 좋은 곳으로 한번 알아봐 주세요.”
[ 아······알겠어요. 한번 알아보도록 할게요. ]“아! 그리고 요번에 제가 학계에 제출할 논문 하나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 놨으니까 한번 검토나 해 보세요.”
[ 네? 논문이요? ]“네. 어제 심심풀이로 쓴 건데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분량이 필요한 게 아니라서 금방 끝났네요. 화학식이랑 분자구조식이 많아서 그러지 대충 10페이지 정도니까 부담 없을 거예요.”
[ 무슨······논문인데요? ]어느새 2003년의 7월 말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문득 내가 일전에 했던 약속이 기억이 났다. 노벨상을 매년 하나씩 정복하겠다는 내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에는 무언가를 발표해야 노벨상 위원회에서도 수상 대상자 심사에서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특출나고 상을 주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엄청난 것을 말이다.
“별 건 아니에요. 중성자 에너지 흡수 작용을 하는 화학제에 관한 연구에요.”
“음······. 한번 보시면 알 테니까 읽어보기만 하세요. 그리고 괜찮다 싶으면 저 대신해서 사이언스 학회지에다 보내 주시고요. 그럼 전 이제 학교 들어가야 해서 끊을게요. 부탁해요.”
[ 자······잠깐만요. 민수님? 민수······. ]뚜우우우우
“뭐야?‘
유진은 끊어진 전화를 보면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맨날 이런 식으로 자기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민수의 행동에 익숙하긴 했지만, 당하는 처지인 그녀에게서는 언제 당해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문과라서 화학은 아예 아는 게 없는데.”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기까지 그녀의 관심사는 사회과학과 정치학, 언론학 쪽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었다. 과학이란 것과 그리 친하게 지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유진이었기에, 민수가 검토하라며 보낸 논문을 보며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휴······.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걸 시킨 거야.”
빽빽하게 적혀진 화학식과 설명들을 보면서 유진은 눈이 핑핑 돌아가는 것 같았다. 집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은 이해하겠지만, 과학에 관해 문외한인 자신한테 애초에 왜 이런 걸 자신한테 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에이. 몰라. 뭐 어떻게든 되겠지. 별일 있겠어.”
대충 논문을 훑어보던 유진은 그냥 이메일을 열어 그가 지시한 대로 이전에 인연이 있던 사이언스지 편집장인 애덤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노트북을 거세게 닫으며 몸을 일으켰다.
“요즘 한국 부동산 시세도 요동치고 있어서 심상치 않은데······. 이것도 빨리 알아봐야겠네.”
이번 전기찬 대통령이 부동산 관련 대대적인 개혁을 하겠다고 칼을 꺼내 들면서 요동치는 부동산 가격에 좋은 매물들이 속속들이 거래 매물에서 사라지고 있는 시기였다. 아직 개혁안과 관련한 발표가 나오지 않은 이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집 구하기 더 힘들 것 같다는 불안감에 그녀는 바삐 공인 중개사를 찾아 밖으로 나섰다.
탁
그녀가 떠난 방 안에는 닫혀 있는 노트북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로 전, 사이언스 지로 하나의 짧은 분량의 논문을 보낸 그 노트북이 말이다. 유진은 이때 성급한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가 보낸 논문의 가치를 알았다면, 그녀는 당장에라도 그의 앞에 찾아가 드러누우며 배 째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논문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비밀 속에 묻으라고 말이다.
[ 프로젝트 No. 94. 방사능 클리너(Radioactive Cleaner) ]하지만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지 속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이고 말았다. 민수가 너무 막 나가지 않도록 조절해야 할 그녀 스스로 핵폭탄을 세상에 직접 투하해버리는 일을 말이다. 집을 구하러 바쁘게 돌아다니는 유진이 자신이 한 짓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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