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5
154화.
“하하하, 참 보기 좋은 태도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
황태자 아딘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아쉬운 얼굴로 케일을 지나쳤다. 케일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고, 그런 그에게 아딘이 흘러가듯이 말했다.
“후에 연회 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
전혀.
케일은 눈곱만큼도 이 황태자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테라스에 가만히 있어야지.’
케일은 멀어지는 황태자 아딘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이번 조사가 끝난 후, 사신단 환영식과 한 해가 끝났음을 동시에 기념하는 연회가 열린다.
케일은 그 연회 때 구석 테라스에 가서 쥐 죽은 듯이 있어야겠다고 혼자만의 생각을 했다.
그 때,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저 황태자 놈 겁쟁이 부단장만큼 강한 것 같다.
호오.
케일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황태자 아딘.
연금술을 중시하고 뒤에서 갖가지 간계를 펼치는 이였지만, 저 헤실헤실 웃어대는 놈은 상급 기사다.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상급이라 말이지?’
부단장 힐스만은 그동안 더 강해져 최상급 익스퍼트에서도 완숙한 경지에 다다랐다. 그런데 아딘이 그 경지란 소리는 상당히 재능이 뛰어남을 의미했다.
‘재밌네.’
케일은 ‘영웅의 탄생’에서 황태자에 대한 이야기를 몇 군데 읽었다. 그러나 최한이나 알베르만큼 자세히 알진 못한다.
그가 읽었던 권수까지는 황태자 아딘이 메인으로 떠오른 적이 없었으니까.
케일은 숨긴 게 많아 보이는 아딘이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흥미롭다고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는 법이지.’
케일은 조용히 한탕만 하고 빠지리라 결심했다.
그런 그에게 라온이 머릿속으로 말했다.
-인간, 인간! 저기 우리 가족의 분위기가 나는 녀석이 있다!
심장이 철렁했다.
…뭐?
가족?
케일은 당황했다.
또 용?
용이 또?
케일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황급히 제국에서 마중 나온 이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벤.”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여기 네, 그러니까 너랑 비슷한 분들이 있나?”
케일은 결국 뒤돌아 고룡 에르하벤을 쳐다봤다. 그리고 에르하벤의 ‘또 이 박복한 인간이 뭔 소리를 하냐’는 눈빛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쟤 묘족 아니냐? 9시 방향에 붉은 머리칼 말이다.
케일의 고개가 9시 방향으로 향했다. 붉은 머리칼의 기사가 보였다. 에르하벤은 케일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 꼬맹이가 말해주덥니까?”
검은 용 라온이 말한 가족은 온과 홍이었다.
고룡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흐음, 꽤 강한 녀석인데.”
골드 드래곤 에르하벤은 살짝 반걸음 앞으로 걸어와 케일의 바로 뒤에 섰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를 확보한 후에야 케일의 귓가에 속삭였다.
“묘족은 습성상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지요. 그리고 그들은 암살 전문입니다만.”
묘족은 동대륙에서는 꽤 알려진 존재지만 서대륙에서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수인족이었다.
그들은 은밀했으며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살았다. 또한 암살과 은신, 정보 수집에 능했다.
에르하벤이 흥미로운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했다.
“누굴 죽이려고 숨어들었을까요?”
…그걸 내가 굳이 알아야 할까요?
케일은 에르하벤이 속삭이는 귓가가 서늘해져 왔다. 또 하나 쓸데없는 걸 알아버렸다.
‘잊자.’
케일은 잊기로 했다.
그러나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
“케일 헤니투스 공자님이 묵으실 곳입니다.”
황궁 소속 시종은 케일을 모시게 되었다며 왕세자 알베르가 머무는 궁 바로 옆 궁의 방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시종은 이어서 자신과 제 곁의 사람들을 소개했다.
“잡다한 업무와 심부름은 저에게 시키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공자님이 머무는 궁에 배치된 기사분들입니다.”
기사 다섯이 고개를 숙이며 간단하게 인사했다.
그중 붉은 머리칼의 묘족이 보였다. 모르고 보았다면 묘족인 줄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하, 진짜.
케일은 그 묘족을 외면했다.
“공자님께선 함께 온 호위기사분들이 계셔서 문 앞에는 따로 호위 인원을 배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원하실 경우에는 말씀해 주시면 바로 배치하겠습니다.”
“아니. 더 배치해 줄 필요는 없다.”
케일은 시종의 말을 거절했다.
“그럼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불러주십시오.”
“그러지.”
케일은 시종을 보내고 제 침실 문을 열고서 들어섰다. 동시에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여기 침대 위 천장에 은신하는 놈이 있다! 너 감시한다! 오, 어마어마한 토끼 만든 조각가만큼 은신을 한다. 상당하다!
이럴 줄 알았다.
케일의 표정은 덤덤했다.
왕세자가 머무는 궁 안에 수많은 방이 있었음에도 케일은 굳이 그 옆의 궁에 배정되었다. 왕세자의 비서들이 전부 왕세자가 머무는 궁에 배치된 것과는 달랐다.
‘아딘은 내가 궁금했겠지.’
황태자는 사신단 일원을 감시한다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케일이 궁금했을 것이다.
‘정글의 불을 껐으니까.’
정글 1구역의 그 불을 홀로 끈 놈이 케일이었다.
원래 책 내용이었다면 한참 뒤 동대륙에서 넘어온 주술사가 꺼줬어야 할 불을 케일이 껐다.
‘그것도 생각해 보면 이상해.’
케일은 ‘암’과 제국의 협력 관계를 깨달은 이상, 동대륙에서 넘어왔던 그 주술사도 의심스러웠다. 마법으로 일으킨, 물도 끄지 못한 불을 주술사는 어떻게 껐을까?
만약 그 주술사가 암의 소속이라면?
이 일도 제국과 암의 합작이었다면?
그래서 주술사가 발견했던 그 최상급 마정석들이 모두 제국과 암에게로 들어갔다면?
‘끔찍하네.’
상당히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 뒤로 주술사는 상당히 괜찮은 평가를 받으며 정글에 스며들었으니까.
‘제국이 잘하는 행동 중 하나지.’
스파이를 심는 것.
그렇게 주술사가 스파이가 되었다면, 정글 또한 머지않아 제국의 손에 떨어졌을 것이다.
“후우.”
케일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최한과 에르하벤에게 말했다.
“나가자.”
“…지금요?”
의아해하는 최한에게 케일은 말했다.
“환전하러. 그리고 빌로스가 제국에 있다더군. 내 오랜 친우를 보러 가야지.”
케일은 은신자가 들으라고 조금 크게 말했다. 그는 로브를 둘러썼고, 일행에게 마스크를 던졌다.
“조용히 다녀오게 로브와 마스크를 쓰도록.”
케일은 최한과 에르하벤을 데리고 궁을 나섰다.
물론 왕세자의 허가서로 번거롭지만 어렵지 않게 황궁의 정문을 통과했다.
‘감시는 붙었지만.’
케일은 라온이 재잘대는 감시 인원의 설명을 들으며 느긋하게 플린 상단 제국 수도 지점으로 향했다.
***
모고르 제국의 수도. 중앙 광장 근처에 자리를 잡은 꽤 괜찮은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이 플린 상단 제국 지점 1호였다.
케일은 반가움을 드러냈다.
“오랜만이야.”
“네, 공자님. 여기서 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나도 오랜 친우를 이렇게 봐서 기쁘네.”
빌로스는 직원에게 말했다.
“오늘 내 손님은 더 받지 않겠네.”
그리고 케일에게 말했다.
“제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케일, 최한, 에르하벤 이렇게 세 사람은 빌로스를 따라 플린 상단 2층 구석방에 들어섰다. 케일은 빌로스에게 농담조로 물었다.
“여기가 자네 방은 아니겠지?”
평범한 2층 방. 빌로스는 씨익 웃더니 벽면의 책장을 밀었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왔다.
케일은 지하에 위치한 작은 방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 생각보다 작은 방에서 지내는데?”
“검소하고 조용해서 좋은 방이지요.”
케일의 농담을 빌로스도 농담으로 답했다. 하지만 이내 플린 상단 서자 빌로스는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찾았습니다.”
연금술 종탑에서 지내지 않는 연금술사를 찾았다.
케일은 빌로스가 내온 차를 마시며 물었다.
“어떤 놈이지?”
“뒷세계에서 유명한 연금술사랍니다.”
뒷세계.
어느 도시, 어느 나라를 가도 존재하는 세계였다.
하지만 연금술사가 어디서 유명한지는 케일에게 중요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그래서 어떤 놈이지?”
빌로스는 슬쩍 웃으며 답했다.
“착한데 나쁜 놈입니다.”
케일은 그 말에서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결국 뒷세계에서 일하는 걸로 보아 나쁜 놈인데, 착하단 말이지?
빌로스는 아무 말이 없는 케일을 가만히 응시하며 그 연금술사에 대한 정보를 읊었다. 최한은 그 정보에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과 다른 정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일은 빌로스의 설명이 끝난 후, 몇 초 뒤에야 한마디를 내뱉었다.
“좋네.”
적당하다.
부려먹기에는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쁜 놈이 좋았다.
케일은 툭 던지듯이 말했다.
“바로 보러 가야겠는데.”
“벌써요?”
“바로 말입니까?”
빌로스, 그리고 최한이 뒤이어 놀람을 표했다. 케일은 놀라는 최한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최한이 멈칫했을 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최한.”
“네. 가시겠다면, 제가 모시겠.”
“벗어.”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케일은 멍하니 있는 최한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해?”
“네?”
“옷 바꿔 입자.”
아.
최한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나왔을 때, 케일은 로브를 벗고는 그 안의 정장 재킷을 벗었다.
“빌로스.”
“네, 네!”
이게 뭔가 싶어서 그저 쳐다만 보고 있던 빌로스가 놀라며 답했다. 케일은 그런 그에게 제 할 말을 했다.
“그 연금술사 녀석 정보 좀 더 읊어봐. 자료도 들고 오고. 그리고 빌로스, 네가 머무는 저택이 있겠지?”
“…있지요?”
케일은 빌로스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가리켰다.
“거기에 나 술심부름 좀 보내라.”
“…예?”
케일은 멍하니 되묻는 빌로스의 말에 답하지 않고 아까부터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하벤을 쳐다봤다.
“하벤.”
“네, 공자님. 두 분 바꿔 드리면 됩니까?”
“어.”
케일은 자신과 최한의 머리칼을 가리키며 에르하벤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 기사님인 줄 알았는데, 상급 마법사분이!”
빌로스가 그제야 작게 감탄을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귀한 상급 마법사를 기사로 위장시켜 데려온 케일의 생각이 이해되어서였다.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빌로스에게 씨익 웃어 보였고, 에르하벤은 케일과 최한에게 마법을 시행했다.
그리고 잠시 뒤, 빌로스는 1층으로 내려와 직원에게 지시했다.
“과일과 음식거리 좀 준비해 주게. 술도 내오고.”
“지금 말입니까?”
당황한 직원에게 빌로스는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오랜 친우인 공자님이 오셨는데. 가볍게 한잔이라도 해야지. 최한.”
빌로스는 마스크를 써서 눈만 드러낸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의 남자에게 말했다. 최한이라 불린 이의 로브 사이로 기사 특유의 가죽 갑옷이 보였다.
“내 머무는 저택에 가면 좋은 와인이 있어. 그것 좀 가져오게.”
기사에게 술심부름이라니. 화를 낼 법도 하건만 최한이라는 이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빌로스의 지도를 받아 건물을 빠져나갔다.
검은 머리칼 남자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하나 울려 퍼졌다.
-인간, 지금 따라오는 놈이 하나다! 나머지는 여전히 플린 상단 근처에 잠복 중이다.
하나면 쉽겠네.
케일은 가벼운 걸음으로 빌로스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도착한 케일은 집사에게 지도 뒷면에 새겨진 글자를 보여주였다.
“모시겠습니다.”
케일은 집사를 따라 빌로스의 서재로 들어섰다. 곧이어 집사는 나갔고 홀로 남게 된 케일은 창밖을 내다봤다.
“2층이네.”
서재는 2층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로브를 쓴 이가 2층을 벗어났다.
-인간, 따라오던 놈은 아직 저택 정문에 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라온과 ‘바람의 소리’를 통해 은밀하게 저택을 벗어났다. 그는 뒷세계처럼 어디를 가나 존재하는 곳으로 향했다.
빈민가.
그의 걸음이 빈민가로 향했다. 로브 속 흘러나온 케일의 머리칼은 백발이었다.
***
똑똑똑.
다 무너져 가는 집의 문을 한 사람이 두드렸다.
음침한 빈민가에서도 햇볕 하나 들지 않는 구석. 빈민들마저 외면해 적막한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들은 가끔씩 들짐승과 비를 피하는 부랑자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그 사이로 다 무너져 가는 집이 있었다.
똑똑똑.
하지만 한참을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문을 두드리던 이는 한숨과 함께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허, 거참! 그냥 좀 가지!
문 안에서 누군가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뒤 낡은 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열린 문 사이로, 지친 얼굴이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살짝 멈칫했다가 입을 열었다.
“…누구쇼?”
문을 두들겼던 이는 남자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행동을 보던 남자는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신관님께서 여긴 왜 왔습니까?”
신관이라 불린 남자.
백발의 기다란 머리칼을 묶은 그는 무늬 없는 하얀 신관복을 입고 있었다.
케일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머릿속으로 라온이 말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동시에 케일이 말했다.
“종탑을 부수고 싶어서 왔습니다.”
남자, 연금술사의 표정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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