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17
516화.
“…세상에.”
로잘린은 오랜만에 만난 어색함도 없이, ‘뭐 이런 헛소리가 다 있어?’라는 표정으로 프레도 공작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케일을 향해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공자 피가 뱀파이어들에게 맛있는 편이라니, 놀랍네요. 왜 그렇죠?”
“…그러게요?”
케일은 어물쩍 대답을 넘겼지만, 하나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심장의 활력 때문인가?’
그것 빼고는 딱히 이유가 없었다.
케일은 슬그머니 로잘린에게서 시선을 돌려 프레도 공작을 바라봤다.
로잘린도 뱀파이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프레도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대화가 귀엽구나.”
로잘린과 케일의 표정이 떫은 과일을 먹은 듯이 구겨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반응을 할 겨를이 없었다.
두두두-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전보다 조금 더 가까워진 듯 땅의 진동이 훨씬 더 가까이에서 퍼져오는 듯했다.
‘가야 한다!’
움직여야 할 때였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나와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나?”
“그렇지.”
“정말로?”
케일이 한 번 더 물었을 때, 쥐족 판이 미간을 찌푸리며 케일을 바라봤다.
‘지금 저자와 정말로 협력을 할 작정인가?’
…우리 부대원을 죽인 놈들의 수장인데?
판의 마음속에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이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전쟁에서는 아군도 적군도 없다.
서로를 죽이던 놈들끼리 어느 순간 합의점이 맞아 아군이 되기도 하지 않던가.
다만 판은 지금 이런 행동을 하는 케일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뒤에서 적들이 밀려오는구만! 이럴 틈이 있나?’
그가 저도 모르게 입을 삐쭉이며 입이 근질근질할 때였다.
프레도 공작이 케일을 보며 담백하게 말했다.
“그래. 진실로 계약을 하고 싶지.”
“믿을 수가 없어.”
단호하게 답하는 케일에게로 아군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특히 많은 이들은 이런 대화로 시간을 허비하는 케일에 대해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케일은 뒤를 가리켰다.
“진심인지 아닌지 증거를 보여줘 봐.”
프레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 나보고 우리 아군을 공격하란 건가?”
“그건 네 머리로 생각할 문제고. 일단 나에게 믿어도 될 ‘증거’를 보여주면, 나중에 초대는 받아주도록 하지.”
여유로운 케일의 모습에 프레도 공작은 얕은 웃음과 함께 물었다.
“계약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초대만 받아준다?”
케일의 입꼬리가 비틀리듯이 올라갔다.
“당연한 걸 왜 묻지? 우리 아군을 죽인 놈의 대화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과분하지 않나?”
듣고 있던 쥐족 판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반면 프레도 공작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긴 그렇긴 하겠군. 그렇다고 내가 지금 우리 아군과 싸울 순 없고.”
그는 이해해 달라는 듯 케일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조금 남 눈치를 봐야 할 형편이거든.”
눈치를 본다고?
케일은 그 말을 유심히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
‘공작이면 귀족 중 가장 좋은 지위인데, 남 눈치를 본다라.’
별로 힘이 없는 놈인가?
‘아냐. 다른 놈들보다 더 세.’
그간 전투 경험이 사람 보는 눈은 길러주었다. 눈앞의 뱀파이어는 지금 저 뒤에서 달려오는 기사단보다 무서운 놈이다.
‘그러니 버드가 저놈을 해치우고 기사단을 피해 도망치자는 소리를 안 하지.’
아까부터 버드는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뒤에서 오는 적의 동태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케일은 그런 모든 점들을 머릿속에 상기시키며 뱀파이어에게 시선을 여전히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에 답하듯 프레도는 입을 열었다.
“리에나.”
…누구지?
케일이 낯선 이름에 멈칫한 순간, 그는 최한의 검이 다른 쪽으로 뻗어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네. 주군.”
바스락.
일행이 있는 바로 뒤편 나무에서 한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창백한 안색의 여인은 분명 뱀파이어일 터.
“이들에게 주변 지도를 주도록.”
“…주변 지도는 우리에게도 있다만?”
케일이 프레도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일단 받아 봐.”
하지만 소리 없는 걸음걸이로 다가온 여인이 내민 것을 프레도 공작은 받을 걸 권유했고, 케일은 가만히 있다가 이를 받아들었다.
“……!”
그리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케일 어깨 너머로 함께 보던 로잘린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마-”
하지만 그녀는 한 글자를 내뱉는 순간, 제 입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케일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침을 삼켰다.
특히 케일은 지도를 쥔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마계의 문 지도다!’
동대륙 3대 금지 중 하나인 거대한 싱크홀 ‘마계의 문’.
이 지도는 그 거대한 싱크홀 속에 자리한 지형에 대한 정보가 담긴 지도였다.
그리고 그 정보를 파악한 순간, 케일은 깨달았다.
‘왕국이다.’
거대한 싱크홀은 수십 층으로 나눠진 거대한 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단순한 구덩이가 아니었다.
웬만한 마을 몇 개를 합친 것과 같은 그 거대한 구덩이 속에는 이미 거대한 도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으로 프레도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엔더블 왕국이다.
역시 케일의 예상대로 이것은 왕국을 나타내는 지도였다.
-네 상상대로 우린 왕국을 하나 만들어두었지. 그 장소가 이 산 너머부터 시작되는 북부 지대이고, 그 수도가 ‘마계의 문’이 있는 싱크홀이다.
케일은 심장이 뛰었다.
이건 열쇠다.
4파전으로 벌어진 싸움. 그리고 지금 케일과 아군을 몰아세우려는 듯 밀려드는 적들.
이 모든 것들을 버티기만 하면, 그 뒤에 단박에 전세를 뒤집어엎을 열쇠.
“…너 이걸 나한테 주는 의미를 알고 있는 건가?”
케일은 하얀 별의 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프레도 공작과 함께하는 아군들이 케일을 잡으려고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 프레도 공작은 케일에게 근거지에 대한 큰 정보를 주었다.
그것도 그냥 근거지가 아닌,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던 장소에 대한 진실이었다.
‘이놈은 미친놈인가?’
케일은 프레도 공작을 바라봤고, 머릿속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내가 준 것의 가치를 나는 잘 알지.
아니다.
이놈은 미친놈이 아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
무엇일까?
케일은 이제 왕국의 존재와 이름도, 프레도 공작의 위치도 알았다.
그러나 단 하나,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하얀 별.’
그놈은 저 엔더블에서 어떤 위치이지?
케일의 머릿속이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정보를 파헤치고, 여러 조각의 정보들을 뭉치며 여러 가설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케일의 입이 열렸다.
“하얀 별의 위치가 무엇이지?”
다시 한번, 이전에 던졌던 질문을 케일은 내뱉었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프레도는 답해주었다.
-하얀 별은 우리 무리의 ‘주군’으로 통하긴 하지만. 그는 완전한 ‘왕’이 아냐.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왕이 되지.
그 순간이었다.
“하, 하하-”
케일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에 다른 일행들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으나, 케일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프레도 공작에게로 다가갔다.
“케일 님.”
최한은 그런 케일을 막으려 했으나, 케일은 괜찮다 손짓하고선 프레도 공작 코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가까이, 그의 귓가로 얼굴을 대며 속삭였다.
오로지 그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너, 왕이 되고 싶구나?”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케일의 눈동자엔 확신이 들어차 있었다.
프레도 공작은 말했다.
이름만 ‘주군’인 하얀 별이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면 진정한 ‘왕’이 된다고.
그런데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그리고 이놈은 아까 전부터 케일에게 자신은 진실만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가 했던 말들이 케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난 긍지와 품위를 아는 뱀파이어야. 그런 만큼 누구를 내 위에 모시지 않지.’
‘자네에게는 진실만을 말하도록 하지. 나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섬기지 않아.’
하얀 별도, 마족도 진심으로 섬기지 않고.
자신의 위에 무엇도 두지 않는다고.
진실로 모시는 이는 없다고.
그 말이 무엇이겠는가?
“네가 왕 자리를 가지고 싶은 거지?”
그래서 지금 아군을 배반하고, 적인 나와 협력을 하려는 거잖아?
“네 머릿속엔 마족도 뭣도 없고. 네가 왕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한 거 아냐? 그렇지?”
케일은 귓가에서 얼굴을 떼어내었다.
‘내 피를 원한다는 것도 말장난이다. 이놈의 진짜 목적은 본인이 왕이 되는 것이지.’
그는 프레도 공작의 얼굴을 본 순간, 제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씨익.
프레도 공작의 입가에 그림 같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느긋하게 케일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맞네. 왕이 되고 싶지.”
케일은 지도를 품 안으로 갈무리하며 입을 열었다.
“초대장을 기다리도록 하지.”
“곧 초대장을 보내도록 하지.”
스으으으-
프레도 공작의 몸이 외곽부터 서서히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검은 피부는 마치 재처럼 흩어졌고 그의 몸이 사라져 갔다.
그때, 프레도 공작의 입이 열렸다.
“선물을 하나 더 주도록 하지.”
설산으로 향하던 케일의 걸음이 멈췄다.
수하인 리에나와 함께 사라져가던 프레도 공작은 마지막 재가 하늘로 흩날리는 순간 한마디를 남겼다.
“조금 전에 로운 왕국으로 하얀 별이 갔다.”
…하얀 별이 어디로 갔다고?
케일의 눈이 커졌다.
그 와중에도 프레도의 말은 이어졌다.
사라지는 몸처럼, 그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져 갔다.
하지만 제대로 들려왔다.
“하얀 별은 잘 알지. 정보가 부족할 땐, 우두머리의 목숨줄을 쥐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을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프레도 공작은 사라졌다.
그가 어떻게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로잘린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테일러 후작!”
로운의 서북부로 하얀 별은 갈 것이다.
하얀 별은 케일이 다른 곳에 있는 동안 빠르게 본인이 찾는 그 힘을 얻으려고 할 터.
‘그렇다면 그 지역의 정보를 빠르게 습득해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야 해!’
그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프레도 공작의 말대로 우두머리를 붙잡아 그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로운 서북부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는 우두머리는 테일러 스텐 후작이었다.
‘테일러 후작을 구해야 해!’
그때, 로잘린은 케일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얼른 로운 서북부로 가야 한다.
그걸 케일도 알 것이다.
그러나 케일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녀의 생각과 달랐다.
“…테일러 후작이 아냐.”
테일러는 우두머리가 아니다.
하얀 별도 알 것이다.
로운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우두머리이자, 케일도 ‘보고’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정보는 결국 그 사람을 한 번 거치거나 그 사람에게 모인다.
‘이미 로운 왕국은 서북부로 하얀 별 수하들이 온 것을 알고 그쪽으로 병력을 보냈어!’
그렇다면 수도의 병력이 줄어들 터.
그것을 하얀 별이 모를까?
그 사실을 놓칠까?
프레도 공작은 말했다.
‘조금 전에 로운 왕국으로 하얀 별이 갔다.’
로운 왕국에서 하얀 별 수하를 발견한 것은 ‘조금 전’이 아니었다.
아까 몰든 왕궁 지하 미궁에서 케일이 싸우고 있을 때, 알베르 왕세자에게 이미 들은 정보였다.
그 말은 로운에서 발견한 하얀 별의 수하들과 하얀 별은 지금 따로 움직이고 있음을 뜻했다.
“…얼른 왕궁으로 가야 돼.”
알베르 크로스만.
하얀 별은 그를 노릴 것이다.
“미치겠네.”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베르 크로스만, 그라면!
“이 인간 왕궁이 아니라, 서북부로 가는 것 아냐?”
그는 라온에게 영상통신을 부탁하며 곧바로 설산으로 향했다.
***
알베르는 시종에게 명령했다.
“갑옷을 가지고 오도록.”
끼이익-
그리고 커다란 문이 열렸다.
“저하!”
삐이이이- 삐이이-
문 너머 공간은 알베르를 부르는 신하들의 목소리와 영상통신구의 긴급 신호음으로 뒤죽박죽 엉켜들고 있었다.
알베르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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