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27
426화.
하지만 케일은 차마 살벌한 분위기의 하나를 노려보지도 못했다.
‘비루하긴 하지만, 면전에서 비루하다니!’
여기 있는 사람들이 워낙 건강한 체격이라 그렇지, 케일도 안색과 근육 빼면 타고난 골격 자체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팔다리도 길쭉길쭉하고 어깨도 넓은 게, 만약 제대로 훈련했다면 그럭저럭 제몫은 했을 터였다.
물론 케일은 힘든 훈련 대신 백수를 향한 미래를 택했지만 말이다.
“야.”
그때, 다시 하나가 입을 열었다.
“왜?”
자동적으로 뚱하게 튀어나온 대답에 그녀는 툭 던지듯 말했다.
“클로페 세카를 보러 갈 거면 나도 간다.”
“음?”
갑자기 클로페 세카 얘기가 왜 나와?
케일이 진심으로 의아할 때 하나는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로잘린으로부터 케일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훈련장에서 바로 왔던 하나는 곧바로 북쪽으로 간다는 소리에 클로페 세카를 떠올렸다.
‘전설입니다.’
‘전설은 희생 없이는 못 쓰지요.’
‘저 위대한 전투를 모두 볼 수 없어 아쉽군요.’
클로페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는 이상하다 느껴질 정도로 싸우러 가는 케일을 열기 띤 얼굴로 쳐다봤지만, 그 눈동자가 묘하게 냉정해 보였다.
뜨거운데 서늘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찜찜해.’
자신도 케일 헤니투스나 그의 동료들에게 썩 좋은 사람은 아니다.
시작은 최악이었으며, 중간 과정에서 이렇다 할 전우애가 피어날 만한 구석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 행동이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찜찜한 것은 풀어야 맞았다.
그녀는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
“클로페 세카. 그 녀석, 아주 이상해.”
“알아.”
곧바로 들려온 대답에 하나의 눈이 커졌다.
“야. 내가 말하는 건 그 맛 갔다는 그런 의미의 이상함이 아니라……!”
“알아.”
안다고?
하나는 슬며시 올라가는 케일의 입꼬리가 보였다.
“맛 간 놈이지만 머리는 멀쩡하지.”
그럼 위험한 거 아닌가?
하나는 속마음이 곧바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점점 더 짙어지는 케일의 미소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웃으며 하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놈이 왜 나보고 전설이라고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아?”
“…맛이 가서?”
흐.
케일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놈 머리 위에 있거든.”
지금의 지위, 몸 상태.
클로페 세카의 모든 것들을 케일이 쥐고 있으니까.
가만히 있는 케일과 헤니투스 영지를 파멸 내려 왔던 놈은 오히려 케일에게 잡혔다.
그 후 케일과 로운 왕국 편에 섰으며, 그 결과 무력이 줄어들었음에도 현재 북부 지역에서 전보다 더 큰 발언권을 움켜쥐고 있었다.
현재의 클로페는 케일에게 닿을 수 없다. 그렇기에 헤니투스 영지의 파멸을 노렸던 이 머리 좋은 놈은 케일을 전설이라 칭했다.
“저도 그걸 알지.”
그래서 전설이라고 되지도 않는 말을 칭하는 미친놈이 된 것이리라.
케일은 한 가지 착각을 한 듯한 하나에게 차분히 말해주었다.
“하나, 난 착한 사람이 아니야.”
케일은 스스로가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클로페 세카도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이번엔 그 똑똑하게 미친놈과 사기극을 하나 칠 작정이었다.
“북쪽으로 바로 가지.”
케일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에게로 온과 홍, 라온이 다가왔다.
다른 일행은 텔레포트 마법진 준비와 짐을 싸고 연락을 돌린다고 정신없는 와중이었다.
케일은 평균 9세들, 그중 온과 홍을 슬며시 끌어안았다.
묘하게 축 처진 꼬리가 보였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은밀히 읊조렸다.
“나중에 둘한테도 말해줄게. 물론 비밀이다.”
무심한 목소리가 들린 순간 온과 홍의 꼬리가 살랑거렸고, 라온은 날개를 파닥였다.
그 모습에 케일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 인간아! 최한이랑 다음에 고추장과 된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기본 소스라고 했다! 비크로스가 아주 흥미를 보였다! 론 할배도 여관에서 신메뉴 개발이 필요했다고 관심을 보였다!
케일의 동공이 흔들렸다.
라온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네 이야기는 안 했다! 걱정 마라! 그냥 최한 고향 음식이라고 했다! 론 할배랑 요리 잘하는 비크로스가 함께니까, 금방 만들 거다!
제기랄.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을 때, 론이 다가와 말했다.
“도련님, 떠날 준비 하셔야죠.”
“…그래.”
레몬차 대신 고추장찌개, 레모네이드가 아니라 맹물에 고추장을 타서 줄지도 모를 미래가 그려졌지만, 케일은 미래 백수 생활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북쪽으로 향했다.
***
탁. 탁. 탁.
굳은살투성이의 검지가 탁자를 두드릴 때마다 탁자에 흠이 생기며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으음.”
그 광경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이는 옆에 있던 다른 이의 팔을 툭 쳤다.
옆에 있던 고래족 파세톤은 제 팔을 친 아치를 흘깃 쳐다봤고, 아치는 입을 벙긋거렸다.
‘다 부수는 건?’
파세톤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냥 아치를 무시했다.
그 행동에 아치는 답답한 표정을 지었지만.
툭. 툭. 툭.
검지가 점점 더 깊게 탁자를 부수기 시작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괜히 지금 설쳤다가 위티라와 대련이라도 하면 제 손해였다.
“지금.”
고요한 공간.
고래족 후계자 위티라의 입이 열렸다.
“다 쳐 죽일까?”
헉.
아치는 숨을 들이마셨다.
고저 없는 저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는 냉정한 목소리였다.
“거슬려.”
파직.
탁자의 부서진 나무 잔해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아치는 결국 눈을 감고서 제 속마음을 토해냈다.
“제가 다 부수고 올까요? 제가 부수는 건 잘하는데.”
하아.
위티라는 한숨을 흘리며 아치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대신 원형 탁자를 중심으로 함께 자리한 이들을 바라봤다.
그중 첫 번째로 눈이 마주친 이가 입을 열었다.
“으음, 일단 고대 문서는 대략적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만.”
로운 왕국 서북부의 권력자 테일러 스텐은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 있는, 낡아 보이는 양피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옆에는 죽음의 신 신관이었던 케이지가 함께하고 있었다.
“케일 공자님이 부탁한 대로 고대 문서를 위조해 냈지만, 장소를 비롯하여 중요 단어가 들어가는 곳은 비워두었습니다.”
그는 고심 어린 표정으로 제가 만든 물건이 담긴 유리 상자를 쓰다듬었다.
테일러는 케일과의 통신 이후 케이지와 함께 모고르 수도, 그것도 황궁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카로 왕국에서 온 타샤를 만났고, 클로페 세카도 볼 수 있었다.
그 둘은 곧 케일을 만나러 갔지만, 테일러와 케이지는 수도에 남았다. 그리고 제작은 잠시 중단일지라도 고대 문서를 어떻게 만들고, 재료를 어떻게 은밀히 구할지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수도에 전투가 일어났고, 케일 헤니투스는 정신을 잃었다.
그때 얼마나 고심했던가?
분명 케일 헤니투스 공자라면 무언가 변경 사항이 생겨 그들을 불렀을 텐데,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아직 듣지 못했다.
그러나 클로페 세카와 타샤의 존재가 힌트가 되었다.
북부의 일에 카로 왕국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
두 사람은 그것에도 뜻이 있으리라 판단해서, 장소를 비롯한 중요 문구를 위조하는 것은 뒤로 미루었다.
그렇게 3주가 흐르고, 그는 현재 클로페가 마련한 파에른 왕국 최북부 해안가 비밀 저택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위티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흑마법사들의 시선이 요즘도 느껴지십니까?”
고래족 후계자는 서늘한 눈동자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거슬리는 존재.
쳐 죽일까 싶은 존재.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 고래족이 머무는 빙하들 주변을 은밀히 감시하는 시선이 늘었어. 흑마법사뿐만 아니라 다른 세력들도 붙은 것 같아.”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케일 헤니투스가 쓰러졌을 때, 한 며칠간 그쪽도 어수선한 것 같더니. 지금은 더해.”
위티라는 골치가 아팠다.
안 그래도 케일에게 들어둔 말이 있어, 작전 수행을 위해 탐색하는 흑마법사들의 시선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래족이 어디 감시를 당하는 존재이던가.
누구를 감시하는 것도, 감시를 당하는 것도 모두 썩 좋아하지 않는 부족이다 보니, 내부의 불만이 거세져 갔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지?”
위티라의 시선이 다른 이에게 닿았다.
“클로페 경, 아까부터 말이 없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
클로페는 위티라의 말에 미소를 그려 보였다.
참 고결하고 우수에 차 보이는 미소였다.
“위티라 님, 전설은 말입니다.”
아, 또 저 소리.
전설이라는 단어에 아치의 얼굴이 구겨졌다. 금방이라도 클로페의 입을 막아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클로페는 고고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주인공이 늘 존재합니다.”
“…그렇군.”
위티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했다.
‘뭐가 그렇다야?’
아치는 답답하다는 듯 위티라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그에 응하듯 위티라는 고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흑마법사들의 탐색을 계속 두는 건 거슬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거슬리면 한 방 먹여주면 되지 않나?”
아치는 뒤를 돌아보았다.
비밀 저택의 중심인 서재. 그곳의 문을 황금 막대기를 쥐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공자님.”
위티라가 그를 부른 순간, 케일은 성큼성큼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를 일행이 따라 들어왔다.
하지만 케일은 그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위티라가 앉아 있는 원형 탁자의 중심.
그곳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꽤 좋은 지도네.”
파에른 왕국 최북단과 고래족 땅을 표시한 지도.
“우리 작전은 간단하다.”
케일의 안색은 전보다 창백했지만, 위티라는 그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에 창백한 안색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얀 별은 고래족 땅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어떤 보물을 찾고자 한다. 나는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어. 테일러 후작님의 고대 문서 위조도 그 건이었지.”
잠잠하던 클로페의 입이 열렸다.
“어떤 보물이지요?”
“왜 탐나?”
“탐납니다.”
케일은 저에게 솔직한 클로페를 담담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클로페는 제 목숨이 가장 중한 인물이었다. 저를 영웅처럼 바라보는 클로페에게 케일은 장난스레 답했다.
“나도 몰라. 너도, 우리 모두 알 필요가 없는 부분이지.”
“알겠습니다.”
클로페가 별다른 말 없이 입을 다물자, 케일은 손을 들었다.
“최한.”
“네.”
최한은 앞으로 나서며 천을 테이블 위로 활짝 펼쳐 들었다.
촤르르륵.
천 위에 그려진 지도가 나타났다.
“…서대륙 전도.”
테일러가 내뱉은 순간, 케일의 손가락이 지도 위를 춤추듯 짚어나갔다.
“하얀 별은 고래족 땅에서 가짜 고대 문서를 발견한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내용에 따라.”
탁. 손가락은 서대륙 서부에서 멈췄다.
“카로 왕국 죽음의 땅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리고.
케일은 이들에게 말해주지 않을 작전의 또 다른 큰 흐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땅의 힘을 차지하러 로운으로 향한다.’
그때, 테일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그러면 고대 문서 빈 곳에 죽음의 땅을 쓰면 됩니까?”
“아뇨.”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음의 땅은 고대 이후에 생긴 불가사의 지역입니다.”
“그럼 뭐라고?”
씨익. 케일은 미소를 그렸다.
“그건 제가 따로 알려 드리죠.”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최정건.
그가 죽음의 땅 부근을 묘사한 말이 있었다. 그걸 그대로 쓰면 하얀 별은 속을 것이다.
케일은 함께 작전을 수행할 이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하얀 별이 저 고대 문서가 진짜라고 믿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위티라.”
“네.”
“흑마법사들을 공격해.”
위티라가 멈칫했을 때, 케일은 이어 말했다.
“왜 이 3주간 탐색을 점점 더 노골적으로 하는 줄 알아? 은밀히 하지 않고, 고래족에게 들키도록?”
하얀 별 측이 점점 더 탐색의 강도를 높이는 이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원래 고래족이라면 대번에 저들을 잡아 죽여야 하는데. 안 그래도 인어족 때문에 틀어진 관계니까.”
그런데 고래족이 조용하다.
그러면 뭔가 이상하지 않겠는가?
아마 탐색 임무를 맡은 흑마법사들은 죽을 각오로 고래족 영역 근처를 알짱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으니 뭔가 있겠구나 싶었으리라.
“아!”
위티라가 탄성을 흘렸다가 이내 굳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우리가 속이려는 걸 알아챘을까요?”
“모르지.”
그건 케일도 알 수 없었다.
그가 저들의 생각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니 덫을 놓는 거다.”
케일의 시선이 다시 클로페에게로 향했다.
“첫 번째 덫. 그건 너다.”
클로페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으음.
위티라는 침음을 삼켰다.
고결함이나 우수에 찬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탐욕과 열망으로 가득한 미소가 클로페를 뒤덮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클로페만큼이나 짙은 열망이 느껴지는 케일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두 사람이 닮아 있었다.
케일은 클로페에게로 다가갔다.
투욱.
그리고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속삭이듯이 읊조렸다.
“수호 기사 클로페 경, 와이번 기사단을 다시 한번 이끌어.”
클로페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기대감과 열망으로 인한 떨림이었다. 클로페가 살짝 뒤돌아 올려다봤다. 케일과 시선이 닿았다.
“네가 북부의 전설을 다시 재현하는 거다.”
희열로 가득 찬 클로페의 눈동자에 부드러운 케일의 미소가 자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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