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6
235화.
“…갑자기.”
정말 갑자기였다.
“갑자기 광폭화가 안 돼요.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빨리 극복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정말로, 갑자기 왜-”
“라크야, 언제부터 안 됐냐?”
툭툭. 라크는 제 어깨를 두드리는 라온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이리저리 방황했다.
광폭화가 안 된다.
갑작스러운 퇴보.
그때가 언제인지 라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할 수 없었다. 말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못나 보였다.
“그게, 그, 언제부터 안 됐냐면요.”
라크의 입술 끝이 파랗게 질려갔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라크는 멈칫하며 맞은편을 쳐다봤다.
“언젠가는 되겠지.”
“…네?”
태연한 목소리에 걸맞은 태연한 표정이 라크의 눈동자에 담겼다. 라크는 케일의 얼굴에 드러난 명확한 감정을 느꼈고, 그 감정을 목소리로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너는 살부터 찌워야겠어. 놀고먹고 뒹굴어.”
“맞다! 라크야, 너 너무 말랐다!”
어디 놀러온 것처럼 한가한 태도였다. 그 모습에 라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곧 전쟁인데요.”
전쟁.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운 단어였다.
“그래서?”
하지만 돌아온 태도는 너무 태연했다.
라크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입을 열었다.
“저, 저 전쟁 소식 들었을 때부터 안 됐습니다!”
아차.
말을 내뱉어놓고 라크의 표정이 무너졌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광폭화가 안 되던 때.
로잘린에게 전쟁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브렉 왕국으로 불굴 연합이 마지막 전쟁을 치르러 온다.
그 사실을 들은 순간부터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광폭화가 안 됐다.
“그때부터, 전쟁 한다고 할 때부터 광폭화가 안 돼요. 다들 싸울 때 같이 싸워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하필 전쟁 앞에서, 그 소리 듣자마자 광폭화가 안 됩니다.”
라크는 그 사실에 절망했다.
스스로에게 절망했다.
누가 보아도 이 타이밍에 자신의 상태가 이러한 것은 뻔했으니까.
“…일부러 전쟁 피하려는 것처럼, 겁먹은 것처럼. 빨리 성장을 해야 도울 수 있는데.”
라크는 로잘린의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과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상태를 듣고 당황하는 일행을 떠올렸다.
그들의 걱정과 근심이 스스로를 더 밉게 만들었다.
“최한 형하고 로잘린 누나가 저와 형제들을 구해줬고.”
라크는 자신이 홀로 이만큼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겁 많고 소심한 그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공자님이 또 저희를 구하고 거둬주셨는데. 그거에 보답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이런 꼴이라는 게!”
그래서 라크는 스스로가 싫었다.
창피했다.
늑대왕은 무슨, 자신은 그저 나약한 존재였다.
라크는 지금도 덜덜 떨리는 제 두 손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수도 있지.”
케일은 포크를 내려놓고 라크를 응시했다.
“라크.”
어서 보라는 듯 저를 부르는 목소리. 소년은 그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케일은 제 실수를 인정하며 입을 열었다.
“네 곁엔 다른 사람들이 있다.”
라크는 이런 케일의 얼굴은 처음 보았다.
“늑대의 외로움을 알았으면 해서 너를 혼자 두었어. 그렇지만 그게 괴롭길 바란 건 아니다. 네가 무섭길 바란 것도 아냐.”
애한테 그런 걸 바랄 정도로 케일은 못돼 처먹지는 않았다.
가족이 있다는 걸 안 녀석이니, 외로워 봤자 얼마나 외롭겠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심한 녀석은 외로움보다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낀 것 같다.
상실.
원작에서 라크는 힐러 펜드릭의 죽음으로 대폭 각성하여 성장한다.
케일은 그런 미친 짓을 할 생각이 없다. 이제 15살 아닌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하겠나.
“네가 서두를 필요는 없어.”
“…구해주셨는데, 믿어주셨는데.”
우물거리며 말을 내뱉던 라크는 케일의 물음에 순간 말문이 막혀왔다.
“내가 약하면 버릴 건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버리다니.
라크는 당황해 눈이 커다래졌고, 그런 그에게 웃는 케일이 보였다.
“아니잖아?”
케일은 다시 포크를 집어 들었다.
“당연한 거 묻지 말고, 일단 먹어.”
당연한 것.
라크는 다시 말문이 막혀왔다.
“내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면 건강한 모습을 먼저 보이도록. 그리고 지켜봐라. 네 일행은, 가족들은 네 상상보다 강해.”
쓰윽. 라크는 라온이 제 앞으로 포크를 밀어주는 것이 보였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나도 너 하나 전쟁통에 챙길 정도는 돼.”
농담기를 담아 웃는 케일의 얼굴. 라크는 오늘 처음 보는 케일의 표정이 많았다. 라크는 천천히 포크를 다시 손에 쥐고 음식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오랜만에 음식의 맛이 느껴졌다.
죽음의 협곡에 있는 동안,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느껴지지 않았던 맛이 느껴졌다.
“…맛있다.”
“맛있으면 많이 먹어.”
라크는 제 앞으로 음식이 담긴 그릇을 밀어주는 케일을 보며 입안에 계속 음식을 욱여넣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게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꾹 음식으로 눌러 삼켰다.
라온이 그런 라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용의 검푸른 눈동자가 살짝 한쪽으로 향했다. 6살 용은 케일을 보며 입안의 고기를 우물우물 먹었다.
***
케일은 라크를 배불리 먹여 내보내곤, 한적해진 천막 안을 둘러보았다.
‘세 시간 정도 자면 되겠어.’
내일 이른 새벽부터 바삐 움직여야 했다.
그러려면 쪽잠이라도 자두어야 했다. 물론 지금도 보초를 서는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 자두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라온.”
“왜 그러나, 인간?”
“영상통신 연결 좀.”
케일은 라크를 떠올리며 그를 불러야겠다 마음먹었다.
‘솔직히 내 한 몸 챙기기도 힘든 판국에, 라크 그 큰 놈을 보호하기는 힘들잖아?’
케일은 제 순수한 무력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맥을 쓰자고 결심했다. 그는 라온이 영상 통신구를 꺼내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인간.”
“왜?”
케일은 영상통신 연결을 하다 말고 저를 쳐다보는 여섯 살 용과 시선을 마주했다. 라온은 케일을 보며 물었다.
“나는 1차 성장 못 했다. 그래도 괜찮나?”
저번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1차 성장 못 해서 안 위대하다며 땅굴을 파던 라온이 떠올랐다. 케일은 갑자기 이 얘기를 왜 꺼내나 싶었다.
라크 광폭화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답을 바라는 용의 눈빛에 입을 열었다.
“저번에 답했던 것 같은데. 당연한 걸 묻지 마.”
“…약해도 괜찮나?”
뭔 소릴 하는 거야.
케일은 약하기는커녕 강해서 무서운 용이 하는 말에 기가 차면서도 툭 던지듯 답했다.
“동굴에서 만난 너는 약했던 것 같은데.”
동그란 영상 통신구를 매만지던 작은 앞발이 멈칫했다.
동굴.
케일의 무심한 목소리에 라온은 케일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마나 구속구에 결박되어 있던 나약한 자신.
그때 자신은 약했다. 어디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서, 동굴 안 어둠 속에서 늘 아무것도 못 듣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야 했다.
그리고 구해졌다.
강하지 않았는데, 구해줬다.
라온은 제 머리를 대충 쓰다듬는 투박한 손길이 느껴졌다. 케일의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여섯 살이면 아직 애지’ 하는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라온, 내가 너보다 약해도 삼십 년은 더, 아니지, 최소 십오 년은 더 살았어. 그렇지만 너보다 약하지. 네 앞발보다 못해. 그게 문젠가?”
케일은 말실수할 뻔한 것을 황급히 수정해 말하며 라온을 쳐다봤다.
“하나도 문제 아니다.”
어린 용의 단호한 대답에 케일은 그거면 된 것 아니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은 그 모습에 다시 영상 통신구 연결을 시도하며 케일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 나를 왜 구했나? 그냥 궁금하다!”
라온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흘러가듯 대답하는 케일이 보였다.
“왜 구하긴, 그냥 구한 거지.”
“왜 나랑 같이 다니나?”
케일은 오늘따라 물음이 많은 라온의 모습에 대충 솔직하게 답했다.
“이유가 필요해?”
“이유가 필요 없나?”
왜 구하고 왜 나랑 다니는지.
그 이유가 정말로 필요 없나?
라온은 그동안 묻지 않았지만 정말로 궁금했다. 세상에 이유 없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인과 관계가 있었고 그 인과로 인해 사건이 발생했다.
자신과 케일이 함께 다니는 것도 분명 무슨 연유가 있다.
용은 그 연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 그에게 최소 십오 년 더 많이 살았다는 인간이 답해주었다.
“네 집이 우리 집이야. 그거면 된 거 아닌가?”
네 집이 우리 집.
라온은 그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왠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입가에 맴도는 말이었다. 라온은 한참 동안 그 말을 입안에서 굴리다가 삼켰다.
그러자, 속이 꽉 찼다.
여섯 살 용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맞다! 인간, 그거면 된다!”
케일은 뭐가 된 건지 다시 살아나서 날개를 파닥이는 라온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영상통신.”
“아, 맞다! 위대한 내가 바로 한다!”
곧 영상통신이 연결되었다. 케일은 뭐가 좋은지 제 무릎 위에 얼굴을 올려두고 히죽히죽 웃는 라온을 내버려 두고 통신을 모두 끝마쳤다.
그리고 바로 침대로 직행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다시 제대로 못 잔다.
세 시간.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소중한 잠을 위해 케일은 망설임 없이 침대에 드러누웠다. 바로 튀어나갈 수 있게 제복을 입고서 드러누운 케일은 라온이 천막 안 불을 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라온은 곧 케일 옆 침대 위에 자리했다. 하지만 케일은 신경 쓰지 않고 눈을 감았다.
라크와 함께 배불리 먹었더니, 잠이 아주 솔솔 잘 찾아왔다.
“인간, 인간.”
케일은 잠들려는 순간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질문이 많을 여섯 살이란 말인가. 질문의 무서움이 케일을 덮쳐왔다. 그리고 라온은 여지없이 질문을 던졌다.
“인간, 과거로 돌아가도 나 다시 구하나?”
오늘 얘가 왜 이럴까.
“당연한 걸 묻지 말라니까.”
“인간, 그때처럼 다시 약해져서 구해야 하면 구하나?”
케일은 잠이 오는 몸을 뒤척이며 대충 라온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는 점점 잠이라는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구해야지.”
그 말을 끝으로 케일은 잠이 들었다. 라온은 케일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그의 옆구리로 파고들어 몸을 둥글게 말고 눈을 감았다.
약해도 구한다.
라온은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덕분에 잠이 잘 왔다.
곧 어른과 어린 용의 얕은 숨소리가 천막 안에 울려 퍼졌다.
***
그리고 다음 날.
삐이이- 삐이-
케일은 귓가를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몸을 꿈틀거렸다. 눈을 떠야 하는데 아직 더 자고 싶어 잘 눈이 떠지지 않았다.
“…으…….”
케일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애써 눈을 떴다. 그러자 어두운 천막 안 천장이 보였다.
삐이이이- 삐이-
알람 소리. 케일이 있는 천막을 비롯한 인근 천막 사람들을 깨우는 소리였다. 케일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이구.”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케일은 손을 들어 눈가를 쓸어내리려 했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음?”
이상하다.
이 새벽이 너무 조용했다.
분명 시끄러워야 하는데. 누가 제 배를 꾹꾹 눌러대야 하는데.
조용하다.
대신 케일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쌔액쌔액.
누군가의 숨소리.
하지만 미약하다고 하기에는 꽤 거친 숨소리였다.
케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삐이이- 삐이이-
천막 주위에 울려 퍼지는 알람 소리 사이. 케일은 천천히 어둠에 적응한 눈으로 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그의 바로 옆.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는 존재.
검은 용의 웅크린 몸이 보였다.
케일은 천천히 라온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쌔액쌔액.
이런 숨소리를 몇 번 들어보았다.
라온의 이마에 케일의 손바닥이 닿았다.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뜨겁다.
너무 뜨겁다.
몸이 불덩이였다.
힘없이 축 처진 검은 날개가 보였다.
열에 가득 차 정신을 잃은 듯 눈을 감은 얼굴이 보였다.
곧 전쟁이 펼쳐질 이른 새벽. 라온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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