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좀비 웨이브를 때려잡는 영주님 (1)
사람들 대부분이 잠에 빠져든 새벽녘.
몽펠 주교는 로몬의 유민 한 명만 데리고 다시 창고를 찾았다.
비밀스러운 발굴 작업을 하기 위해서.
석판의 표면에 손을 대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주교님… 몸이 으슬으슬합니다만.”
“조금만 더 참게. 곧 나아질 거야.”
남자는 가벼운 가호라도 바랬건만, 몽펠은 성력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예에.”
“못 버틸 정도가 되면 가호를 내리겠네.”
남자는 주교의 거짓 약속만 믿고, 열심히 흙을 쓸었다.
몽펠 주교가 손을 내밀자, 은은한 가호의 빛이 남자가 아닌 석판을 비췄다.
스스슥.
성력과 마기가 맞닿으며 연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불길한 느낌에 남자가 몽펠 주교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석판의 글귀에 흠뻑 빠져 있었다.
-천 년이 지난 후 벌어질 피의 축제.
축제, 라는 단어로부터 되짚어가면서 뭔가 중요한 단서를 잡았기 때문.
이미 그 부분은 정화의 기운이 담긴 흙으로 덮여 있었다.
남자의 손이 멈춘 걸 발견한 몽펠 주교가 손을 흔들었다.
“뭐하나? 계속하게.”
등불을 켜지 않고 글씨를 확인할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남자는 별수 없이 다시 석판을 쓸기 시작했다.
“조심하게. 한 번에 많은 글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예에….”
-72번째 악마 바알의 염원을 담아 이 석판을….
‘72번째라고?’
악마의 서열은 일월성교회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사항이었다.
그들 간의 세력다툼을 통해 들쑥날쑥한 게 정상이라지만….
당연히 항상 대략적인 서열은 파악하고 있었다.
언제나 바알의 이름은 항상 맨 위, 정점에 존재했다.
‘허나 천 년 전에는 달랐을 수도 있겠지.’
몽펠 주교는 이미 주교 헤브리와 함께 석판의 첫 부분을 살폈다.
이 석판이 바알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건 사제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
‘겁쟁이들 덕분에 귀한 정보를 내가 먼저 손에 쥐게 되었군.’
석판에 따르면 현재의 1악마 바알도 오래전에는 72번째 악마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뜻이다.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현재 일월성교회 내에서도 악마에 대해 많은 주장이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그 중, 가장 주류 의견이 바로 1악마 바알이 다른 악마들을 창조해 낸 마계의 신일 거라는 주장이었다.
이 석판은 그 주장을 일거에 반박해 낼 수 있는 증거인 셈이었다.
석판의 내용에 따르면 추측과 달리 1악마 바알도 다른 악마들과 별다를 게 없는 순위경쟁 과정을 겪고 정점에 올랐을 테니까.
‘미리 이 정보를 흘려 둔 후, 석판이 공개된다면 성교에서 내 입지도 크게 오르겠지.’
어쩌면 주류 의견에 짓눌리지 않고 소신을 지킨 존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이다.
마계와 마물이 인간의 역사에 끼어든 게 오래된 만큼, 일월성교회 또한 세속에 깊이 찌들어 있었다.
성력이 강하고 신심이 깊다고 교의 중요한 위치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명성 또한 하나의 힘이 될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속한 일교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정치력이 더욱 중요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일교의 대주교도 꿈이 아니다.’
대주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몽펠 주교는 불쑥 욕심이 생겼다.
‘잠깐만… 어쩌면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까?’
대주교?
아니, 조금만 더 귀한 정보를 얻어 낸다면 일월성교회의 회주도 노려 볼 만하다.
‘하나만 더 찾아내자.’
이미 천 년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이상, 석판이 만들어진 시기를 알 수 있는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
몽펠 주교의 눈에 핏발이 섰다.
축제라는 단어가 쓰여 있던 뒷부분이 못내 궁금해졌다.
석판을 한눈에 담아 살피던 몽펠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이쪽을 살펴보도록 하지.”
결국 그는 욕심이 치미는 걸 참지 못했다.
“예에.”
이미 체념한 상태인 남자가 허리를 꺾어, 몽펠 주교가 짚은 부분을 쓸어 넘기기 시작했다.
꿀꺽.
몽펠 주교는 기대 어린 눈으로 글자를 살폈다.
그런데 갑자기 주교의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앞이 뿌옇게 변하고, 몸이 으스스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뭐, 뭐지?’
급히 가호의 힘을 끌어내니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지?”
석판을 훑어 내던 남자가 손을 뻗었다.
“흙을 덮는 걸 깜박했습니다….”
주교 몽펠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석판의 내용이 드러난 곳이 두 곳이나 됐다.
갑자기 화가 불쑥 치밀었다.
“어서 덮어!”
몽펠 주교가 반말로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남자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교님, 좀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누구냐!”
그때, 갑자기 잔해의 위쪽에서 등불이 튀어나왔다.
등불을 든 자는 젊은 사제였다.
그는 석판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걸 보고 대경실색하며 소리쳤다.
“몽펠 주교?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몽펠에게 등불을 비춰 본 젊은 사제는 급히 자기 눈을 비볐다.
“주교 몽펠…?”
그가 등불을 비추자 주교 몽펠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쩍 갈라진 피부는 완전히 붉은색이고, 핏발이 선 눈동자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마, 마인이다!”
“뭐라고?”
젊은 사제의 말에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주교 몽펠 자신이었다.
“어, 어억?”
그때, 아래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벌벌 떠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제, 제발 살, 살려 주십시오….”
남자는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며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의 팔다리가 휘청댈 때마다 석판의 표면이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벌레 같은 놈.
그때, 몽펠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벌레보다 못한 것을 밟아 죽여라.
몽펠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신의 계시가 분명했다.
“오오. 일월성신이시여….”
몽펠의 발이 순간 발굽처럼 변하더니 꿈틀대는 벌레를 밟아 죽였다.
핏물이 확 터지는 걸 보니 마음이 한껏 가벼워졌다.
간단한 일도 제대로 못 하는 쓰레기 같으니.
-하나 더 남았구나.
몽펠의 시선이 등불을 든 벌레에게 향했다.
“무, 무슨!”
벌레가 몸을 돌려 도망치려 하자, 몽펠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두 개에서 붉은 마기가 뿜어져 나와 벌레의 몸을 칭칭 감았다.
손을 들어 올리자 벌레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몽펠이 손을 내려치자, 벌레가 바닥에 부딪혀 곤죽이 되었다.
깨어진 등불에서 기름이 흘러나와 석판을 적셨다.
불꽃이 기름에 닿자 불길로 번졌다.
화륵!
기름을 타고 이어진 불꽃이 석판에 달라붙는 순간.
석판 전체에 불꽃이 일렁이더니 한순간에 석판을 덮은 흙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퍼펑, 펑!
자욱한 흙먼지가 사방을 뒤덮고, 그 가운데 석판이 스스로 일어섰다.
이제는 주교가 아니게 된 몽펠이 우뚝 선 석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일월성신이시여….”
-내 이름은 일월성신이 아니다.
그 순간 몽펠은 벼락을 맞은 듯이 몸을 떨었다.
“나의 주군 바알이시여… 미천한 종 몽펠이 귀한 분을 뵈옵나이다….”
-아직 세 개의 석판이 더 필요하다.
“예.”
그 순간 강렬한 달빛이 석판을 내리쬐었다.
-크아, 크아아악!
“주군이시여!”
“마인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은 주교 헤브리였다.
성력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헤브리가 수척한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강하게 밀어붙여라! 가호의 결계로 놈을 가둬!”
“예!”
수십의 사내가 내뿜는 가호의 물결이 석판을 덮쳤다.
네 방향의 결계석이 가호의 힘을 받아 빛을 뿜어내며 석판을 옭아맸다.
쩌적, 쩍.
-으아아아아! 뭐 하는 것이냐! 얼른 막지 않고!
“으아아!”
반쯤 갈라진 석판의 앞을 몽펠이 막아섰다.
몽펠의 몸에서 가호의 빛이 빠져나와 석판을 보호했다.
“크윽.”
몽펠은 급히 상황을 살피다, 결계석을 발견했다.
그가 발굽으로 바닥을 구르자 결계석이 반쯤 뽑혀 나왔다.
“이이익.”
화가 치민 몽펠이 다시 강하게 바닥을 굴렀다.
거의 뽑혀 나온 결계석이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잘했다.
이번에는 석판이 바닥을 크게 굴렀다.
네 개의 결계석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퍽, 하고 깨져 나갔다.
* * *
쨍그랑.
와인에 취해 낮게 코를 골며 잠들었던 이사벨라 로칸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아얏!”
땅바닥을 짚은 손바닥에 깨진 유리가 박혀 피가 몽글몽글 솟아 나왔다.
“윽… 와인을 마시다 잠들었나…?”
잠에서 깬 그녀의 앞으로 사색이 된 롬페르 주교가 넘어질 듯한 모습으로 달려 들어왔다.
“대주교님, 큰일 났습니다! 주교 헤브리가 구조 신호를 보냈습니다!”
“구조 신호?”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이사벨라는 불안한 예감에 갑자기 큰 두려움을 느꼈다.
“어디, 어디였지?”
“로몬입니다.”
“조사단의 다른 인원은?”
“연락이 안 됩니다.”
이사벨라가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젖혔다.
곧이어 두 눈을 감고 가호의 힘을 일으켰다.
은은한 빛이 그녀의 몸에서 창밖으로 쑥 빠져나갔다.
그러나 주교 헤브리와 연결되어야 할 빛의 통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시 그녀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이사벨라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교 헤브리의 성력이 완전히 고갈되었거나… 이미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겠지. 어느 쪽이든 심각한 문제야. 조사단 모두가 연락이 안 된다면, 파견 사제 중에 달리 연결할 인물이 있을까?”
“근처에 주교 메르티가 있을 겁니다.”
“메르티? 그녀가 서부에 있어?”
“예. 추가로 파견한 사제들이 마침 대로 근처를 돌아다니던 그녀와 마주쳤답니다. 그 후, 합류해서 로몬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네. 일단 그녀와 정신을 연결해 봐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저는 다른 사제들을 수배해 보겠습니다.”
* * *
창을 열고 호수를 바라보며 가볍게 명상을 했다.
약 30분의 명상을 끝내고 나니 마나 하트가 확연히 커진 게 느껴졌다.
“어째 명상법의 효율도 좋아진 것 같네.”
을 익힌 이후로, 비전 검술의 위력이 크게 나아진 걸 확인한 참이었다.
그래서 명상에 치중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어째 이것도 효과가 커진 것 같다.
뭐, 좋은 일이다.
시간 효율이 높아진 거니까.
“게헤른의 말대로였네.”
그는 대장 기술을 수련하면, 내 검술이 나아질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명상법의 효율까지 높아진다면… 오히려 주체를 못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 하엘린과 주고받은 서신이 떠오른다.
—아버님께 가문의 명상법을 개량하는 걸 허락받았어요.
그리고 그걸 내게 알려 준다니.
20만 길의 효과가 꽤 좋았던 모양.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고 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순조롭네.”
모든 것이 순조롭다.
개인적 성장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고.
감시탑이 완성되면 쟈네에게 아끼던 와인을 내 달라고 해야겠다.
그때, 누군가 2층으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콩콩대는 걸 보면 에일리 같은데.
마주크는 ‘쿵쿵’이고, 앨리스는 ‘콩. 콩. 콩’이다.
똑. 똑.
발소리의 주인은 역시 에일리였다.
“영주님, 감시탑이 완성되었대요!”
“벌써?”
“네. 오스발 아저씨가 영주님께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지금 바로 가지.”
타이밍도 딱 좋다.
오늘 밤은 드디어 꿈꾸던 대로 호수뷰를 즐기며 와인을 마실 수 있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