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89
89화. 길잃은 마물 사냥꾼 (2)
고블린 킹은 꽤 큼지막한 코어를 내게 남겨 주었다.
입만 산 놈이 소유권을 주장할까 봐 신경이 쓰여서 얼른 닐스의 안장 가방에 집어넣었다.
“저 말은 뭡니까…? 정령입니까?”
“너희들이 누구인지 정체부터 밝히는 게 어떨까?”
나는 괜히 조니워커 블루를 거칠게 휘둘렀다.
핏물이 점점이 튀며 흙바닥을 수놓았다.
남자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내게 물었다.
끝까지 대답을 안 하네.
“당신은 누굽니까? 복장을 보니 산악순찰대는 아닌 것 같은데….”
산악순찰대?
왕국에 그런 부대도 있었나?
그리고 어째 발음이 좀 이상한데.
“산악순찰대가 뭐지?”
“예?”
풀줄기에 묶인 남자와 나는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탓이었다.
“이름이 뭐지?”
“라무르 호지슨. 그쪽은….”
“카민 리스트레토다. 하알룬의 영주지.”
“…하알룬?”
라무르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역시 인지도가 너무 낮은 건가.
“혹시, 당신 갈라드리엘 왕국인 입니까? 아무래도 발음이 그쪽 같은데….”
“설마 제국인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에스페스 제국의 마물 사냥꾼입니다. 일단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무르 호지슨의 신뢰도가 상승했습니다.] [ (0) → (30) ]아니, 제국인이 쿠멜라 숲에 있다고?
갈수록 태산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군.
게다가 마물 사냥꾼이라니….
“마물 사냥꾼이라. 제국인이 맞긴 맞나 보군.”
마물은 몬스터다.
제국과 왕국에서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 같은 대상을 지칭한다.
정확히 말하면 마물이 마법 학회와 일월성교회에서 정한 정식 명칭이다.
마계는 마계, 마인은 마인인 것도 그 이치.
몬스터가 왕국 사투리인 셈.
“제국인이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설마 곁에 있는 이들도 다 제국인인가?”
“예… 그렇습니다. 제 동료들입니다. 일주일간 추적과 도주를 번갈아 하다가 기습을 노렸는데, 이 녀석들에게 붙잡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고블린 킹의 흔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일주일간 사투를 벌였다고?”
그래서 다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건가.
아니, 잠시만… 저 사람들 뭔가 이상한데.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말 많은 놈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그보다 여긴 카르딤 숲이 아닙니까? 왜 왕국인이 여기까지….”
카르딤 숲?
게임 ‘변경 땅의 영주님’의 무대는 왕국에 한정되어 있어 제국의 지리는 나도 잘 모른다.
“쿠멜라 숲을 제국에서는 카르딤 숲이라 부르나?”
“…예? 여기가 쿠멜라 숲이라고요?”
남자는 크게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쿠멜라 숲이라뇨. 아무리 저희가 마물 사냥꾼이라지만 그렇게 위험한 장소에서 사냥할 리가 있습니까?”
말을 들어 보니 위험한 장소인 걸 알긴 아는 것 같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나는 닐스의 엉덩이를 툭 쳤다.
내 행동을 이해한 닐스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요정의 신성한 힘이 담긴 숨이 라무르를 포함한 전원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잠들거나 기절한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우으으으….”
“헤헤헤….”
다들 비척대며 몸을 비튼다.
마치 뇌성마비 환자들처럼.
“늦었군.”
“예?”
“왜 너만 멀쩡하지?”
저들은 전부 좀비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눈이 있으면 보이지 않나.”
다른 이들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피부 위로 핏줄이 툭툭 불거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기이한 각도로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드득.
신체를 결박했던 풀줄기가 끊어지며 하나둘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닐스가 다시 한번 숨을 내뿜자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조니워커 블루의 마기 퇴치 효과를 제대로 시험하게 됐군.”
그대로 검을 들어 좀비의 목을 베었다.
잘린 목의 단면에서 연기가 푸시시 빠져나왔다.
정화까지는 아니지만, 정말로 꽤 효과가 있는데?
“지금 뭐 하는…!”
[라무르 호지슨의 신뢰도가 하락했습니다.] [ (30) → (-80) ]라무르가 꿈틀대며 나를 방해하려 했다.
닐스가 라무르의 배를 들이받자, 그는 데굴데굴 굴러 한참 뒤로 굴러갔다.
“우욱.”
“잘했다, 닐스.”
라무르가 속을 게워 내는 사이, 좀비의 목을 전부 베어 냈다.
혹시 몰라 불까지 피워 던져 넣으니 좀비들은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이걸 봐라.”
“좀, 좀비….”
동료였던 좀비로 즐기는 캠프파이어를 처음 본 건가?
라무르는 큰 충격을 받은 듯 그대로 까무러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마물 사냥꾼하고 악마 사냥꾼은 다른 것인가 보군….”
쓰러진 라무르의 장비를 통해 기억을 검사해 보니 헬몬트처럼 빙의되거나 좀비에게 감염된 흔적은 없었다.
* * *
“영주님, 그자는… 죄인입니까?”
“아니. 수갑을 가져와라.”
코어를 구하러 갔다가 사람도 구해 오게 될 줄이야.
나는 완전히 풀 죽은 라무르를 향해 말했다.
“여기가 갈라드리엘 왕국의 하알룬이다. 너는 왕국의 영역을 무단 침범한 죄인이니 일단 수갑을 채우겠다.”
동료를 전부 잃은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영주로서 범법자를 봐줄 수야 없지.
수갑으로 손을 묶고, 튼튼한 끈을 연결한 말뚝을 깊이 박아 넣었다.
“설명해 주십시오. 도대체 이 자는 누구입니까?”
“마주크. 혹시 마계의 입구란 게 먼 거리를 서로 연결하는 예도 있나?”
나는 라무르의 아이템에서 본 기억을 기반으로 세운 가설을 마주크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마주크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분명히… 그런 말을 아카데미에 있을 때 들은 적이 있습니다. 1이라는 지점에 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아주 멀리 떨어진 2라는 지점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이야기였죠.”
“숲에서 숲으로?”
“예. 마계의 입구는 마계와 대륙을 잇는 다리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그 입구로 들어가 보는 미친 짓을 한 자는 없겠지만요.”
워프 게이트 같은 건가?
확실히 말은 되는 것 같은데.
고블린 무리를 따라 카르딤 숲에 생긴 마계의 입구로 들어갔다가, 다른 마계의 입구로 빠져나왔더니 쿠멜라 숲이다, 라는 이론이 성립한다.
물론 거기에는 역장이라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마계의 입구, 특이한 일렁거림은 마나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은 알아채기 힘드니까.
“이자에게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지 검사해 봐라.”
“예, 영주님.”
내가 이미 검사하긴 했지만, 마법사인 마주크가 보는 게 더 확실할 터였다.
혹시 몰라 라무르의 몸을 튼튼한 밧줄로 다시 한번 묶었다.
마주크의 마법이 라무르의 전신을 훑는데도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게헤른에게 이 현상에 관해 물어봐야겠군. 마주크, 갈란트를 불러서 이 녀석을 감시하고 있어라. 너 또한 눈을 떼면 안 된다.”
“옙.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영주님.”
* * *
영주 관저까지 찾아온 게헤른은 잠깐의 관찰만으로 확언했다.
“이 자는 제국인이 맞다. 복색이나 말투. 그리고 호지슨이라는 성도 제국에서는 흔한 것이지.”
“이 자는 자신이 카르딤 숲에 있었다고 합니다.”
“카르딤 숲? 그건 제국 남동쪽의 숲이 맞다. 몬스터가 빈번하게 출몰하는 곳이지.”
게헤른은 젊었을 적, 제국에도 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꽤나 긴 기간을 제국에서 보냈던 것 같다.
설마 아카데미 출신은 아니겠지?
“분명 네 추리에 일리는 있다. 기본적으로 마계의 입구, 마기에 물든 숲은 마계의 일부분과 대륙의 위상이 겹친 장소다. 다만 그 기간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기에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마계의 입구가 저절로 모습을 감추는 일도 종종 있지.”
“그렇습니까? 그럼 같은 방법으로 저자를 다시 돌려보내는 것도 가능한 겁니까?”
게헤른은 라무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것 같군. 일주일이나 지났다고 하지 않았나? 들어온 쪽의 입구가 이미 사라졌을 확률이 높다.”
“후. 이 건은 이 자가 정신을 회복하면 조금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게헤른이 나를 보며 슬쩍 물었다.
“그보다 코어는 구했나?”
“예. 이제 바르둠 마탑으로 보내 가공을 부탁할 예정입니다.”
“흠. 알겠네. 그렇게 알고 준비하고 있지.”
“예.”
나 같으면 이번 일이 궁금할 법도 한데, 게헤른은 미련이 없는 듯 대답만을 남긴 채 돌아갔다.
게헤른은 속세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 엘라힘의 평가가 맞는 것 같다.
이제 어쩐다.
“물이라도 끼얹을까요?”
“아니, 내버려 둬. 너희들은 가 봐라.”
정신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는 충분히 시간을 줘야 한다.
대략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라무르의 눈빛이 제대로 돌아왔다.
[라무르 호지슨의 신뢰도가 상승했습니다.] [ (-80) → (-20) ]신뢰도 변화를 보니 생각보다 빨리 상황을 파악한 것 같다.
그런 점을 보면 그래도 정신력이 뛰어난 자 같았다.
라무르는 주위를 자세히 살피더니 툭 내뱉었다.
“후우. 이곳이… 왕국. 틀림없군요. 듣던 대로 정말 궁벽한 국가입니다.”
아니, 이 자식이 갑자기 뭔 헛소리지?
그게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라무르 호지슨이 두 손을 내저으며 말을 주워 담았다.
“아니, 아닙니다. 여긴 참 공기도 좋고….”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다만.
결국, 라무르는 수습을 포기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거점은 포트라렌이라….”
“포트라렌?”
“제국의 거대 무역도시입니다. 마물 사냥꾼들은 거의 이곳을 거점으로 하죠. 근방에 카르딤 숲을 비롯한 마물의 숲이 많아서….”
“마물의 숲이라. 그렇게 불릴 정도로 몬스터가 많이 나오나?”
“발에 챌 정도죠. 파티를 짜서 행동하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니까요….”
말을 하다 말고 라무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저희 같은 마물 사냥꾼에게 동료를 잃는다는 건 드문 일은 아닙니다만… 지금처럼 급작스러운 상황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동료가 좀비가 되어 버린다는 건, 분명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솔직히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 보긴 했지만….
내가 허구한 날 망나니라고 욕하는 가레스가 갑자기 좀비로 변해 버렸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베어 버릴 수 있을까?
아마 망설이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방법을 찾으려 할지도 모르겠지.
참 어려운 문제다.
라무르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드러났다.
그렇구나.
라무르 또한 나에 대해 복잡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망설임 없이 그의 동료들이 변한 좀비들을 다 베어 버린 게 바로 나니까.
라무르의 입장에선 갑자기 나타난 제삼자가 동료들을 처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그 또한 사실을 알고 있으니, 애써 감정을 추슬러 보려고 하고 있지만.
힘든 건 힘들겠지.
“미안하군.”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녀석의 마음도 헤아렸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전투에 몰입하면 조절이 잘 안된다.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해야 할 일이었지요.”
오히려 라무르는 내 사과에 당황하며 쭈뼛댔다.
제국은 영지의 규모가 훨씬 더 크다 보니, 영주의 힘이 더 막강하다고 들었다.
영주가 머리를 숙이는 건 볼 수 없겠지.
“그래도 너를 묶어 두는 건 어쩔 수 없다. 혹시 시간이 지나 좀비가 될 수도 있으니까.”
검사는 철저히 했지만 멀쩡한 사람이 좀비가 됐다는 건, 이유가 있다는 뜻.
숲을 떠나기 전에 닐스와 함께 충분히 주변을 수색했다.
고블린 무리를 제외하면 그 주위에 마인이나 마계종은 없었다.
있었다가 사라졌을 수는 있겠지만.
관저를 지키고 있던 쉐든을 불러 이 녀석에 대해 명령했다.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 주고, 비를 맞지 않도록 천막도 쳐 줘라.”
쉐든은 영리했기에, 내 의도를 파악했다.
“알겠습니다. 떨어져서 주시하고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전염병 감염의 여부를 확실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월성교회의 사제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