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39
338화.
케일은 검은 벼락을 품은 흑운, 그 사이로 비명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검은 절망이 내뿜던 그 울음소리와 비슷했다. 물론 남들에게는 그저 ‘우우웅’ 정도의 진동으로만 들리겠지만.
“…후우-”
케일은 깊이 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들끓었다.
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힘들이 느껴졌다. 불과 빛이 몸 안에서 충돌하며 그의 모든 핏줄을 타고 손끝과 발끝, 어디든 케일의 신체 끝까지 힘을 뻗쳐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온다.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고개를 숙였다.
“쯧.”
하얀 별이 케일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내 혀를 차며 허공을 박찼다. 그에 그의 몸이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막아야 돼!”
에르하벤의 곁에서 그를 지키듯 서 있던 로잘린이 외쳤다. 그에 반응하듯이 최한과 메리가 각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한은 생각했다,
안 된다.
하얀 별이 케일에게 다가가게끔, 그리고 라온에게 가게끔 둬서는 안 된다.
최한, 그의 검날에서 빛나는 검은 오러가 난폭하게 존재감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최한은 하얀 별과 부딪쳤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와 한번 부딪치자 그대로 튕겨져 나갔었다.
‘…검에 능숙하다.’
검에 아주 능숙했다.
저 불의 검에 담긴 불과 공격적인 자연의 힘이 문제가 아니었다.
방금 전 에르하벤의 금빛 파도를 베어내는 그 검술. 횡으로 긋는 그 짧은 동작에서 최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연륜을 보았다.
-최한, 저자는 마법에도 능숙해.
로잘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고대의 힘과 마법은 양립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마법도, 검도, 고대의 힘도 모두 쓸 줄 안다고 한다.
‘…강하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꽈악.
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최한의 발이, 비행 마법을 머금은 몸이 조금씩 앞으로 튀어나갈 듯 팽팽하게 긴장감을 머금었다.
모두가 덤벼도 어쩔 수 없을 만큼의 강자였기 때문에, 최한은 그와 맞섰다.
마법사와 네크로맨서. 그들과는 다른, 검사가 싸우는 방식.
그리고 어쩌면 검사만의 강점.
그건 적을 베어낼 수 있는 무기를 들고 가장 최전방에 선다는 점이었다.
최한은 요즘 들어 부쩍 자신이 검을 무기로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설 수 있는 명분이 존재했으니까.
-가.
로잘린의 목소리가 들리자 최한은 하얀 별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이내 멈췄다.
“라온!”
고룡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최한은 검은 구름과 고룡을 번갈아 바라보며 갈팡질팡하다가 이내 에르하벤에게로 빠르게 다가오는 작은 용이 보였다.
“할배!”
라온은 케일이 걱정되었지만 에르하벤의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
라온은 저를 껴안으며 놓지 않겠다는 듯 깍지를 끼던 케일의 손을, 그리고 케일의 앞에 선 에르하벤의 흉터 가득한 등을 모두 보았다.
“괜찮나?”
라온의 동글동글한 눈에 에르하벤의 모습이 담겼다. 아까 전에 흘린 피가 입가 근처에 굳어 있었다.
에르하벤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백금의 막을 펼치기 위해서 두 손을 하늘로 펼치고 있었다.
“꼬맹이, 날 무시하나?”
백금의 막은 검은 구름 아래에 자리하며 수도를 감싸 안았다.
“무시하는 게 아니다! 금 용 할배, 나는 할배가 다치면 이 세상을 부숴-”
“시끄럽다, 꼬맹이.”
“나, 안 시끄럽-!”
라온은 제 말을 끊는 에르하벤에게 반박을 하려다가 고룡이 하는 행동에 입을 꾹 다물었다.
하늘을 지탱할 듯이 뻗어 있던 고룡의 두 손. 그곳에 백금의 실이 생겨났다.
그 실은 검은 구름에 대항하는 백금의 막과 닿아 있었다.
고룡은 그 실을 두 손에 쥐더니 이내 라온의 앞발을 잡았다.
“네가 해라.”
작고 통통한, 그리고 검은 라온의 앞발. 그 앞발에 고룡은 백금의 실을 연결해 주었다.
라온은 앞발에 닿은 백금의 실에서부터 에르하벤의 힘이 느껴졌다.
실은 서서히 라온의 앞발바닥에서 녹아내리더니 이내 라온을 백금의 빛으로 감쌌다.
“너라면 할 수 있다. 마법을 아주 잘하니까.”
그 말과 함께 에르하벤은 덤덤한 얼굴로 라온의 앞발을 손으로 잡고서 움직였다. 그리고 자신이 하늘을 받칠 듯이 펼쳤던 자세, 그 자세 그대로 라온의 앞발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라온은 저를 감싸는 백금의 빛을 보며 고룡에게 물었다.
“내가 이걸 왜 하나?”
내가 이걸 하면, 할배는 뭘 하나?
하늘을 향해 뻗은 라온의 앞발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에르하벤은 그 앞발을 한 번 꽈악 감쌌다가 풀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내가 한 말은 지킨다.”
에르하벤은 꼬맹이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으며 뒤돌아섰다.
“라온, 그게 용이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라온의 곁을 지켜라!”
로잘린, 최한, 메리, 그리고 다가온 하나까지. 에르하벤은 그들을 지나쳐 하늘로 솟구쳤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케일에게로 향하는 하얀 별의 방향과 일치했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로잘린은 순간 살을 에는 듯한 마나의 파동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 용.
작은 몸집의 용에게서 거대한 검은색의 마나 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로잘린은 에르하벤도, 케일도 아닌 오로지 백금의 막과 검은 구름만을 찡그린 얼굴로 응시하는 라온이 보였다.
라온의 앞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 사이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위대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로잘린은 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저 어린 목소리와 함께 눈에 가득 차는 광경이 그녀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백금빛의 실.
에르하벤이 이어준 그 빛에 은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라온이 실드를 펼칠 때, 무언가를 지키려고 할 때 나오는 빛깔이었다.
백금의 막에 조금씩 은빛이 감돌았다. 어린 용은, 라온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로잘린은 멍하니 있는 일행에게 말했다.
“라온 님의 곁을 지켜!”
그리고 지시했다.
“모든 원거리 공격 수단을 하얀 별에게 집중한다! 에르하벤 님을 보조한다!”
로잘린의 손에서 화염의 화살이 하얀 별에게로 쏘아졌다. 동시에 그녀는 라온의 오른편에 자리했다.
뒤를 이어 최한이 검을 세로로 휘둘러 오러를 하얀 별에게 쏘아 보내며, 라온의 왼편에 자리를 잡았다.
라온의 앞은 하나가, 뒤는 메리가 자리했다.
콰아앙! 콰앙!
화염 화살과 빛나는 검은 오러가 하얀 별에게 적중했다.
“…정말이지.”
물의 장막을 펼쳐 두 공격을 막아낸 하얀 별이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케일에게 닿지 못한 그가 신경질과 피곤에 가득 찬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지간히도 너를 지키고 싶나 보구나, 케일.”
백금의 막 밖에 위치한 케일은 저를 올려다보는 하얀 별에게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위.”
“…음? 위?”
의아한 얼굴로 위를 보며 되묻던 하얀 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그의 손에 들린 검이 휘둘러졌다.
콰아앙!
에르하벤과 하얀 별이 다시 한번 부딪쳤다. 그 광경을 본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을 삐쭉이며 말했다.
“위가 아니라 밑이지, 재수 없는 새끼야.”
동시에 에르하벤이 자신의 백금 창과 대치 중인 불의 검 너머, 하얀 별에게 말했다.
“힘이 부족하지?”
처음에 하얀 별은 고룡의 공격을 물의 장막으로 소리 없이 막았다. 그런 놈이 이제는 최한과 로잘린의 공격을 막으며 폭발음을 쏟아냈다.
그 의미는 간단했다.
하얀 별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하얀 별의 입가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론 에르하벤의 상태도 별로였다.
입가에 말라붙은 핏자국과 창백한 안색의 에르하벤. 그를 향해 하얀 별은 질렸다는 듯 말했다.
“…정말 끈덕지군. 용답지 않아.”
그러나 에르하벤은 고개를 들어 올려 케일과 시선을 마주쳤다.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에르하벤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음을 알아챘다. 더불어 백금의 막에 섞여드는 은빛과, 에르하벤의 뒤를 이어 막을 지탱하는 라온이 보였다.
케일의 입술 끝이 살짝 일그러졌을 때, 에르하벤이 웃으며 하는 말이 들려왔다.
“케일, 내가 장수하게 만들어야지?”
케일의 입가에 일그러질 듯한 미소가 걸렸다.
갑자기 전 팀장의 목소리가, 그 목소리가 김록수의 귓가에 맴돌았다.
‘…빌어먹을. 록수야. 김록수. 네가 내 몫까지 살아.’
‘알았냐?’
‘장수하라고, 이 새끼야. 네가 좋아하는 백수 하면서.’
그 목소리가 에르하벤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그 순간, 케일의 온몸을 돌던 불의 힘이 말했다.
-최대로 준비했다.
파괴하는 불.
그 힘이 가진 최대치.
케일은 이 힘을 사용하면 제 몸에 얼마나 무리가 갈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짱돌의 힘이 제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속성들이 모여 있어 균형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는 데다, 유리처럼 약하다지만 그릇도 커지지 않았던가?
케일은 눈을 감았다.
검은 구름과 마주한 그의 두 손에 적금빛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케일은 심장이 뛰는 소리와 함께 몸 안의 불을 모조리 꺼내었다.
적금빛은 케일의 손에서 뻗어 나와 가느다란 선이 되어 검은 구름과 백금의 막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 순간, 케일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에르하벤의 백금 창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케일은 눈을 뜨지 않았다. 하얀 별이 에르하벤에게 다가갔다.
“늙은 용 새끼가.”
창을 부순 하얀 별의 주먹이 에르하벤의 배로 향했다.
“정말로.”
그 주먹이 에르하벤의 배를 직격했다.
“커헉!”
“귀찮게 하네.”
에르하벤의 입에서 신음이 터지고, 하얀 별이 그런 그를 걷어차려는 순간.
“하, 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하얀 별의 주먹이 잡혔다.
이내 그의 다른 한 손마저 재빠르게 낚아채는 용의 손이 보였다.
“너는 내가 맡는다.”
고룡은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켰다.
백금빛을 머금은 손이 하얀 별의 손을 붙들어 맸다.
더 이상 케일에게 다가지 못하게, 에르하벤의 두 손이 하얀 별의 두 손을 잡아 옭아매었다.
“케일, 네 마음껏 해라.”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네 마음대로 해라.
고룡의 그 목소리가 들린 순간, 하얀 별이 눈가를 일그러뜨린 채 외쳤다.
“내리쳐라!”
내리쳐라!
그가 하는 말은 하늘을 향했고, 동시에 에르하벤은 한 번 더 신음을 터뜨렸다.
“크윽!”
하얀 별, 그에게서 거대한 힘이 흘러나왔다.
우우우우웅-
진동하던 검은 구름이 진동을 멈춘 순간.
고요한 시간이 잠시 흘렀을 때.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끼기기이이-
끔찍한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이 흔들렸다.
검은 구름이 땅을 뒤덮을 듯 요동쳤다. 공기도 흔들렸다.
“커헉!”
에르하벤이 하얀 별의 발에 차여 그 충격으로 하얀 별의 손을 놓치고는 뒤로 물러섰다. 지친 숨을 토해내는 그의 눈동자에 하늘이 보였다.
검은 구름.
거기서부터 검은 것이 튀어나왔다.
벼락이다.
검은 벼락이 수도를 뒤덮은 검은 구름 아래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셀 수 없이 검은 벼락이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에르하벤은 미소를 그렸다.
동시에 케일이 눈을 떴다.
그는 내리치는 검은 벼락을 보며 말했다.
“정화하라.”
그 말과 함께, 백금의 막과 검은 구름 사이에 퍼져 있던 가느다란 실.
가느다란 적금빛.
그곳에서부터 거대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길 사이로.
검은 벼락을 집어삼킬 듯이, 검은 구름을, 하늘마저 꿰뚫을 듯한 적금빛 벼락이 솟구쳤다.
마치 땅에서는 불이, 하늘에서는 검은 벼락이 서로를 향해 아귀를 벌리며 다투려는 것처럼 보였다.
끼이이이-
기괴한 울음소리의 검은 벼락과 적금빛 벼락이 부딪쳤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울음소리가 바뀌었다.
두 벼락이 뒤엉킨 순간. 검은 절망을 정화했을 때처럼, 기괴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울음소리로 변하며 검은색이 씻겨 내려갔다.
적금빛은 검은 벼락의 어둠을 잡아먹었다.
“크하, 하하하!”
그러나 하얀 별은 웃었다.
적금빛 벼락은 검은 벼락과의 싸움에서 서서히 빨간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검은 벼락의 어둠만을 먹을 뿐, 벼락 자체를 막진 못했다.
버나드의 어둠은 없어져도 하얀 별의 하늘은 여전했다.
그래서 하얀 별은 웃었다.
“하하하, 결국 내 고대의 힘은 못 이긴다니까.”
적금빛 벼락에 어둠이 씻긴 하얀 벼락이 백금의 막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커헉!”
하얀 별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에르하벤이 어느새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있었다. 거친 숨을 토해내는 고룡의 얼굴은 지쳐 있었다. 손도 떨리고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힘인 재해의 검을 강화시켜 탄생한 불의 검. 그 검과 계속 부딪친 탓이었다.
그러나 에르하벤은 어떻게든 힘을 짜내 쏟아내었다.
“넌, 나가.”
“뭐?”
마찬가지로 지친 하얀 별이 되묻는 순간, 에르하벤은 마나를 간신히 일으켜 그대로 하얀 별에게 쏟아부었다.
“아직까지도 공격할 생각을 하-!”
공격인 줄 알고 대비하던 하얀 별의 눈동자가 커졌다.
공격이 아니었다.
바람이었다.
빠른 바람이 그를 덮쳐 위로 솟구쳐 올렸다.
백금의 막 밖까지.
하얀 별은 밀려났고, 그 순간 에르하벤은 손을 뻗었다.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허억, 헉. 허억.”
에르하벤의 손이 떨어져 내리는 한 사람을 붙잡았다.
그 사람의 거친 숨이 들려왔다.
“헉, 허억.”
케일이 마치 숨 쉴 공기가 부족한 사람처럼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그의 온몸이 덜덜 떨렸다.
피는 토하지 않았지만, 곧 숨이 막혀 죽을 사람처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케일은 에르하벤에게 몸을 기대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이 흐릿했다.
-희생하지 말라니까.
머릿속에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한 시야 너머, 백금의 막 밖으로 쏟아지는 벼락들 사이에서 지친 얼굴로 웃고 있는 하얀 별이 보였다.
-검은색은 지웠어.
짠돌이가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는 했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파괴하는 불을 뚫고 내리는, 검은 절망을 씻겨낸 하얀 벼락들.
“아.”
땅 위에서 성자 잭은 두 손을 맞잡았다.
버나드의 어둠이 사라지고 온전히 하얀 별의 힘만 남은 벼락.
그 벼락에는 순수한 자연의 기운이 가득했다.
용맹하면서도 단호한 자연의 힘이 느껴졌다.
고고하면서 아름다운 힘.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힘.’
그 힘에 성자 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웃는 듯, 우는 듯 일그러진 얼굴로 잭이 입을 열었다.
“…케일 공자.”
그리고 에르하벤 님, 라온 님.
그들을 부르는 잭의 표정에는 기쁨과 슬픔이 모두 서려 있었다.
고룡 에르하벤은 다시 마법을 펼쳤다. 마지막 한 톨의 마나라도 쥐어짜냈다.
“파괴되게 둘 순 없지.”
백금의 막에 다시 백금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위대하다!”
거대한 검은 마나에 둘러싸인 라온의 두 앞발에서 환한 은빛이 쏟아져 나왔다.
케일도 손을 펼쳤다.
-결국 할 건가?
짱돌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일은 제국 수도를, 여기 사는 사람들의 터전을 파괴하려는 듯 내리치는 하얀 벼락들을 보며 답했다.
“자꾸 묻지 마.”
짱돌이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죽진 않겠지만, 괴로울 거다.
케일은 실소를 흘렸다.
누군가의 터전이, 누군가의 삶이.
파괴되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사라지고.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 때로는 더 괴로운 법이었다.
에르하벤과 라온이 나섰다고 하더라도, 저 하얀 별의 힘을 막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아직 기절 안 했어.”
아직 기절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직 해볼 만하다는 소리다.
하늘로 뻗어진 케일의 손. 그 손에서 은빛이 뻗어 나왔다.
백금의 막.
그 위에는 은빛 실드가.
그리고 은빛 실드 위에는 은빛의 방패가 양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자리했다.
그 위로 하얀 벼락이 쏟아져 내렸다.
지키려는 빛들과 파괴하려는 빛이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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