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8
267화.
그러나 헛웃음과 별개로, 케일은 곧 찝찝한 얼굴로 왕관을 용 혼혈의 몸에서 떼어냈다.
끄륵, 끄륵.
왕관은 뭔가 배부른 듯한 모습이었다.
하얀 왕관은 더욱더 성스러운 빛을 뿜어냈고, 동시에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물론, 그래 봤자였다.
쨍그랑!
왕관이 던져졌다.
어디 짱돌 던지듯, 왕관은 케일의 손을 벗어나 연무장 바닥으로 내려쳐지며 나뒹굴었다.
갑작스러운 케일의 행동에 시선이 모였고, 그 시선을 받은 케일은 태연히 던진 왕관을 대충 주워 들고서 답했다.
“그냥, 짜증 나서요.”
케일은 스스로의 대답을 되새겼다.
‘역시 나는 망나니의 재능을 지녔어.’
마음에 안 들면 손에 든 걸 집어 던지는 자세는 아주 망나니다웠다.
“…박복한 놈이, 후우.”
고룡은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왕관을 집어 던지는 케일의 행동에 그의 복잡한 속내가 짐작되었다.
‘인간은 참으로 감정이 다양하고 복잡하지.’
박복하고 얍삽하면서도 결국에는 착한 놈의 속이 말이 아닐 것이란 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하지만 케일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파세톤, 아치.”
그는 연무장 밖에 있을 고래족을 불렀다. 그러자 문틈 새로 슬그머니 범고래 아치가 고개를 내밀었다.
“왜, 왜요?”
케일은 여전히 껄렁껄렁한 말투에 아치를 보던 시선을 돌려 용 혼혈을 쳐다봤다. 아치는 저한테서 시선을 돌리는 케일을 보며 침을 삼켰다.
아치는 위티라의 동생이자 혼혈 혹등고래인 파세톤을 제 뒤에 숨겨놨다.
“…나도 좀 보고 싶습니다만.”
쓰읍!
아치는 뒤에서 저도 연무장 안을 보고 싶다고 어필하는 파세톤에게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시 케일을 쳐다봤다.
‘…역시 케일 공자도… 이상해.’
방금 전 연무장 밖으로 흘러나왔던 기세.
아치는 등 뒤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파세톤도 그 기세를 느끼고 연무장 안 상황을 보고 싶어 했지만, 아치의 눈에는 파세톤이 약하기에 가능한 대담한 행동으로 보였다.
고래족 왕 시켈러를 넘어서는 기세였다. 그런 아우라를 케일이 풍길 줄이야.
역시 괜히 용 둘과 친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아치는 더 기가 찼다.
‘이런 인간을 약하니까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다니!’
케일의 일행을 떠올리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특히 궁 부수기 3인방은 케일을 지켜야 한다면서 얼마나 난리인지.
‘…역시 내가 그나마 세상을 알고 철이 들었어.’
아치는 어쩌다가 바다의 망나니가 이리 벌써 어른이 다 되었나 싶어 뿌듯함이 일었다.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를 칭찬하던 아치는 케일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너 뭐 하냐?”
“크흠, 아닙니다.”
아치는 자세를 바로 하며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아치에게 용 혼혈을 가리켰다.
“음.”
아치는 용 혼혈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파리한 안색의 평범한 인간이 보였다. 딱 봐도 별다른 힘이 느껴지지 않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성인 정도의 힘만 느껴졌다.
‘…용의 흔적이 사라진 것은 아니군.’
하지만 용의 흔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예전 전투했던 모습 그대로였던지라, 여기저기 검으로 찢어진 로브의 벌어진 틈 사이로 상체의 왼쪽 윗부분이 보였다.
심장이 있어야 할 장소.
그곳에는 아직 용의 비늘이 남아 있었다.
용의 힘은 사라졌지만 인간의 심장에 새겨진 용의 흔적은, 그의 속성은 남아 있었다.
용 혼혈을 보는 아치에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빈방에 옮겨놔. 묶어놓고.”
케일은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로브와 피와 전투의 흔적으로 여전히 엉망인 용 혼혈의 피부를 쳐다봤다.
인간의 연약한 피부였다.
그는 연무장 밖으로 향하며 아치를 지나쳤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남겼다.
“일단 좀 사람답게 만들어놔.”
그 말을 들은 고룡 에르하벤은 한숨과도 같은 웃음을 흘렸다. 저 용 혼혈은 이제 정말로 인간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말이었다.
사람답게.
같은 말인데, 인간답게라는 표현보다 이상하게 조금 더 정겹게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에르하벤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이제 저 용 혼혈이 먹었던 용들의 흔적은 심장에 새겨진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남은 건,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먹힌 동대륙 고룡 올리엔의 흔적뿐이었다.
그때, 아치의 목소리가 어딘가 착 가라앉은 연무장 안으로 울려 퍼졌다.
“…어, 음, 공자님, 전 고래족 수인이라 수인답게는 알아도 사람답게 만드는 건 모르는데요.”
하아.
아치는 케일의 한숨 소리를 듣고는 반사적으로 답했다.
“아! 기억났습니다! 이제 압니다! 사람답게, 사람 몰골로 해놓죠!”
아치는 왜 제 입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케일은 그런 아치의 혼란쯤이야 관심도 없었다.
케일은 잠들어 있는 용 혼혈을 힐끗 쳐다보고는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그는 에르하벤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에르하벤은 짱돌 저택의 세 명을 데리러 가기 전, 케일에게만 따로 용 혼혈과 땅굴 감옥에서 나눴던 내용을 말해주었다.
‘하얀 별. ‘암’의 수장은 ‘암’ 외에도 단체를 하나 더 두고 있다더군. 그쪽이 본체라고 해.’
‘암’은 하위 단체라고 한다.
그렇다면 상위 단체는 무엇일까?
본체는 어디일까?
침실로 걸어가는 케일의 표정이 점점 더 차가워져 갔다.
정돈된 서늘함이 그의 주위를 감쌌다.
김록수일 적, 일을 하나 계획할 때의 그의 표정과 같았다.
“제국을 뒤집어야 할 이유가 너무 많네.”
그는 에르하벤이 용 혼혈에게서 받아온 정보를 떠올렸다.
‘그 단체는 연금술을 쓴다.’
동대륙은 ‘암’이라면, 서대륙에선 ‘연금술’을 이용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각 대륙에 뿌리내려 전부를 집어삼키려는 ‘하얀 별’의 욕망이 느껴졌다.
‘연금술 탑주가 하나 남은 붉은 별이다.’
연금술 부탑주는 만나봤지만 탑주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아는 정보도 없었다. 외양, 성격, 나이. 무엇 하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케일.’
케일의 표정이 점점 사라져 갔다.
‘하얀 별의 머리칼 색이 케일 너와 똑같다고 하더구나.’
로잘린과 같은 태양을 닮은 화려한 적발이 아닌, 케일처럼 노을과 피를 닮은 적발.
케일은 걸음을 멈추고 복도 창문을 쳐다봤다. 어느새 어깨 조금 넘게 자란 제 머리칼이 보였다.
좋은 정보였다.
케일은 저와 머리칼도 분위기도 닮았다는 적을 떠올리며 미소를 그렸다. 정체 모를 적의 확실한 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가면 아래 웃는 입꼬리가, 모습이 닮았다고 하더군.’
케일의 미소는 점점 더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보를 바탕으로, 창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정상에 있을 적의 모습을 그려 나갔다.
***
하지만 그 미소는 곧 사라졌다.
-오랜만이다! 친구야!
이야.
정말 다시 들어도 소름 돋고 기가 차는 단어였다.
영상 통신구 위 화면 속 툰카를 쳐다보는 케일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쓴 약을 먹은 사람의 얼굴 같았다.
“내가 언제부터 네 친구였지? 난 나쁜 놈이고 믿을 만한 놈이 아니라고 했을 텐데?”
-으하하하하하!
아이고, 귀야.
툰카의 웃음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케일은 영상 통신구 화면 범위 밖, 침대 위에서 귀를 막고 있는 평균 9세들을 쳐다보다가 검집을 매만지는 최한의 모습에 멈칫하며 툰카를 쳐다봤다.
“조용히 해.”
너 그러다 최한한테 뚜드려 맞아.
-크흐흐.
툰카는 웃음을 억누르며 툭 던지듯 말했다.
-알베르 왕세자가 보낸 정보를 봤다. 제국이 다시 우리를 노린다고?
“알베르 왕세자 저하다.”
-그래, 저하. 그 저하가 보낸 정보 말이다.
“사실이야.”
케일의 담백한 대답에 툰카는 아무 말 없이 케일을 응시했다. 케일도 마찬가지로 툰카를 쳐다봤다.
못 본 새 더 야성적이고 난폭한 몰골로 변한 툰카였다.
특히 체격이 더 장대해졌다. 이는 위퍼 왕국이 그동안 놀면서 타국들의 전쟁을 그저 구경하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나는 나다울 순간만 기다렸다.
툰카의 말에 케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점점 사라졌다.
-제국이고 나발이고, 오는 놈들은 다 찢어 죽일 거다.
위퍼 왕국을 뒤엎고 제국을 노리던 미친놈.
그 미친놈이 조금 순해졌다 싶었더니 아니었다.
-크흐흐, 강한 놈들 냄새가 대륙 전역에서 흘러넘치고 있어. 흐흐, 나는 너무 오래 기다렸다.
…웃는 얼굴이 정상이 아닌데.
미친 것 같지는 않고, 날뛰어야 할 놈이 잠잠히 지내더니 독기만 바짝 올랐다.
케일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할 말만 했다. 이쪽이 속 편했다.
“그래서 말인데, 툰카.”
싸우고 싶은 욕망이 넘치는 웃음을 흘리던 툰카의 시선이 케일을 응시한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툰카의 귓가에 박혔다.
“너네 불놀이 잘 하냐?”
툰카는 멈칫했다.
마이플성을 감싸던 불기둥. 그것 때문에 불이라면 질색하던 그였다.
-…불놀이?
그래, 불놀이. 제국 놈들 앞에서 미친놈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단순 무식한 놈이 미친 짓을 하면 아주 무서울 거다.
케일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 불바다 정도?”
-…부, 불바다?
“때려 부수는 건?”
-그건 내 특기다.
반사적으로 답하던 툰카는 케일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보며 멈칫했다. 그러나 곧 덩달아 히죽 웃었다. 저놈이 저렇게 웃을 때는 뭔가 크게 터졌으니까.
근질근질하던 폭군의 눈빛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케일은 기다리던 말을 해주었다.
“곧 가지.”
-기다리마! 역시 내가 힘들 때 나서서 도와주는 건 너뿐이구나! 역시 나의 친구!
친구 아니래도.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원래는 제일 먼저 툰카 쪽부터 가려고 했는데. 계획 수정이다.
천천히 가야겠다.
-고맙다! 친구야!
…툰카가 아무래도 철이 들어가는 것 같다.
-정말 고맙다.
뚝.
케일은 그냥 영상 통신구를 끊어버렸다. 툰카와의 대화에서 이전과 다른 의미로 심력이 소모되었다.
폭군은 여전히 폭군인데, 묘하게 사람다운 폭군이 되어갔다.
그게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었다.
“케일 님.”
영상 통신구를 끊고서 툰카의 ‘고맙다’ 여운을 지워내 버리는 케일에게 최한이 다가왔다.
다른 이들이 짱돌 저택 신관 무리들과 회포를 풀며 즐기는 것과 달리, 최한은 연무장을 나온 그를 따라 침실까지 왔다.
케일은 최한의 비장한 표정에 툭 던지듯 물었다. 이놈은 또 왜 이럴까?
“왜?”
“이번 일에 저도 함께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케일은 그 물음이 황당했다.
“당연한 걸 왜 물어?”
최한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물었다.
“위퍼 왕국부터 가실 예정입니까?”
“아니.”
냐아아옹.
냐아옹!
온과 홍이 최한과 케일 곁으로 다가왔다. 죽음의 협곡에서 돌아올 때, 라온에게 부탁해 온과 홍을 동대륙에서 데려온 케일이었다. 온, 홍의 뒤를 이어 다가온 라온이 물었다.
“인간! 우리도 가나?”
“어.”
온과 홍이 저들도 간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이내 케일의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케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런 그에게 평균 9세는 물었다.
“어디로 가나, 인간?”
“어딘지 궁금한데!”
“위퍼 아니면 어딘지 알고 싶은데!”
최한도 여전히 굳은 얼굴로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태연히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제국의 제일 낮은 곳으로.”
찬란한 제국의 가장 낮은 곳.
귀족들은 가기를 꺼려하고 외면하는 곳.
빈민가.
“그곳으로 간다.”
케일은 제국의 가장 낮은 곳이지만, 언제라도 제국의 숨통까지 틀어쥘 수 있는 곳을 목적지로 정했다.
***
모고르 제국 수도의 밤.
화려한 마법 전등으로 마냥 어둡진 않은 중심가와 달리, 같은 수도임에도 어둡기만 한 곳.
빈민가의 어둠 사이에 자리한 낡은 집은 검은 커튼을 친 채 창밖의 달빛마저 거부했다.
하지만 그 낡은 집 안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어둠을 몰아냈다.
그 환한 빛의 중심.
텔레포트 마법진 위에 빛이 사라지고 몇 사람이 나타났다.
“오랜만이야.”
케일의 인사에 낡은 집에 있던 세명 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들에 케일은 곧 깨달았다는 듯 두 팔을 살짝 벌리며 미소를 그렸다.
“아, 이 모습이 처음이었던가?”
긴 머리칼의 백발에 벽안을 지닌 성스러운 모습의 신관 케일은 웃는 모습도 꽤 성스러워 보였다.
“전 한 번 봤습니다.”
“전 알죠, 공자님.”
빈민가에서 술만 마시며 좌절했던 연금술사, 그리고 플린 상단의 서자인 상인 빌로스가 차례로 답하며 케일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왔다.
그런 이들과 달리 한 사람은 낯설어하며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묘족 기사 렉스 경.
빈민가 출신이자, 어린 시절 연금술 종탑을 탈출하고 연금술 종탑의 파괴를 원하는 자.
부탑주 암살 시도를 했던 간 큰 무리의 수장이기도 했던 기사.
“렉스 경, 오랜만이야. 목소리를 들으니 알겠지?”
케일이 사뭇 부드럽게 말을 건네자 렉스 경은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네, 당연히 압니다. 공자님.”
렉스 경은 대답을 하면서도 신관복 차림의 케일과 그의 뒤에 서서 하얀 로브에 얼굴을 숨긴 자들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기사라서 안다.
저 하얀 로브로 모습을 숨긴 이들 대부분이 하나같이 강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가 침을 삼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냐아아옹.
냐아옹.
고양이 두 마리.
아직은 어린 고양이 두 마리가 렉스의 발치까지 다가왔다. 두 고양이의 눈동자가 렉스 경을 올려다봤다.
렉스는 그 눈동자들에 순간, 몸이 굳어져 왔다. 알 수 없는 이질감과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툭.
렉스는 제 어깨에 올라간 손을 쳐다봤다. 케일이었다.
“자, 내 일행에게 여기 제국에서 함께할 사람들을 알려줘야겠지? 빌로스는 다들 알 테고.”
케일은 함께 온 하얀 로브의 일행에게 연금술사와 렉스를 소개시키려하고 있었다.
“자, 먼저 렉스 경부터 소개하도록 하지.”
“…공자님, 제가 인사를 드릴까요?”
“아니, 됐어. 렉스 경 소개는 내가 해야 해.”
렉스는 케일의 대답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왜 자신이 해야 한다고 하지? 내 소개는 내가 해도 될 텐데?
그러나 그 의문은 곧 사라졌다.
케일의 담담한 목소리가 낡은 집 안에 울려 퍼젔다.
“렉스 경은 황제와 황태자를 누르고 그 자리에 올라갈 사람이다.”
뭐?
렉스가 놀라서 케일을 쳐다봤다.
낡은 집에 목소리가 사라졌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정적을 깬 이는 케일이었다.
“쉽게 말해서 혁명의 중심이 될 자다.”
“…예?”
뭐요? 혁명의 중심?
렉스가 멍하니 되물었다.
하지만 케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 그리고 묘족이다.”
케일은 말문이 막혀 있는 렉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제국을 개박살 낼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애긴데!”
“우리랑 같은 애긴데!”
케일은 멈칫하고 고개를 숙였다.
온과 홍이 히죽이며 렉스의 다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애기라고? 렉스가?’
케일은 어른인 렉스를 쳐다보며 동공이 흔들렸다.
이 다 큰 놈이 애기라고?
그때, 온과 홍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이 형아, 안개족인데? 안개족 냄새가 나는데?”
“우리처럼 도망친 것 같은데? 아닌가?”
안개족?
묘족 중에서도 암살과 독살에 능한 그 안개족?
온과 홍이 도망쳐 나온 그 부족?
렉스는 분명 버려져 있던 자로, 인간 부모가 데려와 키웠던 인물이었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온과 홍의 말에 그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첫 광폭화 못했으니까, 나이는 어른 형아지만, 애긴데!”
“맞다! 광폭화 못하면 묘족은 애기랬는데! 우리랑 같은데!”
…뭘 못했다고? 이십 대 중반 아니던가?
케일은 온과 홍을 보던 시선을 돌려 렉스 경을 쳐다봤다.
“…너 수인에 대해서 잘 아냐?”
렉스는 케일의 물음에 멈칫하다가 답했다.
“…잘 모르는데요.”
툭. 케일은 발을 두드리는 감각에 고개를 숙였다.
“이 형아가 황제가 되는 것 같은데?”
홍의 물음에 케일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적인데!”
“놀라운데!”
-오오! 역시 약한 인간은 막 내뱉는다!”
귀로 머릿속으로 평균 9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혁명의 시작과 다음 대 왕좌에 대한 말을 하는 자리였건만, 평균 9세들 때문에 분위기에 놀람도 위엄도 전혀 없었다.
케일은 묘한 분위기 속에서, 특히 하얀 로브 속에서 들썩이며 웃고 있는 소드 마스터 하나 쪽을 쳐다보다가 렉스 경을 바라봤다.
기사가 되었음에도 빈민가와 제 가족, 억울하게 죽어간 생명들의 진실을 알리고 복수하고자 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분명 렉스였다.
그는 그런 믿음직한 렉스에게 물었다. 렉스도 진지한 얼굴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렉스 경, 묘족 처음 보나?”
“네, 저 빼고 처음 봅니다.”
“광폭화는?”
“그게 뭐죠? 검술 기술입니까?”
케일은 말문이 막혔다.
뭔가, 뭔가 싸하다. 과로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의 눈동자에 첫 광폭화를 하지 못한 고양이 세 마리의 순진무구한 얼굴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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