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78
477화.
하지만 이내 감았던 눈을 뜬 케일의 눈동자가 용 혼혈에게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상체마저 한없이 바닥을 향해 숙인 용 혼혈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커다란 로브로 몸이 가려졌음에도 그 떨림이 눈에 모두 들어왔다.
그때였다.
“무엇이 죄송하지?”
차가운 목소리의 로드 쉐리트가 눈을 뜨며 용 혼혈을 바라봤다.
용 혼혈은 잘게 떨리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그는 쉐리트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심장을 가졌고,”
“그게 왜 네 잘못이지?”
흠칫. 용 혼혈의 몸이 크게 들썩거리며 그의 눈동자가 로드 쉐리트에게로 향했다.
장난기 가득하던 얼굴은 냉정한 모습으로 용 혼혈을 응시하고 있었다.
용 혼혈은 로드 쉐리트의 눈동자 속에 일어나는 불길이 느껴졌다. 그리고 거센 파도처럼 일렁이는 슬픔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다시 용 혼혈은 입을 열었지만, 로드 쉐리트는 그의 말을 잘랐다.
“내 아이의 심장이 네 몸에 심어진 것은 네 탓이 아니다. 내 아이의 심장으로 네가 키메라가 된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그녀는 하얀 별을 찢어죽이고 싶었고, 용 혼혈을 보며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껴야 했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니었다.
“네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었잖아?”
용 혼혈은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로드의 말대로, 그가 원해서 키메라가 된 것이 아니었다. 만약, 정말 만약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키메라가 되었던 그 순간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끔찍하게 아프고, 지독시리도 외로운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아픔과 외로움을 견디고 얻은 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괴물이 되는 것이었다.
로드 쉐리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내 아이의 심장으로 네가 키메라가 된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용 혼혈은 입술을 달싹였다.
말이 하고 싶은데,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로드 쉐리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너는 잘못이 많다.”
용 혼혈의 달싹이던 입술이 꾹 닫혔다.
맞다.
자신은 잘못이, 죄가 많다.
“네가 했던 수많은 악행들. 그리고-.”
로드 쉐리트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용 혼혈도 따라 시선이 움직였고, 그는 저를 바라보는 맑은 검푸른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라온 미르.
검은 용이 케일의 품에 안긴 채, 용 혼혈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용 혼혈은 숨이 막혀왔다.
죽이려 했다.
자신은 저 검은 용을 죽이고 싶었다.
키메라인 그는 결코 될 수 없는 진짜 용이라서.
주변에서 보살펴주고 사랑받는 용이라서.
그래서 죽이려 했다.
용 혼혈의 손끝이 다시 떨려왔다.
문득 동대륙 여관에서 설거지를 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묘족 온과 홍, 그리고 저 아이가 다가왔다.
‘설거지 아주 잘한다! 용 혼혈아, 너는 이 여관이 좋나?’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알 수 있는데! 그치, 누나?’
‘그런 건 묻는 게 아닌데. 은근슬쩍 모른 척 해주는 건데.’
제 옆에서 얘기하는 어린 애들을 보며 기가 찼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잊어버린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옆에서 재잘거렸다. 물론 자신의 몸 상태를 아니까, 불쌍해서 그런다는 건 알고 있었다.
용 혼혈은 문득 그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말 걸어줄 때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해볼걸.
은근슬쩍 이야기를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낼걸.
자꾸만. 그는 자꾸만 흘러간 시간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은 후회해도 돌릴 수 없었다.
용 혼혈은 저를 보는 라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미안하다는 말로 그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려 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가 가지는 감정의 끝이 아니었다.
‘내가 누굴 죽이려 했던 거지?’
용 혼혈은 자신이 제 손으로 무엇을 저지르려 했었는지를 깨닫자,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검은 알.
어두운 동굴 안 그와 함께했던 존재. 그리고 처음으로 용 혼혈이 하얀 별의 명령을 어기고 그를 속이게 만들었던 존재.
‘…내가 그 검은 알을 없애려 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죄책감과 후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검은 알.
그것은 자신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똑같이 버려졌다는 동질감?
나는 살았지만 너는 부서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연민?
아니면-
‘…걔뿐이었어.’
자신의 9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있어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그 검은 알뿐이었다.
돌이킬 수 없다.
용 혼혈은 그 말이 가지는 무서움을 깨달았다.
‘이제 다 끝났다.’
용 혼혈은 로드 쉐리트와 라온 미르. 이 두 용을 함께 볼 날을, 자신의 이야기를 할 날만을 기다려왔다.
그 때문에 미련 없는 삶에 조금의 미련을 만들어 제 몸이 무너지지 않게 어떻게든 버텨왔다.
그리고 이제 그는 마지막 미련의 조각까지 없앨 수 있게 되었다.
그때였다.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 혼혈아.”
용 혼혈은 고개를 들어 라온을 바라봤다. 6살. 이제 그 정도 된 녀석이 참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다.
분명 사육되고 감금된 채 자랐다고 들었는데, 다행이다. 이렇게 자라서.
라온은 잠시 망설이다가 시선을 돌려 케일을 바라봤다.
“…얼마 못 산다고 했는데.”
케일은 맑은 검푸른 눈동자가 저를 보며 내뱉는 말에 순간 탄식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차마 용 혼혈을 쳐다보지 못하고 저를 보면서 말하는 라온의 마음이 어설프게나마 이해되었다.
-인간아.
그리고 라온이 그에게 마법으로 조심스레 물어왔다.
혼란과 당황으로 가득 찬 그 물음들을 듣던 케일은 용 혼혈을 바라봤다.
용 혼혈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라온을 바라보고 있었고 케일은 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입을 연 이가 있었다.
“몸이 완전히 무너졌군.”
로드 쉐리트였다.
그녀는 냉정한 눈길로 용 혼혈을 응시했다.
“자세히 보니, 용의 힘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인 것 같은데.”
쉐리트의 말대로 용 혼혈의 몸에는 용의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케일이 가진 하얀 왕관이 그가 지닌 용의 힘, 피를 모조리 빨아먹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세하게 그가 가진 속성이자 용의 힘인 ‘빛’이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얼마 전에 암의 두 번째 비밀기지를 공격할 때 쓰는 바람에 이제는 정말로 남은 힘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로드 쉐리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용의 힘이 빠져나가면서 본래 인간의 신체가 버텨내지를 못하고 있어. 키메라로 인해 생긴 불균형이 네 죽음을 가져오고 있군. 그리고 몸에 빛과 반대인 속성의 힘도 심어져 있어서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 같고.”
죽음의 협곡 전투 때, 용 혼혈과 싸웠던 최한이 심어둔 그의 힘. 절망이라는 어두운 힘이 용 혼혈이 지닌 빛 속성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그의 몸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용 혼혈은 제 상태를 속속들이 알아채는 쉐리트의 냉정한 평가를 마음을 비운 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케일은 점점 더 제 옷깃을 꽉 부여잡는 라온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
케일은 라온을 보고 있었고 라온은 상당히 복잡한 눈동자로 용 혼혈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일은 절로 머리가 아파왔다.
그 순간이었다.
“…네 지금 상태라면, 상당히 고통스럽게 죽겠어.”
로드 쉐리트의 말에 용 혼혈이 답했다.
“죗값에 비하면 모자란 대가입니다.”
허이구.
케일은 용 혼혈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로드 쉐리트는 그런 대답을 하는 용 혼혈을 가만히 바라만 봤다.
‘난감하네.’
케일은 이 상황이 난감했다.
용 혼혈은 죄가 많았다. 그러나 어찌 보면 로드 쉐리트와 라온에게는 제 자식, 제 형제의 흔적을 품은 이였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제 가족의 죽음의 증거이기도 했다.
그리고 라온을 죽이려 했지만, 알고 보니 라온을 살린 이 아니었던가.
참 이래저래 생각할수록 용 혼혈은 라온과 쉐리트에게 복잡함만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죽이고 싶을까? 아니면 살리고 싶은 걸까?’
케일은 라온과 쉐리트를 바라보며 그들의 마음이 무엇일지 살펴보았다.
쉐리트의 마음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라온은 저번 동대륙에서 행동했던 것으로 보아, 용 혼혈이 저를 죽이려 했다는 것도 거의 잊어버리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니 온, 홍과 함께 다가가 놀았으리라.
“일단,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쉐리트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라온과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녀는 제 아이의 심장을 지니고 살아온 이를 바라봤다.
“너와 대화할 시간도 필요해.”
용 혼혈이 눈을 크게 뜨고 쉐리트를 바라봤다. 그는 쉐리트가 그에게 대화하자고 말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더 할 얘기가 많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냉정한 목소리에 동그랗게 떠졌던 용 혼혈의 눈이 힘을 잃고 아래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미움과 또 다른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며 그녀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마지막 한 사람을 바라봤다.
“가능하겠어?”
이 모든 것이 가능한지, 그녀는 케일에게 묻고 있었다.
용 혼혈은 라온뿐만 아니라 케일 일행들에게, 이 서대륙과 동대륙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 죄를 지었으니까.
“가능합니다.”
케일의 담백한 대답에 쉐리트는 라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라온은 슬그머니 케일의 품을 빠져나와 로드 쉐리트에게 다가가 그 품 안으로 제 머리를 들이밀었다.
쉐리트는 아이의 얼굴을 부드러이 매만지며 케일에게 말했다.
“먼저 라온과 이야기를 해야겠어.”
잠시 자리를 비켜달란 소리였다.
케일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용만의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가자.”
케일의 말에 용 혼혈이 따라 일어서다 휘청였다.
하.
케일은 한숨과 함께 대충 그를 부축했다. 참 성가신 놈이다.
그의 시선을 받은 용 혼혈은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라.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까이 있는 케일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그저 이렇게 지내다 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봐준 거란 거 안다.”
허이구.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때, 용 혼혈은 케일의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무심하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네가 한 짓이 후회된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네가 했던 것들을 바로잡고 싶지 않나?”
“…시간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케일은 용 혼혈이 몸을 똑바로 세우자 부축하던 것을 풀고는 그에게 입구를 가리켰다.
용 혼혈은 잠시 쉐리트와 라온을 바라보다가 응접실 문으로 향했다.
케일은 그 뒷모습을 보며 따라 문을 향해 걸어갔다.
‘용 혼혈을 살릴 방도는 있다.’
완전히 살리는 건 아니고, 목숨을 연장하는 방도였다.
그건 바람섬에서 얻었던 항아리였다.
항아리는 생명력이 가득 담겨 있어 몸을 낫게 하거나 수명을 연장시키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 항아리는 사용량의 한도가 있었다.
‘그건 에르하벤님의 것이야.’
항아리의 주인은 명확했고, 케일은 그 주인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건 변함없었다.
‘그렇다면.’
달칵.
응접실 밖으로 나온 케일은 다시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기 전, 두 용이 서로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 살짝 보였다가 이내 문에 가려져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조금 전, 용 혼혈이 언제 죽냐고 묻던 라온이 케일의 머릿속으로 물어왔다.
‘인간아, 용 혼혈은 앞으로 어떻게 하나? 용 혼혈이 나 지켜주고 보살펴줬던 거냐? 난… 어쨌든 난 용 혼혈 덕에 살았고, 그리고 인간도 만날 수 있었던 건가?’
그리고 방금 응접실 문을 닫던 순간, 로드 쉐리트가 케일의 머릿속으로 조심스레 물어왔다.
-라온이 허락해준다면, 저 아이가 이 성에 머물 수 있을까? 아니, 죽기 전까지 이곳에 감금해둘게. 하얀 별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너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가능할까?
케일은 뒤돌아서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용 혼혈을 바라봤다.
“야.”
“…왜 그러지? 혹시 라온 미르에게 충격을 준 것 같아 화가 났다면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용 혼혈은 케일의 시선을 피하며 횡설수설했다.
“내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대화를 잘할 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도 서툴렀던 것 같,”
“너.”
용 혼혈은 제 말을 자른 케일을 바라봤고 케일의 입이 열렸다.
“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
순간 용 혼혈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
그러나 그는 저를 바라보는 케일의 냉정한 눈빛과 차가운 목소리에 지금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넌 죽는다. 목숨을 이어갈 수 없어. 하지만, 새로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용 혼혈은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죽음을 받아들이겠다고, 이렇게 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죗값에 비해 적은 대가라고.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삶을 이어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저 말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물론 넌 제한된 공간에서, 세상도 마음대로 보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산 것도 아냐. 그러나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은, 기회는 주어질 거다.”
하얀 별은 용 혼혈을 어두운 동굴에 가두고 세상도 마음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또한 그를 마치 산 것이 아닌 조종하는 기계 다루듯이 지시 내리고 명령했다.
분명 지금 케일이 말하는 것도 그런 상황이리라.
그런데 용 혼혈은 심장이 뛰었다.
“어떻게 하고 싶지?”
하얀 별과 달리, 케일은 용 혼혈에게 두 번째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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