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6
255화.
촤아아아-
케일의 몸이 아래로, 아래로 계속해서 추락했다.
호수 안은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케일의 입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만이 물길을 따라 흘러나오며 붉은 흔적을 남겼다.
쿵. 쿵. 쿵.
케일은 몸이 떨렸다.
호수 안이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심장 소리처럼 일정한 박자로 진동하는 호수 안.
그 파동을 따라 흔들리는 케일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노예로 태어났다.
호수 전체에서 울려오는 목소리.
심판하는 물.
아니,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오직 발목에 채워진 족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이 나를 찾아왔다.
최초의 기억은 발목에 채워진 족쇄였다.
자신의 뿌리는 노예라는 말을 수천 번 들으며 살아온 그녀에게 신이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하며 노예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세상을 위해 쓸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신은 첫 번째 족쇄를 부숴주었다.
-대신 새로운 족쇄를 채웠지. 그 족쇄의 이름은 ‘심판하는 물’.
그러나 신이 만든 두 번째 족쇄가 그녀의 심장에 박혔다.
-사람들은 신의 관심을 받는 나를 추앙했으며 내가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나를 이용하려는 자들이 다시 나에게 족쇄를 채우려 했다.
세 번째 족쇄가 채워지려던 순간.
-나는 도망쳤다.
유일하게 그녀의 인생에서 즐거웠던 나날들.
도망치느라 숨 가빴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순간들.
-유일하게 나를 도와주는 이들을 만나, 동대륙으로 도망쳤다.
홀로 도망쳤다.
자신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해준 이들은 자신과 달리 스스로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 서대륙에 남았다.
그들은 할 일이 있다고 했다.
하나같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며 그 땅에 남아 싸웠다.
그렇게 그녀는 도망쳤다.
자유로워졌다.
쿵. 쿵. 쿵.
호수 안의 진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케일의 몸이 급류에 휩쓸린 듯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와 같은 호수 속.
촤아아- 촤아아-
무언가가 안개를 가로지르며 케일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촤르륵-
사슬이었다.
물로 만든 반투명한 사슬들이 호수 아래에서부터 솟아오르며 케일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자유롭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자유로워졌지만 자유롭게 사는 법을 몰랐다.
호수 안의 진동이 더욱더 격렬해져 갔다. 사슬들은 그 진동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케일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촤아아아-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사슬들은 이리저리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케일의 팔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촤르륵, 촤르르륵.
사슬들은 케일의 사지를 묶어 그를 아래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다시는 호수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의 몸을 호수 밑바닥으로 잡아끌고 갔다.
그 순간, 호수가 아주 크게 진동했다.
쿠웅-
케일은 숨을 토해냈다.
“크윽!”
사슬들이 파르르르 떨렸다. 호수는 더욱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케일의 몸이 흔들렸고, 굳건하던 사슬들도 마침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더 격렬해진 파동.
결국 사슬들이 급류에 휩쓸렸을 때.
-도망가라.
여인의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을 채웠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동굴 깊은 곳에 들어가듯 멀어졌다.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 사슬들을 지배할 수 없다.
그 순간이었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가 지금 물속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의 목덜미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안개와 같은 호수 속에서는 볼 수 없는 찬란한 푸른빛.
물속에서 케일을 누구보다도 자유롭도록 만들어줄 존재.
지배하는 물.
케일은 소량만 남아 있던 그 힘의 일부를 다시 사용했다.
그의 몸을 은은한 푸른빛이 감싸기 시작했다.
소량이어도 그 본질은 지배.
파직, 파지직, 파직.
그의 사지를 묶은 사슬들이 균열을 일으키며 깨져갔다. 케일은 가볍게 몸을 움직여 사슬들을 털어내었다.
-…지배하는 힘인가?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케일은 간단하게 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그의 눈동자는 호수 안 안개처럼 뿌옇지 않았다.
목표를 노리는 눈동자는 선명했다.
‘도망은 무슨.’
케일은 다 이길 싸움에서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의 몸이 호수 밑바닥을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슬에 의해, 타의에 의해 가라앉는 것이 아니었다.
케일의 목표가 바로 그곳이었다.
그의 몸이 점점 더 호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이를 호수 밖 일행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비크로스는 이 바늘과 같은 공간 안에서 무엇도 감지할 수 없었다.
다만, 움직임을 멈춘 수창과 갑자기 호수 안으로 돌아가는 사슬들이 보였다. 사슬들은 마치 케일을 찾으려는 듯 움직이는 것 같았다.
촤르르르-
기분 나쁜 소리들과 함께 사슬들이 움직였다. 비크로스의 발도 움찔거리며 호수를 향해 움직일 듯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호수로 뛰어들던 케일의 얼굴을 떠올렸다.
케일은 웃으며 호수로 뛰어들었다. 걱정 말라는 듯 거침없이 호수 안으로 빠지는 그의 모습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비크로스가 아는 케일은 가능성 없는 일에 뛰어들지 않으며 무엇이든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호수로 뛰어들었다면 이유가 있을 터.
‘기다려야겠군.’
일단은 기다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크로스는 에르하벤의 표정을 본 순간, 판단을 바꿔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에르하벤 님?”
에르하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호수만을 응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수가 있다는 듯 호수로 뛰어든 케일 헤니투스.
평소의 그를 안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도 크게 걱정이 없어야 맞았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지 않아.’
호수로 케일이 사라진 순간부터 케일 헤니투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자연으로 가득한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절된 것처럼, 순식간에 기운이 사라졌다.
에르하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린 동안, 에르하벤보다 더 빨리 이를 민감하게 알아차린 존재가 있었다.
두근. 두근.
검은 용의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케일의 기운에 누구보다도 민감하며 케일의 존재를 항시 느끼고 있던 어린 용은 그의 기운이 사라졌음을 눈치챘다.
라온은 여러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대강 그림은 그려졌다. 영리한 용은 케일이 호수에 뛰어들었거나 혹은 호수의 무언가로 인해 케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고 유추했다.
그렇지만, 케일의 부재가 너무나도 명확하게 느껴졌다.
케일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두근. 두근.
에르하벤도 옆에 있고 비크로스도 옆에 있는데. 그들이 옆에 있으니 케일에게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인데.
그걸 분명 알고 있는데.
라온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꼬맹아, 케일은 걱정하지 마라.”
꿈속 밖에서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하지만 라온 미르는 그런 말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1분, 2분.
시간이 계속 흐르는데, 인간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있는 일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케일의 부재.
라온 미르는 고개를 들었다.
꿈속 시련의 장소.
아직도 거대한 용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온은 저 용을 물리쳐야 자신이 이 꿈을 깨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벗어나야 한다.
이 시련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강한 존재와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발목이 잡힌 채로 날갯짓을 하던 어린 용은 제 몸의 상처도 무시한 채 강대한 존재를 무너뜨릴 방법에 대해 고심했다.
검은 용은 과거에도 강한 적, 또 다른 용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검은 용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짱돌 저택에서 케일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1차 성장을 못해서 풀이 죽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을 때, 그때 또 다른 용을 만나 싸우게 되면 어쩌나 고민했을 때.
‘…다른 싸가지 없는 용과 만나면 어쩌나?’
고민하는 자신에게 케일은 말했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나 똑똑하다……! 아니다. 나는 성장도 못 하는-’
그때 케일은 아주 단순한 답을 내려주었다.
‘도망가면 되지.’
‘…뭐?’
‘싸가지 없는 용 만나면 도망가면 돼.’
도망.
더 강한 상대를 만나면 도망가라고, 망설임 없이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유도 바로 덧붙여주었다.
‘살아남는 게 위대한 거야.’
라온. 검은 용은 고개를 들어 다시 거대한 용을 쳐다봤다.
이 시련을 이기려면 저 검은 용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넌 동굴에서부터 살아남아 왔잖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케일의, 우리 인간의 말이 라온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살아남는 것. 그게 강한 거다.’
그제야 라온은 제대로 보였다.
자신의 위에서 날고 있는 거대한 용 대신, 그 용보다 더 광활한 하늘이 보였다.
거대한 용조차 가득 채울 수 없는 넓은 하늘.
30m에 달하는 용의 어깨 너머 더 높은 곳에 자리한 하늘.
저기다.
용의 본능이 아닌, 지금껏 겪어온 시간의 결과가 라온에게 말해주었다. 케일과 함께하며 무수히 쌓아온 경험들이 라온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었다.
벗어나는 방법은 꼭 싸워 이기는 것만이 아니다.
이 판을 어그러뜨리는 것.
이 시련의 장소를 아예 벗어나는 것.
라온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누가 보았다면 케일을 닮았다고 할 그 미소였다.
어린 용은 다시 날갯짓을 시작했다.
용의 성장은 자신과의 싸움이라 전해졌다.
그러나 라온은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과 싸울 필요가 없다.
자신과 싸우게 만든 이 싸움터가 문제다.
목표가 바뀌니 길이 여러 개가 생겼다.
저 강대한 용으로 향하는 길은 하나지만.
하늘로, 저 높은 하늘로 향하는 길은 무수했다.
내가 선택해 가는 길이 내 길이었다.
어린 검은 용의 입꼬리가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갔다.
홀로 살아온 용이라면 이런 걸 말해줄 존재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늘 날을 세우고 홀로 있으려고만 하며 난폭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용이니까.
하지만 라온은 여러 삶을 배웠다.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검은 용은 가장 제 마음에 드는 방법을 드디어 찾았다.
도망치자.
그건 비겁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모두 사는 거니까.
라온 미르.
검은 용은 갑자기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내 길이 보인다.
저 검은 용이 일부만 차지한 하늘.
저 하늘 너머.
그곳으로 가면 된다.
라온은 날아올랐다.
그리고 발목을 잡는 존재들을 쳐냈다.
“이건 가짜야.”
저 용도, 이 발목은 잡는 존재들도 가짜다.
이 싸움터는 가짜다.
진짜는 따로 있다.
현실.
내가 배워온 것들로 걸어갈 길. 그 길이 현실이다.
그 길의 끝에 서 있을 인연들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구할 거다.
라온은 날아올랐다.
우리 약한 인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서둘러야 했다.
성장 따위. 자신은 이미 강했다.
아니면, 우리 인간 말대로.
‘도망가고 난 뒤에 다시 뒤통수 후려치면 되는 거야. 결국 살아남은 뒤에 용이든 뭐든 상대 뒤통수 거하게 때리고. 그러면 이기는 거지.’
그러면 된다.
라온은 거대한 용 너머 하늘, 그 하늘 너머의 현실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있는 힘껏. 모든 힘을 쏟아부어 날아가는 것은 힘겨웠으나, 라온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갯짓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꿈속에서 마나를 쓸 수 없던 라온의 몸에 서서히 검은 마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시련이 막아둔 힘을 라온은 스스로 되찾았다.
그러나 라온 미르는 이를 모른 채 제 길만을 보며 위로, 끊임없이 위로 날아올랐다.
***
그리고 또 다른 곳.
끊임없이 아래로 향하던 사람은 제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케일은 호수 가장 밑바닥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촤아아- 촤아아-
안개 같은 물길을 헤치며 사슬들이 사방에서 그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지배하는 물이 희미하게 힘을 뿜어내도 사슬들은 멈추지 않고 덤벼들었다.
케일의 사지를 묶어 가둬야만 한다는 듯.
죄인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듯.
케일만을 노려왔다.
-도망가라!
저번보다 조금 더 강렬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지배력이 약해진다.
그녀의 말대로 케일의 지배하는 물 힘은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그러니 도망가라!
다시 호수가 진동하며 사슬의 방향을 흩트렸다.
하지만 케일은 도망가지 않았다.
‘뭘 자꾸 도망가래.’
케일은 피식 웃으며 발을 내디뎠다.
물로 가득한 공간.
안개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제대로 안 보이고, 물결에 몸이 흔들리며 사방에서 자신을 노리는 사슬들이 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결국 가장 아래 밑바닥에 닿는 것은 땅이었다.
케일은 지금도 속이 울렁거렸다.
내부가 뒤집혀 보니, 이건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호수를 본 순간 결정했다.
‘내부부터 뒤집자.’
케일의 발이 호수 밑바닥, 땅을 굴렀다.
쿠웅-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울림이 호수 내부를 진동했다.
단 한 번.
케일이 무서운 짱돌의 힘을 쓸 수 있는 단 한 번.
케일은 그 한 번을 지금 사용했다.
우우우우-
호수 밑바닥.
거대한 석창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케일은 지는 싸움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이길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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