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
134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의 마지막 방학도 막바지에 들어서 슬슬 개학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의 침음성이 들려왔다.
“크흑······. 이 자식이 감히······.”
컴퓨터를 하고 있던 아빠가 갑자기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하며 키보드를 거칠게 두드리기 시작하자 호기심에 조용히 아빠 뒤로 다가가 모니터를 몰래 쳐다보았다. 먹음직스럽게 갈색으로 익은 타코야키 수십 개의 사진을 보면서 아빠는 격렬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진짜······. 너는······. 천벌 받을······ 놈이다······. 네놈이······. 그러고도······. 인간이냐.”
이를 악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대로 댓글에다가 적어가는 아빠를 보면서 의아했지만, 순간 그 글의 제목과 댓글을 보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씽크빅 몇 년 하면 이런 드립이 나와요?
– 진짜 너는 악마 새끼다.
– 님. 제목 학원 몇 년 차?
– 야 이 개새끼야.
– 천벌 받을 새끼야. 네놈이 그러고도 인간이냐?
– ㅋㅋㅋㅋㅋ. 탈모충들 이 악물고 댓글 다는 거 봐라. 어그로 쩐다.
“이 망할 새끼들이!!!”
누군지 얼굴도 모를 사람들의 놀림에 아빠는 분을 참지 못한 듯,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괴성을 질렀다.
“아빠? 뭐하시길래 그렇게 소리를 질러요?”
내가 있는 줄도 모른 채 글에 집중하고 있던 아빠는 내가 말을 걸자 화들짝 놀라며 보고 있던 인터넷 창을 껐다.
“으아아아! 민수구나. 너 언제부터 있었던 거니?”
아빠의 격렬한 반응을 보면서 나는 애써 모르는 척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방금 왔는데요.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계세요.”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마치 보면 안 되는 거라도 본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아빠를 보면서 나는 뻔히 그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왜······왜 그런 눈으로 보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까지 눈치채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방금 있었던 일로 보고 말았다. 아빠의 머리털이 예전보다 확연히 비어 보인다는 것을. 어쩐지 요즘 자꾸 욕실 배수구가 머리카락으로 막혀 있어서 엄마한테 짜증을 냈었는데, 인제 보니 범인은 따로 있었다.
“호······혹시 컴퓨터 쓰려고?”
“아니에요. 아빠 하던 거 계속 쓰세요.”
혹시 봤을까 하는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빠를 뒤로하고 나는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부엌에서 마늘을 까고 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 혹시 가족 앨범 같은 거 어디 있어?”
“가족 앨범? 갑자기 그건 왜?”
“그냥 확인할 게 하나 있어서요.”
“거기 거실 TV 밑에 서랍장 열어봐라. 아마 거기다 뒀을 거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엄마는 이내 관심을 끄고 다시 마늘을 까는 데 열중했다. 혼자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묵직한 크기의 가족 앨범을 꺼내 이리저리 뒤적이던 나는 한 가지 사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깄다.”
아빠의 어렸을 때의 추억이 담겨 있는 가족사진. 대가족의 옛 모습이 풋풋하게 담긴 행복하고 단란한 사진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사진이었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이거 완전 빼도 박도 못하겠는데?”
단란한 가족사진을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와 가까운 친인척들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죄다 비어 있었다. 그야말로 문어 가족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반짝반짝 빛이 날 법한 흑백 사진을 보며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를 불렀다.
“오늘따라 애가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이 사진 좀 보세요.”
마늘을 까느라 바쁜데 자꾸 말을 걸어서 짜증이 난 엄마는 내가 식탁 위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는 굳은 얼굴로 마늘을 까던 고무장갑을 벗으며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물었다.
“휴······. 어떻게 알고 찾은 거니?”
“아시고 계셨어요?”
별로 놀라지 않는 엄마의 태도에 오히려 내가 더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한탄하듯이 속사정을 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에는 몰랐단다. 네 아빠가 프로포즈를 받고 나서, 온 가족이 모여서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 가서 거기서 처음 네 아빠 친척들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
그랬다.
머리카락 하나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깨끗한 문어 대가리가 되어버리는 강력한 유전자를 가진 혈통에서 태어난 아빠의 친척들은 전부 대머리 빡빡이였다. 그리고 아빠 역시 그 유전자에서 무사하지 못했다.
“잠깐만요······. 제가 지금까지 명절 때마다 봐 온 친척들의 머리는 별다른 문제 없었······.”
“네 집안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그 사실을 숨기는지 아니? 평상시에 자기 자식들한테도 들키지 않고 가발이든 흑채든, 가능한 모든 것들을 동원해서 그 사실을 완전히 비밀로 숨긴단다. 네 사촌형이나 누나들도 아예 모르고 있을 테지만 다들 대머리란다.”
엄마 말대로 아빠가 어린 시절에 찍은 그 흑백 사진에서는 다들 대머리였지만, 그 이후에 찍힌 사진들에서는 머리털이 풍성한 상태였다. 없던 머리가 다시 자랄 일은 없을 테니 그 모든 사진에 나온 머리들은 사실 가발이라는 말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사실을 비밀로······?”
그 어떠한 출생의 비밀보다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얼이 빠져서 중얼거렸다.
“자식들한테 어떻게 말해줄 수 있겠니? 네가 40대를 넘어서게 되면 그 풍성한 머리털도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50살이 되기 전에 전부 빠져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그야말로 암 선고를 받는 것보다도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엄마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참한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는 건, 자신들의 소중한 자식들이 좌절과 절망에 빠져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부모들의 애처로운 노력이었다.
“그래서······. 저한테도 비밀로 하실 생각이었어요? 도대체 언제까지 그걸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네 녀석이 결혼하고 애를 낳게 되면 그때 알려줄 생각이었다. 아무리 대머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애는 낳아야지. 너는 모르겠지만, 네 아빠의 죽은 전 삼촌이 결혼은 하고 평생 애 낳지 않고 살다가 죽었단다. 이런 저주받은 탈모 유전자는 후대에 물려주기 싫다면서 말이야.”
푸념하듯 엄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머리 유전자가 강력했기에 자식 낳기를 거부할 정도로 깊은 한이 서렸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니? 네 아빠도 요즘 머리털 빠지기 시작해서 엄청 신경 쓰고 있었는데······.”
“요즘 욕실이 자꾸 머리털 때문에 막히고 있어서 유심히 보다가 알아채게 됐죠.”
“어이구······. 그렇게 뒤처리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잘하라고 했는데. 이 양반이 기어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엄마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너도 아마 나이 먹어가면 알게 될 거다. 머리가 비어가는 게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네 아빠가 요즘 엄청 기분이 안 좋으니까 괜히 아는 척 위로하려 하지 말고 모르는 척하렴.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말고. 특히 네 사촌 동생들한테는 더더욱.”
나도 괜히 무럭무럭 자라나는 미래의 새싹들을 짓밟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에 확정적으로 대머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삶의 의욕을 잃게 될지 모르는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철저히 자식들에게 비밀로 숨기는 조상들의 지혜로움이 일순간 엿보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모르고 있었네······.”
이전 생에서 30살이 되기까지도 아빠가 이렇게 탈모로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걸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처절할 정도로 자식들에게 숨기는 혈통에 깊게 새겨진 저주와도 같았다.
“응? 뭐라고 했니?”
내 혼잣말을 들은 엄마가 고개를 갸웃하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튼, 알겠어요. 저는 아예 모르는 척할게요.”
“그러렴······. 이해해주니 고맙구나.”
다시 마늘을 까기 시작한 엄마의 낯빛이 아까보다 어두워졌다. 자기 자식이 나중에 대머리가 된다는 것이 여간 마음이 걸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르고스. 아빠는 지금 뭐 하고 있어?”
– 관리자님이 직접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문어 가족
아기 문어 뚜루루 뚜루 머리가 뚜루루 뚜루 풍성한 뚜루루 뚜루
엄마 문어 뚜루루 뚜루 한숨만 뚜루루 뚜루 내쉬는 뚜루룰 뚜루
아빠 문어 뚜루루 뚜루 머리가 뚜루루 뚜루 빠지는 뚜루루 뚜루
할머니 문어 뚜루루 뚜루 완전히 뚜루루 뚜루 포기한 뚜루루 뚜루
할아버지 문어 뚜루루 뚜루 머리가 뚜루루 뚜루 빛나는 뚜루루 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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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다의~! 대머리~! 문어 가족!
문어다! 뚜루루 뚜루 도망쳐! 뚜루루 뚜루 도망쳐!
.
빛난다! 빛난다! 오늘도 빛난다!
– ㅋㅋㅋㅋㅋㅋㅋ. 아 여기 왜 이렇게 웃기냐.
– 부디 네놈은 물론 핏줄 자체가 전부 대머리가 되길 바란다
– 너 집 어디냐? 우리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자. 내가 거기로 가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욕하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반짝반짝 작은 별임?
– 탈모충들 능욕 엄청 당하네.
– 부디 네놈들 전부 지옥 가길 오늘도 기도하마.
그냥 봤으면 피식하고 웃었을 글이지만, 지금은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언젠가 이 풍성한 머리털이 다들 작별인사를 하고 사라질 것이라 상상하니 인터넷에서 대머리들을 놀려대며 낄낄거리는 사람들이 악랄하기 그지없는 지옥의 악마들처럼 보였다.
“으아아아아아! 이 새끼들이!!!”
안방 안에서 책상을 거칠게 두드리며 절규하는 아빠의 소리가 들려왔다. 탈모 갤을 뒤적이면서 온갖 치욕과 놀림을 다 당하면서 이 악물고 온갖 욕을 남기던 아빠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며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락.
나는 무심코 내 머리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부드럽고 뻣뻣한, 그리고 풍성한 검은색 머리칼의 촉감을 즐기며 나는 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머리카락이 전부 다 빠진단 말이지······.”
순간 거울을 보면서 대머리가 되어버린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이내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미래였다.
“절대 그렇게 놔둘 순 없지.”
대머리의 한은 머리털이 풍성한 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 오직 그 털들을 잃어본 자들만 알 수 있는 그 설움과 서글픔을 아빠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낀 나는 결심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대머리가 느끼는 그 고통을 아빠에게서 해방해주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지식이 떠올랐다.
[ 초강력 발모제 – 자라나라 머리머리 ]“어 제니카.”
아빠의 머리를 구원하기 위한 발모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리코프의 연구 시설이 필수적이었기에 나는 제니카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그녀는 퉁명스럽게 내 전화를 받았다.
[ 또 갑자기 왜 전화한 거야? 헤어진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뭐 또 시키려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 이번 건 좀 개인적인 가정사라서 나 혼자서 처리할 거거든. 그보다······. 연구 시설이 필요한데 실리코프 시설 좀 빌리자.”
[ 뭐······? 실리코프 시설을? 도대체 뭘 만들려고 하는 거야? ]
“별 건 아니고 우리 아빠한테 필요한 게 있어서 말이야······. 가능해?”
[ 뭐 내가 안 된다고 해서 네 녀석이 들어먹을 것도 아니고······. 알아서 해. 서울 지부 쪽에다 일러두는 게 편하겠지? 혹시 여기까지 올 셈이야? ]“아니, 그건 아니야. 아무튼, 고맙다. 조만간 며칠만 빌릴게.”
[ 그렇게 해······. 아! 그보다 전부터 계속 물어보고 싶었는데······. 너 도대체 어떤 놈한테 그 드리머를 준 거야?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 그······. 전에 아르카디아를 세상에 공개하기 전에 네가 멋대로 접속기 보내준 녀석 있잖아. 이름이······. 중식이던가? ]“아! 이중식? 걔가 왜?”
[ 무슨 16살짜리 중학생 녀석이 밥만 먹고 게임만 하는지, 플레이 타임이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거야? 벌써 자기 직업에서 아르카디아 대륙에서 최고 등급에 올랐어. 엘리스가 아르카디아의 메인스트림을 이끌 핵심 플레이어로 판단하고 감시 등급을 상향했다고. ]“그래······? 그 녀석도 난 놈이긴 하네.”
[ 반응이 뭐 그래? 아직 발표는 안 된 상태였지만, 그 메인스트림은 네 녀석이 구상한 개념이었잖아. 그래도 어느 정도 관심은 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지금 급하게 해야 할 다른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말이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그럼 이만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는 굳게 닫혀 있는 안방의 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우리 가문에 굳게 새겨진 그 저주에서 풀어드릴게요.”
탈모의 저주.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가문의 핏줄에 새겨져 괴롭혀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 기나긴 피의 저주를 끊어낼 시간이 왔다. 아빠를 위해서, 언젠가 40대가 될 나를 위해서, 그리고 있을지 모르는 나의 후손들을 위해서 말이다.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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