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59
59화. >
59화.
“미······민수야? 혹시 학교 끝나고 나랑 놀지 않을래?”
중식이 힐끔힐끔 눈치를 보다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진이는 결국 병원 신세를 지다 학교에 다시 오지도 않고 어딘가로 전학을 가 버렸다.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가 어느 날 도망치듯이 사라지자 중식은 민수를 마치 영웅 보는 듯한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음······. 뭐하면서 놀 껀데?”
“그······그게······. 어······ 글쎄? 나랑 같이 단풍잎 이야기나 할래?”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식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지만, 하자는 게 고작 단풍잎 이야기인 그에게 맞춰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너 그때 그 게임 싫어한다고 하던 거 아니었나?”
“애써 키워도 내 캐릭터가 아니어서 싫었던 거지, 이제 내 캐릭터 키우니까 생각보다 재밌어. 너도 같이하자. 내가 쩔 많이 해 줄게.”
증식의 간절 어린 제의에도 미래에 똥망겜이 되어버리는 단풍잎 이야기를 잘 아는 나는 별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특히 그 괴랄한 경험치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겨우 레벨 하나 올리는 그런 노가다가 먼 미래에 헛수고가 된다는 걸 잘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 미안하지만 난 됐다. 너나 많이 해라.”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을 때 제일 아름다운 법. 그걸 다시 끄집어내는 순간 그 아름다운 기억도 추해지기에 나는 중식의 제안을 거절했다. 내 거절에 중식은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알겠어······. 어쩔 수 없지······.”
애써 불쌍한 척 내 감성을 자극하는 중식이었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괜히 억지로 어울리려고 내 황금 같은 시간을 한낱 컴퓨터 게임에 허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망한 표정의 중식을 보며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참에······. 게임 산업까지 장악해 버릴까?’
[ 뇌 신경 직접 접속기 B-31 ] [ 가상현실 접속기 – X1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딸깍거리는 게임이 아닌, 직접 뇌 신경에 정보를 주입해서 현실과 완전히 똑같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가상의 현실. 현재 기술로는 조금 무리이기는 하지만, 뇌 신경 직접 접속에 대한 부분만 상용화한다면 가상현실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흠······. 이건 헬렌이랑 나중에 한 번 이야기해 봐야겠네.”
미국의 뛰어난 엔지니어들을 공밀레 소리가 절로 나게 갈아 넣으면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하나 내가 알려줘야 할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 일을 벌이기에는 무리였다.
“야! 너희들 어제 축구 봤어?”
“엄청 대단하지 않아? 나 진짜 밤늦게까지 잠도 못 자고 그거 봤어.”
“월드컵에서 4강 진출까지 간 게 우리나라가 이번이 최초래 최초!”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는 엄청난 축구 열풍이 불고 있었다. 전국을 뜨겁게 달군 2002 한일 월드컵. 미래에도 전설로 남게 될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에 너도나도 축구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식아. 넌 축구 안 보냐?”
“으응······? 아······. 나는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손에 단풍잎 이야기 공략집을 든 채 움찔하는 중식처럼 별 관심 없는 아이들도 몇 있긴 했지만, 그런 아이들은 요즘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 참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중식이 요즘 자꾸 나한테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게 이것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그······근데 민수야. 너는 왜 축구 안 봐? 별로 안 좋아해?”
“아니.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요즘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지······.”
옛날에는 미친 듯이 축구를 보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순수하게 열정을 가지고 본 것이 아니라 불법 토토에 빠져서 보던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전생에도 그랬듯이, 2002 월드컵은 돈을 걸지 않고 봐도 충분히 재미있는 경기였다.
“왜?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데?”
“그냥······. 중요한 일 있어. 사람을 구하는 일.”
“뭐······?”
중식이 자꾸 캐묻자 나는 눈을 빛내며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중식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물었다.
“중식아 오늘이······ 28일 맞지?”
“엉? 어 28일 맞는데 그건 왜?”
축구에 빠져 살았던 어린 시절 덕분에 바로 내일인 6월 29일. 대한민국과 터키가 3,4위전 경기를 벌이던 그 날 아침에 북한 해군이 한국 해군을 불시에 기습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 경기를 하기 직전, 그 도발에 희생된 군인들을 위해 짧게 묵념했었던 것이 아직도 생생했다.
“이번에는 까먹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
9.11 테러를 일순간 까먹고 미리 대응하지 못해 천 명도 넘는 희생자를 만들게 된 나였기에, 이번처럼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비극적인 참사들을 미리 막아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북한의 무력 도발이 하루 남았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반드시 이번에는 희생자가 생기지 않게 모두를 구하겠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
6월 29일 새벽. 6시 30분.
새벽 단잠을 깨고 일어난 병장 장준호는 크게 하품을 하며 참수리 357호에 올랐다.
“으아아함. 진짜 졸려 죽겠네······.”
갑판 업무를 맡은 그는 이제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의 일출을 바라보았다.
“이 짓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끝이네······.”
전역까지 정확히 46일. 말년 휴가를 나갈 걸 생각하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것을 생각하며 장준호은 시원섭섭함을 느꼈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기도 하며 보냈던 군대 생활의 종착점에 다가가며 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전역하면······. 엄마랑 같이 해외여행이나 가 봐야지.”
얼마 되지도 않은 쥐꼬리 수준의 월급이지만, 그는 조금씩이라도 틈틈이 모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운 일본에 짧게 여행을 갔다 올 정도는 모은 그는 홀로 자신을 키우느라 여행 한 번 가지 못해 본 엄마랑 함께 가 보고 싶었다.
“장 병장.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지후 중사님.”
등을 치며 다가온 그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묻자 장준호 병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얼버무렸다.
“새끼. 이거 여자친구 생각했냐? 전역 얼마 안 남아서 아주 좋겠어?”
“에이······. 중사님. 저 여자친구랑 일병 때 헤어진 거 잊었습니까? 실망입니다.”
“어? 그랬어? 그럼 내가 친한 여동생 하나 소개해 줄까?”
“오오오! 정말입니까?”
노총각인 황지후 중사가 아는 여자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자기에게 여자를 소개해 준다는 말에 장준호 병장의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당연히 구라지 새꺄. 여자친구도 없는 내가 너한테 소개해 줄 여자가 있겠냐? 있으면 이미 내가 사귀고도 남았지.”
장난인 척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울부짖고 있는 듯한 그의 표정에 준호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황지후 중사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역시 솔로가 제일이지 말입니다.”
“크윽······. 이 자식. 뭘 아는구나!”
장준호 병장과 황지후 중사가 서로 슬피 울며 솔로의 우정을 다지는 사이, 참수리호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나아갔다. 북한 해군에서 은밀한 기습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평화로운 여느 때와 같은 상황을 상상하며······.
*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지트에 앉아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에 가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아르고스가 미국 군사 위성과 감시 레이더를 통해 수집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아르고스. 북한의 움직임은?”
– 현재 어떠한 특별한 움직임도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측 해군 상황은 어떻게 되지? 북한과 가장 접근해 있는 배들이 있어?”
– 주기적으로 어로 보호 지원에 동원되는 참수리 고속정들 3척이 연평도 인근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아르고스의 보고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저 3척의 고속정 중 하나가 이번 북한의 무력 도발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건 확실했지만, 정확히 하나를 콕 집을 수는 없었다.
“하······. 미군이 이렇게 깐깐하게 나설 줄이야.”
헬렌에게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어, 아르고스를 통해 북한의 무력 도발의 위협이 감지된다는 경고를 넌지시 넣었다. 내 말을 가볍게 듣지 않는 그녀였지만, 피어슨 대통령과 빈센트 주한미군 사령관은 그녀와 의견이 달랐다.
“북한이 무력 도발을 계획한다는 그 증거는 있소?”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북한에는 아르고스가 그 눈을 주시하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그 둘에게 그 어떠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결과, 그들은 괜히 오키나와 해군 기지에 정박해 있는 7함대의 파견을 거부했다. 아무리 나와 헬렌이 설득해도 피어슨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나는 확실하게 일어날 참극에 대비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 관리자님. 이렇게 북한의 기습 공격을 확신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르고스가 나에게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 세상의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그조차도 감지하지 못한 북한의 공격을 확신하는 내 태도가 인공지능인 그에게 있어서는 비합리적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고스. 그냥 감시만 제대로 해.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한·미 해군에 알리고.”
그리고 나는 명령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니터 화면으로 그 이상 반응을 볼 수 있었다. NLL 북방 한계선을 넘어 대한민국의 영해로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한 북한의 고속정들을.
*
에에에에엥
“전원 전투준비! 전투준비!”
갑자기 울리는 사이렌과 전투준비의 외침에 참수리호 안의 모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경계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중사님! 도대체 뭔 일이랍니까?”
“아이 씨······발. 북한 놈들이 NLL 넘어서 남하하고 있단다. 이 빨갱이 새끼들이.”
“뭐라고요?”
깜짝 놀라며 긴장된 표정을 짓는 장준호 병장을 보며 황지후 중사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그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야. 병장이나 단 놈이 쪼는 거냐? 이 새끼들이 이러는 거 하루 이틀 보냐? 아마 대충 보여주기식으로 쇼나 하다 또다시 월선하겠지. 이상한 걱정하지 말고 경계나 잘 봐.”
“아······알겠습니다.”
장준호 병장이 조금 풀어진 얼굴로 K2 자동소총을 쥐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 상황은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 북한 함선에 경고한다. 북한 함선에 경고한다. 당신들은 지금 북한 한계선을 월선했다. 당장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 북상하라! ]윤진하 대위는 이전과는 다른 북한 경비정의 움직임에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된 경고 방송과 다른 2척과 신속한 차단 기동을 하며 남한의 영해로 향하는 그들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분명 남한 영해에 도달하기도 전에 경로가 차단될 것이 자명한 데도, 속도를 줄이거나 기수를 돌리지 않는 그들의 행동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저······정장님! 지금 북한 경비정들의 포신이 전부 저희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선제 타격을 해야 합니다.”
한지태 중사가 경비정의 함포가 자신의 배를 향해 포신을 조준하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윤진하 대위는 단호하게 외쳤다.
“안 돼! 기본적인 교전 수칙 잊었나? 절대 우리 측에서 먼저 발포해선 안 된다! 이건 명령이야!”
안호준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북한과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강조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북한에 먼저 공격하지 말라는 교전 수칙을 윤진하 대위는 고지식할 정도로 지켰다. 그리고 그 고지식함의 결과는 북한 경비정의 함포와 기관포의 집중 사격으로 돌아왔다.
쾅 타타타타타탕
“고······공격이다! 당장 대응 사격을 해 빨리!”
쏟아지는 함포와 기관포 총탄의 비에 참수리호는 금새 걸레짝처럼 넝마가 되었다. 이에 재빨리 대응 사격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곳저곳에서 희생자와 부상자가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중······중사님.”
“야! 이 새끼야 정신 안 차려? 너 거기서 정신 잃으면 죽어 이 멍청아!”
참수리호 갑판에서 발칸포를 잡고 있던 황지후 중사와 장준호 병사는 기습적인 북한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종아리 쪽에 총탄이 박힌 황지후 중사와는 다르게 몸통 어딘가에서 쉴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는 장준호 병사의 안색은 금방이라도 숨을 멈출 것 같이 창백했다.
바닥에 쓰러져 피에 물든 손으로 장준호 병사는 무전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중얼거렸다.
“아······. 엄마 보고 싶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번에 전역하면 엄마랑 꼭 같이 해외 여행을 가고 싶었했던 그였기에 이렇게 죽기 억울했다.
“정신차려! 장준호! 너 죽으면 진짜 내가 죽여버린다 이 새끼야!”
발칸포로 정신없이 대응사격을 하는 그의 외침에 장준호 병장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의식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전기를 통해 귓가에 앳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엄마가 보고 싶어요? ]장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죽어가면서 헛것을 듣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다시 들려왔다.
[ 그러면······. 죽지 말고 조금만 버티세요. ]쉬이이이이익
어디선가 공중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파공음
[ 금방 아저씨들을 구해줄 사람들이 올 테니까요.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정신 없이 함포와 기관포를 퍼붓던 북한의 경비정이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였다. 그리고 더 이상 무전기에서 아이의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장준호 병장은 그날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때 들었던 그 아이의 목소리가 과연 진짜였는지 아니면 환상이었는지······.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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