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매우, 매우 해볼 만해.
왕세자 알베르는 조금 신난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네놈이 골 때리면서도 머리를 맑게 해주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제가 늘 문젯거리만 안겨 드리는 건 아니랍니다.”
알베르는 당연히 코웃음을 쳤다. 그는 살면서 케일 헤니투스만큼 사건을 몰고 다니는 인간은 보지 못했다. 저 정도면 운명이다.
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말하지 않고 알베르는 자신이 전할 정보를 말했다.
-네 녀석이 보내준 인질은 현재 이모님이 취조하고 있다.
“잘 되어갑니까?”
물론 취조가 아니라 정신 고문이겠지만. 케일은 굳이 그 부분을 꼬집지 않았다.
-조만간 일부는 토해내지 않을까 싶어. 이모님이 그쪽 방면 전문가를 데려왔거든.
다크엘프가 데려올 전문가는 누굴까. 왠지 케일은 섬뜩해져 왔지만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알베르는 혼잣말을 하며 생각을 가다듬고 있었다.
-할 일이 많군. 정글의 여왕과는 내가 영상 통신을 하도록 하지. 그리고 위퍼 참모장과도 접촉을 해야겠어. 그렇게 되면 일단 지리상으로는 제국과 북 3국을 분리시킬 수 있겠-
알베르는 말을 하다 말고 케일을 쳐다봤다.
-너 왜 그리 쳐다봐?
케일이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알베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케일은 입에 침 하나 묻히지 않고 말했다.
“저하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워서요.”
역시 왕세자에게 말하기 잘했다.
똑똑한 사람이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해내었다. 그렇기에 그저 자랑스러웠다.
-…후우.
알베르는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툭 던지듯 말했다.
-넌 앞으로 뭐 할 참이지?
케일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뻔뻔하게 답했다.
“정보를 모으겠습니다.”
정보는 무슨.
일단 가을까지 자신은 쉴 생각이다. 지금 자신이 나서서 할 일이 뭐가 있겠나?
그러나 케일은 왕세자가 묘하게 웃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알베르는 화사한 얼굴로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너라면 정보를 잘 모을 거다.
알베르는 생각했다.
또 어디서 엮여서 정보를 물어다 주겠지.
왕세자 전속 정보단보다 케일 하나가 나았다.
“…네. 뭐.”
케일은 왕세자의 웃는 얼굴이 영 찝찝했지만 외면했다. 대신 케일은 그에게 메리에 대한 부탁을 전하고 영상 통신을 마무리했다.
그들의 마무리 인사는 갈수록 정이 많아졌다.
-네놈과 영상 통신만 하고 나면 악몽에 시달려. 지독한 놈.
“저하께서 만수무강하시길 바랍니다.”
-웃기는 놈.
뚝.
영상 통신이 예고도 없이 끊어져 버렸다. 케일은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되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쉬이익-
이건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케일은 제 코앞으로 총알같이 날아오는 검은 물체에 당황했다.
‘얘가 왜 이래?’
라온이 케일의 얼굴 한 뼘 정도만 두고 멈췄다. 검은 용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케일은 괜히 불안해져 왔다.
“인간!”
라온이 외쳤다.
“땅의 힘 구하러 가자!”
아, 맞다. 그게 있었다.
케일은 피곤함이 밀려왔다. 그는 제 코앞에 둥둥 뜬 채로 얼굴을 들이민 라온을 손으로 살짝 밀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수업은?”
라온은 에르하벤과의 수업을 해야 했다. 케일의 물음에 라온의 날개가 잠시 멈칫했지만 라온은 당당히 답했다.
“…실습 가자고 하면 된다!”
얼씨구야, 에르하벤까지 데리고 짱돌을 구하러 가자고?
어디 대륙 부수러 가니?
케일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넌 수업 들어. 그냥 최한이랑 다녀오면 돼.”
미쳤다고 용을 두 마리나 데리고 짱돌을 구하러 가겠나. 케일은 턱도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며 실소를 흘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라온이 조용하다.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인간.”
라온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날개와 어깨를 쫙 펼쳤다.
“위대한 라온의 말이니 따라라. 약한 인간은 내가 가야 한다.”
다섯 살짜리가 위엄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봤자 5살이다. 그것도 케일은 4살 때부터 봤다.
에르하벤이 용의 위엄은 가르치지 않는 건가. 케일은 귀찮아서 그냥 답했다.
“…그러든가.”
히죽. 라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인간! 잘 생각했다! 그럼 나는 에르하벤한테 통보하고 온다!”
라온은 황금과 보석으로 번쩍이는 케일의 방을 나가 에르하벤에게 날아갔다. 케일은 날아가는 라온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통보가 아니라 부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휘 선택에서 또다시 찜찜함을 느꼈지만, 일단 케일은 엘프가 준 서책을 꺼내 들며 그곳에 집중했다.
오래된 서책이었지만,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꽤 상태가 양호해 글을 읽기에는 괜찮았다.
사락. 사락.
종이 넘기는 소리와 함께 케일은 첫 페이지를 읽을 수 있었다. 첫 페이지에는 한 줄만 적혀 있었다.
탁.
케일은 서책을 덮었다.
왠지 이 책도 이상하다.
하지만 시한폭탄 없는 삶을 위해 케일은 한숨과 함께 책을 다시 펼쳤다. 그는 진짜 안전하게 살려고 별짓을 다한다고 생각하며 얼굴을 있는 대로 구겼다.
다음 장을 넘겼다.
여기는 조금 정상적인 말들이다.
사락. 사락.
케일은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점차 구겨졌던 얼굴이 펴졌다. 군데군데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들이 있었다.
케일은 예전에 스텐 후작가의 장남 테일러가 말해줬던 고대 전설이 하나 떠올랐다.
바위의 나라를 구했던 수호신.
대륙에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대륙의 북동쪽을 구했던 영웅에 관한 전설이었다.
‘그 전설과 연관된 건가?’
케일은 그 전설을 떠올리며 마저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점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파괴의 불.
그 힘의 주인이 고이 모셔둔 돈을 이 책 속 영웅이 가지고 있다.
많이 모았단다.
케일은 갑자기 마음이 풍족해져 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갈수록 이상해져 갔다.
일단 이 서책에 기록된 고대의 힘은 무서운 짱돌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사라라락. 책장을 넘기는 케일의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탁.
마침내 마지막 장까지 읽은 케일은 마지막 장을 펼친 채로 서책을 황금 테이블 위에 엎어버렸다.
“하아.”
케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책 내용을 떠올렸다.
바위의 나라는 현재 로운 왕국의 터다.
가장 강한 바위.
화강암.
“아, 진짜.”
케일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이거 우리 동네 같은데.”
아무리 봐도 헤니투스 영지다.
그것도 어둠의 숲일 확률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케일은 이 ‘무서운 짱돌’을 어떻게 얻어야 할지 대충 감이 잡혔다.
파괴의 불이 케일에게 길을 인도해 주리라.
대략적인 장소도, 얻을 방법도 알았건만 이상하게 케일은 불안했다. 그때였다.
“인간, 인간!”
열린 방문에서 라온이 날아 들어왔다.
“왜- 음?”
무심코 고개를 들었던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인간! 너 책 볼 때 과일 먹지 않는가! 챙겨왔다! 신선하다!”
라온의 작다란 두 앞발로 과일 쟁반을 들고서 날아왔다. 그리고 그걸 케일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케일이 이를 빤히 쳐다보자, 라온이 말했다.
“인간, 비 맞으면서 동굴 갔다고 들었다. 고생 많았다. 맛있는 거 먹어야 튼튼해진다.”
그때, 라온의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참, 용생을 살면서 용이 인간 시중드는 건 또 처음 보네. 말세다, 말세야.”
라온 뒤에 따라 들어온 골드 드래곤 에르하벤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라온은 그제야 에르하벤을 떠올린 듯 앞발로 에르하벤을 가리켰다.
“금 용 할배도 데려왔다! 실습에 대해 이야기 나누자고 데려왔다!”
에르하벤이 기가 찬 얼굴로 라온을 쳐다봤다.
아니, 언제 에르하벤이 금 용 할배가 되었대?
케일은 그게 궁금하면서도 에르하벤에게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에르하벤 님, 앉으시죠.”
허, 참.
골드 드래곤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탄성을 내지르며 맞은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 늙어서 왜 이런 맹랑한 꼬맹이를 집에 들여 가지고.”
“금 용아. 나는 맹랑하지 않다!”
톡. 톡. 케일은 포도를 한 알씩 떼어 먹으며 두 용의 대화를 지켜봤다. 에르하벤은 라온의 반박에 비웃음을 흘렸다.
“맹랑하지 않긴. 벌써부터 수업 빠지고 땡땡이 칠 생각이나 하고.”
“아니다! 약한 인간, 튼튼하게 해주러 가는 거다! 그리고 나는 땡땡이가 아니라 금 용이랑 같이 실습 가고 싶은 거다!”
탕, 탕. 라온이 황금 테이블을 살짝 두드렸다.
“금 용이랑 꼭 같이 갈 거다!”
케일은 순간이었지만 에르하벤의 입꼬리가 씰룩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천 년 가까이 홀로 살아왔던 고룡은 애써 5살 용에게 퉁명스럽게 답했다.
“난 별로 같이 가고 싶지 않다만.”
“안 된다! 금 용이랑 같이 갈 거다!”
라온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강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에르하벤의 입꼬리가 한 번 더 씰룩였다.
이걸 케일은 모두 보았다.
골드 드래곤은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같이 갈지 안 갈지는 내가 정하는 거다. 꼬맹아.”
그러면서 케일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케일 헤니투스, 땅의 힘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보 없이 무작정 구하려고 돌아다니는 것은 힘든 일이야.”
케일은 생각했다.
참 보면 볼수록 이 고룡은 마음이 약하다.
골드 드래곤은 케일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고대 전설에 관한 서책을 일단 찾아보고.”
탁.
에르하벤은 제 말을 끊는 소리에 테이블을 쳐다봤다.
오래된 서책이 보였다. 꼭 고대 전설을 담고 있었을 것 같은 책이다.
에르하벤은 잠시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서책에서 고대의 힘 위치는 물론이거니와 그 얻을 방법도 찾아야 하고.”
“찾았습니다.”
“…다?”
“네.”
골드 드래곤은 담담하게 앉아 있는 인간을 가만히 응시했다. 가진 고대의 힘만 6개인 인간.
에르하벤은 인정했다.
“넌 운에 미친놈이구나.”
케일이 씨익 웃어 보였다. 에르하벤은 덩달아 코웃음을 흘렸다. 그때 에르하벤의 팔을 툭툭 치는 앞발이 있었다.
“금 용아, 가자!”
신난 라온이 그 앞발의 주인이었다. 에르하벤은 라온과 케일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는 라온에게 라온의 성장 과정과, 케일과 라온의 만남에 대해서 모두 들었다.
에르하벤은 인간과 검은 용에게 차갑게 답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다. 그게 용이야.”
***
그리고 며칠 뒤, 케일은 무서운 짱돌의 힘을 얻기 위해 어둠의 숲 근처 해리스 마을에 도착했다.
해리스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기사가 케일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공자님.”
“그래.”
“오늘은 매번 함께하시던 분들은 안 오셨군요. 간소하게 오셨네요.”
기사는 케일과 함께 온 이들을 보며 싹싹하게 말을 건넸다. 케일은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마을에서 며칠 쉬다만 갈 거라. 그렇지, 힐스만?”
케일의 일행 중 한 명, 힐스만이 멍하게 서 있다가 케일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네, 네! 그, 그렇습니다!”
기사는 부단장 힐스만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하자,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그런 그에게 케일의 투박하지만 꽤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단장이 멀미를 했나 봐. 뱃멀미도 심하더니, 마차 멀미도 하나 봐.”
“아, 그렇군요. 부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부단장 힐스만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아주 괜찮아!”
툭. 케일이 어깨를 두드리자 힐스만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공자님 호위는 나와 이, 이, 이-”
힐스만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케일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함께 온 사람에게 닿아 있었다. 금발의 중성적인 외모의 사람.
그 아름다운 사람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힐스만은 두 손으로 그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자님 호위는 나와 이분이 함께할 걸세. 자유로이 이동할 테니, 따로 함께 따라오지 않아도 되네.”
“네. 알겠습니다!”
기사는 씩씩하게 답하며 케일의 옆에 선 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케일이 데려온 인물들도 범상치 않았는데, 이번에 함께 온 이는 분위기가 뭔가 더 다가가기 어려웠다.
범접하기 힘든 사람으로 보였다.
“그럼 수고하게.”
“네. 공자님.”
케일의 격려에 기사는 병사들과 인사했고, 기사는 마을 안으로 들어서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케일, 그리고 부단장. 더하여 새로운 사람.
케일은 혀를 차며 힐스만에게 말했다.
“뭘 그리 긴장해? 그렇지 않습니까, 에르하벤 님?”
“그러게.”
에르하벤이 힐스만을 보며 말했다.
“인간아, 편하게 하거라.”
힐스만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은 자신의 사람인 힐스만에게 당연히 에르하벤에 대해 말해주었다. 현재 케일의 일행은 대부분 레어에 있었고, 단 세 존재만이 그와 함께였다.
하나는 심부름과 집일을 시킬 힐스만이었고, 다른 둘은 용이었다.
“인간 세계는 그대로네.”
마실 나온 듯, 고룡의 여유로운 말에 힐스만은 뱃멀미 때처럼 또다시 케일의 옷깃을 슬쩍 잡았다. 당연히 케일은 그 손을 쳐내었고, 그의 머릿속으로 라온이 말했다.
-짱돌! 무서운 짱돌이라니 하나도 무섭지 않다! 용이 둘인데!
그러게.
하나도 무섭지가 않네.
케일은 무서울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