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
144화.
“으아! 오늘 시험 다 끝났다.”
“드디어 중간고사도 끝났고 이제 공부에서 자유야! 자유!”
중간고사 마지막 날. 삼 일에 걸쳐 치러진 지긋지긋한 시험이 전부 끝났다는 사실에 층 전체가 떠나가라 환호성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 녀석들은 또 왜 이렇게 소란이야?”
종례를 위해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은 신이 나 괴성을 지르는 학생들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하지만 그동안 시험 보느라 고생한 제자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자······. 삼 일간 중간고사 치르느라 모두 고생했고, 주말 동안 푹 쉬고 나서 월요일부터는 다시 또 열심히 공부하는 거다. 알겠나?”
“네에~”
그 말을 끝으로 선생님은 출석부를 흔들며 아이들에게 집에 가라고 신호를 주었고,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다투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야! 생존게임 할 사람 2명 모집! 준식이랑 민현이 오늘 안 된대!”
“어! 나! 나!”
“현진아 너 오늘 드리머 올 거야?”
“당연하지. 나 집만 갔다가 갈 거니까 먼저 가서 접속해 있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삼삼오오 몰려서 무언가 짝을 이루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지난 2년 새에 정말 많은 것이 뒤바뀌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PC방과 오락실, 아니면 노래방을 전전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하나같이 가상현실 기기를 플레이할 수 있는 드리머가 구비되어 있는 드리머샵에서 다양한 컨텐츠를 즐기는 것이 주류 문화로 바뀌어 있었다. 그 덕분에 PC방은 절멸 수준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긴 했지만, 담배 연기 가득한 골방에 틀어박히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한 변화인 것 같았다.
“미······민수야!”
고개를 돌려보니 중식이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헐레벌떡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손을 흔들며 반겼다.
“어. 그래. 중식아. 시험은 잘 봤냐?”
“헤헤······. 나야 뭐······. 평소랑 비슷하게 봤지.”
머리를 긁적이며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중식을 보며 나는 한심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너 평소에 만날 반타작만 해대더니 이번에도 그랬냐? 너 또 이번에도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가상현실만 했지?”
“그······. 그게 그러니까.”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보는 중식을 보면서 나는 이번에도 또 그가 시험은 뒷전으로 한 채 게임만 해댄 것을 직감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준수한 성적을 보여줬었는데, 내가 아르카디아를 준 이후로는 그야말로 모든 노력과 열정을 그곳에 쏟아붓고 있었다.
“어휴······. 정말이지, 너 그러다 아르카디아가 망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아주 거기에다 너 인생 다 갈아 넣어라.”
“헉! 그······그럴 리가 없어. 아르카디아가 요즘 얼마나 세계적으로 유행인데? 거기에 미국이랑 한국의 대기업들이 만든 회사인데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중식은 깜짝 놀라며 내 말에 반박했다. 아르카디아가 서비스를 지속하는 것은 사실 아르카디아의 창조주인 잭과 그 모든 것들의 주인인 내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지만, 그는 상상하기도 싫은 가정이라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요즘 사람들도 관광 목적으로도 아르카디아에 접속하는 일도 많고 NPC들도 얼마나 진짜 같은데? 이제 아르카디아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로 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고.”
“그러냐? 그래서 너 뒤에 있는 친구들은 같이 게임하는 애들이야?”
그 말에 중식은 살짝 뜨끔하면서 뒤에서 멀리 자신을 기다리는 6명의 친구를 힐끗 바라봤다.
“그냥 내가 이거저거 아이템 만들어주고 도와주고는 있어.”
중식과 저 뒤의 무리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의미가 없는 게임 캐릭터 레벨이나 희귀 아이템들을 가지고 자랑하며 뽐내고 부러워할 수 있는 그런 나이이기에 중식처럼 게임을 잘하는 경우도 인기를 끌 수 있긴 했다.
“도대체 네가 뭘 만들길래 저렇게 몰려드냐? 직업이 도대체 뭔데 그래?”
“나······? 마스터 핸드(Master Hand)야.”
“······. 그게 도대체 뭐냐?”
“그냥 이거저거 만들 수 있는 생산직 직업이야. 너도 나중에 같이 하자. 내가 좋은 아이템 많이 만들어줄게. 그러면 너도 금방 다른 사람들 따라잡을 수 ······.”
“됐어, 인마. 난 그런 거 할 시간도 흥미도 없다니까? 그래도 시험 끝났으니 주말 동안 푹 쉬고 그거 좀 적당히 하고 현실에서도 좀 충실히 살아라.”
“으응······. 알겠어 민수야. 잘 가.”
지난 2년 동안 백 번도 넘게 같이 하자고 조르던 중식의 권유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먼저 학교 밖으로 나섰다. 길을 걷던 도중에 갑자기 예전에 제니카가 그 녀석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라 나는 아르고스에게 물었다.
“아르고스. 중식이 도대체 게임에서 어떤 입지길래 저러는 거야? 마스터 핸드는 뭐고?”
– 가상현실 아르카디아 운영 시스템. 엘리스에게 관련 정보 열람 허가를 요청합니다.
내 물음에 아르고스는 엘리스에게 아르카디아 내부의 관련 정보를 얻어내서 나에게 관련 정보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찬찬히 그 내용을 훑어보면서 감탄했다.
“와······. 중식이 이놈도 의외로 난 놈이었네.”
직업: 마스터핸드
레벨: 102
현재 가장 높은 레벨이 300이 넘은 걸 생각할 때 유일무이한 클로즈베타 플레이어인 중식의 레벨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아르카디아에서 레벨은 단순히 직관적인 성장을 알아보기 위한 지표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오히려 칭호였다.
“도대체 게임 안에서 뭔 짓을 하고 다니길래 이런 칭호들을 얻고 다니지?”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가 게임에서 획득한 칭호들을 쭉 살펴보았다.
[ 광산 노예 1호 ] [ 임금 착취당한 호구 ] [ 서투른 대장장이 ]처음에는 별 같잖은 칭호들이 주르륵 나왔지만, 점점 갈수록 그 칭호들은 달라졌다.
[ 숙련된 광부 ]
[ 불굴의 노력가 ]
[ 재능 대신 근성을 타고난 자 ]
[ 드워프의 인정을 받은 자 ]
아르카디아에서 칭호는 플레이어마다 제각각 다르다. 엘리스가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을 분석하고 그게 따라 일어나는 인과관계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칭호들이 플레이어의 역량을 가늠하기에 더 중요한 지표였다. 그리고 중식이 받은 최근 칭호들은 감히 무시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 전설 무구의 제작자 ] [ 극의의 대장장이 ] [ 드워프의 존경을 받는 자 ] [ 신화의 흔적을 찾는 방랑자 ]길고 길었던 칭호의 목록 끝에는 빨간색으로 적혀져 유독 눈에 띄는 마지막 칭호 하나가 있었는데, 그 밑에는 종합적인 중식에 대한 평가가 짤막하게 적혀져 있었다.
– 플레이어 평가 : S. 메인스트림 핵심 플레이어. 특급 감시 대상.
고도비만의 몸매에 하는 것마다 죄다 시원찮은 현실과 다르게, 가상현실 속에서는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그를 보면서 나는 쓴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겠네······. 아니, 저 정도면 오히려 현실에서도 날아다니겠네······.”
이번에 일본 총리를 위한 참교육을 준비하면서 마련한 방안이 안 그래도 중독 수준으로 아르카디아에 빠진 중식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생각에 괜히 입맛이 썼다.
“에휴······. 그래, 현실에서 못났어도 게임에서 잘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도 필요하겠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나는 눈을 빛냈다. 드디어 지금껏 고대하며 기다리던 일본 정부의 기습적인 가상현실 중단 조치가 발표될 시간이 임박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연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준비는 다 됐어요?”
[ 아! 민수였구나? 지금 최종적으로 엘리스랑 함께 시스템 체크 하고 있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아. 언론에도 이미 오늘 기자회견 발표할 거라고 미리 알려서 지금 기자들도 전부 모여 있고, 이준희 회장님이랑 미하일과 제니카가 발표문 검토도 최종적으로 다 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남은 것은요?”
떨리는 미연 누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전에 미하일이 처음 언론에 나와서 했던 일들이 기억에 새록새록 떠올랐다.
“괜찮아요. 누나. 처음에만 어렵지 막상 하고 나면 은근 즐기게 될지 몰라요. 전에 미하일도 언론에 첫 기자회견 하기 전에······.”
기자회견장에서 나의 조언대로 진짜 배 째라는 듯이 막장으로 나선 것 때문에 한동안 미하일의 이미지는 시궁창에 처박혀 전 세계의 최악의 회장으로도 등극했던 이야기를 해 주자 미연은 긴장이 풀어진 듯 밝게 웃었다.
[ 하하하······. 미하일 씨가 정말로 그랬어? 언론들 앞에서 쫄리면 뒤지세요! 라 했다고? ]“네. 그거 때문에 한동안 외부 활동도 안 하고 조용히 지냈다고 했는데 요즘은 그나마 이미지 세탁해서 그렇지 사람들도 다들 잊은 것처럼 잠잠하더라고요. 어찌 됐든 누나도 이번에 기자들 앞에서 발표하면서 꼭 명심하세요! 사람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반발할 것 같으면 오히려 더 세게 나와야 해요. 당당하게 아르카디아 서비스에 불만이 있으면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패기가 필요하다고요.”
내 말에 미연 누나는 살짝 침묵하더니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 알았어. 한번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볼게. ] “TV에서 누나 발표하는 것 보고 있을게요. 파이팅이에요.”전화를 끊고 난 후, 나는 길을 걸어가다 건물 커다란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를 보고 잠깐 걸음을 멈춰섰다. 밤새 야근하고 퇴근하는 행색의 회사원이 집 안으로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된 광고. 그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문을 열어젖히자 집 안에는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아름답고 거대한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의 광고 멘트가 들려왔다.
– 일상에 지친 그대에게 새로운 모험이.
– 환상이지만, 환상 같지 않은 세상.
웅장한 음악과 함께 아르카디아 대륙의 곳곳과 산재한 흉악한 몬스터들, 그리고 치열한 전장을 누비는 영웅들의 모습이 빠르게 보여주었다. 보기만 해도 몸이 찌릿해지는 전율이 느껴지는 광경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광고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그곳
– 환영합니다. 환상의 세계 아르카디아에 오신 것을.
광고가 끝이 나는 것과 동시에 속삭이듯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다른 학교 중학생처럼 보이는 교복을 입은 한 아이들 무리에서 연신 감탄사가 들려왔다.
“캬. 저거 진짜 광고 잘 만들지 않았냐?”
“광고 볼 때마다 소름 돋음.”
“보통 게임 광고 보면 죄다 과장 광고인데 웃기는 건 아르카디아는 저거보다 더하다는 거임.”
“야! 빨리하러 가자! 오늘 다른 학교도 중간고사 끝나서 늦게 가면 자리 없어!”
“어어어! 기다려! 너 혼자 가냐!”
바쁘게 우르르 달려가는 아이들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렸다.
– 관리자님. 이제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아, 그래? 그거 보려면 빨리 집에 가야겠네.”
나는 그 말에 신이 난 얼굴로 깜짝 놀라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집 옆에 편의점에서 팝콘과 콜라를 사는 걸 빼먹지 않고 TV 앞에서 채널을 돌리고 나니, 딱 정각이 되어 있었다.
“일본 정부는 발표 시작했어?”
– 지금 아빈 총리가 일본 기자들 앞에서 직접 나왔습니다.
“그래? 그러면 미연 누나는?”
– 마찬가지로 한국 기자들 앞에서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르고스의 말에 나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아······. 두 개 다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 관리자님의 집에 설치된 TV는 다중 채널 상영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설정해 드릴까요?
“어? 그게 가능해? 그러면 그렇게 해줘.”
나는 아르고스의 말에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TV에는 아빈 사토 총리와 미연 누나의 얼굴이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 일본 정부는 요즘 젊은 세대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가상현실이라는 게임이 가져오는 부작용들에 대해서 커다란 우려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인간의 뇌에 드리머라는 기계가 정확히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지지 않은 점, 그리고 중독 수준이 다른 일반 게임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하였습니다. 따라서 본 정부는 많은 논의와 숙고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 현재 아르카디아와 가상현실 서비스에 대한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걱정하는 여러 사람의 주장을 우리 회사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아르카디아의 중독 현상이 극심하다는 점에 대해 항의 서한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의 아르카디아를 이용하는 플레이어 수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높다는 점을 고려하고, 플레이 시간 역시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본 정부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이에 결정했습니다······. ]일본어와 한국어로 들리는 그 둘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희열에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각자 서로 다른 이유였지만, 같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 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각자 기자들 앞에서 똑같은 결론을 내놓았다.
[ 지금부터 일본의 모든 가상현실 서비스에 대한 강제 중단 조치를 발효함을 선언합니다. ] [ 이 발표가 끝나는 대로 일본 안의 모든 가상현실서비스를 무기한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기자회견장은 동시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일제히 손을 들면서 질문 세례를 퍼붓는 기자들을 보면서 나는 만족한 미소로 팝콘을 기분 좋게 입안에 털어 넣었다.
“원래 연인끼리도 서로 차일 걸 사전에 알고 있으면 차이기 전에 먼저 차는 법이지.”
우물우물 팝콘을 씹으며 콜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나는 아빈 총리를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 한 번 누가 자존심 상하고 주위 사람들한테 욕까지 얻어먹는지 보자고.”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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