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좀비 웨이브를 때려잡는 영주님 (2)
완성된 감시탑은 그 목적에 충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정말 튼튼해 보이는군.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었는데 이유가 있나?”
오스발에게 묻자 그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다들 훈련에 열중하는 모양입니다. 일을 빨리 끝내고 검술을 익히겠다고.”
“그래? 듣던 중 기쁜 일이군.”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지루한 체력 훈련 기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왕국 검술을 훈련하고 있으니까.
애초부터 병사가 되고 싶어 하던 녀석들이라 검을 잡기 시작하니 공을 쫓는 강아지처럼 변해 버렸다.
스스로 밤잠을 줄여 훈련하려는 걸, 내가 억지로 금지해 둔 상태니까.
검술 훈련이 체력 훈련보다는 체력 소모가 적어도 사실 더 위험하다.
맨몸운동과 중량 운동의 차이라고나 할까?
총보다 훨씬 무거운 검을 계속 휘두르는 건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가니까.
휴식과 훈련의 비중이 중요한데, 본인들은 성장하는 게 하루하루 보이니 눈이 뒤집힐 수밖에.
누군가 제지를 해줘야 한다.
그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역할이고.
아무튼, 저놈들도 미친 재능 덩어리들이다.
분명 일반인이었는데 1년만 더 지나면 웬만한 중급 용병은 찜 쪄 먹을 것 같아 보이니까.
“그러면 전부 훈련장으로 간 건가?”
“아닙니다. 공정은 어젯밤 거의 마무리되어서 자정쯤에는 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침에는 저 혼자 마지막 마감을 했습니다.”
“그런가? 수고했네. 마주크에게 말해 둘 테니 보상을 받아 가게.”
“예엣? 그러시지 않으셔도.”
“하알룬의 재정은 넉넉하니 걱정하지 말게.”
합리적 보상은 결국 영지민들이 영지에 헌신하게 만든다.
감시탑은 사실 내 욕심이기도 했으니….
충분한 보상을 해 줄 생각이었다.
오스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변한 신뢰도가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오스발 랜든의 신뢰도가 상승했습니다.] [ (30) → (50) ]그보다 이제 신뢰도가 플러스로 시작한다는 점이 더 기쁘다.
처음에는 전부 마이너스 시작이었는데 말이지.
“그럼 한번 내부를 살펴보도록 할까.”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오스발은 관저 옆으로 나를 데려갔다.
마구간과는 정반대 편에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었다.
“어떻게 사용하는 물건이지?”
돈이 썩어 넘친다면 바르둠 카지노처럼 코어를 쓰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겠지만, 보통은 도르래를 이용해 이동한다고 했는데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줄을 잡고 레버를 돌리시면 추가 천천히 내려올 겁니다.”
아, 이것도 원리는 엘리베이터와 같구나.
“추 대신 몸이 올라가는 건가?”
“예. 발판에 서 계시면 저절로.”
“내려올 때는 어떻게 하지?”
“줄을 타고 내려오면 됩니다.”
“그래서 줄이 늘어뜨려져 있군.”
“엘리베이터와 다른 점은 추를 인력으로 감아올려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한두 사람이 이용하는 게 한계지요.”
보통은 힘센 하인을 시켜 추를 감아올려 두는 건가.
“추가 무거우니 주기적으로 제동장치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벼운 사람이 올라탔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군. 추가 무거우니 잘못하면 화살처럼 날아가겠어.”
예를 들면 가레스가 투석기로 날 날려 버리던 것처럼.
“갈란트 경비대장에게 담당자를 정하도록 말해 두겠습니다.”
“아니, 괜찮네. 직접 하면 되니.”
애초에 나보다 힘센 사람은 하알룬에서는 게헤른 외엔 없을 테니까.
“예? 영주님이 직접 그런 일을 하신단 말씀입니까?”
오스발이 크게 당황한다.
그러고 보니 오스발은 나와 함께 뭘 한 게 이번이 처음이구나.
반응이 신선하다.
“벽지의 영주는 부지런해야 하지. 어서 가봐. 자네도 바쁠 테니까.”
“아, 옙. 알겠습니다, 영주님.”
오스발은 솜씨가 뛰어나서 여러 곳에 불려 다닌다.
하알룬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몇 명 안 되는 인간이다.
역시 인간은 기술을 배워야 하는 건가….
“읏차.”
발판에 올라타 손잡이를 잡아 돌리자, 정말로 옆에 매달린 쇳덩이가 천천히 내려왔다.
저걸 만드느라 철광석을 꽤 소비하긴 했지만….
요새는 주기적으로 자철광을 채굴하기 때문에 상관없다.
가끔 차르족의 테무르와 마주치긴 하지만 전처럼 충돌하지 않고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돌아간다고.
그래서 인구가 좀 늘면 테무르와 협의를 해서 아예 광산을 만들까 생각 중이기도 하다.
저들도 먹고살기가 힘들어 그간 충돌해 왔던 것이니.
한마디로 야만족과의 연합을 계획하고 있는 중.
그렇다.
인구 확보!
이게 내가 요새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주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쉬어 줘야 할 때지.”
걱정은 일단 던져 버리고 감시탑 위로 올랐다.
싸늘한 가을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진다.
“좋군. 이래서 고층 아파트가 비싼 건가.”
아침 햇살이 비치는 호수는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 줬다.
가만히 있어도 즐겁다고 할까?
“아차. 와인을 안 가져왔군….”
무심코 관저 쪽을 내려다보니, 난간에 앨리스가 서 있었다.
바구니를 든 채로.
“영주님!”
바구니 안에는 와인과 갓 구운 빵이 들어 있다.
저 영리한 녀석.
내가 손짓하자 앨리스가 난간 쪽 줄에 바구니를 매달았다.
줄을 당겨 바구니를 들고, 밑을 내려다보니 앨리스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흠.”
졸졸.
와인을 잔에 따라 음미하며 빵을 먹었다.
안주가 묘하긴 하지만 아침 반주도 나쁘진 않다.
샌드위치만 정도만 됐어도 더 좋았을 텐데.
달걀도 햄도 구하기 힘든 하알룬이니 어쩔 수 없다.
“가축이라도 좀 쳐야 하나.”
와인 한 잔을 다 마시고, 다시 경치를 감상했다.
좀 멀리 내다보니 호수 너머 로몬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아직도 불에 탄 잔해들이 남아 있다.
주교 헤브리까지 갔으니 슬슬 정리됐을 텐데.
“음…?”
뭔가가 로몬의 잔해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전부 같은 흰색 옷을 입은 거 보니 사제들 같은데?
안력을 돋우어 보니 사람 한 무리가 허둥대며 이동하고 있다.
방향은… 호수 쪽.
다시 말하면 하알룬 쪽이다.
무슨 일이지?
“영주님!”
밑을 내려다보니 이번에는 에일리였다.
“영주님! 일월성교회의 사제분들이 잔뜩 오셨어요.”
“사제들이?”
나는 다시 로몬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가까워진 사람들.
분명 사제들이었다.
숫자로 봐서 주교 헤브리와 조사단이 맞는 것 같은데.
뭐지?
“찾아왔다는 사제들이 주교 헤브리를 말하는 거냐?”
“아뇨! 처음 뵙는 주교님과 사제님들이 영주님을 뵙기를 청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주 어린 사제님도 계셔요.”
아주 어린 사제는 또 뭐야?
“일단 내려가마.”
이것 참, 겨우 분위기 좀 내려니까 일이 생기는군.
하지만 주교가 또 왔다는 말에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급하게 줄을 타고 힐링 타워, 아니 감시탑 아래로 내려갔다.
* * *
“안녕하십니까, 하알룬 영주. 저는 월교의 주교 카라코바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하알룬의 영주 카민 리스트레토입니다.”
에일리의 말대로 약 마흔 명이 넘는 사제들이 관저 앞마당에 모여 있었다.
에일리가 말한 아주 어린 사제가 가장 눈에 띄긴 한다.
그야 너무 어리잖아….
에일리보다도 더 작다.
못 먹어서 작은 게 아닐 테니 정말로 열 살 정도 되는 게 아닐까?
“하알룬 영주,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주교 카라코바는 주교 헤브리와 다르게 다급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예?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조사단처럼 또 빵이라도 달라는 걸까?
“저희는 로몬에 악마, 바알의 석판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조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로몬으로 이동하던 도중입니다.”
“…예? 바알이요?”
바알이라면 결계 장치의 기억 속에서 봤던 소머리 악마 아닌가?
“바알을 아십니까? 이거 잘 됐군요.”
“아니, 잘은 모릅니다. 이름만 들어봤지요. 설마 로몬 아래에 묻혀 있던 석판이 악마 바알과 관계되어 있던 겁니까?”
몽펠 주교의 일에 끼기 싫어서 손을 뗐는데, 아무래도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예, 맞습니다. 주교 헤브리의 보고에 따르면 석판은 바알이 직접 제작한 물건으로 보인다고 하더군요.”
“….”
아니, 악마가 직접 제작한 물건이라고?
그러면 어마어마한 저주 아이템 아닌가?
하긴… 그 정도는 되어야 수십 년간 마법진처럼 작용하며 로몬의 영지민들을 좀비로 변하게 하는 게 가능하겠지.
“주교 몽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교 헤브리는요?”
잠깐 봤지만, 주교 헤브리는 꽤 대단한 실력을 지닌 인물 같았는데.
그런 고위 사제도 겨우 석판 하나를 어쩌지 못한 건가?
“주교 몽펠은 아는 바 없고, 주교 헤브리는 오늘 새벽 구조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받고 새벽 내내 급히 달려온 참이지요.”
어쩐지 다들 안색이 좋지 않다.
이거 어떻게 되어 가는 상황이지?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아니, 잠깐….”
“예?”
불현듯 감시탑에서 본 광경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큰일이 난 것 같습니다. 로몬 쪽에서 사제분들로 짐작되는 무리가 이쪽으로 이동하는 걸 봤습니다.”
나는 관저 옆의 감시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과연…. 한시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주교 카라코바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일월성교회의 회주 이사벨라님의 특명을 받고 있습니다. 왕국과 일월성교회의 협약에 따라 하알룬 영주께 병력 지원을 요청합니다.”
“병력….”
“하알룬의 병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작은 영지라고 듣긴 했습니다만. 위치가 위치인 만큼 하나하나가 강병이겠지요. 영주님의 모습만 봐도 기개가 느껴집니다.”
주교 카라코바는 갑자기 내 얼굴에 금칠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로 도움이 필요하긴 한 모양인데.
그런데… 후.
왠지 쥐구멍을 찾고 싶어진다.
“하알룬의 총병력은 열셋입니다… 마법사가 하나 있으니 열넷, 기사인 저까지 포함하면 열다섯이군요.”
“예…?”
주교 카라코바가 당황하며 나를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다.
그야 그렇겠지.
“…안타깝지만 하알룬의 병력은 그게 전부입니다.”
왠지 내가 죄인이라도 된 느낌이 든다.
“크하핫! 열셋?”
갑자기 관저 뒤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작은 소리였기에 사제들은 듣지 못했지만, 내 귀는 그 소리를 잡아냈다.
라무르다.
앞마당에 두니 어그로가 끌려서 뒷마당으로 옮겨 놨더니….
저 자식이, 날 비웃다니.
잠깐, 마침 눈앞에 사제가 가득한 상황.
지금처럼 급한 상황에는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하다.
“아, 거기에 마물 사냥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내 말에 라무르가 벙찐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엉? 여기에도 사냥꾼이 있었나?”
그래, 그 사냥꾼이 바로 너다. 라무르.
하알룬의 사냥꾼은 이미 죽어 버렸거든.
주교 카라코바가 헛기침을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으음. 죄송합니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하지만 꼭 좀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형국이라.”
확실히 주교는 주교다.
힘이 달릴 걸 알면서도 주저 없이 구조에 나서려는 걸 보면.
“부족한 힘이지만 돕겠습니다.”
석판이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지는 모르지만, 나로서는 저걸 가만 놔둘 순 없다.
당연히 하알룬까지 문제가 이어질 테니까.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꼬마 사제가 슬슬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장아장 걷는 게 귀여운데….
저런 애를 이런 일에 끌고 다녀도 되는 건가?
“배고파….”
“메르티 주교….”
아니, 저 작은 꼬마가 주교라고?
놀랄 일이다.
물론 이어진 말은 더 놀라웠다.
“밥 줘.”
꼬르륵.
진짜로 배가 고픈 모양이다.
“흠… 하알룬 영주, 죄송하지만 간단히 요기할 뭔가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예. 에일리!”
에일리가 뭔가 먹을 걸 내오는 사이, 나는 라무르를 끌고 나와 주교 카라코바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 자가 전염병에 걸려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전염병이라 하심은?”
“좀비로 변하는 병 말입니다.”
“음.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무르가 씩 웃었다.
“드디어 풀려날 수 있는 건가?”
응, 그 대신 너도 같이 싸워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